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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포' 이승엽, 야구 우생순 '메인작가' 등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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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포' 이승엽, 야구 우생순 '메인작가' 등극

'일본 킬러' 김광현과 일본 격침 '합작'…또 '8회 드라마'

실점만 해도 특종이 되던 일본의 국보급 투수 후지카와 큐지(한신 타이거스)가 동점을 내줬다. 순간 1루쪽 일본 덕아웃에 이전과는 질감이 다른 긴장감이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다. 한국의 김광현(SK 와이번즈)은 8이닝을 6안타 2실점(1자책)으로 틀어막았다.

이어진 8회말 한국의 공격. 1사 1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선수는 병살타와 삼진에 그친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이었다. 호시노 센이치 일본 대표팀 감독은 예선에서 결승타를 얻어맞은 이와세 히토키(주니치 드래곤즈)를 바꾸지 않았다.

이와세는 이전 공식대로 철저하게 바깥쪽 코너웍을 구사했다. 첫 공은 바깥쪽 스트라이크. 두 번째 공 역시 바깥쪽 높은 공이 파울로 이어졌다. 볼, 파울로 이어져 2스트라이크 1볼 상황에서 이와세의 다섯 번째 공이 이승엽의 몸쪽 낮은 코스를 파고들었다. 이승엽은 가볍게 이 공을 걷어올렸다.

우측 펜스를 넘기는 투런 홈런.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던 일본의 긴장감이 순간 '펑'하고 터져버렸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내겠다"며 나섰던 일본 선수들은 넋이 나간 듯했다. 이걸로 승부는 끝났다.

마법과도 같은 경기였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장면이 모두 포함됐다. 젊은 투수 김광현은 아시아 최강타선을 상대로 8이닝을 홀로 책임졌다. 한 때 최고의 타자로 불리던 선수는 경기 내내 헛방망이질을 하다 결정적 순간에 승부를 가르는 대형 홈런을 때렸다. 처음 작전에 실패한 승리팀 감독의 선수교체는 기가 막혔던 반면, 패전의 멍에를 쓴 감독은 자신의 실수를 모두 차단하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약팀'에 패했다.

22일 오전 11시 30분 우커송 스포츠센터 야구장에서 시작된 베이징 올림픽 야구 4강전에서 한국은 세계 도박사들이 가장 강력한 금메달 후보로 꼽던 '숙적' 일본에 6-2 대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랐다. 이로써 한국은 오는 23일 저녁 7시 쿠바와 미국의 준결승전 승리팀과 올림픽 금메달을 놓고 다투게 된다.
▲ 부활포를 터뜨린 이승엽이 '일본 킬러'로 자리를 굳힌 김광현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음…" 김광현, "어휴~!" 이승엽

한국의 선발로 나선 김광현은 예상대로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일본의 1번 니시오카 츠요시(지바 롯데 마린스)를 맞아 한가운데 속구로 초구를 뿌렸다.

하지만 니시오카는 2루 강습 내야안타로 출루했다. 나아가 이승엽의 진루방해로 니시오카는 2루까지 나아갔다. 김광현과 선발 포수로 출전한 강민호(롯데 자이언츠)는 호흡이 맞지 않아 보였다. 김광현은 여러 번 강민호의 사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라키 마사히로(주니치 드래곤즈)의 희생번트와 아오키 노리치카(야쿠르트 스왈로스)의 볼넷으로 이어진 1사 1, 3루 상황에서 거포 아라이 다카히로(한신 타이거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김광현은 몸쪽 속구로 투수 앞 땅볼을 유도했지만 2루 커버가 늦어 병살로 이어지지 못했다. 아쉽게 선취점을 내주고 말았다.

일본의 공세는 마치 판박이 같았다. 3회초 공격에서도 일본은 니시오카가 볼넷으로 출루하자 아라키의 희생번트로 1사 2루 상황을 만들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김광현의 폭투로 니시오카는 3루까지 진출했다. 아오키의 적시타로 점수는 2-0까지 벌어졌다. 더 이상 점수를 내준다면 2년 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처럼 토너먼트에서 큰 점수 차로 일찌감치 패할 가능성마저 엿보이는 상황이었다.

한국도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 일본 선발 스기우치 도시야(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구위에 철저하게 눌려 단 한 개의 안타도 뽑아내지 못하던 한국은 4회말 기회를 잡았다. 2번 타자 이용규(기아 타이거즈)가 스기우치의 바깥쪽 공을 결대로 밀어쳐 2루타를 기록, 한국의 첫 번재 안타를 뽑았다. 이어 김현수(두산 베어스)도 안타를 때려 한국은 무사 1, 3루 절호의 찬스를 맞았다.

타석에는 4번 타자 이승엽이 들어섰다. 안타도 필요 없었다. 희생플라이만 나와도 한 점차로 계속해서 일본을 압박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승엽은 확실히 컨디션이 나빠 보였다. 1, 2루간 병살타를 때리는데 그쳐 순식간에 투 아웃을 만들어버렸다. 그나마 한 점을 쫓아갔다는 점이 위안이었지만 살아나기 시작하던 한국 덕아웃 분위기는 다시 가라앉았다.

7회말 무너진 후지산, 또 다시 찾아온 운명의 8회

4회 이후는 예상대로 투수전이었다. 초반 흔들렸던 김광현은 갈수록 자신감을 찾아가며 일본 타선을 가볍게 요리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호시노 감독은 지난 예선 때 투구교체 타이밍을 놓쳐 패배의 빌미를 제공한 일을 기억하듯, 고비 때마다 가와카미 켄신(주니치 드래곤즈), 나루세 요시히사(지바 롯데 마린스)를 투입해 한국의 반격을 허용치 않았다. 왼손 타자에는 철저하게 왼손 투수로, 오른손 타자에는 오른손 타자로 맞상대했다. 한국의 타순이 상위 타순은 왼손 타자 일색, 하위 타순은 오른손 타자 일색이란 점이 호시노 감독의 부담을 덜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7회말. 호시노 감독은 일찌감치 승부수를 던졌다. 조금씩 살아나는 한국의 타선에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듯 호시노 감독은 일본 최고의 마무리 후지카와 큐지를 마운드에 올렸다. 당초 예상보다 1이닝 정도 빠른 투입이었다.

후지카와 큐지는 엄청난 회전이 걸린 속구에 이은 포크볼로 삼진을 잡아내는 전형적인 파워피처다. 그가 뿌린 공이 포수의 미트에 닿기까지 다른 투수보다 얼마나 더 회전하는지, 공의 종속은 시속 몇 킬로미터 정도인지를 분석하는 TV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정도로 큐지는 일본에서 국보급 투수로 통한다. 그의 세이브 성공여부를 떠나 실점했다는 사실이 스포츠신문 1면을 장식할 정도다.

큐지의 공은 확실히 달랐다. 김동주(두산 베어스)는 그가 뿌린 시속 151km의 공이 어이 없이 높았음에도 방망이를 휘둘러 삼진아웃됐다. 종속이 워낙 좋아 한국의 거포들의 방망이는 140km대 중반 공에도 속절없이 밀렸다.

하지만 한일전은 장기 레이스가 펼쳐지는 프로야구 리그와는 다르다. 선수의 실력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작용한다. 김동주에 이어 타석에 들어선 이대호(롯데 자이언츠)는 침착하게 큐지의 공을 골라 기어이 볼넷으로 출루했다. 곧바로 대주자 정근우(SK 와이번스)를 투입했다. 그리고 이날 타격감이 좋은 고영민(두산 베어스)이 좌측 안타를 쳐 누상에 나간 주자는 두 명으로 불어났다.

김경문 감독은 승부수를 띄웠다. 타격감이 좋지 않은 박진만(삼성 라이온스) 대신 '국민우익수' 이진영(SK 와이번스)을 대타로 투입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39살 노장 포수 야노 아키히로(한신 타이거스)가 마운드에 올랐다.
▲ 이승엽 홈런 장면 ⓒ연합뉴스

후지카와는 자랑하던 속구 대신 변화구와 바깥쪽 코너워크에 중점을 두며 이진영에 스트라이크 두 개를 빼앗았다. 하지만 국제무대에서의 경험은 이진영이 후지카와를 앞섰다. 연달아 바깥쪽 승부만 이어가던 후지카와가 몸쪽 낮은 속구를 뿌리자 이진영은 기다렸다는 듯 방망이를 돌렸다. 2루수가 몸을 날려봤지만 공은 그의 곁을 스치고 지나가버렸다. 동점. 호시노 감독의 '필승 카드'가 1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호시노는 말이 없었다

이어 운명의 8회가 찾아왔다. 한일전에서 8회는 사실상 마지막 이닝이나 다름없다. 1982년에도, 2000년에도, 2006년에도 한국은 8회 공격에서 승부를 뒤집었다. 일본 선수들의 표정에는 이미 형언하기 힘든 불안감이 드리워져 있었다. 덕아웃에서 수건을 걸치고 앉은 후지카와는 멍하니 경기장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승엽이 홈런을 때렸다. 넋이 나간 일본 선수들과는 반대로 마치 신들린 듯 한국 선수들은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갔다. 이와세가 뒤늦게 물러난 후 마운드에 올라온 와쿠이 히데키(세이부 라이온즈)는 이미 경기를 거진 포기한 듯 보였다. 던지는 공 끝에는 힘이 실려있지 않았다. 당연히 한국 타자들의 방망이에 걸리는 공마다 외야로 쭉쭉 뻗어나갔다.

거기에 좌익수 G.G.사토(사토 다카히코, 세이부 라이온즈)는 고영민의 평범한 플라이볼을 받아내지 못해 한 점을 추가로 헌납했다. 이날 연신 헛방망이질을 하던 강민호까지 대형 2루타를 때린 한국은 8회에만 네 점을 뽑아 6-2로 달아났다. 호시노 감독의 입가에는 쓴 미소가 번졌다.

마무리를 위해 올라온 윤석민(기아 타이거즈)을 상대로 친 일본 타자들의 공은 자석이 달린 듯 한국 수비수들의 글러브로 빨려들어갔다. 1차전 한국전 패배의 원인을 제공한 아베 신노스케(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공을 이용규가 잡고 포효하면서 드라마는 끝났다.
▲ 홈런을 때린 이승엽이 1루를 돌고 있다. ⓒ연합뉴스

이로써 한국 야구는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에 도전하는 것은 물론, "위장 오더나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빈정대던 '숙적' 일본을 두 번 연속 누르고 2년 전 WBC 악몽을 깨끗이 씻었다. 반면 일본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올림픽에서도 결승 진출에 실패해 염원하던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하게 됐다.
▲ 패장이 된 호시노 감독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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