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치러진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공정택 현 서울시 교육감이 당선됐다. '강남 학부모'들의 몰표가 낳은 결과다. 이들은 선거 기간 내내 소리 없이 공 후보를 지지하는 공감대를 쌓아왔다. 그런데 이런 '강남 학부모'들보다 더 견고한 지지를 보낸 이들이 있다. 강남에서 돈을 쓸어 모으는 사교육 업자들이다.
자사고, 국제중, 영어 몰입 교육…사교육 업자들을 설레게 하는 단어들
공정택 당선자가 내건 공약은 사교육 업자들을 설레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공 당선자는 이미 뉴타운 지역에 두 개교가 설립될 예정인 자립형사립고를 더 늘리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또 논란 끝에 무산됐던 국제중학교 설립에 대해서도 다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가 강한 애착을 갖고 있는 영어 교육 강화 정책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지지해 왔다. 지난 1월 거센 논란을 불러온 현 정부의 영어 몰입 교육 계획에 대해 가장 처음 도입 의사를 밝힌 기관도 공 당선자가 교육감으로 재직하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이었다.
자사고, 국제중, 영어 몰입 교육 등은 사교육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꼽힌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사교육 1번지 대치동 학원가가 술렁이는 것은 당연하다. (☞관련 기사: "'대치동 키드'는 대치동에만 있는 게 아니다")
대치동에서 수학 강사로 일하는 강 모 씨는 "국제중, 자사고 설립은 초등학생과 중학생도 입시 경쟁에 몰아넣는 결과를 낳는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겨냥한 사교육 산업이 급격히 팽창하리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교육 당국이 '영어'라는 단어를 꺼내기만 해도 사교육비는 뛴다. 사교육 의존도가 가장 높은 분야가 외국어이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어릴 때 사교육에 중독되면, 평생 못 헤어나온다"
이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사교육에 중독된 아이들이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키울 수 없으리라는 점은 당연하다. 이런 아이들은 평생 사교육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학원에서 문제 유형만 외우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시험 문제 출제 유형이 조금만 바뀌어도, 약간 낯선 개념만 접해도 이들은 스스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남에게 의존하려고만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사교육으로 큰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는 사교육 시장이 더 팽창하는 게 두렵다고 했다. 나라의 미래를 갉아먹으며 돈을 버는 구조가 오래 갈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30일 저녁, 공정택 후보가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이명박 정부가 공정택이라는 파트너를 만나면, '대치동 식 교육'은 서울을 넘어 전국으로 확산될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곧 지식 경쟁력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2003년 <중앙> 사설 "주입식 암기 학습 성행하는 대치동, '교육특구'가 아니다"
사실, 이런 지적을 듣기 위해 대치동까지 찾아갈 필요도 없다. '대치동 식 교육'이 낳은 '사교육 중독'에 대해 경고하는 목소리는 이미 여러 번 나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진보와 보수의 구별도 없다.
공 당선자의 정책 기조와 가까운 논조를 취하고 있는 <중앙일보>조차 2003년 10월 23일자 사설에서 '대치동 식 교육'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강남 대치동 '교육특구'아니다"라는 제목의 사설이다. 이 사설의 도입부는 이렇다.
"서울 강남 대치동은 '교육특구'가 아니다. 학생들을 오로지 공부하는 기계로만 간주하는 거대한 입시 산업단지에 불과하다. 자녀를 학교보다는 학원교습을 통해 명문 대학에 집어넣어 '교육 명품'으로 만들려는 부모들의 이상(異常) 교육열이 난무한다. 이에 편승해 수능 정답 맞히기에 초점을 맞춘 수많은 족집게 강사들의 주입식 암기 학습이 성행할 뿐이다."
"학원 키드, 미래 어둡다…창의성, 문제 해결 능력 뒤떨어져"
이 사설은 '대치동 학원 키드'의 한계도 조목조목 지적했다.
"자녀의 재능을 살려줄 진정한 교육과 학교교육이 맥을 못추는 대신 학원과외에 찌들린 대치동 '학원 키드'의 결과는 과연 어떠한가. 다른 지역보다 학생의 수능 평균성적이 높지도, 대학 진학률이 압도적이지도, 상위권 대학 입학이 많지도 않다.
타율 지도에 길들여진 탓에 원리이해를 통해 자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그렇다고 대학 성적이 우수한 것도, 대졸 후 사회 진출이 특출한 것도 아니다. 어려서부터 사지선다형의 입시교육에만 매달려 창의성이 뒤떨어지고 스스로 독서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거나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능력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치동식 교습이 최적의 교육인 양 학부모와 학생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정말 개탄스럽다. 과다한 과외비 지출로 가계가 휘청거리는 것은 고사하고 집을 처분하면서까지 자녀를 학원에 보내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한국병이 어디에 있겠는가."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강사가 더 돋보이는 과외의 악순환 고리 끊어야"
공정택 당선자에게 '몰표'를 던진 강남 지역의 교육문화를 꼬집는 대목도 있다.
"공교육이 뒷전으로 물러나 앉고,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강사들이 더 돋보이는 과외의 악순환 고리를 이제는 과감하게 끊어야 한다. 정부는 단순히 아파트값을 잡는 차원에서만 강남교육의 문제점을 파악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과외를 먹고 성장한, 자생력 없고 경쟁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나라의 장래를 떠맡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교육의 병폐를 치유할 본격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5년 전 사설이지만, 새로 임기를 시작할 공정택 당선자를 위한 글로도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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