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하루 종일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 장애인들에게 더위는 더 끔찍하다. 땀에 젖은 살이 썩고 짓물러도, 꼼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폭염…장애인에겐 욕창의 위험
서울 광진구에 사는 최용기 씨는 20년 전 교통사고로 경추(목등뼈, 목 부근 척추)를 다쳐 목 아래로는 움직일 수 없다. 그는 종일 휠체어에서 생활한다.
성동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으로 활동하는 그는 활동량이 많다. 그래서 휠체어에서 생활하는 시간은 그가 깨어 있는 시간의 전부라 할 수 있다. 이런 최용기 씨에게 여름은 무서운 계절이다.
그는 "휠체어와 몸이 맞닿은 자리에 빨간 반점이 생기면 욕창의 초기 증상이다. 내버려두면 살이 썩고, 한 번 생기면 앉아있지 못해 입원해야 한다"며 "시간 날 때마다 엉덩이를 휠체어에서 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더운 여름날이면, 금속으로 된 휠체어는 잔뜩 달아오른다. 비장애인들보다 땀을 더 흘릴 수 밖에 없다. 그 땀은 몸을 타고 흘러 내려가 엉덩이 쪽에 모인다. 그러면 주변 부위가 짓무르곤 한다. 휠체어 등받이에 맞닿아 있는 피부 역시 위험하다. 게다가 비까지 오는 날이면, 위험은 더 커진다.
날이 더워지면 장애인들에게 엄습하는 것은 욕창에 걸릴 위험이다. 살이 짓무르는 욕창은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증상이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옆에 24시간 누군가 함께 있지 않는다면, 폭염은 이들에겐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활동보조인이 없다면, 우리는…"
"안녕하세요. 저는…."
"잠시만요!"
명함을 내밀고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기자에게 최용기 소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기자는 또 인터뷰를 시도한다. 명함을 내밀고 또 "안녕하세요. 저는…."하면 최 소장은 또 "잠시만요!"…기다리라고 한다.
잠시 후 활동보조인이 명함집을 들고 나타났다. 비로소 기자는 최 소장의 눈을 보고 인사하며 손은 활동보조인이 건넨 명함을 받는다. 기자의 시선과 손은 따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활동 보조인을 매개로 기자는 최용기 씨와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활동 보조인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을 위해 정부가 유급으로 고용해 제공하는 인력이다.
그에게 생활이 어떤지 묻는 내내 활동 보조인은 최 소장의 팔을 들었다 내려놓고, 다리를 폈다 오므리고를 반복했다.
그는 목 아래의 몸 상태를 뇌가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혈액 순환도 원활하지 못하다. 그래서 활동 보조인이 1시간마다 손발을 스트레칭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이 짓무르는 위험을 피할 수 없다.
최용기 씨는 "활동 보조인이 있어 장애인들이 산책도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들은 바깥에서 보는 게 많아져 더 넓은 데로 가고 싶어 한다"며 "이런 욕구를 활동 보조인 서비스를 통해서 실현할 수 있다. 활동 보조인이 있기에 장애인에게 삶의 계획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활동 보조인은 이들의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생명선인 동시에,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최소 조건이라는 뜻이다.
"장애인은 세끼 식사를 한꺼번에 몰아서 하라?"
하지만, 장애인이 활동 보조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나머지 시간에는 몸을 움직이지 못해 살이 짓물러도 그저 견디고만 있어야 한다.
현재 보건복지가족부는 활동 보조인을 1급 중증 장애인에 한해서 최대 월 120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거기에 서울시에서는 최대 월 60시간을 지원해 서울시 1급 중증 장애인은 활동 보조인을 최대 월 180시간 이용할 수 있다. 오는 9월부터 복지부는 활동 보조인 지원 시간을 월 180시간으로 늘릴 계획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앞으로 활동 보조인 지원 사업을 중단할 계획이다. 서울시의 지원이 없어도 활동 보조인을 월 180시간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게 이유다. 서울시 측은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시에서 이 제도를 유지하면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압박이 더욱 커진다는 근거를 대고 있다. 다른 지자체의 질시 혹은 비난을 핑계로 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모든 지자체가 서울시처럼 결정한 것은 아니다. 울산광역시는 활동 보조인 이용 시간을 최대 월 120시간 지원하기로 했다. 여기에 복지부 지원 월 180시간을 더하면, 장애인은 활동 보조인을 월 300시간 이용할 수 있다.
최용기 소장은 "서울시의 방침은 결국 핑계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는 "지원 폭을 계속 넓히기는 커녕, 복지부 지원이 확대된다고 서울시 지원을 줄이는 것은 복지 정책의 역행"이라고 지적했다.
그나마 월 180시간을 다 이용하는 장애인은 극소수다.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등록된 활동보조인 지원 장애인 수는 60여 명. 그중에서 20명 내외만이 월 180시간 동안 지원받고, 대부분은 60시간 안팎으로 지원받고 있다.
활동 보조인이 월 180시간 장애인을 돌보는 것은 하루 평균 6시간 함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6시간 동안 밥을 몰아서 먹고, 화장실을 가고, 더운 여름에 샤워해야 하는 상황이다. 장애인의 생리적 욕구가 정부 방침에 따라 활동 장애인이 오는 시간에만 이루어진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최용기 씨만 해도 24시간 동안 누군가 옆에서 손발을 주물러 줘야 생활할 수 있다.
하지만, 복지부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활동 보조인을 월 180시간 이상 확보하는 것에 대해 "전혀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이에 대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간사는 "정부가 최대 월 180시간으로 활동 보조인 시간을 제한하는 근거는 1급 중증 장애인이 한 끼 식사에 걸리는 시간이 2시간이라 본 것"이라며 "하루 3끼 식사를 활동보조인이 도와준다고 계산해서 일 6시간, 월 180시간으로 계산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방침대로라면, 장애인은 하루 3끼 식사를 한꺼번에 몰아서 해야 한다. 또 화장실에 가거나, 샤워를 하는 시간은 반영돼 있지 않다.
"여성 활동 보조인이 남성 장애인 용변 처리해야 하나"
활동 보조인 이용 시간이 짧은 것만 문제가 아니다. 최용기 씨의 활동 보조인은 다른 활동 보조인보다 더 힘들다. 최 씨가 손을 쓸 수 없어서 전동휠체어를 타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경추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해 호흡으로 전동휠체어를 움직일 수 있게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요원한 일이다.
그래서 최 씨는 활동 보조인이 휠체어를 밀어줘야만 이동할 수 있다. 또, 전동휠체어는 계단을 못 올라가지만, 최 씨가 타는 일반 휠체어는 올라갈 수 있어 때론 활동 보조인의 도움으로 휠체어를 타고 계단을 오르기도 한다. 오르막길에서도 활동 보조인이 직접 밀어야 한다. 최 씨를 휠체어에서 들어 통풍을 시켜주는 일도 혼자 하기 벅찬 일이다.
그래서 최용기 씨의 활동 보조인은 젊고 건장한 남성이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활동 보조인은 주로 30대 중반 이상의 주부들이다. 활동보조인의 성비도 여성과 남성의 비율이 9:1이다. 더욱이 활동보조인 서비스 이용자의 50%는 남성인데 말이다. 남성이 용변 보는 일을 여성이 돕는 것은 장애인과 활동 보조인 모두에게 고역이다.
남병준 간사는 이에 대해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며 "여성 활동보조인과 남성 장애인 사이에서 성희롱 문제도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활동 보조인의 노동이 더 힘들다고 해서 시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불안정한 인력 수급도 문제다.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따르면 장애인과 활동 보조인이 서로 익숙해질 때쯤 활동보조인이 그만두는 일도 많기 때문이다. 남성 활동 보조인은 대개 젊은이들이 방학 등을 이용해 아르바이트 삼아 하는 경우다. 그래서 석 달을 넘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외진 곳에 사는 장애인에게 활동 보조인은 '그림의 떡'
그나마, 이렇게라도 활동 보조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서울 같은 대도시뿐이다. 남병준 간사는 "서울은 그나마 활동 보조인 서비스가 괜찮다"며 "지방의 외진 곳은 활동 보조인이 가기 어렵고, 활동 보조인을 모집해도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남 간사에 따르면, 원주시의 한 장애인은 실제로 활동 보조인을 신청했지만, 외진 곳에 살아 활동 보조인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외진 곳까지 민간단체는 책임지기 어렵다. 민간단체도 수익까지 바라지 않지만, 운영비는 나와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 단체가 외진 곳에 가려는 활동 보조인에게 교통비를 지원하는 것은 무리다.
활동 보조인 시스템은 정부가 비영리 민간단체에 위탁해서 그 비용을 바우처 쿠폰으로 결제하게 하는 형태다. 이 비영리 민간단체는 수익은 내지 않더라도 시설을 운영하려면 활동보조인을 많이 파견해야 수지타산이 맞다.
현재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는 활동보조인을 65~70명 정도 파견해 약 7500시간 분량의 시급을 확보하고 있다.
이곳과 같은 비영리 민간단체는 정부가 활동 보조인 1인에게 시급 8000원이 지급될 때, 이 중에서 약 2000원가량을 수수료로 뗀다. 그것으로 활동 보조 코디네이터(활동 보조인과 장애인을 연결해 주는 사람) 인건비를 충당하고, 활동 보조인의 4대 보험과 퇴직금을 적립한다. 이밖에 부정 수급을 막으려고 바우처 카드를 관리하는 단말기를 구매하고, 전화비, 자체 교육, 모집 홍보 등 나머지 비용에 이 수수료가 쓰인다.
"활동 보조인 절반만 4대 보험 가입"
하지만, 3000시간 정도 파견하는 곳은 활동 보조인의 4대 보험을 들어주고, 퇴직금 적립도 해주기 어렵다. 운영비에서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7년에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활동 보조인의 4대 보험 가입률은 50%에 불과하다.
그는 "비영리 민간단체가 활동 보조인 파견 시간을 월 2000~3000 시간 정도는 확보해야 운영비가 나온다"며 "몇백 시간 가지고는 전담 인력을 둘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지방 대부분이 몇백 시간밖에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 간사는 "장애인이 이 제도를 신청하면 받을 권리가 있는데 정부가 직접 제공하지 않고, 바우처로 제공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며 "시장 경쟁에 맡기는것이 아닌 정부가 책임을 지는 서비스 형태여야 한다. 민간에 맡겨 시장 경쟁 원리로 이 제도를 운영한다면 거주지가 낙후된 곳은 서비스를 못 받는 결과가 생긴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민간에서 수지타산에 맞춰 어렵게 운영하면 그에 따라 돈을 지급하면 그만이다. 전형적인 시장 논리다. 이런 논리에 따라 농촌의 외진 곳은 활동 보조인 서비스가 시행되지 않고 있다.
강만수 "양극화는 '시대의 트렌드'라 어쩔 수 없다?"
활동 보조인 서비스 역시 도시와 농촌 사이에서 '양극화'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을 듯 하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일 국회 민생특위에 참석해 "(양극화가 심화하는) 이유는 양극화가 '시대의 트렌드'이기 때문"이라며 "복지 지출 증대가 국내소비 기반의 취약점을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현재 복지부는 2009년 활동 보조인 제도 관련 예산으로 기획재정부에 1000여억 원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 많은 장애인들은 복지 지출 증대를 적대시하는 기획재정부가 활동 보조인 관련 예산을 제대로 배정할 가능성이 낮다고 여긴다. 그래서 이들은 활동 보조인 예산 확보를 주장하며 국가 인권위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다.
더위에 살이 짓무른 장애인들의 눈물이 그칠 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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