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악몽을 꾸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있다. 도대체 국방부의 시계는 지금 몇 시인가? 독재 정권 시절도 아니고, 민주화된 나라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반세기 전의 그 무서운 정치적 암흑이 다시 살아나 숨막히게 나를 덮고 있다. 역대 독재정권들이 능사로 사용하던 용공조작의 올가미가 내 목에 걸렸다.
어제(7월 31일) 국방부가 발표한 금서 목록에 나의 성장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가 올라가 있는 것이다. 이른바 '북한 찬양' 문건이라는 이유에서다. 북한 찬양이라니, 평소에 북한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갖고 있는 나로서는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꼴이다. 도대체 그 작품 어디에 그렇게 의심할 만한 대목이 있었던가. 단언컨대, 그 작품에는 '북한'이란 단어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면 왜 국방부가 그런 얼토당토 않는 용공조작의 폭거를 저질렀을까?
뒤집어서 생각해 보니, 그들이 정작 문제 삼은 것은 다름아닌 제주4.3사건인 것 같다. 그 작품에서 4.3사건은 한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은 경험으로서 나타나는데, 전체 이야기 중 극히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만약 그 부분이 문제가 된다면, 초판 발간 이후 10년 동안 어떻게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유통될 수 있었던가. 그 동안 40만 이상의 독자가 그 책을 읽었지만, 나를 불온하다고 비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동안 아무 말이 없던 사직 당국이 10년이 지난 갑자기 그 책을 문제삼고 나왔다.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4.3에 대한 논의를 북한 찬양으로 보는 시각은 그 자체가 논리의 파탄이며, 전 시대에나 써 먹던 전형적 용공조작의 한 예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역대 독재 정권들은 그 사건의 진상을 은폐하기 위해 얼마나 용의주도하게 제주도민을 억압해 왔던가. 그 사건을 무서운 금기의 영역에 가두어 놓고, 그 사건에 대한 발설을 막고, 기억을 말살하려는 이른바 '망각의 정치'를 구사해 온 그들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진보한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시간이 지체되고,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역사는 진보한다. 4.3도 반세기 동안의 억압을 뚫고, 마침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게 되었다. 80년대 민주화운동과 발맞춰 진행된 4.3진상규명운동의 결과였다. 1999년에 국회에서 4.3특별법이 통과되어, 그 법에 따라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 작업이 진행된 결과 그 참상의 진상이 상당 부분 밝혀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은 조사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여,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했다.
역사 흐름의 전후 문맥이 이러하고, 역사가 새로 쓰여지고 있는 이 마당에, 국방부의 이번 조치는 기상천외의 역사 퇴행작업이 아닐 수 없다. 왜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고 하는가? 60년 전의 그 사건과 무관한 지금의 군대가 왜 이승만정권이 저지른 과오를 감싸안으려 하는가. 과거의 과오를 직시하고 비판함으로써 제주4.3과 같은 참사의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군대가 할 일이 아닌가.
병영을 일반 사회와는 다른 특수 사회로 보는 것도 독재시대에 통용되었던 구태적 발상이다. 병영은 그 특수성을 인정하더라도 병영 밖의 사회와 전혀 다른 별개의 사회가 아니다. 사회와 절연된 수용소가 아니다. 병영은 민주사회의 연장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사회에서 통용되는 정당한 가치관들이 그 안에서 부정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에서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병영에서 부정당할 때 병사들이 겪는 가치관의 혼란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부디 이번 조치가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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