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등 노동계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해고된 18명의 간부의 복직 요구를 완전히 포기했다. 사직서 작성을 통해 자진 퇴사 형식을 만들어 이후 가능한 부당해고 법적 소송 권리까지 내어 준 것.
또 노사는 민주노총 등에 걸려 있는 손해배상 소송은 그대로 둔 채 노조 간부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만 철회하기로 합의했다. 대신 회사는 조합원에 대한 추가 징계를 하지 않기로 했다.
노조 간부를 포함해 조합원 대부분이 정규직인 뉴코아 노조가 500일 가까이 비정규직 문제를 놓고 벌였던 '아름다운 투쟁'은 결국 뉴코아 사측의 완승으로 끝난 셈이다. 이런 합의로 뉴코아 노사의 극단적 갈등은 종료됐지만, 같은 이랜드그룹의 홈에버를 상대로 아직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랜드일반노조는 큰 부담을 안게 됐다.
이런 사정 탓에 일각에서는 "노조가 개인의 손배만 풀고 노조의 존립을 포함한 모든 것을 회사에 다 넘겨줬다"는 싸늘한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뉴코아 노사 "비정규직 36명 재고용…2010년까지 무파업"
뉴코아 노사는 지난 29일 경기도 평촌 뉴코아 아울렛에서 최종양 사장과 박양수 노조위원장이 만나 계산원 외주화로 계약이 만료된 비정규직 36명을 재고용하는 내용의 합의서에 서명했다.
그 밖에도 이날 알려진 합의 내용에는 △자녀 학습 보조비 지급 △임신 여직원 수당 지급 등 복리후생 증진이 들어가 있다. 또 양측은 "노조가 2010년까지 무파업을 선언한다"는 내용이 담긴 노사관계 정립을 위한 노사화합 공동선언문도 채택했다.
하지만 정작 이날 양 측이 밝힌 합의안에는 그간 쟁점이 됐던 △징계 해고된 18명의 복직 △회사가 노조와 조합원 및 연대단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고송과 관련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뉴코아 관계자는 "추가 논의하겠다"고만 말했다.
'자진 퇴사' 형태로 해고자 복직 소송권 포기…손배소 취하도 '반쪽'만
공개된 내용만으로도 "노조의 패배"라는 평가가 나왔다. 오랜 파업의 근본 원인인 '외주화 철회' 요구도 노조가 포기했기 때문이다. 파업 과정에서 회사가 제기한 100억 여 원의 각종 손해배상 소송도 철회한다는 약속이 없었다. 이 정도 합의라면, 지난해 12월에도 타결이 가능했다.
하지만 <프레시안>의 확인 결과 양측의 합의 내용은 더 있었다. 비공개 합의에는 민감한 내용들이 대거 포함됐다. 뉴코아 노조의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계자도 이면 합의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우선, 뉴코아는 노조로부터 파업 과정에서 징계 해고된 18명 간부의 복직 포기를 받아냈다. 그 방식은 징계 해고를 회사가 철회하고 당사자들이 스스로 사직서를 작성하는 모양새를 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해고자들이 개별적으로라도 부당해고 소송을 벌이는 일을 원천 차단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부당해고 구제 소송을 통해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복직 판정을 받은 일부 해고자들의 복직도 요원해진다. 노조가 스스로 법이 정해 준 권리를 포기한 것이다. 대신 회사 측은 해고자들에게 3개월 정도의 임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손배 소송도 노조 간부 개인에게 걸려 있는 것들만 취하하기로 했다. 현재 뉴코아 사측은 노조 간부 개개인과 뉴코아노조,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등을 상대로 수십 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런데 이 가운데 노조 간부 개개인에게 걸려 있는 소송만 취하해주기로 한 것이다.
노조에 걸려 있는 손배소는 그대로 두고, 노조 간부들의 복직마저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향후 노동조합의 활동 자체에도 심각한 어려움이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뉴코아노조는 왜 이렇게 무릎 꿇었나…"손배소 가압류 등 경제적 어려움이 큰 원인"
뉴코아노조가 이 같은 합의안에 도장을 찍은 배경과 관련해 경제적 문제 등의 현실적 어려움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더 연대가 붙기도 어렵고 사회적 이슈로 주목 받는 것도 한계가 온 상황에서 시간만 보내는 것은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노동계 관계자는 "정규직인 뉴코아 간부들이 오랜 파업에서 비롯된 경제적 어려움과 각종 손배소로 인해 아파트까지 가압류되는 등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며 "그런 환경들이 노조 간부들로 하여금 '어떻게든 이 상황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으로 내 몬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파업 중인 노동자에 대한 수십억 대의 손해배상 소송이 노조를 무릎 꿇게 한 셈이다. 김형근 위원장은 "투쟁에 의해 입은 상처로 또 다시 상처를 얻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후폭풍? '이랜드 파업의 완패' 넘어 KTX·기륭 등 비정규직 투쟁에도 악영향
더 큰 문제는 뉴코아 노사의 합의가 이들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당장 뉴코아노조와 함께 파업을 시작한 같은 이랜드그룹의 유통업체 홈에버의 비정규직 문제도 직격탄을 맞게 됐다. 뉴코아 노사 이상의 수준으로 합의하긴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은 "이랜드 노사 교섭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리가 없다"고 말했다. 김형근 위원장도 "이랜드일반노조의 파업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이랜드일반노조와 홈에버는 교섭을 진행했으나 노조 간부 해고와 손배소 문제에서 전혀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현재 한 달이 넘도록 수배 생활을 하고 있는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의 체포영장 발부 사유에까지 올랐던 이랜드 그룹의 파업 뿐 아니라 다른 비정규직 사업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KTX 승무원, 기륭전자, 코스콤 등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각종 비정규직 갈등도 파업 중에 발생한 해고와 손배소가 쟁점으로 존재한다.
이런 가운데 뉴코아노조가 이 모든 '상처'를 껴안고 파업을 정리하는 나쁜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탓에 일각에서는 "뉴코아노조 간부들이 자기 개인의 것을 지키기 위해 노조를 팔아넘겼다"는 극단적인 평가까지 들린다.
뉴코아 노사의 합의를 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주화라는 편법적 방식을 통해 잘못된 법을 악용하는 기업에 대해 전 사회적으로 경종을 울리는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하는 김형근 위원장의 의미 부여가 초라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프레시안>은 뉴코아 노조 관계자와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