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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나를 흥분시켜 줘!

[특집] 뮤지컬 <쓰릴 미> 리뷰

피아노 연주자 한 명과 배우 두 명. 뮤지컬 <쓰릴 미>의 무대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 사람이 다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연의 음악은 피아노주자 한 사람이 담당하고, 연쇄살인, 동성애 등 파격적인 소재로 가득한 이 공연의 연기는 단 두 배우가 책임진다. 인터미션 없이 한 시간 반 동안 한번에 몰아치는 공연이다. 그런데 이 공연,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무대 위의 연주자와 배우도, 객석의 관객들도 모두 넉다운된다. 뮤지컬 <쓰릴 미>는 원래 스티븐 돌기도프가 희곡, 작곡, 연출과 출연까지 도맡아 오프브로드웨이에 2003년에 초연을 올린 2인극이다. 1924년에 미국 시카고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네이슨 F. 레오폴드 주니어와 리처드 알버트 로브의 실화를 각색한 것으로, 부유하고 영향력 있던 집안의 자제로서 15살에 대학에 진학할 만큼 뛰어난 두뇌를 가졌던 당시 19살의 두 소년이 강도와 방화 등을 일삼다가 15살짜리 소년을 납치해 살인한 사건을 다룬다. 앞길이 창창한 유력한 집안의 범상치 않은 두 소년이 오로지 '재미'를 위해 살인을 했을 뿐만 아니라, 체포된 뒤 두 사람의 동성애 관계가 밝혀져 더욱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다.
쓰릴 미 ⓒwww.thrillme.co.kr
이 작품은 극 중 '나'로 지칭되는 네이슨이 가석방 심의위원회에서 '그'로 지칭되는 리처드와의 관계를 고백하며 회고하는 액자식 구성을 이룬다. 작년에 처음 국내에 막을 올린 이 작품은 류정한 - 김무열 페어, 최재웅 - 이율 페어와 나중에 류정한의 빈 자리를 메꾼 강필석까지 도합 5명이 번갈아 출연했고, 회를 거듭할수록 입소문이 나면서 막을 내릴 때까지 계속 매진 행렬을 이루었다. 그 성공의 신화에 힘입어 올해 다시 막을 올렸다. 류정한과 김무열이 자신의 역으로 돌아왔지만 다시 페어를 이루지는 않았고, 대신 네이슨 역에 이창용과 김우형이, 리처드 역에 김동호가 가세했다. 류정한과 김무열이 출연하는 날의 공연은 1차, 2차에 걸쳐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순식간에 매진이 됐다. 새로운 네이슨과 새로운 리처드에 대한 관심도 꽤 높은 편. 아무래도 작년 이 공연이 뮤지컬대상에 나란히 남자주연상(류정한)과 남자주연상(김무열) 후보를 내고 류정한이 수상을 했떤 만큼 작년의 네이슨과 리처드와 줄곧 비교당할 수밖에 없다. 올해 새로 가세한 배우들이 공연 초반에 그만큼 혹평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두 배우 간 성량의 조화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자주 일었다. 심지어 새로운 리처드 김동호를 향해서는 기본적인 음정이 불안하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그러나 공연이 한참 진행된 지금, 이들에 대한 평가는 보다 다양해진 편이다. 작년 초연배우들의 공연이 눈에 익은 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불만이 돌고 있지만, 그럼에도 올해의 <쓰릴 미> 역시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거의 매회 공연이 매진되고 있다. <쓰릴 미>가 이토록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단순히 소재의 파격성 때문만은 아니다. 작년 김달중 감독에서 올해 이동선 감독으로 연출자가 바뀌면서 과감한 애정씬들이 늘었지만(키스씬이 네 번이나 된다), 작년의 팬들은 오히려 늘어난 애정씬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두 사람의 사랑이 노골적으로 표현될수록 그 절절함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극의 제목인 '쓰릴 미'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오로지 '스릴'을 느끼기 위해 자행된 잔혹범죄 뒤에는, 당시 동성애를 죄악시했던 사회적 금기와 부르주아 특유의 억압 밑에서 비뚤어진 두 남자의 우정, 혹은 사랑이 있다. 이들이 그토록 '스릴'을 추구한 것은, 이들이 스릴을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미성숙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조숙하고 영리했던 그들은 아직 자아를 확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너무 일찍 사회에 나가고 성인 수준의 지식을 습득하지만, 이것을 적절한 감성과 사회성 안에 소화시키지 못한다. 니체에게 열광했던 이들이 초인 사상을 "뛰어난 인간들은 살인쯤 해도 괜찮다"고 오독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들은 어른의 지식과 아이의 감수성을 가진 불균형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쓰릴 미 ⓒwww.thrillme.co.kr
그러나 이 극은 두 남자를 사회적 금기와 억압의 피해자로 그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극이 중심으로 삼고 있는 것은 '금지된 사랑'이라는 조건 하에 애정을 빌미삼아 상대를 착취하고, 그것을 역이용하여 자신의 사랑을 묶어두려는 두 남자 사이의 무시무시한 심리 게임이다. 그러면서도 결국 베일을 벗는 것은, 지상에 존재했던 그 어떤 사랑보다 절실한 사랑이다. 이들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고 상대가 있기에 비로소 완전함을 느끼는 완벽한 한 짝이었다. 비록 그들이 어린아이를 잔혹하게 살해한 치기어린 바보들이라 한들, 둘의 심리게임을 따라가던 관객들은 어느 순간 두 사람의 잔혹함 뒤의 쓸쓸하고 외로운 얼굴과 부지불식간 마주치게 되고, 결국 그들의 게임에 동참하면서 네이슨의 애절한 사랑의 갈구와 리처드의 미성숙한 열정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만다. 작년 팬들이 어떤 평가를 내리든 올해 처음 공연을 접한 사람들에게 <쓰릴 미>가 여전히 충격적이며 흡입력 강한 작품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두 배우의 호흡과 케미스트리가 극 전체의 완성도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후반으로 갈수록 공연이 월등하게 좋아지고 있다는 점도 반복 관람을 부채질하는 요소다. 배우는 단 두 명뿐인데도 극 속의 시간은 무려 34년을 아우르고, 장소 변화가 많으며, 두 사람의 미묘한 심리의 흐름이 주축이 된다는 점에서 무대극보다는 오히려 영화에 더 잘 어울리는 작품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 더 익숙한 관객이라면 몇몇 미묘한 심리적 변화의 순간 '클로즈업'의 필요를 절실히 느낄지도 모른다. 곡들은 극의 성격에 맞게 어둡고 격렬한 편이지만 그만큼 절절한 서정성이 짙은 곡들이 다수다. 특히 주제가인 '쓰릴 미'는 섬세하고 호소력 넘치는 선율로 뇌리에 깊게 박히는 곡이며, 리처드가 아이를 유괴할 때 부르는 '로드스터'는 카리스마 넘치는 곡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는 곡이다.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랙에서 10월 12일까지 공연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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