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의 '광우병' 편을 담당한 김은희 작가가 한국방송작가협회에서 펴내는 <월간 방송문예> 8월호에 실린 '방송 후기'에서 이런 사실을 폭로했다. 김 작가는 글을 통해 "방송이 임박한 어느날 청와대 모 인사라 자신을 밝힌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그는 쇠고기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치 공세', '선동' 운운하는 단어를 썼다"며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정치 공세, 선동하는 무리를 비난하는 걸로 제작진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대신하려 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이어서 "내가 기억하는 한, 시사 프로그램에 몸담은 지난 10여 년간 청와대에서 방송을 앞둔 제작진에게 직접 전화가 왔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며 "그 전화는 어쩌면 앞으로 프로그램에 닥쳐올 '가혹한 운명'의 전조였을까"라고 자문했다.
김 작가는 5일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해당 프로그램이 방영되기 직전인 4월 25일 청와대 언론비서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내게 전화를 걸어서 방송 내용에 대해 묻고, 'TV에서 보도를 잘못하면 선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확인했다.
김 작가는 "그 언론비서관은 <PD수첩>에서 직전에 인터뷰했던 민동석 차관보를 통해서 내 전화번호를 알았다고 말했다"며 "전화를 끊자마자 이런 사실을 김보슬 PD를 비롯한 다른 제작진에게 알렸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2주 전쯤 후기를 청탁받을 때, <PD수첩>의 공세가 최고조에 달할 때라서 그 청와대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이런 공세를 예고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글에 언급하게 됐다"며 "이렇게 외부에 공개한 것을 다른 <PD수첩> 제작진은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와 관련해 청와대 측은 '정치 공세', '선동' 등의 발언은 없었고, 압력을 행사했다는 주장도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일축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언론비서관이 전화를 건 사실이 없고, 김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은 H모 행정관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언론2비서관실에 근무했던 H모 행정관은 현재 정무수석비서관실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
H모 행정관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4월 말경 <PD수첩> 제작진에게 전화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압력을 넣었다거나 정치 공세, 선동 등의 용어를 사용한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라면서 "그런 말은 결코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원래 PD와 통화를 하고 싶었지만 연결이 여의치 않아 김 작가와 통화를 하게 된 것"이라면서 "<PD수첩>이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뒤 정확히 어떤 내용을 담은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문의 전화를 한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김 작가와 통화를 했었다는 사실 자체도 잊고 있었다"면서 "이제 와서 사실과도 다른 주장을 하며 이를 압력이라고 주장하는 김 작가의 의도가 뭔지 의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월간 방송문예> 8월호에 실린 김은희 작가의 글 전문. 가혹한 시대에 태어난 프로그램의 가혹한 운명 MBC <PD수첩> '긴급취재 :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제작 후기' 프로그램에도 운명이 있다면 얼마 전, 오랜만에 벗에게 메일 한 통을 보냈다. 나의 벗은 나지막이 다독이는 답장을 보내주었다. '이 공세를 인격적으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자신의 존재가 치욕을 당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기자들이 지면에 쓴 글이 활자화되는 순간 그와 무관한 자신만의 생명과 운명을 지니게 되듯, 당신이 세상에 내놓은 프로그램도 마찬가집니다. 그건 단지 그 프로그램의 운명일 뿐이지요.' 예리한 나의 벗은 나의 슬픔을 위로하려 들지 않았다. 그저 나의 프로그램의 운명을 날카롭게 예측하고 있었을 뿐. 맞다. 그의 말이 맞을 것이다. 모든 인간이 '시대'를 타듯, 프로그램 역시 그럴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내가 그 어느 때보다 '필이 꽂혀' 만든 나의 프로그램은, 그 어느 때보다 파란만장하고 가혹한 운명을 겪고 있나 보다. 어떤 시사프로그램도 그 탄생을 100% 축하받지 못한다. 아마도 특정 '종족'으로서 감내해야 할 타고 난 팔자일지도 모른다. 그 '대상'이 주로 힘과 권력이 있는 자들이라는 데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잘 감추고 있던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실책이 폭로되고, 탄탄대로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뾰족한 돌부리라 여겨질 프로그램 종족의 운명. 그러, 나와 PD는 통상적인 시사 프로그램이 감당해야 할 운명보다 더한 미래가 닥칠 수도 있음을 예감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지금의 황망함과 착잡함이 조금은 덜했을까. 그러나 우리는 순진하게도, '시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 하나 사람들이 종종 오해하는 한 가지가 있다. 시사 프로그램 종사자들이 모두 대단한 사명감과 치밀한 의도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드는 줄 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광우병' 편에 관한 한, 우리에겐 다만 지극히 '상식적인' 호기심 하나뿐이었다. "앞으로도 마음 놓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도 되는 걸까?" 그 호기심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낳았고,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우리는 움직였다. 부끄럽게도 그 질문은 내가 아닌 한 젊고 패기에 찬 PD로부터 시작됐다. 총선이 끝나고 이틀쯤 뒤였을 것이다. 총선 전부터 추진하고 있던 아이템들을 뒤로 하고, PD가 불쑥 한 마디를 던졌다. "광우병 어때?" 어쩌면 이 모든 사태의 첫 발화점이었을 그 순간, 눈 밝은 피디의 총명함을 나는 눈치 채지 못했다. "웬 광우병?" PD는 총선 다음날 발표되고 바로 그 다음날 시작된 한미 쇠고기 협상에 큰 관심을 보였다. "아무래도 조짐이 이상해."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21세기 신종 전염병'-광우병에 대한 나의 인식 수준은 보통 사람의 그것을 뛰어넘지 못했다. 작가라면 마땅히 언젠가 우리 사회에도 화두가 될 수 있는 문제임을 어렴풋이 감지하고 있었으련만, 나는 우선 어렵고 골치 아파했음을 솔직히 털어놓아야겠다. 그런 내게, PD는 한 아름의 자료들을 던져주고 갔다. "한 번 봐봐. 보고 얘기해." 나중에 알았지만, 김보슬 PD는 작년부터 관련 책과 자료들을 섭렵해 초보 전문가가 다 돼 있었다. 올해 초 다우너 소 동영상이 공개된 후엔 미국의 관계자와 연락해 정보를 얻고, 국내 전문가들로부터도 자료들을 받아 차곡차곡 모아두고 있었다. 그때까지 SRM이 뭔지, 왜 30개월이 중요한지조차 몰랐던 내게 그 자료들이 던져 준 충격은 대단했다. 책 열 권 남짓 두께의 자료더미 속엔 광우병의 위험을 경고한 신문 기사들도 클리핑 돼 있었다. 그 중엔 조중동 기사들도 상당수였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쇠고기가 '좌우' 이념 구분 없이 오직 먹을거리에 대한 안전성 문제로만 여겨지던 시절이었나 보다. 위험을 위험이라 말할 수 있고 의심을 의심이라 말할 수 있는, 검역주권이란 국민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며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를 비판해도 좋은, 꽤 좋은 시절이었나 보다. 다우너 소 동영상과 아레사 빈슨의 죽음, 그리고 협상 방대한 자료 더미 속에서 '취재 사례'로 강력히 다가왔던 건 다우너 소 동영상과 아레사 빈슨의 사인, 두 가지였다. 현존하는 위험 가능성을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사건들인 데다가, '실체'가 있다는 면에서 더욱 그랬다. 올해 초 공개된 다우너 소 동영상은 그간 의혹의 대상이었으나 베일에 쌓여있던 미 축산농장 내부의 실태가 최초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 동영상을 보던 순간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훗날 시청자들이 받았던 충격 역시 그랬을 것이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그 자체로 현실의 '팩트(fact)'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동영상은 미국 최대의 동물보호단체가 '유일하게' 잠입해 찍은 곳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농장들은 어떻다는 거지?' 협상 이틀 전 사망한 아레사 빈슨 건의 경우, 만약 인간광우병이 맞다면 '미국 거주 본토인의 최초 사례'라고 했다. 미국에서 처음 광우병 소가 발견된 지 5년. 최종 진단 역시 그렇게 내려진다면, 미국에서 광우병의 위험이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걸 의미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나의 상식에 의하면, 당연히 협상에 영향을 미쳤어야 했다. 우리는 취재를 시작하기 전 현 정부가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음을 의심했고, 훗날 협상대표의 인터뷰를 통해 그것은 애초에 별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안전성'에서 '협상 과정으로' 취재를 시작한 건 협상 타결 전이었다. 그러나 최하 안전선이라 여겨지던 '30개월 미만 살코기' 저지선이 무너질 것이라는 추측이 언론으로부터 흘러나왔다. 대통령은 임기가 끝나가는 국회를 소집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주문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사흘 뒤, PD도 미국으로 떠났다. 협상이 결렬되거나 결과가 안전성을 확보하는 수준이라면 접고 들어올 작정이었다. 그때까진 설마 하는 마음이 반이었다. 다음 날, 미 현지에서 협상 결과를 전해들은 PD는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어떻게 그렇게까지 다 풀어줘? 우리 정부 제정신이야?" 정부의 협상 과정까지 다룰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질병 원인이 한번 푸드 시스템에 들어오면 그것을 정화하는 데 최소한 10년 걸린다'는 전문가들의 기본명제에 따라, '단 1%의 위험이라도 있다면 사전예방이 최선'이라는 원칙만 전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협상 결과는 우리의 취재 범위가 매우 편협함을 일깨워줬다. 우리는 정부의 '검역 주권'에 대한 '의지'가 궁금해졌다. 미국에서 김 PD가 미 농무부와 보건당국을 뚫어보려 동분서주하고 있을 무렵, 국내에선 새로 두 명의 피디가 투입돼 협상 과정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광우병' 편 방송을 둘러싼 두 가지 압력, 그 중에서 우린 방송이 임박한 어느 날, 전화는 직접 내게로 왔다. 청와대 모 인사라 자신을 밝힌 그는 수화기 저편에서 쇠고기완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치 공세', '선동' 운운 단어를 썼다.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나 요컨대 정치 공세, 선동하는 무리를 비난하는 걸로 제작진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대신하려 했던 모양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시사 프로그램에 몸담은 지난 10여 년 간 청와대에서 방송을 앞둔 제작진에게 직접 전화가 왔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그 전화는 어쩌면 앞으로 프로그램에 닥쳐올 '가혹한 운명'의 전조였을까. 후반 작업을 위해 며칠 비좁은 편집실에서 날밤을 새고 마침내 몸조차 가누기 힘들 정도로 체력이 바닥날 무렵, 이번엔 조연출이 소식을 전했다. "홈피 게시판 장난 아니에요. 예고편 조회 수도 평소 10배 가까이 돼요." 게시판은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었다. 방송 전에 그런 경우는 없었다. 그들은 다급하게 외치고 있었다. "광우병 관련 꼭 방송해주세요. 불안해요." 우리는 그 후, 방송이 끝나는 순간까지 한 숨도 자지 못했다. 방송 후 석 달, 2008년 7월 빡빡한 일정과, 어느 때보다 고된 노동과, 온갖 우여곡절과, 그 모든 것을 감내하게 했던 젊은 PD들의 열정 끝에 태어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지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온몸에 심의와 제재와 재판과 수사라는 단어가 덕지덕지 붙은 녀석의 표정은 대체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말한다. 우리에게 처음 광우병의 위험을 알려준 언론들에게 '괴담' '왜곡'이라는 공격을 받게 될 걸 꿈에도 몰랐던 걸까. 협상 주체인 정부 부처로부터 '명예훼손'이란 죄로 검찰 수사를 의뢰받는 처지가 될 줄 상상도 못했던 걸까. 여당과 청와대로부터 일제히 '일벌백계' 협박을 받게 될 지 예상치 못했던 걸까. 어쩌면 우리는, 애초 미국 쪽의 문제제기에 대비한다며 국제통상전문변호사에게 내레이션 대본 감수 받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최대한 시청자에게 쉽고 간결하게 전달하기 위해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빼느라 고심할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시간을 아껴, 차라리 번역 감수에나 더 신경 썼어야 했을 것을. 시사 프로그램의 본령- 탄광의 카나리아를 생각하다 선후배님들이 뜻을 모아 방통위에 제출해주신 의견서를 봤다. 시사 프로그램이란, '문제'를 발견하고, 현존하는 혹은 그럴 가능성이 있는 '위험'을 경고하는 데 그 존재 의의가 있다는 대목에 가슴이 묵직해졌다. 먼 옛날 탄광에 들어갈 때 광부들이 들고 들어갔던 카나리아 새장 이야기도 해주셨다. 갱도 속에 유독가스가 스며들어 산소가 희박해지면 공기변화에 예민한 카나리아는 울음과 파닥거림으로 광부들에게 위험을 알려주곤 했다. 시사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에 그런 카나리아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그런 면에서 <PD수첩>은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격려해주시는 듯 했다. 긴 글 마디마디에선 함께 시사 프로그램의 길을 가고 있는 동료 작가들의 고단함과 외로움이 느껴졌고, 나는 그만 눈물이 났다. <PD수첩>이 아니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비슷한 시기 비슷한 제목의 프로그램을 내놓았을 것이다. 그저 <PD수첩>이 한 박자 빨랐을 뿐, 동료 작가 누구라도 곧 공기의 변화를 눈치 채고 예민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이번 쇠고기 협상 결과는 우리 중 누구든 경고해야만 했던, '그럴 가능성이 있는 위험'이었기 때문이다. 2008년 봄, 광부들은 위험을 경고하는 카나리아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아무도 갱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들을 막은 건 탄광 주인이다. 그는 갱도 속 유독가스가 산소라 우겼고, 카나리아가 잘못 울었다며 광부들을 안심시켰다. 대신 끌려 나간 건 카나리아다. '음정 몇 개 틀린 죄'라 했다. 그 카나리아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그리고 과연 광부들은 무사히 갱도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이 지극히 '상식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어디서 찾아야 할 지, 나는 도통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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