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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달린 태극기가 예사롭지 않다"

[홍성태의 '세상 읽기'] '명박 독재' 이제 시작인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마치고 기자 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조지 부시는 어이없다는 듯이 허허 웃으며 분명히 논의했고 다만 '비군사 지원'이라고 반박했다. 이 뉴스를 보면서 퍼뜩 든 생각은 이명박은 그야말로 '거짓말의 달인'이라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혓바닥에 바늘이 돋는 병에 걸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도 웃으며 껴안고 사진을 찍어주기는 했지만 부시 대통령도 속으로 대단히 황당해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거짓말도 문제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이명박식 실용주의에 따르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성공만 하면 결국 좋은 것이다. 천박한 결과주의의 극치가 이명박식 실용주의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로 주의해야 하는 것은 이명박이 '거짓말의 달인'이라는 사실만이 아니라 여기서 나아가 그가 숱한 거짓말을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성공의 정체이다. 그가 성공이라고 여기는 것은 이 나라를 온통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나락으로 몰아넣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는 독재체제의 수립을 자기가 추구해야 하는 궁극적인 성공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자기가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사람들이 반박하지 못하고, 자기가 하자는 대로 '광우병'이고 '대운하'고 모두 수용하는 상태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해서 불도저는 잠시 밀어붙이기를 멈춰야 했다. 이명박은 국민에게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렇게 거짓말로 잠시 시간을 벌고는 이명박은 사태를 분석하고 전술을 변경했다. 이명박 쪽은 나름대로 자료를 검토하고 논란을 벌인 끝에 '적'들이 방송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분석한 것 같다. 그들에게 <PD수첩>의 광우병 심층보도와 인터넷의 활발한 토론은 그들의 판단을 확인해주는 너무도 명백한 증거였다. 그래서 '대운하'며 '민영화' 등을 그만둘 것처럼 얘기하면서 잠시 유보해 놓고는 우선 방송을 장악하는 것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핵심은 한국방송(KBS)의 장악이다. KBS를 장악하면 모든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고, 이것은 결국 모든 언론을 장악하는 것이다.

언론은 매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매체는 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발전에 따라 하나의 구조를 형성한다. 나는 이것을 '매체 구조'(media structure)라고 부른다. 우리의 매체 구조는 크게 신문, 방송, 인터넷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에서 신문은 '이명박 신문'이라고 해도 좋을 조·중·동이 여전히 75%를 넘는 막강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방송은 YTN과 교육방송(EBS)이 이미 '이명박 방송'의 위기에 처했으며, 그리고 SBS는 사실상 '이명박 방송'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쪽에게 KBS와 MBC는 그야말로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KBS를 장악하면 방송문화진흥회의 지분 구조를 통해 MBC도 장악할 수 있다. 따라서 이명박 쪽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의 지휘 아래 국민의 여론과 국제적 비판조차 무시하며 KBS 이사회를 장악해서 정연주 사장을 해임시키는 전술을 강행했다.

한나라당의 유한열 상임고문이 국방부 납품과 관련해서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건이 발각되었다. 김옥희 씨의 뇌물 사건에 뒤이은 거대한 부패사건이다. 그런데 유한열 사건의 관련자들은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았으니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재의 상황을 명료히 요약해 주는 끔찍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차떼기당'의 악몽은 물론이고 'IMF 사태'의 고통이 선연히 떠오른다. 이런 문제를 막기 위해서도 언론의 자유는 정말로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매체 구조는 지극히 취약하다. 이제 이명박 쪽이 정연주 사장을 쫓아내고 KBS를 장악하면, 이명박 쪽이 완전히 언론을 장악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유한열 사건의 관련자들이 한 말은 그야말로 '진리'가 될 것이다. 단순히 언론의 자유가 억압되는 것이 아니라 '명박 독재'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명박 독재'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돈이면 최고라는 무서운 배금주의의 가치관을 확산시키는 '돈 독재'이며, '대운하'와 같은 전대미문의 파괴 사업마저도 경제의 이름으로 강행하는 '토건 독재'이며, 국토를 산산이 파괴할 '대운하'마저도 최고의 투기대상으로 여기는 '투기 독재'이며, 김옥희·유한열의 뇌물 사건에서 이미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듯이 '부패 독재'이며, 초등학생부터 격렬한 학벌경쟁을 벌이도록 하는 '학벌 독재'이며, 광복절을 부정하고 일본을 찬양하는 '친일 독재'이며, 광우병 위험과 O157 위험을 무작정 감수하는 '숭미 독재'이며, 촛불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데서 잘 드러났듯이 '폭력 독재'이며, 불교를 무시하는 작태에서 이미 잘 드러났듯이 타종교나 무종교를 사탄으로 여기는 '기독 독재'일 것이다.

KBS의 장악은 단순히 방송 장악에 그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 매체와 언론은 총보다 중요하다. 총으로 권력을 장악한 자들도 실제로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매체와 언론을 장악한다. 박정희가 그랬고, 전두환이 그랬다. 독재자들은 매체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지위를 과시해야 한다. 매체와 언론은 현대 사회의 조직자이자 운영자이기 때문이다. <1984>에서 무섭게 묘사되었듯이 독재는 총만으로 작동할 수 없다. 반드시 매체와 언론을 장악해야 한다. 매체와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꼭 총을 쓸 필요는 없다. 법을 이용할 수 있다면 민주주의의 외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정권이 매체와 언론을 장악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그 법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있는 법조차 그저 지키는 척하면서 매체와 언론을 장악하는 것의 문제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KBS의 위기는 매체와 언론의 위기이며, 우리가 너무도 어렵게 이룩한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 이명박 대통령의 손에 잘못된 태극기가 들려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거꾸로 그려진 엉터리 태극기를 들고 응원을 한 것이 어쩐지 큰 상징적 의미로 다가온다. 나는 그가 후진기어를 넣고 앞으로 가자고 외친다고 지적했지만, 정말 이명박 세력은 이 나라를 거꾸로 되돌리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결국 친일-독재의 세상, 부패-폭력의 세상을 다시 구현하는 것이 아닌가?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면서 사실은 '굶주린 10년'을 벌충하기 위해 혈안이 된 '강부자'의 발호가 갈수록 격화되고 있으니 이 나라가 과연 어디로 갈 것인가? 물가폭등과 금융위기는 결국 다수의 중산층마저 '강부자'의 먹이로 만들어 버리지 않겠는가? '명박 독재'의 위험에 대해 중산층이야말로 커다란 위기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끝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자. 김금수 KBS 전임 이사장과 유재천 KBS 현임 이사장은 서울대 사회학과 57학번 동기이다. KBS를 굳게 지킬 것으로 여겨졌던 김금수 이사장의 갑작스런 사임에 대해 여러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뒤를 이은 유재천 이사장의 너무나 강경한 태도에 대해서도 역시 여러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원로 언론학자로서 유재천 이사장은 전두환 독재의 엄혹한 시절에 <민중>이라는 제목의 책을 엮어서 펴내기도 했다. 나름대로 학계와 시민사회의 존중을 받던 그가 이명박 정권의 노골적인 KBS 장악, 아니 전체 방송 장악 전술의 현장 책임자가 된 것은 그 자체로 대단히 유감스럽고 지탄받아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잘못된 정치가 학자를 망치는가, 잘못된 학자가 정치를 망치는가? 유독 정치교수의 문제가 심한 이명박 정권을 보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도 던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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