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지에 남편 브라이언(데이빗 듀코브니)을 잃은 오드리(할 베리)가 브라이언의 죽마고우 제리(베네치오 델 토로)를 찾아 나선 이유는 딱 한가지다. 남편의 차 운전석 틈새에서 꼬깃꼬깃 접혀 있던 십몇 달러의 돈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오드리는 그 돈을 마약중독자인 제리가 가져갔다고 생각했다. 브라이언은, 제리는 절대 그런 친구가 아니라고 했지만 오드리는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었다. 남편이 죽고 난 후 우연히 그 돈을 발견한 오드리는 마치 속죄하는 기분으로 거리를 전전하며 밑바닥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제리에게 자신의 집에서 같이 지내자고 제안한다. 오드리와 제리의 기묘하고도 어색한 동거는 그렇게 시작된다. 극장 개봉없이 DVD로 직행한 <씽즈 위 로스트 인 더 파이어(우리가 불속에서 잃어버린 것들)>는 제목의 의미를 알기 위해선 영화를 끝까지 봐야 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의미를 아는 순간, 영화속 할 베리가 그러듯이, 줄기차게 솟구치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게 된다. 오랜만에 실컷 울게 되는, 순도 백퍼센트의 드라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소통하게 되기까지 참으로 가슴아픈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가능하면 그 희생을 피해가고 싶지만 인생이란 참,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늘 기묘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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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s We Lost in the Fire |
<씽즈 위 로스트 인 더 파이어>가 궁극적으로 얘기하려는 것은 세상의 불공정함이다. 그리고 그 부조리함에서 오는 각 개인들의 좌절에 대한 얘기이며 그 실망감을 극복하지 못할 때 겪게 되는 고립감에 대한 얘기이다. 사람들이 섬처럼 뚝뚝 떨어진 채 황량하고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그 같은 부당한 순환고리때문이다. 오드리의 지고지순한 남편 –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다정다감하고 자신에게는 성실했으며 모두가 다 외면하는 마약쟁이 친구에게는 끝까지 믿음을 줬던 사람 – 이 생면부지의 남자에게 거리에서 총을 맞아 죽는 것은 정말로 불공정한 처사다. 왜 착한 사람이 죽어야 하는 세상인가. 왜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오드리 같은 여자가 그런 끔찍한 일을 겪어야 하는가. 그건 언뜻 보기에 사회 낙오자로 살아가는 제리에게도 마찬가지다. 한때 잘 나가는 변호사였던 그가 왜 중독자가 됐을까. 공정함이 모토인 직업군에서 탈피해 왜 스스로 패배자가 됐을까.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세상의 불공정함을 목격했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는 제리의 인생에 대해서는 이러쿵 저러쿵 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뼛속 깊이 전해져 오는 그의 슬픔을 전해 주려 노력한다. 문제는 세상이 만들어 내는 이 이상한 파고들을, 사람들 각자가 어떻게 이겨내고 극복하는 가에 대한 것이다. 겉으로는 꿋꿋하게 견뎌내는 척, 노력하지만 대부분 그러지를 못한다. 특히 혼자서는 절대로 좌절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누군가가 옆에서 같이 있어 줘야 하며 그렇게 같이 있어 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마디로 더불어 사는 삶을 진정으로 실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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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s We Lost in the Fire |
오드리는 남편의 친구 제리를 두고 순간순간 동정과 분노, 우정과 증오의 감정을 오간다. 오드리는 어느 날 밤 느닷없이 제리가 묵는 창고 방에 찾아 와 이렇게 얘기한다. "당신이 죽었어야죠. 남편이 아니라 차라리 당신 같은 사람이 죽었어야죠. 근데 왜 그러지 않았어요?" 그런 그녀의 황당한 분노에 제리가 묵묵부답, 어두운 표정으로 일관하는 것은 그 말이 옳다기 보다 세상이 던지는 불공정함에 대해 같은 느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 출신의 주목할 만한 여성감독 수잔 비에르는 바쁜 일상을 핑계삼아 의도적으로 묻어 놨던 외롭고 슬픈 자신의 내면을 들춰 내게 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동안 평온한 척 살아왔던 우리들 삶이라는 것에 사실은 얼마나 많은 균열이 나 있는 가를 느끼게 한다. 그 상처를 발견하기란 실로 우울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라도 그것을 발견하게 됐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일 수 있다. <씽즈 위 로스트 인 더 파이어>는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을 조금씩 다시 복원해 가자고 설득하는 영화다. 그러기 위해서는 브라이언이 그랬듯이 차분한 마음으로, 명상과 통찰의 시선으로, 조용히 그 소중한 것들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해 볼 일이다. 영화를 보면서 자꾸 눈물이 난다면 당신은 분명 외롭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실컷 우시고 조금이라도 위안을 받으시길 바란다. (*이 글은 부산 동의대 신문 '오동진의 씨네카페'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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