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 | |
그러나 아무리 높은 점수를 준다 한들 책은 책이다. 더위가 가시지 않는다. 그래서 극장에 가야 하는데, 극장에는 죄다 같은 영화들만이 걸려 있다. 원래 이맘 때에는 공포영화들이 줄줄이 걸려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구석이 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특히 올해는 공포영화, 무엇보다 한국형 공포영화가 코빼기를 찾아 보기 힘든 지경이다. 물론 <고死 :피의 중간고사>가 있긴 하지만 그것 하나만 가지고는 아무래도 성이 차지 않는다. 지난 해 봤던 <기담>같은 영화가 하나쯤 더 있었으면, 팔뚝에 소름돋는데 도움이 더 됐을까. 아마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기담>의 엄마 귀신은 지금도, 생각날 때쯤 생각을 멈춰야지 그렇지 않으면 잠을 자다가 중간에 살포시 눈을 뜨면 침대 옆에 머리를 푼 여인의 잔상을 보게 마련이다. 하이고 그것 참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공포영화들이 왜 이렇게 사라졌을까.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이나 이수연 감독의 <4인용 식탁>처럼 인상적이면서도 사회적 의미론을 지닌 공포영화가 나올 때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였다. 겉으로는 평온한 듯 보이지만 안으로부터는 해체와 파괴의 행위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사회의 단면도를 보여주는 듯한 작품들. 왜 요 몇 년 간은 그런 작품을 찾아 보기 어려웠을까. 일각에서는 공포영화란 게 워낙 한정된 관객층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남는 게 없는 장사여서 제작자들이 기피하는 장르가 됐다는 분석아닌 분석을 내놓는다. 전혀 말이 안되는 얘기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포영화를 만들겠다는 작가나 제작자의 미학적 야심이 부족해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볼 거리 가득한, 깜짝깜짝 놀라게만 하는 이벤트형 팝콘무비를 만들면 공포영화로서의 제몫을 다하는 게 아니냐는 안일한 생각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들 영화에게서 멀어지게 한 요인이 아닐까 싶다. 거 무슨 훈장 같은 소리냐고? 리 차일드든 막심 샤탕이든, 웬만한 탐정소설 갖고는 재미를 못느낀다. 하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것,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보게 만드는 것, 그런 얘기가 아니면 자꾸 코웃음만 나는 법이다. 내년 여름에는 좀 제대로 된 공포영화를 이것저것 볼 수 있을까?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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