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최근 발표한 한 논문(공저)에서 이명박 정부가 운하 기획을 철회하더라도 '지역 주도의 개발주의 관성'에 따라서 중앙정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역의 개발연대는 능동적으로 운하 기획을 추진하리라고 주장했다. 이런 불편한 가설을 세웠던 부채감(?)도 있었던 터라 이번 여름휴가의 마지막 날을 할애해 직접 현장을 찾아 가보기로 결정했다.
답사 보고부터 먼저 한다면 촬영한 사진들에서 보여주듯이 경인운하 사업은 소리 없이 현재 진행중이다.
경인운하의 간략한 역사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굴포천 주변에 잦은 수해가 발생하였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1988년, 정부는 굴포천 종합 치수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당시 댐 건설의 감소 국면을 맞아서 조직 존립의 위기를 느꼈던 건설교통부 산하 수자원국과 일감이 없어 건설 장비를 놀렸던 건설업체 등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개발연대가 결속되었다.
이들은 단순한 치수 대책을 경인운하 시설 사업으로 부풀려 추진하게 된다. 이후 환경단체와 개발연대 간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진행되었는데, 당시 환경단체는 비용 대비 편익이 없다고 주장하였고, 정부 측은 경제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논쟁이 가열되자 결국 찬반 양측에서 '객관적'이다고 받아들이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 평가 용역을 맡겼는데 그 결과 0.9206으로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고, 사업은 지지부진하게 남아있었다. 이렇게 논란이 거듭되고, 표류되었던 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를 통해서 다시 살아나는 계기가 되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미덕(美德)
현재 한반도 대운사 사업은 이명박 정부에 의해 공식적으로 철회됐고, 찬성 측과 반대 측의 치열한 논의도 수면 아래로 내려간 상태다. 그러나 오래된 고사성어인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미덕(美德)을 인식하고 있는 몇몇 언론인과 환경운동가는 한국을 소모적인 반목의 치열한 격전장으로 몰고 간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주역에게 엄정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운하 찬성론자들이 보직에서 물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 여전히 운하를 관철해야겠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점에서 일련의 책임을 묻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 나 역시 이런 주장에 동의한다. 중앙정부에서 활동한 찬성론자들에 대해 뒤늦었지만 최소한 <PD수첩>에 강요하는 대국민 사과 방송 정도는 하는 게 이명박 정부가 좋아하는 법치주의와 상호주의의 순리에도 맞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중앙정부 찬성론자이 사과 방송 한 번 없이 조용히 넘어가자 여권의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경인운하 추진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안상수 인천시장은 취임 2주년을 맞이한 간담회에서 이미 KDI에서 조차도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난 경인운하 사업을 두고서 "굴포천 범람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추진된 경인운하 사업은 이미 80m 수로 폭이 조성된 상태"라며 "이를 경인운하 사업으로 발전시켜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안 시장은 환경문제와 관련해서는 "불확실한 환경오염 문제 때문에 경인운하 사업을 중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발언해 환경단체들이 그간 줄기차게 지적했었던 서해안 생태계 파괴 가능성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어디 결자해지의 당사자가 한나라당뿐인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통합민주당은 한나라당의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줄기차게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생태 철학의 빈곤과 정치 논리의 과잉에서 비롯된 국가 규모의 논의에서만 그렇게 행동했을 뿐이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운하개발 논의에서 이들은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다.
대표적으로 지난 총선에서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비판했던 통합민주당의 송영길 의원(인천 계양을)과 신학용 의원(인천 계양갑)은 경인운하 조기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는 지역정치인이 지역의 건설업체, 지역 언론, 지역 주민과 복합하게 얽혀있는 지역 개발연대의 개발주의 이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드러난다.
코미디 같은 일화지만 송영길 의원은 <경향신문>에서 송 의원이 경인운하에 반대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한 것을 놓고 "자신은 한반도 대운하는 반대하지만 경인운하는 찬성한다"는 기묘한 정정기사를 싣기도 하였다. 아무래도 미국산 쇠고기와 마찬가지로 운하에 대한 야당의 역할을 기대를 하는 것도 무리인 듯싶다.
지역의 개발주의 관성,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앞서 경인운하 사례에서 보았듯이 국가 규모의 의제에서는 운하 반대를 표명하던 정당들이 지방으로 내려가서 자신의 지역구에 걸려있는 개발 이해에 대해서는 적극적 찬성을 표명한 것은 선거구 개편 논의라는 조금 범주가 큰 논의와 연결된다.
어디 운하뿐인가. 경제자유구역의 선정, 동서남해안발전특별법 등에서의 지역 정치인은 지역구 이해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었다. 심지어 지난 18대 총선에서도 당시 뉴타운 공약을 내걸은 노원구의 홍정욱 후보의 라이벌이었던 진보신당의 노회찬 후보가 내놓은 공약은 녹지 파괴에 근거한 '수정'된 뉴타운이라는 점에서, 진보정치 또한 욕망의 정치에서 자유롭지 못하였다.
1990년대 지방자치단체의 실현이 민주화의 진전으로 보였으나 오늘날 지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발주의의 범람은 도리어 사회경제적, 생태적 반민주화를 발생시키는 분권의 역설이 진행되고 있다. 투쟁 대상의 설정이 선명한 중앙정부에 비해서 지방의 민주화 의제는 투쟁대상의 설정부터가 지난한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첩첩산중의 난제들이다. 단순히 중앙정부와의 의제선점에서의 기동전의 승리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에서의 상당한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국지전에 대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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