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또 '강부자'가 이겼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또 '강부자'가 이겼다"

[홍성태의 '세상 읽기'] 계속되는 고난의 행군

장마가 끝나고 해가 활활 타오르는 무더위가 시작되어야 하건만 날씨가 계속 찌뿌드드하기만 하다. 기상청에서는 장마가 끝났다고 선언할 수 없다고 한다. 계속 날이 흐리고 비가 오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로 말미암은 이상기후 현상이다.

지난 100년간 지구의 온도는 0.5도 이상 상승했는데, 2도 정도 상승하게 되면 뉴욕, 워싱턴, 도쿄, 인천, 부산 등이 모두 바다에 잠길 것이다. 지금의 이상기후는 참담한 재앙의 전조이다. 실패학에서 가르치듯이 전조에 잘 대처하면 많은 재앙을 막을 수 있다. 재앙의 전조를 올바로 읽고 적극 대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계속 날이 흐리고 비가 오는 중에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치러졌다. 결과는 공정택 교육감의 당선이다. 이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는 차원을 넘어서 황망해 하고 암담해 하고 있다. 사실 나도 밤늦게 선거결과를 보고는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 지난 7월 31일,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된 공정택 교육감이 당선증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시스

공정택 교육감의 서울시교육청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연속 부패지수 1위를 차지했다. 이 암담한 사실 한가지만으로도 공정택 교육감은 낙선되었어야 옳을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공정택 교육감은 학생들과 학부모를 무한경쟁으로 내모는 정책을 제시해서 큰 우려를 자아냈다. 이런 심각한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공정택 교육감이 당선된 것이다.

잠시 이번 선거의 결과를 보자. 이번 서울시 교육감의 전체 유권자 수는 808만4574명이었다. 그런데 이 중에서 불과 15.5%만이 투표에 참여했다. 공정택 교육감은 이 중에서 40.09%의 표를 얻었다. 결국 공정택 후보는 전체 유권자의 겨우 6.2%의 지지를 받아서 교육감이 것이다.

여기서 드러난 1차적 문제는 투표율이 너무나 낮았다는 것이다. 전체 유권자의 6.2%밖에 되지 않는 턱없이 낮은 지지율로 '교육 대통령'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교육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낮은 투표율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여주는 가장 근본적인 지표이다. '전자투표'의 도입을 포함해서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제도개혁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 이번 선거의 또 다른 면을 보자. 서울시는 25개 자치구로 이루어져 있다. 공정택 교육감은 25개 자치구 중에서 불과 8개 자치구에서만 승리했다. 공정택 후보는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 유권자의 절대적 지지를 받아서 교육감에 당선되었다. 세 자치구에서 공정택 교육감의 평균 득표율은 56.08%로 전체 득표율인 40.09%보다 무려 16% 포인트나 높았다.

이에 비해 2위로 낙선한 주경복 후보는 전체 득표율은 38.31%였으나 세 자치구의 득표율은 불과 26.2%에 머물렀다. 공정택 교육감은 주경복 후보보다 2만2000여표를 더 얻었다. 그런데 강남구에서만 공정택 교육감은 주경복 후보보다 3만2000여표를 더 얻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분명히 '강부자'의 승리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강부자'가 또 선거에서 이기게 되었는가? 그 답은 선거 결과에서 쉽게 알 수 있다.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의 투표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세 자치구에서 표차가 압도적으로 컸던 것이다. 주경복 후보가 이긴 자치구가 많기는 했지만 투표율이 아주 낮았고 표차도 세 자치구만큼 크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공정택 교육감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했으나, 주경복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의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공정택 교육감이 주경복 후보에 대해 승리한 선거가 아니라 공정택 교육감을 지지한 유권자들이 주경복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에 대해 승리한 선거이다.

선거 결과가 잘 보여주듯이 공정택 교육감은 서울시 교육감이라기보다는 '강남 교육감'에 가깝다. 그런데 '강부자'들은 왜 그렇게 열렬히 공정택 교육감을 지지했을까? 0교시 수업을 좋아해서? 자율형 사립고를 좋아해서? 학교 자율화를 좋아해서? 아마도 그럴 것이다. 교육 경쟁의 강화는 온갖 경쟁 수단을 확보하고 있는 '강부자'들이 아주 좋아하는 정책 방향이기 때문이다.

'강부자'들은 교육 경쟁을 강화해서 자신들의 지위를 합법적으로 다지고자 한다. 막대한 부를 활용해서 교육 경쟁에서 쉽게 이기고, 그 결과 학벌사회에서 최상위의 지위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미 '강부자'들은 상당한 정도로 자기들만의 폐쇄사회를 구축한 상태이다. 평등 교육과 공교육 정상화가 악화될수록 '강부자'들의 폐쇄사회는 강화되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교육 정책보다 더 직접적이고 중요한 이유가 작용한 것 같다. 강남에 임대주택을 건설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공정택 교육감의 의지가 그것이다. 지난 5월 19일 서울시교육청은 공정택 교육감의 명의로 서울시에 이런 내용의 공문을 보내서 커다란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개발과 투기에 밝은 '강부자'에게 공정택 교육감이야말로 최고의 대표일 것이다. 교육 경쟁의 강화와 투기이익의 확대는 한국형 승자독식 사회의 양대 기반이다. 공정택 교육감은 '강부자'들의 기대를 명확히 공표했고, '강부자'들은 단단히 뭉쳐서 공정택 교육감 만들기에 성공했다. 이제 서울시교육청은 한국형 승자독식 사회를 향해 더욱 맹렬히 치달릴 것이다.

이번의 선거를 두고 여러 의견들이 제시되었다. 공정택 교육감의 문제가 명확히 밝혀졌고, 또한 교육개혁을 향한 '촛불'의 열망이 잘 드러났기 때문에, 공정택 교육감이 반드시 낙선하리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결국 실현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많은 시민들이 커다란 실망의 뜻을 밝히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 공정택 교육감이 '강부자'의 대표라는 사실이 명확히 입증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시민들도 있다. 아마도 좌절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촛불'의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선거와 투표의 중요성에 더욱 주의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리에서 촛불을 밝히고 뜻을 밝히는 것과 선거와 투표에서 승리하는 것은 직결되어 있지 않다.

싫건 좋건 선거와 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여러 문제와 한계를 안고 있지만 선거와 투표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제도이다. 문제와 한계를 지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거와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하다. 선거에서 또 이긴 '강부자'는, 비록 6.2%의 지지밖에 안 될지라도, 합법적 승리를 강조하며 일방적 정책을 강행할 것이다.

'강부자'가 계속 선거에서 이기는 한, '촛불'은 결국 무의미한 고난의 도로가 될 수도 있다. '강부자 공화국'의 문제를 널리 알리며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촛불'을 들어야 한다. '강부자'가 선거에서 또 이겼다. 재앙의 전조가 또 다시 강화되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