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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노조 파업 왜 실패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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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노조 파업 왜 실패했나

[기고] 한 연구원이 공무원노조 K지부장에게 보내는 편지

'공직사회개혁'과 '부정부패일소'를 주장하며 총파업 깃발을 들었던 전국공무원노조(위원장 김영길)가 파업 돌입 3일만에 깃발을 내렸다. 남겨진 것은 파업 가담자에 대한 파면·해임 등 대량 징계와 여론의 싸늘한 시선이다. 일각에서는 지도부의 '모험주의'가 1천여명의 충실한 공무원 노동자들만 길거리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공무원노조는 "비록 정권의 탄압에 위축된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마음속으로 분노와 투쟁의 칼날을 벼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싸움은 끝난 게 아니고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다.

파업종료 일주일이 지난 현재, 공무원노조 파업에 대한 평가가 이른 감이 있지만, 오랜기간 동안 외국 공무원노조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고, 공무원노조의 파업의 정당성과 정부의 공무원노조 입법안을 줄기차게 비판해왔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부소장이 <프레시안>에 공무원노조 파업 평가와 함께 노조에 대한 제언을 보내왔다. 월간 <노동사회> 12월호에 실릴 이 글은 노 부소장이 과거 공무원노조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만난 노조 K 지부장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노 부소장은 이 글에서 정권과 보수언론의 시각이 아닌, 공무원노조 주장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시각에서 이번 전공노 파업투쟁의 패배에 대한 쓰디쓴 지적을 하고 있다.

***전략 설정의 실패**

노 부소장은 먼저 투쟁 전략전술과 관련, "공무원의 권익향상과 공직사회 개혁을 위해서는 노동3권이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며 "그러나 아무리 정당하고 옳은 주장이라고 해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제도화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손배가압류'나 '직권중재' 같은 제도가 수 년동안 국내외적으로 비난이 제기됐지만, 고쳐지지 않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며 "공무원노조에 대한 단체행동권 제약 역시 같은 맥락에 서있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노조가 단체행동권 제약을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과제로 설정하지 않고, '당면과제'로 인식하고 투쟁을 전개한 것은 냉정하게 지적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에 대해 "한국사회의 현실, 정부·여당에 대한 불철저한 인식, 보수가 지배하는 국회현실을 분명하게 꿰뚫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노조가 (장기적 전술이 아닌) 총파업이라는 한판 승부를 선택하면서 all or nothing 이 되었고, 총파업이 무산된 이후 다른 전략 전술도 그 강도나 파급력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단계적으로 조직의 힘을 모으고 다양한 형식의 투쟁이 배제된 것은 전술의 치명적 오류"라고 비판했다.

***내부 민주주의 결여**

노 부소장은 또다른 문제점으로 운영 및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 문제를 꼽았다.

그는 "공무원노조는 조직형태면에서 기업별 노조가 아닌 전국단위 단일산별노조이지만, 운영이나 활동은 기업별 조직 관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것이 이번 총파업 투쟁과제에서도 투쟁을 위축시키는 뼈아픈 한계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물론 정부의 초법적 탄압과 수구언론의 반노동자적 보도태도, 경기침체와 결합된 따가운 국민여론이 한 데 모인 결과"라고 지적하면서도 "그러나 외부적 조건만 탓하는 것은 문제해결과 앞으로의 방향설정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무원노조의 투쟁방침이 대의원대회와 중앙위원회라는 회의 과정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기보다는 집행부 방침으로 내실 있는 토론없이 '만장일치'로 결정됐다"며 "지역본부마다 조직과 투쟁역량 차이가 나는데도 이를 염두하지 못하고 획일적으로 내려진 투쟁방침은 '결의는 함께 하고 투쟁은 따로 하는' 조직 내부의 분열을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획일성을 탈피해) 주체역량을 면밀히 검토 분석해 투쟁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실사구시하는 내실있는 구조로 변해, 다양성을 인정하는 조직의 내적 통일성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국민 홍보 부족**

노 부소장은 끝으로 공무원노조에 대한 국민의 따가운 시선에 적극 대처하지 못했던 점도 지적했다.

그는 "노조의 총파업투쟁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의 노조에 대한 비난은 잔인함과 혐오감이 느껴질 정도였다"며 "라디오·신문광고가 그나마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는 무기였지만 역부족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공무원의 투쟁이 국민서비스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부정부패를 막고자하는 공무원의 노력이 왜 좌절할 수밖에 없었는지, 노조가 최근 2~3년간 추진한 일은 어떤 것이었는지 국민들이 얼마나 알고 있었을지 의문"이라며 "노조의 문제제기가 국민들에게 구체적으로 다가가지 못했음을 평가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앞으로 "노조는 추상적 구호가 아닌 국민대중 일반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진정한 '국민의 봉사자'로 나서기 위해 정책 대안과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며 "행여라도 임금 등 경제투쟁에 매몰되지 말고 공직사회(정부) 내부에서 전체 노동자와 서민대중의 이익을 신장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보여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음은 노광표 부소장 글 전문이다.

***K지부장님에게**

마른 은행잎들이 길가에 수북이 쌓이고, 바람이 많이 차가워졌습니다. 어느덧 가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K지부장님, 건강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해 가을, 조합원 교육 후 뒷풀이 자리에서 지부장님을 처음 뵈었던 것 같습니다. 자리를 옮겨 다니며 조합원들의 의견에 귀 기울리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날 어떤 조합원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더군요.

“우리 지부장은 아까운 사람입니다. 노조활동만 하지 않으면 2~3년 안에 5급 승진은 따 놓은 당상인데, 노조 활동 때문에 진급은 물 건너 간 것 같습니다.”

마침 지부장님과 함께 한 자리에서, 저는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상태에서 궁금증을 토로하고 말았습니다. “지부장님, 이제 공직에서 잔뼈도 굵었고, 6급 고참이라고 하시던데 뭐 하려고 지부장을 맡으셨습니까?” 돌발적인 질문에 다소 당황하던 당신은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답하셨죠.

“아니 강사님, 오늘 우리들에게 힘을 주려고 오신 줄 알았는데, 마누라에게 매일 듣는 잔소리를 또 하십니까! 하하, 뭐 특별한 이유가 따로 있겠습니까. 99년에 기관별로 직장협의회를 만들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후배들에게 우리 군청도 직장협의회를 만들어 보자고 했더니만, 후배들이 선배가 앞장서면 하겠다고 해서…, 지금 생각하면 제 무덤 스스로 팠지요. 그러나 후회는 없습니다.”

그 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공무원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하여, 지자체 공무원들이 왜 이렇게 노조활동에 열성인지, 정부의 공무원노조 입법안은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이에 맞서기 위한 대처 방안은 무엇인지… 그러나 제약된 시간 때문에 토론은 마무리되지 못했고,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그 자리를 끝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오늘, 공무원총파업을 보도하는 TV 뉴스에서 지부장님 모습을 다시 뵐 수 있었습니다. 뉴스를 통해 본 당신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비장하더군요. 그것은 파업투쟁에 나선 공무원 전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공무원노조 지도부의 “최후의 1인까지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와는 달리, 총파업 투쟁은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깃발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투쟁에 그렇게나 험한 말을 내뱉던 이들은 헌법에 보장된 공무원의 노동기본권 요구 투쟁을 정말 잘못된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요? 정부당국이 진정 공무원을 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참여정부는 '그들만의 개혁'의 덫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공무원노조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비난의 뿌리는 도대체 무엇인지… 여러 가지 문제의식들이 지부장님 얼굴과 겹쳐지면서 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누구는 예정된 결과라며 공무원노조를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하더군요. 화해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오랜만에 한 목소리로 공무원노조의 과격한 행동을 점잖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투쟁에 나선 2,000여명의 조합원들만 대량징계 앞에서 좌불안석의 상황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오늘 이 편지를 지부장님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수배상황 속에서도 현장의 조합원들과 함께 할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공무원노조의 간부들도 이 편지의 독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글을 통해 '공무원총파업'의 성과와 한계가 무엇이었는지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는 지난 번 지부장님과 함께 나누었던 토론의 연장선에 있는 주제이기도 하죠.

물론 투쟁 평가는 저와 같은 외부인이 아닌, 투쟁 주체들에 의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다만 이 편지는 본격적인 평가에 앞서 향후의 투쟁을 위한 중간 점검의 의미로 받아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짧은 의견이나마 이번 총파업의 문제들을 극복하고 앞으로 전진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저의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옳은 것과 제도화되는 것은 다릅니다**

먼저 투쟁 목표 쟁취를 위한 전략 전술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이번 총파업투쟁의 목표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정부 공무원노조 입법안을 저지하고, 공무원도 일반노동자와 동일하게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받는 ‘노동3권 쟁취'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법외노조인 ’전국공무원노조'를 실체로 인정받아 명실상부한 공무원노동자의 대표조직으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기준으로 한다면 둘째 과제는 달성한 것 같습니다. 이번 투쟁을 통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공무원노조의 사회적 위상을 공직사회와 일반 국민에게 분명하게 새기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이제 국민들은 공무원노조입법안은 모르더라도 한국에도 공무원노조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바로 첫째 과제인 ‘노동3권 쟁취'에 있었습니다.

공무원의 노동3권 보장에 대해서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공무원의 권익향상과 공직사회 개혁을 위해서는 공무원노조의 주장처럼 노동3권이 필수불가결한 조건일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공무원노조는 형식적인 노동1.5권만을 보장하려는 정부의 입법안을 두고만 볼 수 없는 상황이었겠죠. 그러나 아무리 정당하고 옳은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제도화(입법화)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은 수많은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손배가압류'나 ’직권중재' 같은 제도가 수년 동안 국내외적으로 비난이 제기되었음에도 아직도 고쳐지지 않는 나라입니다. 특히 직권중재제도 같은 경우 공무원의 단체행동을 금지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병원, 지하철 등 이른바 ‘필수공익사업장'의 노사교섭을 원천봉쇄하고 있는 대표적인 노동악법이죠. 물론 이 제도는 원칙적인 입장에서 보면 그 실체적 수명이 다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렇지만 이 제도가 노동현장을 탄압하는 실체법으로 막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올해의 경험을 통해서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노동3권 쟁취가 ‘당면과제'였을까요.**

직권중재 제도에 고통받는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단체행동권을 금지하는 공무원노동조합법 또한 공무원 노동자들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은 명확합니다. 공무원노조의 투쟁은 그러한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하는 투쟁이었죠. 그러나 공무원노조가 이 문제를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과제로 설정하지 못한 채 ‘당면과제'로 인식하고 투쟁을 전개했다는 점은 냉정하게 지적되어야 합니다. 이는 한국사회의 현실, 참여정부와 집권여당에 대한 불철저한 인식 그리고 보수가 지배하는 국회현실을 분명하게 꿰뚫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노동3권 쟁취를 ‘당면과제’로 인식한 결과는 바로 투쟁전술을 장기적인 계획이 아니라 11월 안에 모든 것을 끝장내는 한판 승부, 즉 ‘전부이거나 전무(all or nothing)’가 되도록 만든 것이었죠. 정부를 압박하고 연대의 전선을 확대할 수 있는 다양한 투쟁 전술 구사가 아닌 요구 조건 관철 때까지 ‘무기한 총파업'이라는 배수진만 제시되고 말았던 겁니다. 그러나 총파업은 투쟁 수위로 보면 가장 높은 수준의 투쟁입니다. 총파업 이후의 다른 투쟁들은 그 강도나 사회적 파급력에서 보다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전교조의 연가투쟁처럼 단계적으로 조직의 힘을 모으고 다수의 공무원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이 투쟁계획에서 배제되었다는 사실은 전략 전술의 치명적인 오류라 생각합니다.

덧붙여 공무원노조의 정부입법안에 대한 문제제기가 ‘단체행동권 보장’ 여부로만 한정된 것도 지적되어야 합니다. 정부 입법안의 문제점은 단지 단체행동권 허용 여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 지부장님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조합가입 대상자를 6급 이하의 공무원에 한정한 것도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 단결권 보장이며, 인사․예산․법령․정책에 관한 것을 교섭대상으로 삼을 수 없도록 한 것은 공무원노조활동을 경제적 영역으로 한정하는 대표적인 독소조항이죠. 게다가 일체의 행동권을 부정하면서 그 위반자에 대해서 ‘5년 이하의 징역과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처벌조항을 두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단체행동권 보장 여부에만 집중된 공무원 노조의 활동은 이러한 법안의 문제점을 폭넓고 다양하게 알리는데 많은 한계를 보였습니다. 이 또한 냉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내실 있는 토론이 강한 결의를 만듭니다**

다음으로 공무원노조의 운영 및 조직 내부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입니다. 공무원노조는 기업별노조가 아니라 전국단위의 단일산별노조입니다. 조직형태는 산별노조이지만 조직의 운영이나 활동은 기업별(기관별) 조직 관성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죠. 이러한 부분은 이번 총파업 투쟁 과정에서도 투쟁을 위축시키는 뼈아픈 한계로서 나타났던 것 지부장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아직 정확하게 종합할 수는 없습니다만, 총파업 투쟁의 뚜껑을 열었을 때 2만 조합원의 상경투쟁과 전체 지부의 현장파업이라는 공무원노조의 초기 계획에는 턱없이 부족한 투쟁역량을 드러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정부당국의 초법적인 탄압과 수구언론의 반(反)노동자적 보도태도, 그리고 경기침체와 결합된 따가운 국민여론이 한데 모인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외부적인 조건만을 탓하는 것은 문제해결과 앞으로의 방향설정을 어렵게 하죠. 그런 의미에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14만 조합원을 가진 대중조직으로서 공무원노조의 투쟁방침이 대의원대회와 중앙위원회라는 회의 과정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기보다는 집행부 방침으로 내실 있는 토론 없이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조합의 투쟁방침은 현실적인 힘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그 방침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 역량이 함께 모여질 때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본부마다 조직과 투쟁역량이 차이가 나는데도 이를 염두에 두지 못하고 획일적으로 내려진 투쟁방침은, 이번 투쟁과 같이 “결의는 함께 하고 투쟁은 따로 하는” 조직 내부의 분열을 가져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대의원대회와 중앙위원회가 원칙만을 강조하는 죽은 회의가 아니라 주체역량을 면밀히 검토 분석하여 투쟁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이른바 실사구시하는 내실 있는 구조로 변화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조직의 내적 통일성이야말로 노동조합운동이 추구하는 연대와 동지애일 테니까요.

그리고 투쟁기금 103억원 모금은 분명 이번 투쟁의 의미와 정당성을 조합원으로부터 추인 받았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투쟁기금 목표 달성이 투쟁을 담보하는 바로미터로 오인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러한 비판적인 평가와 솔직한 고민들 속에서, 공무원노조는 산별노조로서의 지도력을 강화하기 위해 치밀한 준비와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특히 이번 투쟁에서 지부별 투쟁대오가 옳게 서느냐 아니냐의 여부가 지부장 및 상집간부의 결단에 좌우되었다는 사실을 되새긴다면 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현장조직 강화와 간부 양성에서 해법을 구해야 한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의의 칼’을 쥐십시오**

마지막으로 공무원노조운동의 특수성입니다. 이번 총파업투쟁 과정에서 일반 국민들의 공무원노조에 대한 비난은 잔인함과 혐오감이 느껴질 정도이더군요. 이는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반노조 정서와 결합되어 있는 문제일 테지만, 지난 시절 공무원사회 일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함께 표출되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정부당국의 사실 왜곡과 대다수 언론의 보도태도는 공무원노조를 고립무원, 사면초가로 몰아넣었다는 사실도 덧붙일 수 있겠지요.

그러나 공무원노조는 총파업이 가져 올 부정적 국민여론을 예상했음에도 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습니다. 라디오와 신문광고가 그나마 정부당국의 일방적 홍보에 맞서는 큰 무기였습니다만 시기가 뒤늦은 감이 있었지요. 어쨌거나 국민여론은 한마디로 “공무원노조가 왜 파업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고, “정년보장과 연금혜택까지 받는 노동자로서 너무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부정부패와 공직사회 개혁을 위해 ‘단체행동권’이 왜 필요한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부장님도 잘 알고 계시다시피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는 공무원을 노동자가 아닌 ‘국민의 공복’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짙게 배어 있죠.

그러한 왜곡된 국민여론에 지배받아서야 안 되겠지만, 일반국민이 생각하는 현재의 조건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무원노조가 갖는 특수성은 민간기업과는 다른 사회적 공공성 확보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공무원의 투쟁이 국민서비스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부정부패를 막고자하는 공무원의 노력이 왜 좌절할 수밖에 없었는지, 공무원노동조합이 2~3년 동안 추진한 일은 어떤 것이었는지, 공무원노조가 무엇을 목표로 투쟁하는지…, 파업에 돌입하기 전 국민들은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임을 인정하긴 하지만, 저는 공무원노조의 문제제기가 국민들에게 구체적으로 다가가지 못했음을 평가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무원노조는 이제 추상적인 구호가 아닌 국민대중 일반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진정한 ‘국민의 봉사자’로서 나서기 위해 정책대안과 투쟁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공무원노조운동의 기반인 공공부문은 무엇보다도 공공서비스의 제공으로 특징지어집니다. 게다가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의 의의는 ‘공공성’에 대한 전사회적 수준에서의 합의를 자신의 동력으로 할 때만이 확고해지죠.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둘 때 공무원노동조합운동은 기득권의 수호자가 아니라 ‘정의의 칼(sword of justice)’이라는 고유의 역할을 요구받는다고 할 것입니다.

이렇듯 공무원노조가 단순히 임금 등 경제투쟁에 매몰될 경우 국민적 설득력과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기 힘들다는 점을 자각하고 공무원노조는 무엇보다도 공직사회(정부)내부에서 전체 노동자와 서민대중의 이익을 신장하는 역할을 수행해 나가야 합니다.

다시 현장에 선 건강한 모습 기다리겠습니다

어쩌면 투쟁의 아픔을 제대로 공유하지 못하는 일방적인 저의 주장으로만 편지가 채워져 있지 않았나 걱정이 앞섭니다. 그러나 끝나지 않은 공무원노조의 투쟁을 다시 돋우는데는 냉정한 평가라는 작은 불씨 또한 필요하다는 것 널리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노동조합운동의 승리는 한 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수 없는 투쟁과 패배, 그리고 이를 딛고 일어서는 노동대중의 힘찬 전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일 테죠.

공무원노조 김영길 위원장은 총파업선언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리 억수같이 퍼붓는 소나기라 할지라도 그 소나기를 조합원 모두가 함께 맞는다면 그것은 아마 여름날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물줄기가 됩니다.” 노동조합운동의 힘은 이렇듯 조합원대중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공무원노조의 투쟁이 선언이나 구호가 아닌 실체적 힘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활동가들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가을 햇살이 눈부신 그 길 선두에서 지부장님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지부장님을 비롯한 공무원노조 간부들의 건강과 공무원노조의 올곧은 건승을 기원하며,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어느새 맞이하게 되는 세밑을 준비하며,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광표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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