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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교육, 결과는 안 봐도 뻔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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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교육, 결과는 안 봐도 뻔하잖아요?"

[인권오름] 청소년의 '결정권'을 불허하는 사회

최근 서울시 교육청이 국제중 2개교를 설립하고 2009년도 신입생을 모집하겠다고 밝혔다. 시교육청은 '국제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로 설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작 국제중은 초등학생까지 입시 경쟁으로 내몰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또 입시를 위한 사교육이 불가피해지고, 비싼 등록금까지 맞물리면 국제중은 '귀족 학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교육청의 의지는 확고해보인다. 이는 곧 지난 7월 재임에 성공한 공정택 교육감의 철학이기도 하다. 지난 20일 이명박 대통령이 "정부는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의 1% 이상이 영재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것 역시 공 교육감의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1%를 위한 교육'이 그것이다.

당사자인 청소년들은 이 같은 교육 정책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은 탈학교 청소년 '또또'씨를 인터뷰했다. 그는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정작 교육 정책의 당사자인 청소년은 교육감 후보도 될 수 없고, 투표권도 없다며 청소년 교육감 후보를 내세우기도 했다. (☞관련 기사: "교육감 선거, '청소년 후보'가 나섰다")

그는 무엇보다도 청소년에겐 학력 신장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또 현 정부와 서울시의 교육정책에서 탈학교 청소년들이 더욱 배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1%에 관심이 많은 이 정부는 이들의 외침에 얼마만큼의 귀를 열어놓고 있을까.

다음은 청소년 활동가 '또또'와의 인터뷰를 인권운동사랑방 '청올'과 '초코파이' 활동가가 정리한 글이다. <편집자>


시민들이 처음으로 직접 교육감을 뽑은 지난 7월 30일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경쟁'을 내세운 공정택 후보가 당선됐다. 많은 사람들이 허탈감을 느꼈다. 촛불 집회의 여론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는 답답함에 '혹시 촛불 민심이 교육감 선거엔 반영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던 사람들에게 이번 선거 결과는 아쉬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번 교육감 선거에 대해 특히 아쉬움을 많이 느꼈을 이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청소년.' 교육 정책을 현장에서 겪는 당사자이면서도 늘 교육 정책이 적용되는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이들은 정작 자신들이 피부로 느끼는 여러 교육 정책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이번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은 '또또' 씨라는 청소년 활동가이다. 그는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청소년 후보'를 이야기했다. 그런 그에게 '청소년'은 어떠한 의미일까?

청소년, 혼자서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
▲청소년 활동가 또또 씨 ⓒ인권오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추리에 갔어요. 고1말쯤 교총 소속인 사회선생님에게 이 얘길 살짝 했죠. 대추리를 한번 갔다 왔다고. 그랬더니… 정말 (그분을) 수구라고 해야 하나. 그분은 '누가 너한테 혹시 가라고 시켰냐?'라고 묻더라고요. 그 말이 너무 당황했었요."

청소년. 그들을 정의내리기 가장 편한 말은 '질풍노도의 시기.' 어른들은 '이미' 겪은 혼란을 '아직' 겪고 있는 이들. 어떤 단계에 오르지 못했다고 가정되는 이들. 그래서 '보호'가 필요한 그들에게 어른들은 그들만의 고유한 의견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대추리에서도 시청 광장에서도 그들은 자신의 의지로 나온 게 아니라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서 나온 사람들로 취급된다. 그래서 일부 '어른'들은 묻는다. "너의 '배후 세력'은 누구?"

"이번 촛불 집회 때 경찰버스의 밧줄을 잡아 당길 때, 나처럼 어려 보이는 활동가들이 그곳의 주변 사람들과 함께 밧줄을 당기면 같이 줄을 잡고 있던 아저씨들이 '여자와 어린이들은 빠지라니까요, 학생들도 빠져요, 빠져'라고 말했었죠. 잘 당기고 있었는데….

한번은 신촌으로 쫓긴 날이었어요. 그때 주위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싸워서 연행되려는 사람들을 많이 구했었죠. 그때 어떤 사람이 갑자기 내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이 시간까지 여기 있느냐. 집에 가라.' 그렇게 말한 사람은 정작 인도에만 있었으면서…."

나이! 모든 것을 규정하는 기준

지구라는 마을에 태어난 햇수만으로 그들의 삶의 깊이가 결정되어버리는 현실에서 '청소년'은 항상 주변부이며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너 몇 살이야?"라는 질문이 그들의 삶을 대변해 버리는 현실에서 또또 씨에게 나이는 무슨 의미일까?

"저에게 나이는 어떤 신체 성장을 나타내는 정도일 뿐이에요. 요즘엔 이것도 많이 애매해지고 있지만 말이죠. 열세 살인 청소년이 저보다 키가 크기도 하잖아요. 아무튼 저에겐 신체 성장의 의미 말고는 없는 것 같네요."

하지만, 사회에서 나이는 나이테와 같이 그들 삶을 어떤 테두리로 선을 그어버리고, 모든 것을 넘어서는 서열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났을 때 인사하면서 '실례지만 몇 살이세요?', '열아홉 살인데요.', '아, 열아홉 살이구나! 학교는 어디 다녀?' 이런 식이죠.

당연히 기분이 나쁘죠. '학교는 어디 다니냐'는 질문 내용도 기분 나쁘지만, 더 기분이 상하는 건 당연히 자기보다 어리면 반말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또또 씨도 나이를 확인하는 것으로 서열을 쉽게 결정해버리는 문화에서 함부로 반말을 들어도 저항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중에서 만나면 나이를 알자마자 바로 반말을 하거나, 처음에는 존대를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 쉽게 반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며 "정말 심하게 말하는 경우가 아닌 일상화된 반말에 대해서는, 특히 대화가 통할 거란 기대가 별로 없을 때는 지쳐서라도 그냥 참고 넘어가는 때가 많다"고 말했다.

우리에게 결정권을 달라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단순히 반말과 하대를 받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행동의 제약과 인권의 침해로 이어진다.

"우선, 만 18세 미만은 고용주가 법적으로 고용보험을 들어주지 않아도 된다네요. 얼마 이상 일하면 6개월 동안 실업급여가 나오는데 그런 혜택 전혀 못 받죠. 의료, 산재보험만 가능해요.

그리고 청소년들은 밤 10시 이후로 찜질방, PC방 등을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죠. 특히 절대 혼자서는 숙박업소에 갈 수 없어요. 집밖으로 나가서 어딘가에서 자야 할 때는 길거리에서 잘 수밖에 없어요. 저도 여관에서 안 받아 줘서 못 잔 적이 있어요.

여권을 발급받을 때도 부모님과 함께 가면 제 신분증도 필요 없고 부모님 신분증이랑 서류 두 개만 있으면 돼요. 그런데 부모님 없이 혼자 가면 제 신분증, 부모님 신분증, 부모님 인감, 인감증명서, 동의서, 가족관계증명서 등 준비 서류가 많아지죠. 결국 그 준비 비용이 엄마 차비보다 더 나와서 엄마랑 같이 가서 했어요."

혼자서는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없다고 가정되는 청소년에게 '친권자'로서 부모의 권한은 크다. '성숙한' 부모는 '미성숙한' 자식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는 권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학교에서도 재현된다. 교사와의 관계 속에서 말이다. 더욱이 탈학교를 결정한 또또 씨에게 학교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흔히들 학교가 우리(청소년들)를 보호한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이 말은 청소년을 보호하는 사람이 있고, 청소년은 그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이것은 사람을 미성숙한 존재로 규정하는 불평등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죠. 마치 자본가와 노동자처럼 계급이 생겨 버리는 것과 같아요.

그게 답답해요. 교사들이 학생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하는 것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고리타분할 수 있을까 싶어요. 두발규제, 체벌, 복장 문제 등등.

또한 학생이 학교 밖에서 어떤 활동을 하려면 학교장의 허락을 받아야 된다거나, 집회를 하거나 연행을 당하면 퇴학이 가능하다는 등의 학칙이 있죠. 연행은 경찰이 잘못할 수도 있어서 보상청구제도 같은 장치가 있지만, 학교는 왜 연행됐는지 묻지 않고 퇴학시킬 거에요. 학칙에 정해져 있으니까. 이 학칙은 '국가기관은 무조건 옳다'라는 전제를 깔고 만든 것 같아요."

교육 정책의 당사자로 서기

그렇기에 또또 씨를 비롯한 청소년 활동가들이 교육감 선거를 바라보는 시선은 다른 이들과 다르다.

"실제로 교육감이라고 하면, 누가 어떻게 얘기하든 그들이 약속한 교육 정책을 직접적으로 겪는 당사자는 청소년인데, 청소년이 투표권이 없다 보니 이해하기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죠. 예를 들면, 그나마 가장 진보적 성향을 가졌다는 주경복 후보가 '어머니 시리즈(어머니, ~해드리겠습니다)'로 공약을 발표한 것을 들 수 있어요. 이런 것은 다른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요.

또 이인규 후보나 주경복 후보 둘 다 두발자유에 대해서도 '학생들끼리 얘기해서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어요. 두발 자유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원칙 아닌가요? 그것을 '학생들 자율'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것은 결국 학생들의 두발 규제가 합의되면 인정하겠단 말이겠죠. 후보들의 학생 인권에 대한 인식이 이만큼 밖에 되지 않는단 소리에요."


이렇게 남에게 자신의 권리를 맡긴 채 있을 수 없기에 또또 씨를 비롯한 몇몇 청소년들은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청소년 후보'를 내세웠다.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의 공약 ⓒ인권오름

"이때 내세운 주 슬로건이 '너희(교육감 후보들)만 해먹냐! 잘하는 것도 아니고 다 망치면서'였죠. 당연히 청소년들도 똑같은 시민인데 왜 투표권이 없는 건지…. 게다가 교육당사자인데 말이죠. 완전히 '앙꼬 없는 찐빵'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또 '너희는 우리가 두려운 거다. 우리가 선거권을 얻어 너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면, 너희가 두려워할 만한 변화가 일어날 거다'라고 꼬집었죠. 청소년 후보 쪽에서 낸 교육 정책들은 새로 논의된 게 아니라 쭉 논의돼 온 걸 담은 것이라서 별로 재미가 없다는 지적은 있었지만, 그걸 공약으로 하니까 다른 후보들에 비해서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주경복 후보에게 '제발 이것 좀 베껴라'라고 말하고 싶은 정도였어요."

하지만, 결국 '경쟁'을 강조하는 공정택 후보가 다시 서울시 교육감에 당선됐다. 그래서 탈학교 청소년인 또또 씨는 걱정이 많아졌다.

"지금까지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 공정택 후보는 자신이 무엇을 할지를 발표했는데, 이제 그 완성판을 보게 될 거에요. 국제중을 비롯한 엘리트주의가 팽배해질 거고, 그걸로 인해 국제중이 아닌 다른 학교 학생들은 더 죽을 맛이 되겠죠.

더구나 탈학교, 대안학교 청소년들은 말 그대로 어려움이 더 많아지겠죠. 사회에서 인정해주지 않고 그들을 더욱 배제할테니까. 성적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로만 평가하는 세상이 올 거에요.

여유 있는 집안의 홈스쿨러들은 부모들이 있어 뭐, 국제중 이런데 안 나와도 괜찮겠지만, 학교에서 쫓겨난 청소년들은 다시 비정규직이 될 거에요. '경쟁' 체제에서 그런 상황은 더욱 굳어지겠죠."

이번 교육감 임기가 1년 10개월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답답하다는 또또 씨. 그의 우려는 그 혼자만의 우려는 아닐 것이다. '다 너희를 위해 우리가 결정한 거야'라는 경쟁 신봉자, 엘리트주의자들의 합리화에 '시험만 골백번 치는 현장 경험 풍부'라고 비꼴 수 있는 청소년들의 재치와 저항의 목소리가 언젠가 정책으로 반영될 그날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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