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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PD수첩 수사하듯 삼성 수사했다면…"

[인터뷰] 김용철 변호사

김용철 변호사가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맞은편 빌딩 12층에 사무실을 냈다. 창문으로 검찰 특수부 사무실이 보이는 자리다. "변호사 김용철"이라는 문패가 달린 사무실에서 그는 직원 한 명과 함께 일한다. 한 달쯤 전에 조용히 개업했는데, 아직 수임한 사건은 없는 상태다.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달 24일, 김 변호사의 사무실을 찾았다. 문 안쪽에 개업 축하 화분이 하나 있었다. 지난해 양심선언 이후 알게 된 기자가 보낸 것이라고 했다. 사무실 안은 아직 정리가 안 된 듯 어수선했다. 갓 개업한 변호사 사무실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은 화분 한 개가 전부였다.

"하루 200통씩 오던 기자들 전화, 전혀 안 온다"

김 변호사는 기자와 이야기하는 게 오랜만이라고 했다. 한때 그는 기자들에게서 하루 200통이 넘는 전화를 받았다. 하지만 요즘 그를 찾는 기자는 거의 없다. 기자를 만나기 전, 언론과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지난달 17일쯤이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등이 저지른 비리 혐의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온 지난달 16일, 몇몇 기자들이 그에게 전화를 했다. 다시 하루쯤 지났을 때, <한겨레21> 기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프레시안>과 만나기까지 그와 연락한 기자는 없었다고 했다.

"기자들이 거는 전화 때문에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을 때가 있었다. 그때 어차피 두 달만 지나면, 다 잊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두 달이 지나니까, 연락이 뚝 끊겼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에 허탈한 미소가 흘렀다. 실제로 그는 지난 4월 <프레시안>과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한 달쯤 지나면, 찾는 사람도 없겠지"라고 말했었다. 사실이 그랬다. 5월 들어 촛불정국이 열리면서, 그는 빠르게 잊혀졌다.

뉴스의 중심에서 벗어난 그는 "우리 사회의 '안정성'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삼성의 비리 의혹에 대해 아무리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아도, 삼성을 중심으로 엮인 우리 사회의 견고한 질서는 흔들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김 변호사가 이런 '안정성'을 보다 생생하게 느꼈던 때는 지난달 16일이었다. 법원이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게 제기된 비리 혐의 대부분에 대해 무죄 및 면소 판결을 내린 날이다. 판결이 나온 직후, 김 변호사는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정확한 뜻은 "할 말이 너무 많은데, 해 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다"에 가까울 게다.

김 변호사와의 짧은 대화는, 그래서 삼성 재판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김 변호사와 이날 나눈 이야기를 간추렸다.

"잘못된 현실 인정하는 것은 '법의 정신'이 아니다"

<프레시안> : 삼성 사건에 대한 1심 재판이 끝났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사실상 면죄부 판결'이라는 말이 나온다. 판결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김용철 : 내가 할 이야기가 아니다. 판결에 대한 평석(評釋)은 법학자들의 몫이다. 내가 지금 이야기하면, 감정적인 말밖에 안 나올 것 같다. 다만, 이런 소감은 있다. '우리 사회 주류의 질서가 정말 튼튼하구나'라는 것이다. 재벌을 중심으로 엮인 그물망이 정말 견고하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이런 질서는 너무 안정적이어서, 바깥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 바뀌는 모양이다. 하긴, 보수적인 기존 질서가 사법 절차를 통해 바뀌는 일은 원래 잘 생기지 않는다.
▲ 김용철 변호사. ⓒ프레시안

하지만, 그래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법은 현실을 인정하는 게 아니다. '규범적인 정의'를 지향하는 것이다. "현실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라는 것은 법의 정신이 아니다. 법은 '이상적인 당위'를 선언해야 한다. '대부분 비리를 저지르는 게 현실이니까, 봐줘야한다'라는 논리가 통하기 시작하면, 법이 제대로 설 수 없다.

애초 특검 수사 자체가 잘못됐다. 특검은 삼성화재에서 돈을 빼돌려 삼성 구조본에 넘긴 것을 확인하고도, 비자금이 없다고 했다. 또 차명자산이 나왔는데, 출처를 파헤치지는 않고 상속재산이라고 인정해 줬다. '삼성이 상속재산이라고 주장하므로 상속재산이 맞다'라는 논리다. 이게 말이 되나.

그림 문제는 또 어떤가. 에버랜드 창고에서 값 비싼 그림이 끝없이 쏟아졌다. 그런데 목록과 가격도 공개되지 않았다. 그토록 많은 그림들을 무슨 돈으로 샀을까. 누구나 궁금해할텐데, 특검은 의혹을 덮기만 했다.

특검은 엉뚱하게 내 인간성만 트집 잡았다. 내가 언제 '김용철은 훌륭한 사람이다'라고 했나. 왜 논점과 동떨어진 이야기만 하는지 모르겠다.

특검은 수사 권한이 없는 부분만 발표했다. 수사할 권한이 있고, 제대로 수사 했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검찰, '한 사람의 눈에만 들면 됐던 시절'로 되돌아갔다"

<프레시안> : 검찰의 수사가 편향적이라는 지적은 이번 정권 들어 유독 자주 나온다. 삼성 등 재벌 비리에 대한 수사는 너무 허술하고, 정권에 유리한 수사는 너무 지나치다는 이야기다. 전직 검사로서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김용철 : 나도 이제 변호사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검찰 욕하면 안 된다.(웃음) 검찰이 요즘 "우리는 개다"라고 선언했다.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 언론에 광고한 업체 불매 운동을 한 누리꾼에 대해 검찰이 출국 금지 조치를 취했다. 너무 뻔한 '쇼'다. 검찰은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될 것을 뻔히 알고 있을 게다. 다만 '한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조치 아니겠나. '우리,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다'라고 말이다.

검찰은 원래 정치적 기관이 아니다. 국민의 지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보니, '한 사람의 눈에만 들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었다. 물론, 옛날이야기다. '산업 평화'라는 미명 하에 노동자들 탄압하던 시절 검찰 분위기가 그랬다. 그런데 요즘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 같다.

<PD수첩>에 대한 수사는 또 어떤가. 검찰은 <PD수첩> 보도에 담긴 다우너 소가 광우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그럼, 다우너(주저앉는 소) 소를 우리가 수입해서 먹어도 된다는 이야기인가. 검찰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게다. 다우너 소가 위험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위험이 있으면, 알리는 게 언론의 의무다. 이런 당연한 일을 했는데, 왜 수사 대상이 돼야 하나.

삼성에 대해서는 명확한 비리도 외면하던 검찰이, <PD수첩>에 대해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까지 문제 삼는다. 이게 정상인가. <PD수첩> 수사하듯, 삼성을 수사했더라면 아마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져 있을 게다.

"집안 초상은 안 챙겼던 이건희, <조선> 사주 방 씨 상가에는 조문"

<프레시안> : 편향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수사기관만이 아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삼성 사태와 광우병 사태를 지나면서, 언론과 수사기관에 대한 신뢰도가 확 떨어졌다.
▲ 법원에 출석해서 1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법원은 지난 7월 16일 이 전 회장에게 제기된 혐의 대부분에 대해 무죄 및 면소 판결을 내렸다. ⓒ손문상

김용철 :
누구나 완벽하게 공정할 수는 없다. 다만, 힘을 가진 자들이 너무 치우쳐 있으니까 문제다. 언론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 겪어보니,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싶어서다. 언론 문제에 관심이 생긴 뒤, 미국 언론을 살펴봤다. 미국에서는 아무리 보수적인 매체도 최소한 객관성을 잃지는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미국이 강대국의 위치를 유지하는 모양이다. 힘을 가진 자들이 최소한의 규범은 지키고 있으니까.

한국 언론 보도를 보면, '이게 언론인가' 싶다. <중앙일보>는 "중앙일보가 삼성의 위장 계열사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 맞다. '위장 계열사'가 아니라 '확실한 계열사'다. 줄곧 삼성 입장을 옹호한 기사를 통해 뚜렷하게 선언한 셈이다.

우리 언론이 언제부터 이렇게 망가졌을까. 내가 어렸을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망가진 시점이 참 궁금하다. <동아일보> 사주가 이건희 일가와 사돈을 맺으면서부터일까.

자기 집안 상가(喪家)에도 가지 않았던 이건희가 <조선일보> 사주인 방 씨 상가에는 조문하는 것을 봤다. 하긴, 그게 어쩌면 진짜 장사꾼다운 태도인지도 모르겠다. 힘을 가진 자들과 친하게 지내야 하겠지.

그런데 재벌과 언론이 워낙 긴밀하게 얽혀 있으니, 기사가 제대로 나올 수 없다. 물론 기자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건 좀 아니다. 언론은 힘이 있는데, 힘을 그렇게 쓰면 안 된다.

"잃어버릴 게 없는 사람들까지 재벌 편드는 이상한 사회"

<프레시안> : 지난해 양심선언 이후, 짧은 기간 동안 언론에 대해 많이 배웠을 것 같다. 김용철 변호사가 한창 뉴스의 중심에 서 있을 당시, '기자들 전화 때문에 못 살겠다'라고 말했던 게 기억난다. 요즘도 기자들에게서 전화가 오나.

김용철 : 한때는 하루에 기자들에게서 온 전화만 200통이 넘었다. 지금은 전혀 안 온다. 이번 인터뷰 이전에 마지막으로 전화를 받은 게 삼성 판결 직후였다. 그때도 전화가 많이 오지는 않았다. 판결 다음날부터 뚝 끊겼다. 기자들이 전화를 많이 하던 시절, "두 달 뒤에 찾아와라. 그때 편하게 이야기하자"고 종종 이야기 했다. 두 달 지나니까, 아무도 전화 안 하더라.

삼성 문제가 더 이상 사회적 관심사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보수적 주류 질서의 힘 때문이다. 이런 힘이 삼성 문제를 묻어버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참 이상하다.

가진 게 많아서 보수적인 질서를 유지하려는 사람은 이해가 된다. 그 사람들은 잃을 게 많으니까, 변화를 불안해한다. 그런데 가진 게 많지 않은, 그래서 잃어버릴 것도 적은 보통 사람들이 여기에 동조하는 것은 참 이상하다.

세금 문제만 해도 그렇다. 보수 언론은 상속세를 폐지하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의견에 동조하는 이들이 꽤 있다. 하지만 이들 중에 상속세 과세 대상자는 얼마나 될까. 아마 많지 않을 게다. 수십억 재산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상속세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들은 상속세 면제 대상이기 때문이다. 상속세를 낼 필요 없는 사람들이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는 이상한 사회. 그게 한국 사회다.

"비자금에 관대한 사회에서 선진국형 복지는 불가능하다"

<프레시안> : 정부가 세금을 원칙대로 걷지 않는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봉급생활자만 피해를 입도록 돼 있다는 인식이 번져 있다. 또 이미 거둔 세금의 쓰임새에 대해서도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법원이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 대해 사실상 면죄부를 주면서, 공정한 조세에 대한 불신이 더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철 : 이건희 씨가 보유한 비자금이 어림잡아도 10조 원은 된다. 비자금이 있다는 이야기는 세금이 제대로 거둬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탈세가 이뤄지는 곳에 복지는 없다.

얼마 전에 아들과 함께 영화 '식코'를 봤다. 유럽 국가들의 탄탄한 공공 의료 제도가 인상적이었다. 교육, 의료, 공공 인프라는 국가가 책임지는 게 원칙이다. 미국처럼 모든 것을 개인에게 맡기는 게 오히려 이상한 경우다. 그런데 유럽처럼 의료와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려면, 세금을 제대로 거둬야 한다.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세금을 뜯긴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많은 돈을 벌고, 사회에서 많은 혜택을 누리는 이들이 세금을 제대로 안 내기 때문이다. 나도 변호사지만, 변호사들 중에도 세금 제대로 안 내는 사람이 꽤 있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면, 탈세에 대해 강하게 응징해야 한다.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는데도, 처벌하지 않으면 앞으로 누가 세금을 제대로 내겠나. 이건희의 탈세와 비자금 조성에 대해 법원이 면죄부를 준 게 잘못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공한 재벌의 탈세는 봐준다는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세금을 제대로 내자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이렇게 조세 정의가 사라지면, 복지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장치도 사라진다. 그런데 재벌과 극소수 자산가 집단을 제외하면, 누구나 한순간에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다. 결국, 다들 불안해하며 살아야 한다.

이건희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가벼운 잘못이 아닌 이유는 또 있다. 이번 판결은 아이들에게 '강자의 잘못은 지적해 봤자 소용없다. 그러니까 대들지 말고 가만있으라'는 교훈을 남긴 셈이다. 이래서는 미래에 희망이 없다.
▲ 지난 7월 16일 이건희 전 회장 등이 출석한 법정 풍경. 선고가 이뤄지기 직전 상황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 전 회장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준 이날 판결로 인해, 한국이 복지사회로 이행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고 했다. 복지사회 구현의 필수조건인 '조세 정의'가 크게 훼손됐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손문상

"이재용, 허리 디스크로 군대 안 간 사람이 골프를 그렇게 잘 치나"

<프레시안> : 과거 인터뷰에서 이건희 일가가 빼돌린 비자금 규모가 10조 원 이상이라고 했다. 공식적인 회계에 반영되지 않은 채 돌아다니는 돈이 이 정도 규모라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도 치명적일 듯하다.

김용철 : 그렇다. 어림잡아 10조 원쯤 된다. 이 돈이 제대로만 쓰인다면,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나. 100만 명에게 천만 원씩 돌아가는 돈이다. 일할 의욕과 능력이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돈벌이를 못하는 이들 100만 명에게 자립기반을 마련해 줄 수 있는 돈이다. 이게 작은 돈인가. 이렇게 생각하면, 이건희 씨가 빼돌린 돈을 그냥 덮어둔 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탈세범에 대해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 끝까지 쫒아가서 잡아내 처벌한다. 회계의 투명성에 대해서도 엄격하다. 회계 부정을 저지른 미국 엔론사 경영진에 대한 처벌을 보라. 거의 종신형에 가까운 처벌을 받았다. 그게 선진 사회다.

하지만 한국에선 어떤가. 세금 안 내고, 장부 조작해도 큰 문제 아니라고 법원이 인정해 줬다. 세금을 반드시 내야 한다는 인식이 없다. 세금만이 아니다. 병역도 마찬가지다. 내가 심장이 안 좋은 편이다. 그밖에도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다. 그래도 군대는 갔다. 군대 못 갈까봐 조마조마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 많다. 그런데 이재용 씨는 왜 군대 안 갔나. 디스크 때문에? 허리 안 좋은 사람이 골프를 그렇게 잘 치나.

세금 안 내고, 군대 안 가는 게 자신이 특권층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게 제대로 된 사회인가.

"이 대통령은 왜 삼성 돈 받은 사람만 좋아하나"

<프레시안> :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법과 원칙을 적용할 수 있으려면, 권력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임채진 검찰총장,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삼성으로부터 꾸준히 돈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들은 이명박 정부에서 계속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느낌이 어떤가.

김용철 : 사람을 쓰는 일은 인사권자의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유독 그런 사람을 좋아하나보다. 찾아보면, 깨끗하고 유능한 사람도 많이 있을 텐데 왜 그런 사람들만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현 정부 사람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런데 뭘 잃어버렸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알아야 되찾을 게 아닌가. 하긴, 과거 정부가 잃어버렸던 것을 이번 정부가 되찾은 게 있다. 검찰과 권력기관을 통치수단으로 활용하는 관행이다. 적어도 노무현 정부는 검찰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대통령의 권위까지 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비판받을 대목도 많지만, 이것 하나 만큼은 인정해야 한다. 스스로 권위를 버리는 것, 스스로 권력을 내놓는 것. 모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니까 한순간에 뒤집어졌다. 검찰은 다시 대통령의 통치수단이 돼 버렸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없는 권위를 억지로 만들려고 한다. 사람 쓰는 데서도 드러난 것처럼 자꾸 아집만 부린다. 왜 모두들 '문제가 있다'고 하는 사람을 굳이 쓰려 하는가. 이렇게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을수록, 정통성이 약화된다. 민주 사회에서 권력의 정통성은 시민의 지지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힘이 셀수록 책임도 크다는 것은 상식인데, 검찰을 휘두르는 권력은 그걸 모르는 모양이다.

이런 이야기해서 뭣 하나 싶기도 하다. 어차피 지도자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 아닌가. 이명박 대통령을 우리 국민이 뽑았다. 이걸 잊으면 안 된다.

"삼성의 선물, 되돌려 보낸 검사가 고마웠다"

<프레시안> : 과거 인터뷰에서 삼성이 검찰을 돈으로 타락시키는데 가담했다는 자책감을 자주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양심선언까지 했는데, 삼성 관련 판결이나 검찰의 최근 행태를 보면 속상할 것 같다.
▲ 서울 한남동 특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연 김용철 변호사. 삼성 비리 의혹에 대한 조준웅 특별검사팀의 수사결과가 나온 다음날인 지난 4월 18일 열린 회견이다. 그는 이날 "30대 청춘을 보낸 검찰에 대한 애착이 사라져 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이 씨 일가를 수사하라고 했더니, 왜 나를 수사합니까"라고 되물었다. ⓒ프레시안

김용철 :
특검은 불법 로비가 없었다고 했다. 나도 분명히 로비를 했는데, 직접 돈을 준적도 있는데….그런데 특검은 수사도 하지 않고 오히려 나를 몰아세웠다. 답답한 노릇이다.

삼성에 있던 시절, 검사들에게 종종 선물을 돌리곤 했다. 솔직히 말하면, 선물을 줄 때는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을 때도 많았다. '내가 누군가에 뭔가를 줄 수 있구나'하는 느낌 때문이다.

그런데 돈뭉치를 줄 때는 달랐다. 차마 도저히 못하겠더라. '이건 정말 아니다'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때 기분은….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다.

기억나는 일이 있다. 검사들에게 선물을 보내면, 가끔 되돌아오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선물은 받지 않습니다'라는 메모와 함께. 그때마다 기분이 참 좋았다. 그래서 그 검사에게 전화를 해서 '고맙다. 계속 그런 자세로 검사 생활을 하라'고 말한 적도 있다.

사실 대부분의 검사들은 타락하지 않았다. 전체 검사의 5퍼센트쯤 때문에 욕을 먹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검사들이 주로 수뇌부에 있다는 점이다. 그래도 삼성 사태 겪으면서,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난 그렇게 본다. '재벌에게 뒷돈 받으면, 언젠가는 들통 난다'하는 생각을 다들 할 것 같다. 그러니까 다들 알아서 조심하겠지. 최소한 노골적으로 돈을 주고받는 일은 없어지지 않겠는가.

물론, 예전보다 더 세련되고 은밀한 방식으로 로비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광범위한 로비는 이제 못할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답답해서 어떻게 지내겠나.

"내부 고발자가 꼭 비참해지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프레시안> : 사무실 창문으로 대검찰청이 보인다. 굳이 이곳에 자리 잡은 이유가 있나.

김용철 : 원래는 다른 데 얻으려 했다. 그런데 사무실 구하는 과정에서 별 일을 다 겪었다. '김용철'이라는 이름을 듣더니, 세를 안 주겠다는 빌딩 주인도 있었다. 그래서 사무실을 못 구하고 있었는데 알고 지내던 변호사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그 변호사가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면서, 쓰던 사무실을 물려주겠다고 했다. 그게 이 자리다. 인테리어도 새로 안 하고, 물려받은 그대로 쓴다.

아무래도 검찰청 근처니까, 오다가다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아예 모르는 척 하는 사람도 있고, 어색하게 인사하는 사람도 있다. 삼성 사태 거치면서, 평생 쌓은 인간관계가 다 무너졌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는 순간이다. 물론,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겼다는 것을 깨달을 때도 있다. 예전에는 잘 몰랐던 사람이 갑자기 웃으며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알고 보니 민변 변호사다. 나는 민변 회원도 아닌데, 나를 보고 무척 반가워한다.

경기도 양평 집에서 이곳까지 출퇴근하는데,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기분은 참 좋다.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라서 그렇다. 양수리 일대를 지날 때면, 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낀다. 서울 밖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 잘 연결된 도로. 이런 걸 보면, 한국은 참 좋은 나라구나 싶어진다.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으니, 임대료 내고 직원 월급 주는 일을 걱정해야 한다. 어차피 기업 사건은 안 들어올 게 뻔하다. 또 아무 사건이나 맡을 수도 없다. 그래서 사무실 운영이 좀 걱정스럽다. 만약 운영이 잘 되면, 그것도 걱정이다. "삼성 욕하고 다닌 김용철이 돈 많이 벌었다더라" 하면서 흉보는 사람들이 있지 않겠는가.

또 운영을 못해서 사무실이 망해도 걱정이다. "조직을 배신하더니, 결국 비참한 말로를 걷는구나" 하면서, 혀를 차는 사람들이 있을 게다. '비참한 말로'도 문제지만, 내부 고발자는 살아남지 못 한다는 선례를 남기는 것도 문제다.

아직 머리도 녹슬지 않았고, 열심히 할 자신도 있다. 내부 고발자가 꼭 '비참한 말로'를 걷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변호사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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