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안은 고질적 문제인 높은 비중의 자영업자는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은행 대출에 경제활동의 상당부분을 의존하는 중소기업과 가계주들 역시 고금리에 절대적으로 취약하다.
빈사상태에 놓인 저소득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절대 다수가 저소득층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이들을 구제하면서 자연스러운 산업 구조조정을 이끌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마땅한 해답을 찾기란 매우 어려워 보인다.
금리가 올라간다면…
한국은행은 다음 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높다. 이성태 총재는 지난 18일 "앞으로 통화정책은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둔다"라고 말했다. 이전인 10일 열린 7월 금통위에서는 "한국은행이 본질적으로 부여받은 임무가 뭐냐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고도 했다. 금리 인상을 시장에 통보한 셈이다.
한은의 본연 임무를 생각한다면 당연한 선택이다. 한은의 존재 이유는 물가 관리다. 국가 성장률 관리가 아니다. 이미 지난 달 소비자물가상승률은 5.5%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 생활을 위해 꼭 안정시키겠다"던 'MB물가지수' 관리대상 품목의 상승률은 7.7%에 달한다. 한은의 목표치(3.5%)를 크게 넘어섰다.
이 추세가 당장 멈출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미 6월 생산자물가상승률(10.5%)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훌쩍 넘어선 상황이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차이는 앞으로 시차를 두고 지속적으로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미 '대외 요인' 운운할 시기는 지나갔다.
조그마한 과자 한 봉지가 1000원하는 상황에서 한은이 더 이상 물가 오름세를 수수방관할 수 없다는 게 이 총재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물가 상승기에 한은이 쓸 수 있는 대표적 통화정책 카드가 금리 인상이다.
그러나 금리 인상은 빚에 허덕이는 우리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7월 현재 가계부채는 640조5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다. 늘어나는 빚은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저소득층을 극빈층으로 내몰고 있다.
하위 20% 저소득층, 매달 44만 원 적자…금리 부담은 '엎친데 덮친 격'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1분기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적자가구(농어가 및 1인 가구 제외) 비율은 31.8%에 달한다. 지난해(30.9%)보다 늘어난 수치다. 소득 하위 20%인 소득 1분위 가구는 1분기 월평균 86만9900원을 벌어 121만5500원을 지출했다. 1분위 가구의 월 가처분소득(당장 쓸 수 있는 소득)이 77만12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1분위 가구는 44만 원씩 적자를 보는 셈이다. 이들이 과소비를 해서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식료품비와 광열수도비가 소비에 차지하는 비중이 18.1%에 달해 상위 계층에 비해 높기 때문이다. 줄이려야 줄일 수 없는 것들이다. 3분위 계층의 경우 식료품비 비중은 13.1%, 광열수도비는 13.9% 수준이다. 여기에 주택담보대출이 갈수록 늘어나는 현실은 상황을 더 암울하게 만든다. 지난달 1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4월 중 예금 취급기관 가계 대출 동향'에 따르면 올해 4월 한 달 동안 늘어난 가계대출 잔액은 4조9000억 원에 달해 석 달 연속 대출이 증가했다. 이 중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이 2조3393억 원에 달한다. 대출금리는 이미 꿈틀거리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이번 주 들어 연 8%를 돌파했다. 고정금리형은 예전에 9%를 넘어섰다. 29일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거치기간이 끝난 주택담보대출은 올해에만 21조8000억 원에 이르며 내년에는 48조6000억 원에 달한다. 안 그래도 원금 상환 부담이 커진 현실에 이어지는 금리 인상은 은행 대출을 끼고 집을 마련한 가계주나 자영업자들을 주저앉힐 가능성이 높다. 이는 중산층 붕괴로 곧바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
점점 현실화되는 자영업자 붕괴
특히 임금노동자에 비해 자영업자가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은 금리 인상론을 더욱 불편한 주장으로 만든다. 자영업 시장 양극화로 상당수 자영업자가 저소득의 늪에 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가구주가 임금근로자인 가구의 1분기 월평균 소득은 약 391만 원이었으나 근로자외가구는 277만 원에 그쳤다.
노동연구원 조사 결과는 더 참혹하다. 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자영업자 비중 및 소득비중'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해 기준으로 자영업자 1인당 연평균 소득은 1377만 원으로 임금근로자 1인 소득(2570만 원)의 53.6%에 불과하다. 지난 1999년만 하더라도 임금근로자의 80.1%에 달했던 자영업자 소득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특히 자영업 부문 내에서도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자영업자가 매우 영세한 저소득층으로 빈곤의 위험에 노출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월평균 명목 근로소득이 100만 원 미만인 자영업자 비중과 300만 원 이상인 자영업자 비중은 지난 1998년 이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데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2005년 자영업자 비중을 보면 대부분 국가가 10%대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33.6%로 자영업자 비중이 상당히 높다. 우리나라 다음으로 자영업자가 많은 국가는 일본이었으나 14.6%에 불과하다. 관광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그리스(40.8%) 정도가 우리나라보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국가였다.
이는 구조적인 문제다. 지난 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구조조정에서 탈락한 근로자들이 자연스럽게 자영업자가 된 데 따른 것이다. 이후에는 산업구조의 급속한 변화로 임금노동자 수요 자체가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어 많은 이들이 창업의 길로 나섰다. 비정상적인 자영업자 비중을 낮출 해결책이 쉽사리 나오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자영업자는 단순히 금리 인상 위협에만 노출된 게 아니다. 내수와 수출이 서로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현재 산업구조 역시 자영업자에게는 위협 요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경상수지는 수출 호조세에 힘입어 18억2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덕분에 우리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분기 기준으로 64.9%에 이르러 최고치에 달했다. 반면 내수 비중은 48.3%로 역대 최저치였다. 내수 경기 침체는 자영업자에게 치명타다.
대형마트의 성장세도 자영업자의 목을 죄고 있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대부분이 도소매음식숙박업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하위 자영업자의 경우 61.4%가 도소매음식숙박업 종사자다. 유통업의 대형화는 곧바로 이들의 퇴출로 이어진다. 여기에 경기침체마저 자영업자의 목을 죄어 온다. 경기가 나빠지면 가계에서 가장 먼저 줄이는 부분이 외식이기 때문이다. 당장 '외식 산업의 천국' 미국에서도 베니건스가 경기침체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한 상황이다.
자영업 시장 경쟁에서도 밀려나는 이들은 임금 노동 시장에 흡수되지 못하고 실업자로 전락한다. 지난해 1분기 전체 취업자 수는 2284만1300명으로 2006년 4분기에 비해 1.9%(46만여 명) 감소했는데, 자영업자 수는 3.7% 줄어든 반면 상용 근로자(노동 계약기간 1년 이상) 수는 0.5% 증가에 그쳤다. 상당수 자영업자가 실직자가 돼 아예 노동 통계에서 제외됐음을 입증한다.
"금리 인상은 불가피…구조조정 대책 정부서 마련해야"
예상되는 부작용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은의 금리 인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부터 그러하다. 강 장관은 여전히 금리 인상을 껄끄러워한다. 정부 입장에서 금리 인상은 가장 피하고 싶은 카드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정부가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을 활용해 경기를 부양하는데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
상대적으로 진보적 연구기관으로 평가받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역시 금리 인상에 회의적이다. 부작용에 비해 물가 안정 효과는 작다는 것이다. 여경훈 새사연 연구원은 "한은이 금리 인상을 통해 바라는 물가 안정 효과는 지난 2001년 유럽연합(EU) 계량분석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감소의 절반 정도에 그친다"며 "물가 안정은 전형적인 수요 인플레이션 차단책이지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에 빠진 현재 한국 상황에는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금리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가장 높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경기 위축 우려도 있지만 지금은 (금리를) 올려야 할 때다. 한은법 6조에 한은은 물가안정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딱 박혀 있다"며 "물가상승 6% 예상마저 나오는 상황인데 물가안정을 위한 기관이 금리를 올리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과) 또한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나아가 지금의 우리 자영업자 문제는 단순히 금리를 올리냐 마냐에 따라 결정될 차원이 아니라고 말한다. 예상되는 부작용은 정부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다른 차원에서 자영업자 시장의 구조조정을 자연스럽게 이끌어야 한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문제, 자영업자 문제가 단순히 경기침체에 따른 유동성 부족 문제로 인한 것이라면 금리를 유지하자는 데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자영업자들이 사실상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 위험) 근처에 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금리 동결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며 "거시정책인 금리 인상으로 구조조정 압력을 넣는 한편으로 정부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미시적 금융정책 등을 마련해 부작용을 해소해야 한다. 가만히 놔두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고 주장했다.
'강부자'에 의한, '강부자'를 위한 정부?
그렇다면 정부에서는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을 위해 어떤 대응방안을 마련했나. 정부 정책은 기획재정부의 '경제안정 종합대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지난 달 11일 금융위가 발표한 '시장과 함께하는 중소기업 금융지원방안'에도 자영업자는 아니지만 중소기업 대책이 담겨 있다.
기획재정부가 '747공약'의 실패를 처음 인정한 경제안정 종합대책에는 구체적인 서민 지원방안을 찾기 어렵다는 비판이 언론 지면을 장식했다. 이 '대책'의 초점은 물가안정과 서민경제 안정이었지만 그 한편에는 여전히 "감세정책, 규제완화 정책을 통해 성장능력을 확충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었다. 군소 자영업자를 위한 대책이라고는 다음 달 시행되는 소상공인 네트워크론 도입이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위는 보고서에서 장기·우량·거액보증기업 등에 지원되던 일부 자금을 확보해 기술·창업기업 등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산업은행 민영화를 통해 신설되는 한국개발펀드(KDF)를 활용해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방침도 전했다. 그러나 보고서 어디에도 언제 일어날지 모를 중소기업 구조조정의 부작용을 해소할 만한 내용은 찾기 어렵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전담하는 과가 하나밖에 없어 디테일한 부분을 커버하지 못한다. 부처 협의를 통해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는 여전히 '강부자' 딱지를 떼지 못했다. 단순히 정부 구성원의 재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펼치는 정책이 그렇다. 감세안, 부동산 시장 활성화 방안, 규제완화 정책, 공공요금 인상 시기 조율, 성장잠재력 확충 방안…. 어디에도 서민은 보이지 않는다. 중소기업과 소규모 자영업자는 대기업 정책, 수출 정책의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