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는 먼저 MB정부가 법인세를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주 거론하는 미국 레이건 행정부의 감세정책이 과연 성공적이었는지에 대해서부터 살펴보고, 이어서 2000년대 우리나라 법인세 인하의 성공여부와 우리나라 기업들의 세부담 경중(輕重)논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레이건의 감세 정책이 미국을 위기에서 구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레이건 행정부는 1981년 소득세 최고세율을 70%에서 28%로 내리고, 법인세 최고세율도 43%에서 35%로 내리는 등 강도 높은 감세정책을 단행한 바 있다. 한나라당은 이런 레이건의 감세정책이 미국을 위기에서 구해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레이건의 감세정책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레이건 행정부는 미국을 위기에서 구해 냈을까.
물론 레이건 행정부가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의 과도한 물가상승을 잠재운 것은 사실이다. 이 부문의 공적은 인정해 주어야 할 듯 싶다. 그러나 그의 공적은 거기까지이다. 아래 자료에서 보다시피 레이건 행정부는 2004년 LA올림픽 특수를 제외하고는 소비와 투자부문에서 특별한 실적으로 보여주지 못했고, 수출 또한 의미있게 증가시키지 못했으며 단지 수입 증가를 통해 1970년대 말의 공급부족을 겨우 해소했을 뿐이다.
특이한 것은 1981년 법인세 감세 이후 투자의 성장기여도가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겠지만 최소한 1981년 레이건의 감세정책이 기업들의 추가 투자를 유발하기는커녕 투자증가율 현상유지도 못하는 형편없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2000년대 우리나라의 법인세 인하도 투자유발효과 없어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도 기업들의 투자를 유발한다는 명분으로 2000년대 들어 임시투자세액공제를 대폭 확대했고, 2005년 이후 법인세 최고세율을 27%에서 25%로 내린 바 있다.(임시투자세액공제란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하는 경우 설비투자액의 7~10% 에 달하는 액수를 법인세 총액에서 경감하는 것을 말함). 그러나 이런 조치들이 투자확대를 가져 왔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위 자료에서 보다시피 2000년 이후 임시투자세액공제라는 명목으로 법인세를 감면해 준 액수는 크게 늘었지만 전 산업 설비투자총액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정부는 또 2005년 이후 법인세 최고세율을 2%나 낮추어 2조 원 정도의 법인세를 추가로 삭감해 주었지만 결코 설비투자증가효과를 얻어 내지는 못했다. 물론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법인세 인하가 법인들의 투자확대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의 세부담은 OECD 최저 수준
또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세부담이 경쟁국들에 비하여 높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아래 자료는 OECD가 2007년에 발표한 <Revenue Statistics 1965~2006>을 토대로 우리나라와 경쟁국 기업들의 세부담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비교해 놓은 것이다.
위에서 보다시피 2005년 우리나라의 GDP 대비 법인세액 비율은 4.1%로 OECD 평균보다 다소 높다, 그러나 GDP 대비 기업부담 사회보장세 비율이 매우 낮아 우리나라 기업들의 세부담은 OECD 28개국 중에서 6번째로 낮다.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기업들의 세부담이 작은 덴마크, 아이슬랜드, 스위스, 호주 등을 기업인들의 세금천국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들 나라들에서 기업인들이 내야 하는 개인소득세 부담이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참고하여 기업인들의 세부담과 직결되는 법인세, 사회보장세(기업부담), 개인소득세를 합한 총액을 GDP로 나눈 3개 세목 조세부담률 순위를 매겨보면 그 순위는 위의 자료에서 보다시피 법인세 부담률 순위나 기업의 조세부담률 순위와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조세부담률(%)=(조세액/GDP)x100]
그리고 또 위의 자료를 통해 기업인들의 세부담과 직결되는 3가지 세목의 조세부담률 수준이 10% 이하인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법인세를 홍콩.싱가포르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 정도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나라 법인세율을 홍콩, 싱가포르 수준으로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매우 부적절한 것이다. 왜냐하면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우리나라는 경제구조 자체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보통 미국, 일본과 같은 나라들은 무역의존도가 20%대 수준으로 매우 낮고 내수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내수성장을 위해 '소득재분배'에 우선적으로 신경을 쓴다. 반면 홍콩, 싱가포르와 같은 나라들은 무역의존도가 300%대 수준으로 매우 높고 내수의존도가 낮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법인세율을 낮추고 있다.[무역의존도(%)=(무역액/GDP)x100]
또 내수발전의 기반이 되는 인구와 법인세율 관계를 보더라도 OECD 국가 중에서 아이슬랜드(30만 명-이하 2007년 기준), 아일랜드(430만 명), 핀란드(528만 명). 덴마크(544만 명), 스위스(748만 명) 등 비교적 인구가 작은 나라들은 대체적으로 법인세 최고세율이 낮고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등 인구가 많은 나라들은 법인세 최고세율이 높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는 70%대 수준으로 통계청이 소개한 74개국 중에서 26위로 결코 낮다고 볼 수는 없다. 인구 또한 200여개 국 가운데 25위로 결코 작은 규모는 아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인구대국과 인구소국 중간 정도의 법인세 최고세율이 적정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낮은 세율을 유지하는 것은 기업인들에게는 일종의 배려라고 보여진다.
제발 검증 좀 하자
진리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 깃들어 있다. 어떤 추상적인 관념도 구체적인 현실을 이길 수 없으며 이겨서도 안된다. MB정부 들어 공허하게 떠다니는 근거없는 구호들, 이런 추상적인 관념의 산물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실증적인 자료에 의하여 검증되었는지 정말 의문이다. 그리고 실증적인 자료에 의하여 검증되지 못한 도그마들이 국가경제, 나아가 국가의 미래를 농락하게 될까 두려움이 앞선다.
MB의 측근들에게 부탁한다. 제발 서두르지 마라. 일국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치명적인 위험은 바로 '아는 것이 적으면서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독선적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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