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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드디어 촛불의 정체를 깨달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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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드디어 촛불의 정체를 깨달은 걸까?"

[기자의눈] 올림픽 응원이 정치집회 되면 '엄정 대처'한다는데…

경찰이 걱정하고 있다. 8일 개막되는 베이징올림픽 기간 동안 예정된 '거리 응원'이 '거리 시위'로 '변질'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응원은 보장하겠지만, 집회나 시위로 변질될 경우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7일 "응원전을 마치고 도심 도로를 점거하거나 불법 집회를 벌일 경우에는 초기부터 이동을 막고 해산 절차를 진행하며 불응할 때는 현장에서 검거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거리 응원을 '빙자'해 대사관이나 청와대 등 '주요 시설'에 집단으로 진출할 경우도 사전에 막는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경찰의 예측은 일리가 있다. 대한올림픽위원회(KOC)와 SK텔레콤은 8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청계광장에 경기 관람 스크린을 갖춘 올림픽 테마공간을 운영할 계획이다. 또 이곳에서는 축구 대표팀이 카메룬과 경기를 갖는 7일 밤부터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질 예정이다.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도둑이 제발 저린다더니…"

그런데 이 같은 경찰의 우려는 아무래도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듯 하다. 누리꾼들은 "도둑이 제발 저린다더니…", "올림픽에 관심도 없었는데 (경찰이) 이렇게 길을 제시해주는구나",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경찰에 감사한다" 등의 댓글을 속속 올리고 있다. 또 "경찰이 오히려 선동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번 경찰의 우려는 여러 가지를 생각케 한다. 그간의 경험을 비춰볼 때 '왜' 누리꾼 사이에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지조차 어리둥절할 경찰을 위해 이번 발언을 해석해 본다.

우선 그간 매일같이 열린 촛불 집회가 혈기왕성한 이 나라 국민이 주축이 된 집회였다는 것을 경찰 스스로 증명한 셈이 됐다. 올림픽 대표단을 응원하는 그 '애국 시민'이 곧 촛불 집회의 '주동자'와 다를 바 없음을 경찰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보수 언론과 정부는 촛불 집회 참가자들을 '친북 좌파' 내지는 '배후세력에 선동된 집단'으로 일관되게 몰아갔다. 그런데 그 참가자들의 자발성과 거리 응원의 자발성이 유사함을 드디어 경찰이 발견한 것일까. 그렇다면 사실 축하할 일이다.

문화 행사? 정치 집회?…'도로 불법 점거'는 매한가지인데
▲ 촛불 집회가 열리던 서울 청계광장에 올림픽 기간 동안 응원전이 펼쳐질 예정이다. 경찰은 '불법 집회'로 '변질'될 경우 엄정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따로 있다. 대체 어떤 기준으로 집회와 응원제를 구분할 것이냐는 점이다. 집시법에 따르면 일몰 뒤 야외에서 하는 문화적 행사는 허용되지만 '정치 집회'는 금지된다. 그러나 촛불 집회, 시국 미사뿐 아니라 보수 단체의 기도회에서도 보듯이 그 기준은 이미 시민 사이에서 용도폐기된지 오래다. 집시법은 경찰의 편의를 위해 제멋대로 적용되는 자의적 기준이 돼 버렸다.

예를 들어 박태환 선수가 선전을 했다고 치자. 그의 선전에 감격한 시민들이 경기가 끝난 뒤에도 밤새 도로에 남아 '대한민국~'을 외친다면 그 '집회'의 성격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실제로 이런 경우는 2002년과 2006년 월드컵에서 숱하게 많았다.)

가령 대표팀의 성적이 시원치 않아 속이 상한 시민들이 '한국 스포츠의 문제점'에 대해 거리에서 난상 토론을 벌인다고 상상해보자. 분통터진 시민들이 '도대체 정부는 뭐하는 거냐'고 외쳤다고 해보자. 이것은 문화 행사인가, 정치 행사인가.

어쩌면 경찰은 응원에 나선 시민들이 '해산'하지 않을 경우 요즘 즐겨 적용하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를 갖다 붙일지도 모른다. 불법적인 도로 점거를 이유로 시위 참가자를 무차별적으로 연행했던 경찰이 응원을 위해 거리에 나선 이들을 내버려둘 이유가 없지 않을까? 차량 운전자들이 얼마나 속이 터지겠는가. 일관된 법 집행만이 경찰이 늘 우려하는 '공권력의 위신 추락'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책은 막고, 관중은 겁주고…뭐가 그리 두렵길래

더군다나 이번 발언은 경찰이 정말 '검거'에 목을 매고 있다는 의구심을 더욱 굳히게 한다. 지난 6일 서울지방경찰청이 불법 집회 참가자들을 검거한 건수마다 마일리지나 상품권을 주는 등 경찰관에게 포상하기로 한 사실이 알려졌다. 경찰은 "도로를 점거하거나 불법 집회를 벌일 경우 초기부터 이동을 막고 해산절차를 진행하며 불응할 때는 현장에서 검거할 수도 있다"고 한 발언의 '진정성'이 의심되지 않는 이유다.

국방부가 베스트셀러와 대학 교재를 포함해 23권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선정'한 사실이 드러난 뒤, 오히려 이들 책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국방부는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표현의 자유'를 억누르고, 거리에 모이는 군중에게 겁부터 주는 공권력은 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운 것일까. 언제부터 그렇게 겁먹을 일을 벌였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충고한다면 너무 과도한 제언일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즐거운 축제가 될 올림픽 기간 내내 거리 응원이 거리 집회로 '변질'될까봐 긴장한 채 군중을 노려보며 대기해야 할 전경 여러분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음악 축제와 아이스크림에 겁먹는 정부는 또 있었다

사실 정부가 공부를 좀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들 만하다. 그것은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클레이 서키 지음, 송연석 옮김, 갤리온 펴냄)에서 소개한 외국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 1989년 동독 라이프치히에서는 동독에 대한 반체제 시위가 시작됐다. 이들은 거리 음악 축제나 박람회 등 문화행사 기간에 시위를 벌일 때가 많았다. 1월에는 500명이 나왔고 그중 50명이 체포됐다. 이후 시위는 매주 월요일마다 정기적으로 열렸다.

9월이 되자 참가자 수는 수만 명으로 불어났다. 이때가 되자 동독 공산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는 지방 정부에 "이적 활도을 싹부터 잘라 버리고, 그들에게 대중적 기반을 허용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11월의 첫 번째 월요일, 40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왔다. 다음 날, 동독 내각을 전원 사퇴했다. 이틀 후에는 베를린 장벽 해체가 시작됐다.

■ 유럽 벨로루시 공화국에서는 2006년 3월, 3선에 도전한 독재자 알렉산더 루카셴코가 85%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조작된 결과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1만 명의 시민이 광장에 쏟아져 나왔지만 이들 중 수백 명이 체포됐다.

그해 5월, 한 누리꾼이 플래시 몹을 제안했다. 바로 광장에 나와 아이스크림을 먹자는 것. 그런데 경찰은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이들 중 몇 명을 연행했다. 이 과정은 사진으로 남았고, 블로거들은 이를 널리 유포했다. 이후 다양한 플래시 몹이 열렸는데, 그 중에는 광장 주변에서 그저 서로 미소를 지으며 걸어 다니자는 것도 있었다. 경찰은 웃으며 걷던 참가자들 중 한 명이 주머니칼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무기 소지 혐의를 적용하려 했다고 한다. 벨로루시 정부가 우려한 것은 바로 아이스크림이나 미소가 아니라 이런 행동이 '조율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두 사건을 통해 억압적 국가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명백하다. 아무리 작은 시위라도 얼마든지 커질 수 있으니 애초에 시작되게 내버려 두지 말라는 것, 문화 행사나 미소 짓는 행위도 우려할 만한 집단 행동이 될 수 있으니 내버려두지 말라는 것, 그리고 어떤 자료도 밖으로 유출되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이렇게 드러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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