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전공한 연구자들의 모임에서 '학술진흥재단이 없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 소리에 한 문학박사가 귀를 쫑긋 세우며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놀라워했다. 다른 연구자는 그간 학술진흥재단(학진)이 학문세계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거론하며, 차라리 잘 되었다고 맞장구를 쳤다.
어찌되었든, 그 모임에 참석한 연구자들은 대부분 한두번 인문사회과학 기초학문 지원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었고, 몇몇은 이번 여름을 인문한국(HK) 연구계획서 작성에 온전히 투자했으며, 한 연구자는 두뇌한국(BK)사업 중간보고 때문에 몸과 마음이 모두 소금에 절인 듯 무거워진 상태였다. 이 모든 사업은 학진에서 주관하고 있다. 학진의 사업일정은 박사급 비전임연구자들의 일상을 지배한다. 그것이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대학의 전임교수보다는 박사급 비전임연구자들에게 더 존재감이 높은 학진이 없어진다고 한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조직인 학진의 존폐가 무어 그리 대수이랴. 하지만, 그 이면의 맥락은 만만치 않은 함의를 안고 있어 문제적이다. 한국 학문세계의 이데올로기적 지형변화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점차 한국학문은 국가기구에 의해 관리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기능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학진의 존폐가 아닌, 새롭게 탄생한 '한국연구재단(가칭)'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과 '한국연구재단(가칭)'의 탄생
지난 8월 26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 주요 내용은 연구개발(R&D) 관련 정부 기관 및 진흥기관을 29개가 13개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지식경제부 산하 연구개발(R&D) 지원기관 6개가 3개로 통합되고,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연구재단 3개를 1개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산업기술평가원과 산업기술재단, 부품소재산업진흥원, 기술거래소,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에너지기술기획평가원이 없어지고, 새롭게 산업분야와 에너지분야, 산업기술정책 등 3개 기관으로 재편될 전망이다.
문제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연구재단의 재편에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학술연구정책실에 따르면,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구제과학기술협력재단을 통합해 '(가칭)한국연구재단'을 설립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그야말로 매머드급 '거대 학문 권력'의 탄생을 예고하는 일대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른바 '제2차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묻혀 그 심각성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연구재단을 통합해 출범하게 될 '(가칭)한국연구재단'의 설립은 한국학문에 대한 거시적 시각에서 볼 때, 철회되어야 할 정책 추진이다. 더불어 이와 관련한 심각한 논의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인문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학문의 자율성 옹호가 한국사회의 일상에 어떤 의미가 있는 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치적 성과주의에 매료된 통합의 논리
'(가칭)한국연구재단' 설립을 위한 문제의식은 '공공기관 선진화와 기구 통폐합을 통한 효율화', 그리고 '신정부 출범 및 교육과기부 발족'에 따른 새로운 체제의 필요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즉,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식으로 '새로운 연구지원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 문제의식의 출발이다.
정치권에서 '잃어버린 10년'을 외쳐대며, '과거 흔적 지우기'에 몰두하는 맥락에서 '(가칭)한국연구재단'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매머드급 '(가칭)한국연구재단'이 설립되면, 그것이 비록 기존 연구관리기관의 통합일 지라도 새로운 조직의 탄생이기에 '하나의 성과물'처럼 보일 수도 있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일종의 성과주의적 차원에서 조직의 통합을 바라봄으로써, 학문사회가 견지해야 할 자율성에 대한 고려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학문 정책이나 학문 기구의 개편이 오로지 새정부 출범이라는 정치 논리와 효율이라는 경제논리에 의해 난도질 당하는 모습을 볼 때, 학문연구자들은 스스로 폭력의 희생양이 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여기에는 학문이 전혀 자율적이지 못하는 상처를 포함하고 있으며, 학문세계가 궁극의 가치를 향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지는 극심한 좌절감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정부의 통합안에는 1977년에 설립되어 31여 년의 역사성을 가진 '한국과학재단', 1981년에 설립되어 27년간 한국학문 진흥의 논리를 개발해 온 '한국학술진흥재단'에 대한 존중의 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인문정신은 과거와 역사에 대한 존중으로부터 시작한다. 청산하고 재편하려고 칼부터 들이대는 태도에서 인문학을 포함한 학문을 존중하려는 태도를 읽어낼 수는 없다. 다분히 청산주의적 태도를 보이면서, 정치적 성과를 위해 기획된 듯한 '(가칭)한국연구재단' 설립은 그 발상부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게다가 통합의 논리도 빈약하기 이를데 없다. '(가칭)한국연구재단'이 설립되면 이공분야와 인문사회분야의 융합연구가 촉진되고, 기초연구 비중이 높아지며, 연구자의 행정부담이 완화되고, PM의 역할이 강화된다고 한다. 이러한 개선 사항이 왜 통합을 통해서만 가능한 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통합의 효과로 제시된 사항은 기존 조직 체계에서 점진적으로 개선해야 할 사항인데, 오직 통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오는가. 통합의 논리는 단지 조직의 일원화를 통해 국가 관리의 수월성을 제고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일 뿐이다. 게다가 연구 지원을 받는 당사자인 학문연구자들의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의견수렴과정을 거치지 않고 급박하게 추진하는 현 상황도 문제가 많다. 수요자 중심의 연구관리 제도를 확립하겠다는데, 수요자가 무엇을 원하는 지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행정기구의 재편에 따른 파장에 대해서는 무심한 채, 연구자들에게 재편 이후의 상황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강요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학문지원정책과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
현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이야기하는 시기의 국가 주도의 학문지원정책은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에 입각해 있었다. 대리인 이론은 주당사자(principal)가 대리인(agency)에게 자신의 권리를 양도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이다. 가시적이기도 하고 비가시적이기도 한 이러한 부가가치는 장기적이면서도 지속적인 투자와 간접화된 개입방식을 특징으로 한다.
학술진흥재단을 포함한 학문지원시스템은 큰 범주에서는 국가(혹은 교육인적자원부)라는 '주당사자'가 '대리인'으로 학술진흥재단ㆍ한국과학재단을 내세워 진행하는 학문지원정책이다. 그래서 학술진흥재단 등은 다시 '주당사자'가 돼 '각 대학' 혹은 '학문연구자'를 '대리인' 삼아 학문의 성과를 의뢰했다. 서로가 연관돼 있는 이러한 관계는 큰 틀에서 볼 때 학문에 대한 국가의 간접화된 개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학술진흥재단은 중간자로서 '학문연구의 내용에 대한 개입'은 가급적 회피해 왔다.
이러한 합리적 학문개입으로 인해 학문연구자들은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시스템에 양가적 감정을 가져왔다. 학문의 상대적 자율성의 보존하려는 태도에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지원 제도라는 것 자체가 학문세계에 대한 개입이라는 비판적 인식을 지녀왔던 것이다. 학술진흥재단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연구자들은 근본적으로 국가기구의 학문영역에 대한 개입을 거부했고, 학술진흥재단에 대한 비판을 통해 학문세계의 자율성을 보존하려 노력했다.
국가기구에 의한 학술연구의 종속 가능성
하지만, '(가칭)한국연구재단'의 설립은 대리인 이론이 갖고 있던 합리성마저 포기하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즉, 국가가 직접 학문의 흐름을 주도하려는 의도가 내비춰진다는 것이다. 교과부가 직접 '(가칭)한국연구재단'의 운영에 개입하여 특정 연구과제를 설정하고, 선정에도 개입하려 한다. 즉, '(가칭)한국연구재단'의 국가기구로부터의 독립성이 보장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교과부가 '연구과제의 조직화' '연구개발 계획서의 검토 및 조정'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이 마련한 것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이공분야와 인문사회분야가 '(가칭)한국연구재단'에 함께 존재하게 됨으로써, 이공분야의 논리로 인문사회분야 지원시스템을 만들 경우, 국가가 학술연구에 직접 개입할 수 있는 여지에 대한 인문사회분야의 반발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구주제를 국가기구에서 공모하고, 그 연구팀 선정에 직접 개입하게 될 경우 학문은 도구화될 수밖에 없다. 국가기구가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학문을 호명할 수는 있다. 이공계 분야에서는 비일비재한 것이 국가기구의 개입에 의한 특정 과학기술분야의 발전이다.
하지만, 인간의 존재조건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와 이에 관한 성찰을 통해 '다른 미래에 대한 상상'을 지향하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이뤄지는 국가기구의 개입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국가기구가 공동체 내의 담론체계에 이데올로기적으로 개입했을 때, 집단적 불행이 따라왔음은 역사적 사실들이 증언한다.
전체주의 사회는 폭력을 통합 억압으로만 유지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적 상황을 합리화한 다양한 학문적 지원 속에서 그 기반을 다졌다. 파시즘 체제도 광범위한 대중의 동의를 기반으로 하는 데, 그 동의의 저변에는 동원된 학문세계의 이데올로기적 뒷받침이 있었다. 그래서, 학문지원 체계를 거대기구로 통합해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가칭)한국연구재단'의 설립은 향후 학문연구자들의 학문적 독립성을 훼손할 뿐 만 아니라, 학문에 대한 국가개입이 노골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거대 학문 권력'의 탄생을 예고한다. 국가 기구가 학문을 조정하려는 순간, 그 사회는 정신적 자유를 박탈당하게 된다. 학문의 자유가 박탈당한 사회는 영혼을 강탈당한 육신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는 내년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가칭)한국연구재단' 설립에 모두가 주목해야 한다.
*이 글은 대안지식연구회에서 주 1회 내는 정치사회비평입니다. 지난 글들은 지행네트워크 홈페이지(http://jihaeng.net)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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