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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인디 음악이 재발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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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 인디 음악이 재발견하다

[대중음악의 오늘을 보는 시선 ⑧]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의 리더 이기용은 한 웹진과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음악에 대해 '가요적'이라 평한 리뷰를 두고 상당한 거부감을 표한 적이 있었다. 이는 단순히 자신들의 음악 스타일이 가요가 아니라는 항변이 아니라, 가요라는 말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는 '가요적'이라는 말에는 이미 부정적인 가치평가가 들어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음악을 두고 그런 평가를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였다.

현재 인디 씬에서 두 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슬로우 쥰(Slow 6) 역시 한 인터뷰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메탈리카(Metallica) 등의 헤비메탈 음악 얘기를 하며 놀았지만, 집에 들어와서는 혼자서 몰래 가요를 들었다고 고백하였다.

또 하나 예를 들어보자.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드럼 세션 연주자이자 한국 모던 록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H20에서 드럼을 담당했던 김민기는 '가요 성향'의 솔로 앨범 두 장을 발표했다. 그는 헤비메탈을 하던 시절부터 가요를 좋아했었고, H20에서 활동할 때에도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팀의 다른 멤버였던 강기영과 박현준은 록 밴드의 멤버가 가요를 좋아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고, 장난으로 팀에서 나가라고까지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 슬로우쥰

굳이 더 찾지 않아도 이런 사례들은 무궁무진하다.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이라면 이 사실에 더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당시 가요는 고상한 (록) 음악 애호가들이 듣기엔 너무나 촌스럽고 저열한 음악이었다. 특히 1980년대 '방송용' 가요는 트로트와 함께 음악 애호가들에겐 '불가촉천민'과 같은 존재였다.

록 음악을 들으면서 가요를 함께 듣는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고, 가요를 듣는 것은 음악 애호가로서 영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 가요는 음악적으로도 너무 앙상해 해외의 록이나 팝 음악을 듣는 이들의 기호를 충족시켜줄 수 없었다. 그게 조용필이건 전영록이건 소방차건 이지연이건 간에, 당시의 음악 마니아들은 대부분의 가요를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1980년대의 가요는 한 마디로 '방화'와 같은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서서히 바뀌어가기 시작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과 함께 음악 시장이 급격하게 팝에서 가요로 수요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015B와 이승환, 전람회 등 일군의 소위 '고급가요' 뮤지션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모두 1980년대에 '가요'가 아닌 '팝'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들이었다.

이들의 지향점은 대부분 비슷했다. 정말 세련된 '팝' 음악을 만들겠다는 것, 세련된 감성에 기술적인 성취를 더하겠다는 것. 이들은 가요라는 말이 주는 촌스러움과 부정적인 이미지를 떨쳐내고 외국의 팝 음악과도 어깨를 견줄 수 있는 음악들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직접 외국에 나가서 작업을 하기도 하였고, 외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트렌드를 발 빠르게 수입해오기도 하였다. 흔히들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단절의 역사'라 표현하곤 하는데, 1990년대의 뮤지션들은 1980년대의 촌스러운 가요들과 자신들을 그렇게 스스로 구분 지었다.

그리고 1990년대가 저물어갈 때쯤 홍대 주변을 중심으로 한 인디 씬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들 역시 1980년대의 가요와는 상관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1990년대의 뮤지션들보다 더 가요와 자신들을 구분 지었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의 너바나(Nirvana)'나 '한국의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가 되고자 했을 뿐이다. 여전히 가요는 촌스러운 것이었고, 그런 음악을 하려고 하면 '키치'라 오해받았다.

이런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반부터였다. 2003년 말, 재주소년이란 팀이 어떤날의 영향을 언급하며 자신들이 어떤날의 감수성을 이어받았다고 얘기했다. 어떤날이나 조동익 등의 영향을 받은 인디 뮤지션들은 꽤 많은 수가 있었지만 이를 직접 언급한 경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더 재미있는 경우는 2004년 식스틴(Sixteen)이란 밴드가 자신들의 첫 EP를 발표할 때였다.

식스틴은 아예 "재주소년이 어떤날의 감성을 이어받았다면 자신들은 윤상의 감성을 이어받았다"고 얘기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사운드 건축가' 혹은 '일렉트로닉 마스터' 윤상이 아닌,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강수지의 노래들을 만들어주고 전자음악과 가요가 섞여있는 애매한 성격의 1집을 발표했던 '가수' 윤상을 그 목표로 삼은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80년대를 코드로 한 음악들이 우리 음악계에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예고'를 하였다.

그 예고는 딱 들어맞았다. 식스틴 이후 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직간접적으로 가요의 세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뮤지션은 맨 앞에서 짧게 언급했던 슬로우 쥰이다. 그는 메탈 키드이기도 했지만 집에 와선 동아기획의 가요를 듣는, 전형적인 19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뮤지션이었다. 그는 자신이 습득한 음악적 자양분들 가운데 동아기획의 가요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음악을 만들어 나갔다. 그가 데뷔 앨범 [Grand A.M](2004)을 발표했을 때 평단에선 '어떤날과 김현철의 재림'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그와 1980년대 가요와의 연관성을 얘기하였다. 그 자신도 이에 대해 부정하지 않았고, 2집 [Reverse](2007)에서도 가요와 모던 록의 접점을 찾기 위한 시도를 계속 해나갔다.
▲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 ⓒ프레시안

하지만 슬로우 쥰의 사례만으로 가요와 인디의 연관성을 얘기하는 건 다소 무리가 있다. 슬로우 쥰이 영향을 받은 동아기획이나 어떤날의 음악은 1980년대의 음악들 가운데서도 특별한 대접을 받았고, 그 영향력도 꾸준히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흥미로운 경우는 최근 등장한 '달콤한 비누'나 '브로콜리 너마저', '술탄 오브 더 디스코(Sultan Of The Disco)' 같은 밴드들이다. 이들은 인디 씬에서 불쑥 튀어나와 진짜(?) 가요 같은 노래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 초반 TV와 라디오를 통해 계속해서 재생되던 그 가요들 말이다.

작년 인디 씬 최고의 히트상품인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 금지'를 들을 때 사람들은 '80년대의 멜로디'를 생각했다.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의 주제곡이었던 김지연의 '찬바람이 불면'과 같은 순진무구한 멜로디에 꾸밈없는 목소리를 더해 "안 돼요~"라고 노래하였고, 이 노래는 각종 블로그를 통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가수와 관객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감동적인 순간을 연출했다.

지금의 이 흐름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런 밴드들이 최근 몇 년간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갑자기' '불쑥' 튀어나왔다는 점이다. 앞서 짧게 얘기했듯이 1980년 후반의 가요들과 2000년대 인디 밴드들과는 접점이 없다. 1980년대 후반부터 그 흐름이 이어져온 것도 아니고 오히려 1990년대를 거치며 더욱 단절됐다. 1990년대 뮤지션들은 1980년대의 가요를 촌스럽다 여기며 영·미의 세련된 팝 음악을 추구했고, 또 2000년대 음악 씬을 이끌고 있는 인디 뮤지션들은 1990년대 뮤지션들의 기술적인 매끈함에 거부감을 표한다. 이런 단절의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2000년대 뮤지션들이 '느닷없이'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의 가요들을 다시 부르기 시작한 건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다.

이를 단순히 복고 열풍이나 한때의 유행으로 치부해버리기엔 무리가 있다. 재주소년을 시작으로 가요의 세례를 이야기하는 뮤지션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고, 무엇보다 촌스러운 줄로만 알았던 가요 멜로디들이 꽤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기 시작한 것이다. 슬로우 쥰은 계속해서 훌륭한 앨범을 발표하면서 1980년대의 감성을 재현해낼 것이고, 보다 큰 레이블과 계약한 브로콜리 너마저의 멜로디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질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이 흐름이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아주 자그마한 퍼즐이라 하더라도 지금 이들은 그 퍼즐을 기대 이상으로 잘 맞춰가고 있다. 소소한 것일지언정 이마저도 결코 흔한 것이 아니다. 이 단절의 역사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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