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추성훈이나 이원희보다 고통스러웠던 건 왕기춘 자신이었다. 그는 어이없는 한판패를 당한 후 한동안 매트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경기장을 벗어나서는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다가 안병근 감독의 설득으로 입을 열었다. 스무 살의 창창한 나이에 따낸 값진 은메달이었지만 그간 집중됐던 스포츠라이트가 너무 눈부셨기 때문에 그만큼 아쉬움이 컸다.
남자 유도 73kg급의 샛별 왕기춘(용인대)이 남자 유도 첫 은메달을 획득했다. 12일 베이징과학기술대 체육관에서 열린 결승전서 왕기춘은 아제르바이잔의 엘누르 맘마들리(20)에게 경기시작 13초만에 들어메치기를 허용하며 올림픽 금메달 꿈을 4년 뒤로 미뤘다.
8강전서 옆구리 부상…붕대 감고 뛰어
초반 행진은 좋았다. 왕기춘은 첫 경기인 32강전서 리나트 이브라히모프(카자흐스탄)에 누르기 한판승을 거두고 순조롭게 출발했다. 뒤이어 벌어진 16강전에서도 쇼키르 무미노프(우즈베키스탄)를 빗당겨치기 한판으로 꺾었다. 예상 외로 세계랭킹 3위인 체코의 야로미르 예제크가 일찍 탈락한 것도 부담을 덜어줬다.
고비는 8강전에서 찾아왔다. 브라질의 강자 레안드로 길레이로를 맞아 정규시간 내 승부를 내지 못한 왕기춘은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연장전반 1분27초만에 절반 승을 거뒀다.
이 경기에서 입은 옆구리 부상이 좋지 않았다. 하루 다섯 경기를 한 번에 끝내는 경기일정을 감안할 때 체력적으로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8강 고비를 넘긴 왕기춘은 4강전에서 만난 지난해 세계선수권 3위권자 라슐 보키에프(타지키스탄)에도 유효 승을 거두며 기대대로 결승전에 진출했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경기 운용을 선보여 금메달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지난해 세계선수권 결승전에서 만난 맘마들리에 경기 극초반 발목을 잡혀 허무하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맘마들리는 마치 60kg급 경기의 최민호를 연상시키듯 다섯 경기를 모두 한판승으로 끝냈다.
은메달이 아쉬운 이유…이원희의 그늘, 노무라의 그늘
왕기춘은 국가대표로 뽑힌 이후 '이원희의 그늘'과 맞서 싸워야했다. 그가 대표선발전에서 누른 이원희는 지난 2004 아테네올림픽 금메달을 포함해 국내 선수 중 처음으로 그랜드슬램(세계선수권대회·아시아선수권대회·올림픽 우승)을 달성한 한국 유도의 간판 스타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판승의 사나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업어치기 공격 기술을 보유한 이원희에 비해 왕기춘은 딱히 드러나는 공격 기술이 없어 '강한 체력과 승부근성이 있지만 주무기가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에 내내 시달려야 했다.
특히 왕기춘이 이원희의 연습파트너였다는 사실은 꼬리표처럼 내내 그의 뒤를 따라다녔다. 이런 의혹의 목소리를 극복하는 방법은 금메달 밖에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번 올림픽서 왕기춘은 금메달을 끝내 따내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진정한 한국 유도의 일인자'로 공언받는 무대를 4년 뒤 런던으로 미뤄야 했다.
왕기춘과 비슷한 사정으로 눈물을 삼킨 이는 일본에도 있다. '유도 종주국' 일본의 히라오카 히로아키(23) 역시 왕기춘과 비슷한 부담을 안고 이번 올림픽에 참가했다. 그는 왕기춘과 비슷한 케이스로 올림픽 무대를 밟아 국내 팬에게도 관심을 받은 선수다.
히라오카는 일본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지난 아테네올림픽까지 올림픽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일본 유도의 간판 노무라 다다히로(34)를 눌러 파란을 일으켰었다. 하지만 영웅화되던 노무라가 대표선발전에 탈락하자 일본 국내에서는 히라오카에 대한 무수한 의혹을 눈길을 거두지 않았었다.
무수히 쏟아지는 자신에 대한 의혹 여론을 잠재울 방법은 그에 걸맞은 성적, 곧 금메달을 따내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히라오카는 남자유도 60kg급 예선 2차전에서 미국의 무명 선수에 판정패해 조기 탈락해버렸다. 그가 일본인의 '자존심'을 지키지 못하자 여론은 잔인할 정도로 그에게 달라붙어 "미안하다"는 말을 이끌어냈다.
승자든 패자든, 왕기춘이 지난 4년간 흘린 땀방울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왕기춘이 따낸 은메달은 우리나라 유도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따낸 첫 은메달이다. 더군다나 그는 아직 스무 살 약관의 나이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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