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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수기 여당'과 '좁쌀 야당'밖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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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수기 여당'과 '좁쌀 야당'밖에 없나?

<고성국의 정치분석> MB 밀어붙이기, 저지선이 없다

이번 원구성 협상은 6:4 정도로 민주당에 약간 유리한,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무난한 타협안으로 생각된다. 여·야간 협상에서 5:5로 기계적 균형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양보란 어차피 여당의 몫이 될 수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번 협상에 대해 여당의원들이 '그 정도면 선방했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나, 야당의원들이 '그 정도면 선전했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이 정도로 무난한 타협안을 만들어 내는데 과연 82일이나 필요했을까. 이 정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여·야 지도부가 그토록 심한 내상까지 입어야 했던 것일까.

지난주 한나라당 고위당직자들과의 만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여당이 여당임을 자각하는데 한달 이상 걸렸다는 말을 했는데 정부 출범 후 노출된 각종 국정혼선과 당정 불협화음을 염두에 둔 발언이리라 짐작되면서도, 흔쾌한 느낌보다는 과연 그럴까 싶은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왜일까.
▲ ⓒ연합

모름지기 여당은 섬세해야 되고 야당은 통 크게 해야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여당은 대부분의 사안들을 청와대 및 정부와 조율해 가야 하기 때문에 섬세해야 하고 치밀해야 하며 조직적이어야 한다. 몇 사람의 개성 있는 플레이보다는 전체의 조화와 팀플레이를 중시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대통령의 레임덕이 가시적으로 시작되고 차기 대권을 향한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대략 2011년 여름정도까지는 섬세한 행보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하겠다. 이점에서 여권이 비록 지난 6개월간 혹독한 훈련을 거쳤다 하더라도 과연 당·정·청이 이러한 조직력과 섬세함을 제대로 갖추게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정치인 특히 여권의 지도부를 구성할 정도의 인물들이라면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모두 잠재적인 차기 대권주자들이라 할 수 있다. 역으로 그러한 발전 전망을 갖지 못하면 여권 지도부의 일원으로 명함을 내밀기 어렵다고 할 수도 있겠다. 여권이 섬세하고 치밀하고 조직적이어야 함에도 종종 그러하지 못한 이유는 그 섬세함과 치밀함과 조직성이 차기를 노리는 이들 여권 지도부 인사들의 개성과 자기정치의 절제를 요구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권지도부 구성 때마다 이른바 '실세형'과 '관리형' 논란이 되풀이 되는 것도 이런 구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생래적 갈등구조를 생산적으로 넘어서는 길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여권지도부 인사들이 자신의 정치적 비전을 대통령과 정부의 성공적 국정운영과 일치시키면 된다. 대통령이라면 선호할 것이 분명할 이 방법이 선택되지 않는 이유가 대통령과 정부의 낮은 지지도 때문이라는 점 또한 일반적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노무현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대권주자들과의 관계가 바로 그 딜레마의 심각성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출범 4개월 만에 10%대의 지지도로 추락해버린 이명박 정부에게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사례는 이미 남의 일이 아니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여당에게 섬세함과 치밀함을 기대하는 것이 '연목구어'의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6개월밖에 지나지 않은 정부에게 섬세함과 치밀함과 조직적 국정운영의 기대를 접고 또 다른 무엇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 또한 외면할 수 없는 현실 아니겠는가.

지금 민주당에게 필요한 것은 통 큰 행보다. 개별적 사안에 매몰되지 않는 대국관. 차기 정권은 이미 우리 손에 있다는 자신감. 그 자신감에 기반한 대담하고 유연한 전략적 판단과 진퇴. 이런 것이 야당을 야당답게 하는 것이고 야당을 수권정당답게 만드는 것이다. 대통령으로서보다는 뛰어난 야당지도자로서, 그리고 각고의 세월 끝에 집권에 성공한 정치 지도자로서 더 높게 평가 될 것으로 보이는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야당시절 행적에서 필자는 바로 이러한 대담하고 통 큰 행보를 본다.

정세균 대표 원혜영 원내대표 체제가 출범했을 때 필자는 민주당이 '경제와 민생'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이명박 정부가 표방한 '경제와 민생'이라는 같은 종류의 무기와 정면으로 격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았던 적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전매특허처럼 되어 있는 '경제와 민생'에 대적해 정세균 대표의 '경제와 민생'이 녹록치 않은 솜씨를 보여 줄 수만 있다면 그로써 정세균 대표는 '구심 없는 민주당'의 새로운 구심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덧붙여서.

원 구성 협상과정에서 보여준 '시어머니 같은 모습'과 원 구성 협상 타결 후 조계사부터 찾은 정세균 대표의 행보에서 선 굵고 대담하면서 유연한 통 큰 지도자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은 나만이 아닐 듯하다.

'원구성 같은 것은 원내대표가 알아서 할 문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못한다면 우리 민주당이라도 나서서 할 수 밖에 없다. 내 고민은 바로 이 문제, 즉 경제와 민생에 집중돼 있다.' 이것이 필자가 기대했던 정세균 대표의 리더십이었다. 과욕이었을까?

출범 6개월을 맞은 이명박 정부는 근래 되찾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명박식 국정 밀어붙이기'를 당분간 계속할 기세다. 지금의 기세대로라면 정치권은 원 구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자리를 잡지 못할 공산이 크다. 정부의 밀어붙이기가 본격화되면 여당은 부득불 '거수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 '거수기' 여당을 상대로 정치를 해야 하는 야당인들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정부의 독주에 맞서 야당이 직접 행동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으나 엄연히 형식적 민주주의가 작동되고 있는 상황에서 '장외투쟁'을 수반하게 마련인 '정부와 직접 부닥침'이 주는 정치적 부담을 야당이 온전하게 감당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촛불정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조차 야당의 장외투쟁노선이 폭넓게 지지받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기를 본격화 해 나갈 때 야당의 입지 확보가 매우 어렵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세균, 원혜영 지도부는 과연 이러한 상황에 대처할 어떤 방책을 갖고 있는 것일까.

섬세하지도 치밀하지도 못한 여당과 통 크지도 담대하지도 못한 야당에게 밀어닥칠 이명박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이 또 한 번의 정치 부재상황을 가져온다면, 그리하여 또 한 번의 소통의 부재와 국정 혼선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면, '경제 살리기'와 '민생안정'이라는 국민적 현안은 과연 누가 챙길 것인가. 여야의 취약한 지도력을 보면서 부쩍 '경제와 민생'을 걱정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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