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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종주국' 자부심 지켜낼 수 있을까?

로페스家 등 경쟁자, 대진운, 새 룰 등 변수 많아

베이징 올림픽 마지막 주다. 지난 9일 간 한국은 금메달 8개, 은메달 9개, 동메달 5개를 따내며 18일 오후 현재 종합순위 6위를 달리고 있다. 오는 24일 마라톤을 마지막으로 한국의 최종순위도 결정된다. 한국의 당초 목표는 '10-10(금메달 10개로 종합순위 10위 달성)'이었다.

목표 달성 여부는 20일부터 열릴 태권도에 걸려 있다. 한국은 21일부터 여자 57kg과 67kg, 남자 68kg과 80kg 이상급 등 총 4개 종목에 선수를 내보낸다. 더 많은 선수를 내보내지 못하는 이유는 '특정 국가의 독식을 막는다'는 이유로 한 나라가 출전할 수 있는 체급이 4개 체급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당초 전망은 금메달 2개 획득이지만 내심 대표단과 국내 언론은 '2개+α'를 기대하고 있다. 여자 부문에서는 출전선수 두 명 모두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지만, 경쟁이 치열한 남자 부문의 경우 성적을 예상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기대요인도 있지만 불안함도 그만큼 많다. 최근 열린 국제대회에서 한국 태권도는 종주국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만큼 전력 평준화가 이뤄진 것이다.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남녀 16체급 중 남자 1체급, 여자 3체급에서만 우승했다. 지난 4월 뤄양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도 한국은 중국, 이란, 대만에 밀려 종합 4위에 그쳤다.

선수의 이름값과 상관없이 경량급에서 강세를 보이는 대만과 주최국 이점을 가진 중국을 비롯해 프랑스, 미국, 이란, 이탈리아 등에서 온 선수는 모두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 관련 기사 : 태권전사 메달기상도 '쾌청'…대진도 무난)

女 동갑내기, 확실한 금메달 후보

여자 67kg급에 출전하는 황경선(22·한체대)은 가장 확실한 금메달 후보다.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며 2005년, 2007년 세계선수권을 연속 제패했다. 한국 태권도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에 두 번 연속 출전할 만큼 기량은 확실하다. 태권도 전문가들은 황경선의 스타일을 '교과서적'이라고 평가한다.

황경선이 넘어야 할 최대 라이벌은 유럽의 태권도 강국 프랑스가 배출한 글라디 에팡(25)이다. 이제껏 세 번 만나 두 번 이기고 한 번 졌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황경선은 에팡을 2인자로 내려앉혔으나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지난해 9월 맨체스터에서 열린 세계예선대회에서는 패했다.

아랍에미리트의 '공주님'으로 화제를 모은 세이카 마이타 모하메드 라시드 알 막툼도 이 체급에 출전하지만 기량 면에서 황경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최근 황경선이 잦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적극성이 떨어져 이번 올림픽부터 새로 적용되는 '10초 룰'도 변수가 될 수 있다.

10초 룰은 '따분하다'는 올림픽 태권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 적용된 규정으로 양 선수가 공격을 하지 않을 경우 주심은 '10초 선언'을 하고 10초 경과 후에도 선수의 공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경기장 경계선에 더 가까이 서 있는 선수에게 경고가 부여된다.

두 번의 경고는 감점이다. 포인트제에 익숙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경기를 운영하던 한국 선수들은 새 규정에 공통적으로 적응하기 어렵다는 호소를 하곤 했다.
▲이번 올림픽 태권도에서 한국은 최소 금메달 2개 이상을 바라고 있다. 내심 3개 이상도 가능할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사진 왼쪽부터 황경선, 임수정, 손태진, 차동민. ⓒ뉴시스

여자 57kg급에 출전하는 임수정(22·경희대)도 안정적으로 금메달을 노릴 만하다는 평가다. 경량급 여자 선수로는 드물게 공격적이고 화끈한 스타일을 지닌 선수다. 장기인 양발 뒷차기와 뒤후리기의 파괴력은 동급 출전 선수 중 최강이라는 평가다. 상대방의 공격을 기다리다 빈틈을 노려 포인트 따내기에 집중하는 보통의 선수와는 달리 시원시원한 경기로 메달 획득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임수정은 서울체고 1학년이던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서 금메달을 따내며 실력을 입증한 바 있다. 당초 이 체급은 우리나라의 메달밭이었다. 시드니 올림픽서는 정재은이,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장지원이 금메달을 따냈다.

다만 큰 경기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 변수다. 많은 관중 앞에서 경기가 벌어진다는 점과 올림픽 자체가 가지는 특수성은 의외의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이 부문에서 대만이 강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만일 임수정이 쳉 페이 후아를 비롯한 대만 선수와 경기를 치른다면 중국 관중은 일방적으로 대만 선수를 응원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라이벌은 미국의 태권도 명문가 로페스 가문의 다이애나 로페스(24)다. 로페스는 국제무대에서 검증된 이 체급 최강자 중 한 명이다. 대진운과 상관없이 금메달 획득을 위해 로페스는 반드시 넘어야 할 상대다.

기량 평준화된 男 부문, 문대성 이어 금 따낼까

남자 경기에서는 68kg급에 출전하는 손태진(20·삼성에스원)에게 금메달을 기대하고 있다. 손태진은 작년 세계예선대회에서 우승하며 올림픽 진출권을 따냈다. 당시 손태진은 16강전서 왼쪽 팔꿈치가 탈골하는 부상을 딛고도 우승한 경험이 있다. 이 대회 우승으로 손태진은 순식간에 세계 태권도계의 주목을 받는 선수가 됐다. 지금 컨디션은 당시보다 더 뛰어나다.

하지만 손태진 역시 금메달 수상을 위해서는 로페스 가문을 넘어서야 한다. 손태진이 68kg급 떠오르는 스타라면 다이애나의 오빠인 마크 로페스(26)는 이 부문 최강자 자리를 지킨 선수다. 손태진은 이미 세계예선에서 부상에도 불구하고 로페스를 꺾은 경험이 있기에 이번에도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로페스 말고도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대만의 숭이치도 강력한 상대다.

이번 올림픽에 변경된 룰은 다행히 손태진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태권도계는 태권도의 올림픽 퇴출을 막기 위해 공격적 경기 운용을 천명하고 나섰다. 그 결과가 지난해 열린 세계태권도연맹(WTF) 기술위원회에서 허리 아래에서 발을 이용한 공격과 수비를 금지시킨 것이다. 그 동안 태권도 경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선수가 앞발을 수시로 들어 상대방에 접근한 후 근접 거리에서의 가격으로 포인트를 따내는 것이었다. 이를 금지함으로써 태권도 경기의 박진감과 파괴력이 더 높아졌다는 평가다.

이 룰은 손태진에 유리한 반면 로페스 가문 선수들에는 매우 불리하게 작용한다. 일명 '로페스 스타일'로까지 불릴 정도로 로페스 가문 선수들은 앞발을 미리 들고 경기를 운용하는 변칙적 스타일을 추구한다. 세계 예선대회에서 손태진이 우승할 당시 이 규칙이 첫 선보였고 로페스는 손태진에 패했다.
▲로페스 가문은 한국 태권도의 금메달 획득에 가장 큰 경쟁 상대다. 지난 2005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 3명을 잇따라 제압하고 금메달 3개를 거머쥔 로페스 남매의 모습. 사진 왼쪽에서부터 스티븐, 마크, 다이애나, 진 로페스. 맨 오른쪽 맏형 진 로페스는 미국대표팀 코치다. ⓒ연합뉴스

손태진이 좋은 결과를 안겨줄 것으로 기대되는 반면 남자 80kg 이상급에 출전하는 차동민(22·한체대)은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 체급은 파워가 중시되는 특성상 태권도 어떤 체급보다 전력 평준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세계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를 석권한 다바 모디보 케이타(말리)는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문대성을 잇는 스타다. 차동민은 이 대회에서 케이타와 맞붙어 패한 적이 있다. 농구 선수 출신으로 큰 키(201cm)에 걸맞지 않게 유연성과 스피드를 겸했다는 평가다.

이 밖에 아테네 올림픽 KO패의 아픔을 씻으려는 그리스의 태권도 영웅 니콜라이디스 알렉산드로스, 프랑스의 간판급 스타 파스칼 젠킬 대신 출전한 미카엘 보로 등도 금메달에 근접한 선수다. 시드니에서 김경훈이, 아테네에서 문대성이 금메달을 딸 정도로 한국이 절대 강세였던 과거와는 판도가 달라졌다.

따라서 차동민의 경우 대진 결과가 향방을 가를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초반에 난적을 만난다면 상위라운드에 간다 하더라도 체력 소모로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태권도는 유도와 마찬가지로 예선에서 결승까지 모든 경기를 하루에 끝마친다. 18일 결정되는 대진 결과는 심하게는 차동민의 메달 색깔을 가를 결정적 키가 될 수 있다.
새 올림픽에서 달라진 태권도 룰

그간 태권도는 지루한 경기내용과 판정시비 등에 시달리며 올림픽 정식종목이 된 지 8년 만에 퇴출 논란에 휘말렸다. 세계태권도연맹은 이를 막기 위해 더 공격적이고 공정한 경기가 이뤄지도록 몇 가지 조치를 취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태권도 경기가 종료되는 오는 23일이면 새 규정이 태권도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달라진 태권도 규정은 다음과 같다.

① 10초 촉진룰 적용 = 가장 새로운 경기방식이다. 그 동안 포인트따기 경기로 전락해 '재미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태권도연맹이 태권도 경기의 공격적이고 빠른 진행을 위해 도입한 것이다. 새 규정에 따라 선수들은 심판의 '10초 선언'이 내려지면 10초 내에 공격을 시도해야 한다.

태권도연맹은 태권도 경기의 공격성을 강화하기 위해 한 때 헤드기어를 벗기자는 논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전 문제 때문에 시행되지 않았다.

② 차등점수제 확대 = 이 제도 역시 선수가 보다 큰 기술을 쓰도록 유도해 공격적인 경기를 운용케 하기 위한 조처다. 이에 따라 발로 얼굴을 가격하면 2점을 획득할 수 있다. 선수 안전을 위해 얼굴에 지르기 공격은 금한다.

하지만 지난 아테네 올림픽에서 차등점수제가 도입됐음에도 출전 선수들 대부분은 포인트 따기에만 급급했던 게 사실이다. 이번 대회에서 몸통 가격은 1점, 얼굴은 2점이며 경고 2회시 감점 1점, 반칙 감점 1점이 부여된다.

③ 심판진 4명 = 국내 대회는 물론 세계 대회에서도 툭하면 일어나는 판정시비를 극복하기 위해 이번 올림픽에서는 종전 3명이 아니라 4명의 심판이 경기를 채점한다. 이에 따라 4명의 심판 중 3명의 심판이 동시에 점수단추를 눌러야 포인트가 인정된다.

④ 그 외 달라지는 것들 = 베이징 올림픽에서부터 종전 한 명이던 동메달 수상자가 두 명으로 늘어났다. 따라서 준결승에 오를 경우 동메달은 무조건 확보하게 된다. 경기장도 종전 사각형이 아니라 지름 10m의 원형경기장으로 바뀌었다. 당초 경기운영 방식도 5분 단회전제 도입이 논의됐으나 이번 올림픽에서는 종전대로 2분 3회전제로 치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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