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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라, 대한의 장한 아들·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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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라, 대한의 장한 아들·딸들아"

24년 전 그걸 하시겠다고요?

"장하다, 대한의 아들딸들"

"돌아왔다. 올림픽의 영웅들"

올림픽 선수단이 개선하는 날 서울 거리는 기쁨이 물결처럼 넘실댔다. 밤사이 내린 비로 어느 때보다 맑아진 하늘과 거리도 이들의 개선을 축하하는 듯했다. 오전 9시 공항환영식이 끝난 뒤 자랑스런 태극기와 올림픽기를 선두로 한 메달리스트들의 카퍼레이드 연도에는 일백만 명 시민이 이들을 맞았다.


가족 친지 및 체육관계자들은 개선 메달리스트에 꽃다발을 안겼고 서소문로에선 오색의 종이가 가로를 수놓았다. 공항에서 태릉선수촌까지 40.5km의 카퍼레이드 곳곳에는 밴드단이 환영주악을 연주했다. 카퍼레이드 도중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간이식장에선 올림픽기의 계양행사도 있었다. 선수단은 10시 반 선수촌에서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그리던 가족과 감격의 재회를 했다.

2008년 8월 서울의 풍경이 아니다. 지난 1984년 8월 16일 LA올림픽이 끝난 후 귀국한 선수단의 카퍼레이드를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다. 당시 한국은 금메달 6개, 은메달 6개, 동메달 7개를 따내 올림픽 참가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더군다나 4년 뒤 서울올림픽 개최가 확정된 상태라 온 나라가 '뒤집어진' 상태였다.

계속되는 민주화 요구에 부담을 느끼던 전두환 정부는 당연히 공항에서 선수촌까지 카퍼레이드를 준비하고 꽃가루를 휘날리며 '장한' 그들을 맞이했다. 전두환 대통령은 메달리스트들을 청와대로 불러 식사를 함께하며 '격려'했다. 정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선수들은 각 체육연맹과 향우회 등이 마련한 환영행사에 불려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선수들이 너무 힘들어한다"는 별도의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24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은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올림픽 영웅에 대한 갖가지 담론은 인터넷포털을 가득 메우고 있다. '스포츠 행사 성적이 곧 국력이다'라는 정서는 지금도 일종의 신화처럼 굳건히 사회 구석구석을 훑고 다닌다. 여기에 정부의 환영행사 준비, 선수단 초청 오찬행사까지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84년 당시 선수단 환영행사는 며칠 후 서울에서 다시 펼쳐질 것이다. '플래시백'이다.

영광의 '전사들' 개선… "싸웠노라 이겼노라 개선했노라!"
▲84년 당시 카퍼레이드로 서울 광화문 일대는 꽃가루로 뒤덮였다. 원래 정부는 축하 행사에서 생기는 쓰레기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촛불'처럼 뭔가 불편한 일이 일어날 때는 물론 다르다. ⓒ연합뉴스

84년 당시 한국이 거둔 종합순위 세계 10위는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성적이었다. 한국은 올림픽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국력에서도 세계 10대 강국에 오르리란 환상을 가지게 됐다. 실제 4년 뒤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한국은 종합순위 세계 4위에 올랐고 경제력으로도 세계 10대 강대국 반열을 눈앞에 두게 됐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감격할만한 성과였다.

정부는 바삐 움직였다. 선수들을 환영하기 위해 국회의장·대법원장·국무총리 3부 요인이 주축이 된 '올림픽선수단개선환영위원회'가 조직됐다. 위원장은 진의종 당시 국무총리가 맡았다. 대한체육회장이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직접 공항으로 찾아가 선수들을 '기내 영접'했다.

정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귀국하는 선수를 태운 대한항공은 선수들을 위해 평소보다 40% 많은 기내식을 준비하고 승객 1인에게 제공하는 고기도 평소보다 10g 많은 130g을 준비했다. 앵커리지 공항 이륙 한 시간 후에는 축하케이크를 준비하고 샴페인을 터뜨렸으며, 김포공항 도착 30분 전에는 하와이에서 가져온 '레이'(하와이에서 사용하는 화환) 200여 개를 선수단과 일반승객에게 나눠주며 분위기를 띄웠다.

시민들도 아직 올림픽의 감동을 잊지 않았다. 선수단 도착 3시간이나 전인 오전 5시부터 공항 주변으로 환영인파가 몰려들었다. <동아일보>는 84년 8월 16일 당시 공항 풍경을 이렇게 전한다.

"선수들의 소속팀과 학교에서는 대형 플래카드를 눈에 띄는 자리에 세워두느라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선수단을 선도할 두 대의 꽃차에는 '영웅들 돌아오다', '출발! 88올림픽' 등의 문구가 새겨졌고 꽃차 밑에선 기계점검에 여념이 없었다. (…중략…)

정각 8시 하형주 선수가 든 태극기를 선두로 올림픽기와 선수단이 입장하자 장한 아들딸들의 손목이라도 잡아보려는 부모들이 단상 앞으로 몰려 감격의 해후를 했다. 미처 환영식장에 못 들어간 가족들은 망원경으로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환영행사는 공항 국내선 청사 앞 광장에서 곧바로 시작됐다. 약 20분간 환영위원장의 축사와 함께 진행된 환영행사가 끝난 뒤 선수단 본진 85명은 27대의 오픈카를 나눠 타고 선수단기, 국제올림픽위원회(IOC)기를 앞세워 카퍼레이드를 시작했다. 퍼레이드 맨 앞에 가장 먼저 금메달을 딴 김원기 선수(레슬링)와 코칭스태프가 섰다. 뒤이어 안병근, 하형주(이상 유도), 신준섭(복싱), 서향순(양궁) 선수가 차례로 차에 올랐다.

카퍼레이드는 공항-양화교-여의도-서소문을 거쳐 시청앞까지 이어졌다. 엄청난 환영인파가 도로를 가득 메웠다. 이날 <경향신문>에 따르면 시청에 이르는 연도에만 180여만 명의 인파가 태극기를 손에 들고 몰려나와 '만세'를 불렀다.

양화교 앞 인공폭포에서는 동일여고 브라스밴드단원 50명이 '아! 대한민국'을 연주했다. 대림동 노인회 소속 농악대는 풍악을 울렸다. 선수단이 오전 9시20분경 여의도광장에 이르자 해군군악대가 개선행진곡을 연주하며 이들을 맞았다.

여의도에 빼곡히 늘어선 고층빌딩에는 '뻗치는 체력위에 펼쳐지는 우리노력', '싸웠노라 이겼노라 개선했노라'는 등의 환영문구가 커다랗게 늘어섰다. 서소문로를 채운 빌딩 위에서는 오색종이가 꽃가루처럼 휘날렸다.
▲84년 8월 16일 발행된 <동아일보> 지면 일부.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치른 LA올림픽에서 선수단이 놀라운 성적을 거두자 정부는 성대한 환영행사를 열었다. ⓒ한국언론재단DB

"대통령 각하께서 참석해 축하해주시다"

이 극적인 장면에 전두환 대통령이 빠질 리가 없었다. 올림픽기가 시청앞 광장에 도착한 순간, 전두환 대통령 내외가 탄 승용차도 이곳에 도착했다. 대통령 내외는 메달리스트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선수들은 마치 경기 중 감독에게 작전을 지시받듯 대통령 내외를 타원형으로 둘러서 대통령의 '훈시'를 들었다.

전 대통령은 다음날에는 메달리스트들을 청와대로 불러 같이 식사를 했다. 여기서도 엄중한 그의 훈시는 이어졌다. 잘은 모르되 아마도 "본인은…"으로 시작하는 특유의 말투로 선수단 격려가 이어졌을 것이다.

카퍼레이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청앞 환영식장은 잠시 머물러가는 자리였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 올림픽기를 서울시장에게 전달한 후 선수단은 다시 차에 탑승하고 광화문-동대문-청량리-중량교를 거쳐 최종 목적지인 태릉선수촌에 도착했다. 퍼레이드에만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태릉선수촌은 선수들의 사인을 받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당시 '선수촌 마스코트'로 불리던 '뽀빠이' 이상룡 씨까지 나와 선수들을 환영했다. 공항까지 마중 나갔던 선수들의 가족 역시 어느새 선수촌에 도착해 있었다.

김원기 선수의 금메달을 축하하기 위해 그의 고향인 함평군에서만 50여 명이 상경했고 그의 모교 동창회에서도 70여 명이 선수촌을 찾았다. 당시 금메달을 놓쳤던 김재엽(유도) 선수을 응원하기 위해 찾아온 대구 계성고와 원광대 동문들은 교가를 크게 불렀다.

고교생 신분으로 금메달을 땄던 서향순 선수의 가족은 '서향순관리임시대책회의'를 열어 "나이가 어린 향순이를 앞으로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문제"라며 의견을 나눴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당시 서 선수가 다니던 광주여고 김흥태 양궁감독은 "당장 내년(85년) 9월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양궁선수권대회가 문제다. 내일이라도 당장 활을 잡게하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국가대표 선수들은 외세와 맞서 싸우는 '태극전사'의 이미지를 풍긴다. ⓒ연합뉴스

그래, 84년과는 다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폐막한 뒤 선수단이 입국할 때도 위와 유사한 상황을 묘사한 기사가 보도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체육회가 이번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낸 선수들을 환영하기 위한 퍼레이드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24년 전과 완전히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일단 참여 선수들이 더 많다. 최근 누리꾼들 사이에서 "메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모두가 영웅이다"는 의견이 나오는 데 영향을 받은 듯, 체육회는 선수단 전원을 퍼레이드에 참가시키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카퍼레이드는 성사되지 못했다. 대신 세계 어디에서 이런 일이 있었는지 유례를 찾긴 힘들지만, '도보 퍼레이드'가 열린다. 아마 당시처럼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들지도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당시도 공무원이나 국영기업 직원들과 그 가족들이 대거 동원됐겠지만, 88올림픽 개최를 목전에 뒀다는 특수성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과 비교할 때 워낙 뛰어난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지난 19일 중국과의 경기를 벌이던 한국여자핸드볼팀을 중계하던 <SBS>의 정형균 해설위원은 느닷없이 "여자 핸드볼팀이 좋은 성적을 내서 이명박 대통령님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님 같은 분들의 관심에 보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확히 '땡전뉴스'가 방송되던 5공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9일 한국 여자핸드볼팀과 러시아 대표팀의 경기를 직접 관람한 적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이 거꾸로 된 태극기를 들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통령이 선수들을 불러모아 '훈시'를 가지는 일 역시 어김없이 일어난다.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이 주요 메달리스트들과 귀국 다음날인 26일 오찬간담회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두환 시절과 똑같은 일정이다. 대통령의 스포츠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달 말 열릴 페럴림픽(장애인 올림픽) 선수단 결단식에는 대통령이 직접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때는 "대통령이 환영식장에 직접 참석할 것"이라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지만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선수들을 강제 동원하는 것"이라는 비판 때문인지 그 계획은 쏙 들어갔다.

단순히 대통령의 환영식 참석 때문에 '정치적 행사'란 여론이 일어난 게 아니다. 올림픽이 끝난 뒤 열리는 퍼레이드 자체가 워낙 오랜만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도로 퍼레이드는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열린 적이 없다. 더군다나 선수단 전원이 참석하는 '초대형' 퍼레이드는 건국 60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군사독재 시절 간간이 있었던 카퍼레이드도 올림픽 메달리스트나 개별 종목 세계챔피언 등 일부 선수만이 참석하는 행사로 치러졌다.

당장 정부는 해명에 나섰다. 20일 문화체육관광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도심 퍼레이드가 정권홍보 성격을 띄고 있어 70년대식 발상'이라는 뉘앙스의 <경향신문> 기사를 반박했다. 문광부는 보도자료에서 "이번 행사는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가 추진하는 '민간 행사'로 '국가적 동원'이라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민간 행사라면서도 문광부는 퍼레이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며 "이번 퍼레이드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대형 행사가 아니다"는 점을 인식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문광부는 "선수단 카퍼레이드는 없고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울광장까지 도보 행진이 행사에 포함됐다. 도보 행진은 조기 귀국 선수와 당일 입국 선수가 함께 실시하기 때문에 일각에서 거론되는 '박태환 선수가 도보 행진 때문에 귀국을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하지만 너무 옹색한 얘기다. 이미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일부 선수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건 알지만 정부의 방침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었다.(<경향신문> 20일 1면 톱기사) 문광부는 이에 대해서도 반박했지만 대한체육회 관계자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김정길 전 대한체육회 회장이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유인촌 장관의 소위 '색깔론' 공세가 한창일 때 물러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한체육회가 정부와 무관한 '민간단체'라는 주장도 어거지다.

또한 당국에서는 이번 행사가 미리 준비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사격의 진종오 등이 경기를 마치고 귀국하려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보도로 볼 때 신빙성이 낮은 얘기다. 미리 계획된 것이었다면 왜 그런 일이 벌어졌겠는가.

지나치게 기뻐하는 '그 분'
▲지난 10일 청와대는 박태환 선수가 남자수영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지켜보며 환호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참모의 사진을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청와대

물론 지금 열리는 '초대형 규모'의 퍼레이드가 '너무나 오랜만에' 일어난다고 해서 꼭 문제라 볼 수는 없다. 한국 선수단이 이번 올림픽에서 지난 84년 올림픽이나 2002년 한일월드컵 때처럼 상식적인 기대 수준 이상의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하긴 힘들지만, 대형 스포츠 이벤트 뒤 퍼레이드가 열리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가끔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한 동안 지속되던 '촛불' 열기를 올림픽이 덮은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기뻐해도 너무 기뻐한다는 사실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스포츠광으로 유명한 이 대통령은 입을 열 때마다 올림픽 찬가를 부르고 있단다.

지난 14일 계룡대에서 육군 장성들에게 한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매우 건강하고 능력이 있고, 그래서 희망이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올림픽에 가서 금메달을 따고 국민의 사기를 올리고 있다"는 말은 상징적이다.

청와대는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장면에서 참모진과 함께 이 대통령이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부른 장면은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 연상하려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올림픽-청와대-한국'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만들어버린 곳은 청와대다.

미묘한 여운이 남지만 이 대통령은 이런 말도 했다. 지난 12일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올림픽 성적이 좋은데 기분이 어떠시냐'는 질문에 "젊은 사람들은 잘하고 있는 데 나이든 사람들이…(문제다). 육체적 나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 나이를 말하는 것이다. 생각이 고루한 사람, 생각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나이든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말하는 '생각이 고루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이번 퍼레이드가 24년 전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생각이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 방법이 없다. 다만 이명박 정부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70년대식 성장주의'라던가 '공안 정국' 따위의 말이라는 생각만이 잠시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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