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2시30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8백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간부파업돌입을 알리는 투쟁결의대회를 열었다. 오는 26일 민주노총 총파업에 한 발 앞서 비정규직노조가 선도하겠다는 의미다.
***비정규노조 간부 1천명 상경, 간부파업 돌입 선언**
깃발만 봐도 우리 사회에 얼마나 다양한 부분에 각양각색의 형태로 비정규직 노동이 존재하는지 알 수 있었다. 철도노조 홍익매점 노조, 학교비정규직, 시설관리직, 일반노조, 현대차 사내하청 노조, 학습지·화물·골프 캐디 노조, 예술 애니메이션 비정규 노조, 방송사 비정규노조, 타워크레인노조, 건설운송노조, 이주노동자 평등노조 등 제조·서비스를 가릴 것없이 기간제·파견직·단시간·사내하청 노조들이 함께 했다.
집회는 박대규 전국비정규노조대표자연석회의(준) 의장의 발언으로 시작됐다. 박 의장은 건설운송비정규노조 의장 출신으로 지난9월16일 이부영 열린우리당 당의장실 점거농성을 통해 민주노총 총파업 결정을 끌어내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노동운동가다.
박 의장은 "2000년부터 비정규노조가 조직돼 수많은 투쟁이 있었지만, 전 조직적 차원에서는 한번도 싸워보지 못했다"며 "이번만큼은 비정규직 노조가 전 조직적 차원에서 총파업 투쟁을 선도하자"고 말했다.
***"더이상 정규직에게 도와달라 사정 않겠다"**
박 의장은 또 "더 이상 정규직노동자에게 도와달라고 사정하지 않겠다. 비정규직이 앞장서고 정규직이 알아서 쫒아오도록 해야한다. 정규직노조가 챙겨주길 기대하지 말자"며 "우리 권리는 우리 스스로 싸워나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현실이 어렵다는 말은 그만하자. 언제까지 현실 탓만 할 건가"라며 "여기 비정규노조 간부들이 불씨를 지필 수 있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결사투쟁을 전개하자"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정부여당이 비정규 관련 법안 유보입장을 시사하면서 노동계가 흔들리는 것을 겨냥한 것이었다.
박 의장은 "이번 총파업은 정부법안을 저지한다고 끝나는 싸움이 아니다"며 "우리는 정부안 완전 폐기를 위해, 비정규노동 권리입법 쟁취를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비정규 노조 대표자들은 더 이상 말만 하지 말고, 몸으로 부딪히고, 현장에서 조직해내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승철 부위원장, "정규직-비정규직 벽, 실감했다"**
박 의장의 뒤를 이어 신승철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발언했다. 신 부위원장은 민주노총에서 미조직·비정규 특위를 맡고 있다.
신 부위원장은 "대공장 정규직 출신으로 10개월간 미조직 특위를 맡아 활동하면서 참으로 힘들었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벽이 그렇게 높은지 몰랐다. 여러번 그만두고 싶었다"며 그간 고충을 솔직히 토로하면서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이어 "자본과 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벽이 '노동자는 하나다'란 구호를 무색케 하고 있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높아져만 가는 벽을 보며 절망의 늪에 허우적거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자본과 정권이 만들어놓은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차별은 철폐해야 하는 문제이고, 조직내부의 정규직-비정규직간의 차이는 극복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3·4기 민주노총 지도부도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주요 과제로 상정했다. 이는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조직적 과제로 설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어려운 점이 많지만 기필코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만들어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이어 "민주노총은 개악저지와 입법쟁취를 따로보지 않는다"며 "정부·여당이 법안을 유보한다면, 찬반투표로 결의한 총파업 투쟁은 내년에도 자동적으로 유효하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총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할 때 파업 시점과, 기간 등을 명시하지 않았다.
***심상정 의원, "노동-경제, 한나라당-우리당 따로없더라"**
바통을 이어받은 국회 재경위 소속의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반년 남짓 의정활동을 돌이켜보는 것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사회자로부터 '국회 파견노동자'라고 소개받은 심 의원은 "국회에 들어가보니 비정규직 차별철폐를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더 강도 높은 투쟁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경제·노동·미국 문제에 관한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는 없었다. 보수정치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또 "노동운동을 할 때 보수언론과 정치권은 항상 상생과 타협을 (노조에게) 주문했다"며 "오히려 국회에 가보니 정당의 당리당략에 따라 전투적이고 호전적인 정치인들이 너무 많아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생은 과거에 잘못한 사람이 진정으로 반성할 때 가능하고, 타협은 힘이 있는 사람이 양보할 의사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며 "지금까지 양보만 해온 사람에게 양보하라고 하고, 묵묵히 일만 해온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에서 대화와 타협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또 "빈곤사회로 치닫는 가운데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인데 법률안 유보를 하겠다며 정부여당은 변죽만 울리고 있다. 시간을 갖고 이야기한다고 해서 비정규직 차별이 해소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삭발식 그리고 눈물**
잇따른 발언을 끝으로 비정규노조 대표자들의 삭발식이 진행됐다. 사회자 오민규 비정규노조 사무국장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삭발 결의자가 있어 바리깡을 다 준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박대규 의장을 필두로 대표자들이 삭발 채비를 하고 의자에 앉았다. 갈색 머리를 날리던 신승철 민주노총 부위원장, 긴 꽁지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이던 류제운 예술노조 애니메이션 비정규노조 위원장도 함께했다. 30여명의 대표자들은 자신들의 조직 깃발을 몸에 두르고 잘려나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물끄러미 봤다. 눈을 감은 이도 있었다.
카메라 플레쉬가 잇따라 터지는 가운데, 삭발식을 지켜보는 비정규노동자들은 구호를 외치고 노동가요를 불렀다. 간혹 눈물을 닦는 이들, 담배연기를 하염없이 내뿜는 노동자도 있었다. 숙연했고, 분노가 서린 모습이었다.
20여분간 삭발식이 끝나고 상징의식이 이어졌다. 삭발을 마친 대표자들은 '가자! 총파업!'이라고 쓰인 백색 천 위에 빨간색 손도장을 찍었다. 천은 붉은 색으로 물들었다. 얇은 천 아래 아스팔트 위에도 빨간색 손도장이 선연히 아로 새겨졌다.
장내 정리가 끝나고 비정규노조 각조직 간부들은 서울 곳곳으로 떠났다. 선전-홍보 활동을 위해서다. 오민규 비정규노조 사무국장은 "알려야 할 것이 많다. 정부는 비정규 개악안이 비정규직 보호법안이라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투쟁의 시작은 사실을 정확히 알리는 것부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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