4일 오후 지리산 노고단.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사람과 생명,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오체투지(五體投地) 순례'의 첫 발을 뗐다.
오체투지란 신체의 다섯 부위(양 무릎, 양 팔꿈치, 턱)가 땅에 닫게 하는 절.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는 동행하는 순례단과 함께 하루에 3~4㎞씩 오체투지를 하며 11월 1일 계룡산 신원사(약 200㎞)에 도착할 계획이다. 허가가 날 경우 북한 묘향산까지 오체투지 순례를 이어갈 계획도 갖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03년 새만금 간척 사업에 반대하며 전북 부안에서 서울까지 310㎞ 거리를 삼보일배(三步一拜)로 순례해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었다. 5년 만에 다시, 그것도 더 힘든 오체투지의 길을 나선 까닭을 놓고 이들은 "한국 사회가 희망의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라고 입을 모았다.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사람의 작은 발걸음, 오체투지
지난 달 27일 범불교도 대회에서 현 시국에 대한 장문의 글을 발표하며 오체투지의 뜻을 밝혔던 수경 스님은 순례 시작 전 "오체투지가 생명의 실상을 바로 보고, 만물동체라는 '평화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의 길'을 한 뼘이라도 넓히는 일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발원한다"고 밝혔다.
수경 스님은 "이명박 정부의 권위주의적 국정 운영 방식이 민주주의와 생태, 인권의 위기는 물론 종교 간 대립까지 부추겨 국민 통합을 해치고 있다"며 "대통령답게, 기업가답게, 공무원답게, 경찰답게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길을 걸어가지 않기 때문에 혼란이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경 스님은 "그래서 나는 나의 길을 제대로 가기 위해 '오체투지'를 한다"고 밝혔다.
문규현 신부도 "이 둘이 오체투지, 온 몸을 보듬으며 간다"며 "우리의 고행이 생명의 길, 희망의 길이 되길 바라며, 이 여정이 민족의 길, 화해의 길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신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 이념과 정치 행태에 오체투지로 항의하고 저항한다"며 "소수 시득권층만을 위한 정치, 신독재와 신공안정국, 신냉전주의, 신종교 전쟁으로 이룰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더 추해지고 초라해질 자멸의 길을 그만 가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두 분의 고통이 해산의 고통이 될 수 있기를"
이날 오후 순례단은 지리산 노고단에서 천고제(하늘을 향한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긴 여정의 막을 올렸다. 박남준 시인의 사회로 이뤄진 천고제는 남산놀이마당의 맞이굿, 화계사 합창단 공연이 어우러졌다. 또 김지하 시인의 '고천문' 낭독, 이원규 시인의 시 낭송, 토우 모시기가 이어졌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불교환경연대 지관 스님은 "국민과 소통을 하려면 자신을 낮추고 겸허하게 '하심(下心)'의 마음을 갖춰야 하는데, 오체투지는 '하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며 "스스로를 큰 머슴이라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하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민과의 소통이 불통인 것"이라고 말했다. 오체투지가 필요한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지만, 정작 오체투지에 나선 이들은 차별을 받고 소통을 호소하는 종교인이 된 셈이다.
이현주 목사는 연대사를 통해 "두 분이 몸을 던지는 이 땅에 건강한 나라가 세워지도록 두 분의 고통이 해산의 고통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건강히 다녀오라"고 격려했다.
돌밭에서 시작한 두 달 간의 순례길
천고제를 드린 후 이들은 지리산 노고단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이날 이들이 오체투지를 이어간 길은 모두 돌길이었다. 50여 명으로 구성된 순례단원들이 이들보다 앞서 가면서 큰 돌을 치우는 등 이들의 오체투지를 도왔다.
전신을 사용하는 오체투지는 극심한 체력 소모를 유발한다. 10여 번 절을 한 후 한 번 정도 잠시 쉬어 가는 형식으로 이어지는 순례에서 두 성직자는 곧 고통스런 모습을 보였다. 수경 스님은 이미 새만금 삼보일배 중 입은 무릎 부상으로 인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오체투지를 시작하자, 순례단을 비롯해 천고제에 참석한 불교도와 가톨릭 신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들의 순례 길을 격려했다. 또 외국인도 찾아와 지지를 보냈다. 순례단은 이날 밤 노고단 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한 뒤 남은 여정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온 몸으로 대지를 쓰다듬으며, 두 달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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