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심장'이 없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심장'이 없다.

[김상수 칼럼]국립현대미술관을 말한다②

'문화의 위기'는 가난의 기억이나 전쟁에 대한 공포 이상으로 위태롭다.

경제가 위기다. MB식 현실경제 이해와 정책이 도리어 위기를 가속시키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초래, 10년 전 경제로 후퇴하고 있다. 지금 경제방식으로는 국가경제가 튼튼해지기는커녕 더 나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일뿐 아니라, '제2의 IMF'를 걱정하는 지경까지 됐다. MB식 경제방식이 경제를 바라보는 근본 인식부터 퇴행적이고 반인간적이며 성장경제 위주의 관성에 매달려있는 한, 내실 있는 국가경제는 더 어려울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 대한민국의 위기는 경제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를 근본에서 떠받치고 있는 민주주의 위기, '문화적 위기'가 더 본질적이다.

여기서 문화란 사람들의 삶에 있어 존재의 사회적 의미나 삶의 의미를 캐묻는 인간의 양식이다. 즉 사람들이 일상을 살면서 구체적인 삶의 가치나 목적을 향해서 움직이는 내용과 모습이며, 그 목적들은 나날이 펼쳐지는 삶의 환경이나 일상의 조건 속에서 여하히 인간의 조건으로 사회를 개선시킬 수 있는가의 가능성에 기초한다.

이 가능성은 인간의 삶과 실존을 제한적이며 부분적인 측면으로 축소하거나 극히 일면의 국면으로만 획일적으로 몰아가는 것에 반대한다. 경제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줄임말이 아닌가. 세(世)와 민(民)은 경제의 가치와 경제의 목적, 그 자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세와 민을 빠뜨린 채 줄임말로 경제를 얘기하는 습성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경제를 걱정하지만 경제의 목적과 수단, 방법과 이해를 혼돈하면서 경제 실천에 일대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고 그 절정에 오늘의 한국이 있다.

무슨 수를 쓰든지 돈과 권력만을 추구하면서 소비하는 물건이나 만나는 사람, 국가·사회·가정·직장·동료·가족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정작 자기 자신마저 극단적인 분열의 징후를 보인다. 이런 비이성적인 상황이 넘치면 사회적 파국에까지 이어지며 그 정체는 너나 구분 없이 거의 파멸적이기까지 하다.

이는 곧 위기의 근본이 오직 경제만의 위기가 아님을 말한다. 보다 지속적이며 깊고 근원적인 위기는 '문화의 위기'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 '문화의 위기'는 실존의 위기이며 경제 위기, 민주주의 위기 또한 이것에서 파생한다. 이게 오늘 한국의 문제를 보는 내 인식의 출발이다.

이 '문화의 위기'로 우리들 삶의 현상에서 빚어지는 수많은 마찰과 갈등이 빚어진다. 이런 마찰과 갈등을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납득이 가능하도록 풀어줘야만 할 사회정의와 사법원칙은 붕괴되고, 부패구조가 일상화됐다. 이런 속에서 매일 겪고 있는 비인간적인 고통은 곧 인간 내면의 황폐화와 파쇄화(破碎化)를 부추긴다. 무감각한 자연파괴, 공해와 오염, 정치적 궤변들, 발전과 성장의 논리를 앞세운 부조리한 실체들, 이런 현실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점점 분쇄되어 반인간의 사회로 매몰(埋沒)되어 가고 있다.

오늘날 한국이 겪고 있는 '문화의 위기'는 가난의 기억이나 전쟁에 대한 공포 이상으로 위태롭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위기는 결코 경제 성장에 대한 과잉된 이론과 사변(詐辨)만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정작 이 사태를 진실로 알아차리고 있는 것일까? 지금 국민들의 고통은 사람으로의 가장 근본적인 실존의 문제에 맞닥뜨려 일대 위기로 내몰리고 있음을 직시할 수 있을까?

나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말한다' 두 번째 글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문화의 위기'를 서두에서 강조했다. 이는 특정 정권을 뛰어넘어 우리 사회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깊이 같이 생각해 보기를 권고하고자 하는 뜻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왜 존재해야 하나?
▲ 국립현대미술관 전경.

현대 문화예술, 특히 현대미술은 오늘날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삶의 예지(叡智)를 자극하며 새로운 시대의 정치, 경제, 세계체제에 대한 비전(vision)을 탐색하는 가치로 이해된다. 그래서 나름대로 나라의 면모를 갖춘 국가들은 역점을 두어 국가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관을 육성하고자 국고를 투입해 미술관 운영의 발군인재(拔群人才)를 찾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화예술이 21세기 국가경제의 기초이자 근간이라는 세계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국가마다 경쟁적으로 어떻게 하면 미술관 질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아울러, 어떻게 하면 예술의 창의성이 사회적으로 널리 확산되어 국가의 발전을 도모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인간다운 삶의 구현에 이바지할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국립예술기구로 현대미술관은 동시대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이끄는가에 그 존재이유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

최근 문화부 장관을 맡은 유인촌의 '헛발질' 소동이 있었다. 언론에 대놓고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사퇴를 요구해 일반에 알려진 이 정치적 소동은 정권의 '코드인사' 논란으로 시끄러웠지만, 정작 국립현대미술관 현재의 근본 문제를 들여다보는 쟁점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문제의 핵심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제대로의 역할과 기능을 지금 수행하고 있는가다. 또 미술관의 구조적 문제가 무엇이고, 국립의 현대미술관이 파행적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근원적인 문제를 파악하여, 이를 개선하는 일을 주무장관으로서 최우선에 두어야 옳았다.

그러나 새로 장관을 맡은 이에게 이런 역할을 기대한다는 건 애초부터 그의 역량을 넘어선 과불급(過不及)이었고, 그의 역할은 '지나침'과 '미치지 못함'이 동시에 드러난 소동으로만 끝났다.

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행정안전부

여기에 더하여 행정안전부가 국립현대미술관 경영의 수익성, 효율성을 명분으로 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시키겠다는 사실상의 '민영화'를 들고 나왔다. 이는 '기업형' 책임운영기관화 하겠다는 것이며 기관장에게 인사·조직·예산 등 운영상의 자율성을 주되, 민간기업처럼 효율성을 따져 운영 수치상의 결과로 사기업처럼 기관장과 해당직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게 요지다.

그러나 이는 '얼빠진 실용'에 근거해 국가정책의 본말을 혼동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책임과 예산의 자율성을 미술관에 부여해서 미술관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행안부 취지가 그나마 살자면, 국고출자와 민간재원이 합쳐진 독립된 기금이 확보되도록 기부금 제도와 관련한 세법을 사전에 개정하고, 지속적인 재정자립도를 제고할 수 있는 여러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이다. 시장경쟁의 논리에 국립예술 기구를 들이민다는 건 행정 편의주의에 치우친 무책임한 태도다.

물론 국립현대미술관도 중장기적으로는 독립기금 재단으로 발전하는 튼실한 기초를 다져야 하겠지만, 적어도 제반 여건을 갖추기 위해서라도 해당 기구인 국립현대미술관, 미술 관계전문가, 주무부서인 문화부, 일반 여론의 광범위한 수렴 등이 먼저다. 특히 21세기 예술 문화의 중요성이 차지하는 공공성의 중차대함과 문화예술이 상업적 이익을 넘어서는 국가 기간산업의 기초임을 간파한 EU 일부 국가들이 서둘러 국가 예술기구를 공공기구로 확대개편하면서 직접 미술관을 관장하며 지원을 강화하는 세계 흐름을 우리나라 행안부도 읽을 수 있어야만 한다.

문화부의 국립현대미술관 인식의 한계

결정적인 국립현대미술관 문제의 단서는, 지난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을 '행정형' 책임운영기관제로 바꿨으면서도 주무부서인 문화부가 국립현대미술관의 역할과 위상을 실제로는 직급 2급의 '산하기관'으로 계속 인식하는 데 그 연원이 있다.

역대 정부가 자주 차용하는 소위 선진국들의 경우와 비교해도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인식은, 문화부 관료들부터 턱없이 낮고 부족하며, 실질적으로는 주무부서인 문화부의 간섭·감독 아래 계속 묶어두겠다는 후진국적 발상에 아직 머물러 있다.

또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 직제개편에서는 미술관의 심장 기능이라 할 수 있는 학예연구실 위상(4급)을 낮은 직급으로 그냥 두고, 미술관 사무를 지원하는 사무국을 확대, '기획운영단'이라 칭하고 문화부 파견 직원인 기획운영단 단장을 3급으로 직급을 높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문화부는 미술관의 발전을 근본적으로 저해하는 직급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마치 절간(寺間)에서 이판사판(理判事判)의 역할이 역으로 뒤집어진 경우와 마찬가지다. 명백하게 틀린 형국이다. 근본이 뒤집혀 있는데 무슨 책임경영이고 미술관 개혁이 가능하겠는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고 이 궁리 저 궁리 해봐야 말짱 허깨비 장난이다.

이는 미술관 현 직제의 가장 큰 모순이며, 전문성 강화를 위해 세계 미술관들이 보편적으로 취하고 있는 학예연구실 중심 운영체제라는 미술관 운영의 세계 보편상식에도 어긋나면서, 그간의 국립현대미술관의 고질적 병폐인 사무기능을 더 비대화시켜 미술관 관료화의 결과로 이어지게 했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미술관의 직제 체제란 그 기본이 학예연구실(Curatorial Office) 기능을 핵으로 놓고 출발하는 것이다. 이게 세계 미술관의 기초상식이다. 이 상식도 외면하면서 무슨 책임경영제가 가능하겠는가. 문화부 인식이 처음부터 어불성설이고 오늘 겪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근본책임의 단서는 여기서부터 출발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국립 예술기구의 공공성 증대와 예술 문화에 대한 국가인식 제고의 세계적 추세를 봐서라도 행안부가 지금 내놓은 '기업형' 책임운영기관화나 현재 문화부가 감독하는 형식인 '행정형' 책임운영기관제가 아닌, 장관급 이상의 위상으로 '전문가형' 책임운영기구제로 그 위상을 명실상부한 국가 예술기구로 제대로 혁신시켜야 한다.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심장(心臟)이 없다

미술관의 현 내부직제는 노무현 정부 출범 6개월이 지난 2003년 9월5일 임명된 현 김윤수 미술관 관장이 3년 임기를 마치고 3년 더 임기가 연장되면서, 2006년 5월에 개편된 내부직제다. 김 관장과 문화부가 성안한 현 직제를 살펴보면, 미술관 관장 아래 문화부 파견 '기획운영단장' 이 있고, 그 아래 '기획총괄과' '교육문화과' '운영지원과'가 있으며 기획운영단장보다 한 아래 낮은 직급으로 '학예연구실'과 '작품보존관리실' 그리고 '덕수궁미술관 분관'이 있고 '홍보마케팅팀'을 운영하고 있다.

그럼 김 관장이 성안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 미술관 내부 직제개편은 관장 부임이후 국립현대미술관에 과연 어떤 변화와 효율성을 가져왔을까?

김 관장이 미술관 관장으로 연임된 이후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연간 관람객 수가 2001년 139만 명에서 2005년에는 79만 명으로 반 토막 나다시피 크게 감소했고, 2006년에는 66만 명에 그쳤다는 점이다. 세계적으로 미술 관람객 수요가 증가하는 게 일반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은 도리어 관람객이 감소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술관의 중요역할이 문화예술 수용(受用)부분인 관객과의 상관관계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90년대나 2000년대 초반보다 더 미술관 관람객이 감소하는 이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대체 무슨 문제가 있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국민의 돈 280억 원을 2008년도 예산으로 집행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우리나라에 하나 밖에 없는 이 국립현대미술관이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이 국민 일반과 시민을 견인(牽引)하는 강력하고 감동적인 전시기획이 그간에 없었다는 사실이고, 이는 곧 미술관 관장의 지도력(directorship, leadership)에 근본적인 결격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장관급 위상의 '전문가형' 책임운영기구제가 아닌, 문화부 산하의 '행정형' 직급 2급의 책임운영기관제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장의 실책과 그가 수행해야 할 역할과 의무의 중대성을 외면할 수는 없다.

미술관 내부를 좀 더 들여다보면 국립현대미술관 파행의 문제가 바로 관장인 그가 고안한 내부 직제개편으로부터 이미 잘못된 단초가 시작됐음을 이내 알 수 있다.

내부직제 개편에서 미술관의 심장 기능인 학예연구실을 여러차례 분리한 끝에 학예연구실은 조사연구와 전시기획운영만을, 작품보존관리실은 작품수집과 보존관리만을 담당하게 하는 이원화된 체제로 만들어버려 미술관 운영의 파행을 더 심화시켰다. 미술관 기능이 종합적이고 전체적으로 마비되고 만 내부 현실의 문제가 오늘의 국립현대미술관 문제의 시작이다.

세계 어느 미술관도 연구와 조사기능이 기반되지 않거나 전시기능과 미술품 소장기능이 학예연구실 체계로 일원화되지 않고 유리되어 있는 미술관은 없다.

특히 작품관리계가 미술작품에 대한 전문적 이해나 식견이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은 별정직 공무원들로 장악되게 했을 뿐 아니라, 이런 기회를 틈타 음성적인 미술관 내 파워조직을 구성, 미술관 내부조직의 갈등을 낳았고, 미술관의 소장품 수집이란 학예연구실과 함께 형성되는 미술관 운영의 기본 원칙을 관장이 먼저 깨뜨리는 우(愚)를 범했다.

내부 사정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관장의 이런 무리한 직제개편은 김윤수 관장이 부임 첫해에 약 10년 동안 학예연구실장을 맡아온 자가 일부 미술세력과 유착하고 심지어 정치권에 선을 놓고 잘못된 관행으로 학예연구실을 운영해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배경이 깔려 있기도 한다. 김 관장은 이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에서 2006년 3월 학예연구실을 맡았던 장을 퇴출시키고, 학예연구실 개혁을 미술관 직제 개편을 통해 실현시키겠다는 의욕을 비쳤다. 그러나 그의 개혁은 미술관과 학예직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실행된 것이었기에 도리어 미술관 운영에 해악을 끼치는 불행한 일을 자초하게 됐다. 이는 미술관의 중추인 학예연구실 기능을 배제한 미술관 소장품 수집 기능의 잘못된 운영 결과로 나타났고 미술관 파행운영이 본격화됐다.

소장품 수집에 관한 현재의 제도도, '관장과 관장이 위촉하는 10인 이내의 외부전문가'가 추천한 작품에 대해서는, 당연히 거쳐야만 하는 추천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심의위원회에 바로 상정할 수 있는 형식이다. 이런 식의 '외부전문가'를 참여시키는 장치는 본래 의도인 '외부 전문가'의 의견을 일정 수용하여 미술관 운영을 선순환 시키자는 의도로 비치지만, 오랜 잘못된 관행인 또 다른 '제도의 형식'을 빌려 미술관 측이 직접 져야할 책임을 외부로 전가하는 전형적인 퇴행적 관료 수법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외부의 전문가에게 맡겨 공정하게 결정했다'고 강변하는 식인데, 실제 그 전문가란 약소한 수당을 받고 잠시 품팔이를 했을 뿐, 책임의 어떤 실재도 없다.

또 전문가를 어떤 기준으로 누가 뽑았는가도 문제이고, 우리 실정에서 그렇게 동원되는 전문가들이 제대로 된 전문가인지도 의문이다. 어쨌든 타성의 관료 습성을 몸에 익힌 별정직 공무원이 미술품 수집을 전담하게 하면서, 미술품 수집에 관한 최초 의견과 심의를 토론해야 하는 번거롭고 말 많은 추천위원회를 배제하고 관장이 수월하게 미술품 수집 의결 과정을 처리하는 식으로 됐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구입 작품에 대한 기초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작품의 질과 수준을 식별하는 작품 수입의 기초단계에서 학예연구실의 전문가적 감식과 판단이 철저하게 무시되면서 관장이 임명한 일부 직원과 관장의 독단행정의 결과는 예산 낭비를 초래했다. 최근까지도 언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마르셀 뒤샹의 '여행용 가방'의 구입시 과다지출로 인한 여러 잡음이 바로 미술관 소장 절차에 있어서 현재의 난맥상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국민의 귀중한 돈을 들여 국민을 위한 미술관으로 관리해야 할 입장에 있는 공무를 맡은 사람들이 직무를 방기하고 유기한 처사이며, 미술관의 가장 기본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거듭 말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은 학예연구실을 미술관 중심으로 재편해야 제대로 된 직제 개편이다. 미술관의 심장인 학예연구실 기능이 파괴된 현실의 책임은 현 미술관 관장에게 있으며 '행정형' 책임경영제를 위한 조직개편이라는 허울 아래 미술관 조직을 기형적으로 변형시키는 오류를 범한 장본인으로 현재의 관장은 면책이 쉽지 않다.

끊임없는 분화와 확장, 실험의 대상인 현대미술을 이해하고 현대미술에 관한 전문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으로 학예 분야의 전문가들을 발굴하고 키워 내야할 막중한 임무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의 책임이다. 학예연구실내 역량 여부에 따라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총체적인 문제가 바로 잡혀나가는 것에 어떤 실마리나 진전이라도 있을 것이다. 이 명백한 상식부터 지금의 미술관 관장과 주무부서인 문화부는 인정해야 한다.

일단 현 단계에서 시급한 개선은 학예연구실의 미술관 내 위상이 미술관 사무를 관장하면서 학예 연구를 지원하는 현 직제인 기획운영단의 기획단장 직급인 3급보다는 한 단계라도 더 높은 직급을 학예연구실 실장이 지녀야 한다는 점이다. 이게 급한 조치다. 직급도 학예연구 실장직에 보임하는 것으로 개선돼야만 옳다.

실제 업무의 개편에서도 학예연구실이 미술관 기획총괄과와 교육문화과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미술관 본위의 상식적인 직제로 엄격하게 개편하자면 조사연구와 전시기획 운영 뿐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핵심인 작품의 수집과 조사연구, 보존과 수복(修復) 기능도 학예연구실이 책임을 제대로 다하도록 해야 한다. 이게 미술관 운영 일반의 세계 상식이다.

미술관의 핵인 학예연구실을 정상적으로 가동시켜 미술관의 심장을 뛰도록 해야만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금 당장 학예연구실 중심의 제대로 된 구조 재편, 공개적 인력 충원, 중장기발전계획 등의 수립 등 특단의 조치가 하루빨리 시작돼야 옳다.

(☞바로 가기 : 필자 홈페이지)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