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민영화에 대한 논쟁은 인터넷, 정당, 사회단체, 정부 부처 사이를 오가며 더욱 확산되는 양상이다. 단순히 일회성 이슈가 아닌 한국 수도정책의 미래를 결정하는 싸움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논쟁은 '민영화가 수돗물 값을 얼마나 올릴지' 등에 관한 단편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수돗물 논쟁, 가격 논란 넘어서야
'기업들이 수도 사업에 참여해야 효율이 높아진다'거나 '세계적인 물기업 육성이 시급하다'는 환경부 주장의 타당성이나 환경부와 '다른 길은 없는지'에 대해서는 논의를 찾기 어렵다. 때문에 국민의 반발 속에서 환경부의 민영화 추진은 중단됐지만, 수자원공사로의 위탁과 민영화 외의 주제들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수돗물 논쟁은 한국 수도 사업의 현실에 근거해 근본적인 문제와 대책을 점검하는 행태로 발전해야 한다. 정부도 인정하는 바와 같이, 한국 수도사업의 고질적 병폐인 '수돗물에 대한 시민의 불신', '극심한 지역 간 불평등', '중복 과잉 투자에 따른 낭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맞춰야 한다.
최악의 수돗물 문제, 국민신뢰 상실
현재 수돗물을 직접 마시는 국민은 1%에 불과하다. 미국이나 일본의 수돗물 직접 음용비율이 30-50%임을 고려할 때, 수돗물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평가가 얼마나 처참한지 잘 보여준다. 이제는 조리를 할 때조차 수돗물을 쓰지 않는 비율이 20%를 넘는다.
수도보급률 91.3%, 수돗물 공급(정수장) 능력 3111만 톤(국민 1인당 0.7톤/일), 예산 5조5479억 원(1인당 11만 원/년) 등 세계적 수준의 투자가 부끄러운 상태다(2006년). 그리고 수돗물 불신은 먹는 샘물과 정수기 시장을 각각 3000억 원/년과 7000억 원/년으로 급팽창 시켜 국민들에게 불필요한 지출을 강제하고 있다.
수돗물시민회의가 서울시 강남구 S아파트 한 가구를 조사한 결과, 아파트 단지 차원에서 정수기를 설치해 수돗물을 처리하고, 또 가정에서도 정수기 설치했음에도 수질기준(대장균)을 거듭 초과한 사례가 있었다. 정수기 관리에 문제가 있었던 탓이다. 이렇듯 수도 정책에 대한 불신은 국민의 부담을 늘리고 또 건강을 위협하는 악순환의 원인이 되고 있다.
두 번째 수돗물 문제, 과잉투자
수도공급 시설(정수장)의 가동률은 50.8%에 불과하다(2006년). 환경부, 국토해양부, 행정안전부 등이 제각각 투자를 진행하면서 시설을 과잉 중복 투자한 결과다.
감사원에 따르면 환경부와 국토해양부의 지방상수도와 광역상수도 중복투자에 따른 예산낭비 추정액만도 3조7000억 원이다(2006년). 지방 정부는 공사 규모를 부풀려 더 많은 예산을 따내고, 환경부는 부실한 평가를 바탕으로 예산을 지원하는 탓에 곳곳에 눈먼 돈이 오고간다. 누수를 줄여야 한다는 여론은 멀쩡한 관거를 교체하느라 땅을 파헤치는 공사로 이어지기 일쑤다.
세 번째 수돗물 문제, 농촌지역의 투자 부진
도시지역의 과잉투자와 달리, 농촌지역의 수도 보급율은 41.4%에 불과하다. 도서, 연안, 산간의 수도시설이 없는 지역(미급수지역)은 장마철 때조차 식수를 구하기 어려운 곳이 많다. 대형 댐과 하천에 취수원을 설치하고, 대형 관로를 통해 도시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체계를 발전시켜 온 기존의 수도정책으로 지금껏 고지대와 농촌지역은 수도공급이 미뤄져 왔다.
이들 지역의 취수시설들은 수질관리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도시 지역의 수도시설은 55개 이상의 항목을 매월 검사받는데 비해, 이들은 10여개 항목을 불규칙하게 검사받거나 전혀 받지 않는 곳도 많다. 농촌지역에서 밝혀지지 않은 수인성 괴질들이 심심찮게 나타난 것은 이런 수도정책에 원인이 있었다.
그나마 농촌지역에서 수돗물을 공급받는 곳들조차 시설은 낙후되고, 공급 면적은 넓어서 수도요금이 도시보다 훨씬 높다. 강원도 정선군의 수도요금은 과천시에 비해 3.8배나 된다.
해법 없는 민영화 주장, 국민 불안만 불러와
환경부가 내놓은 '물산업육성계획'과 '물산업지원법(상하수도 서비스개선 및 경쟁력강화를 위한 법으로 명칭 변경을 고려 중)'은 위 문제들의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이들이 내건 목표는 '물 기업 육성'과 '물 산업 강국'이다. 수돗물은 '공공재'가 아닌 '경제재'이기 때문에, 수돗물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이고 돈벌이가 될 수 있도록 개혁하는 것이 당면 과제라고 주장한다.
환경부의 계획이 국민들의 불안을 불러온 것은 당연했다. 지금까지의 비효율, 무책임, 밀실행정에 대한 반성은 없고, 수도 사업을 기업들에 팔아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만들겠다니, 국민들의 우려는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법률안을 마련하고, 물산업육성계획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기업들하고만 협의를 해왔기 때문에,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수도요금에서 인건비는 10%에 불과
정부는 물 민영화가 예산을 절약하고 효율을 높일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으나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민간 기업이 효율을 높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인원을 줄이고 생산 공정에서 비용을 아끼는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도요금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10% 정도고, 인위적인 통합이 내부의 불협화음과 갈등을 불러온다면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위 계획에는 중복과잉투자의 근원인 중앙 부서들의 난립이나, 과잉설계와 부실 평가의 관행에 대한 개선 방안이 없다. 행정안전부가 주장하는 과장된 민영화의 효과조차 연간 2000억 원에 불과한데, 환경부와 국토해양부의 중복투자에 의한 예산낭비액은 무려 3조7000억원이 누적되어 있다. 환경부와 지자체의 과잉 투자에 따른 손실은 평가 근거조차 찾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위 계획과 법률에는 중앙정부의 책임을 논하지 않고 있다. 환경부의 계획은 중앙정부의 정책실패에 대한 평가는 감춘 채, 마치 수돗물 문제가 지역의 태만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처럼 몰고 가고 있다.
농촌지역의 불평등, 민영화로 해결될 수 있나
또한 법률은 지역에 대한 지원에 대단히 소극적이다. '취약지역에 대한 시설 설치와 개량에 예산지원이 가능'하다고는 했지만, 이는 농촌의 낮은 생산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농촌지역이 비효율적이니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외부의 수술을 받아 들여야 한다는 논거로 보인다.
전기요금은 물론이고, 쌀과 배추 값도 전국에 별 차이가 없는데, 정부의 실패에 의해 벌어진 수돗물 값에 대해서는 지역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지나치다. 이는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뒤떨어진 농촌에 대해 이지매하겠다는 심보에 불과하다. 결국 수도 정책 실패의 최대 피해자인 농촌에 책임을 떠넘기고, 구조적으로 부담을 씌우겠다는 것이 민영화 주장의 핵심이다.
물론 법안에 포함된 시설의 통합, 사업 권역의 확대, 전문 업체의 참여 보장 등은 지역 수도사업의 효율을 높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들 사업들은 민영화와 관계없이 추진할 수 있으며, 현행의 수도법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마치 민영화를 해야 광역화, 전문화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사실왜곡이다.
환경부의 '물산업 육성'은 자기모순
또한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의 보전을 위해 만들어진(정부조직법 40조) 환경부가 '물산업 육성'을 주장하는 것도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물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해외시장 진출 활성화'를 위해 환경부가 법까지 만들어 추진할 일이 아니다. '수출하는 먹는 샘물 물량은 취수량에서 제외한다(14조)'와 같은 법안까지 등장한 것은 환경부가 관할하는 '먹는물관리법'을 무력화하는 황당한 사건이다.
한 사람이 동시에 '밀렵군'과 '밀렵감시인'을 맡을 수는 없다. 내부의 결탁을 방지하기 위해 이런 구조는 용납하지 않는 것이 행정의 기본이다. 환경부는 지자체가 수도사업과 관리를 함께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스스로는 '산업육성'과 '수도 사업 평가'를 함께하겠다고 억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은 단순히 수도사업의 혼란에 그치지 않고, 환경제도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환경부의 존재 근거를 허물어뜨릴 가능성이 크다.
이상의 논의로 볼 때, 환경부의 수돗물 민영화 주장은 한국의 수도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문제의 원인을 왜곡하고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수도 민영화, 정부 실패에 시장 실패만 덧붙일 것
환경부는 수도사업 개편을 통해 '정부의 실패(비효율)'를 해결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시장의 실패(불평등)'를 더하는 '정책의 실패'가 될 가능성이 크다. 수도정책의 기본조차도 못하는 환경부가 돈벌이까지 나서면서 국민만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환경부는 이제라도 물산업지원법의 추진을 중단해야 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법률체계로는 국민을 설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타부서의 협조를 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공무원노조의 반발만 강력하고, 기업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현실은 환경부 계획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물산업지원법 제정 논란은 실효성도 없고, 입법 가능성도 거의 없다.
'물산업 강국' 아닌 '물관리 강국'이 대안
따라서 환경부는 물산업지원법의 제정 계획을 중단하고 비판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수용했던 '수도사업에 대한 사회통제(투명한 정보 공개, 시민참여 등)'와 '광역화, 전문화 대한 지원' 등을 담을 수 있도록 수도법을 개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또한 환경부의 물산업육성과도 조정해야 한다. 기업의 육성을 위해 민영화를 끊임없이 추진할 수밖에 없는 부서를 두고서는 정책 전환이 어렵다. 따라서 물산업 육성과가 아니라 수돗물정책의 신뢰를 향상시키고, 농촌지역의 수돗물 문제 해결을 지원하기 위한 부서로 개편하는 것이 옳다.
범정부 차원에서도 고질적인 중복 과잉투자와 물정책의 혼란을 초래하는 물 관리의 분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지체해 왔던 '물관리 일원화'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당장 '광역상수도와 지방상수도의 일원화'라도 통합해 비효율의 근본을 바로 잡아야 한다.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물산업 강국'이 아닌 '물 관리 강국'이다. '돈 잘 버는 수도기업의 존재'가 아니라 '믿고 마실 수 있는 수돗물'이 중요하다. 정부는 이제라도 민영화 논란을 마무리하고, 수도정책의 근본을 바로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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