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권의 부동산 거래가 자취를 감추자 당황한 정부는 부랴부랴 각종 규제 완화 정책을 시장에 '내던지고' 있다. 핵심 지지 기반 지역마저 등을 돌리면 힘들어진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셈이다.
그럼에도 아파트 거래 시장은 쉬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출을 끼고 무리하게 버블 세븐 지역에 입주한 사람들은 금리마저 오르자 "촛불이라도 들어야겠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계속된 부동산 거품이 꺼져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음마저 일각에서 나오는 형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의 시장 조정을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본다. 경착륙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 특히 이들은 정부에 현재의 '긍정적인 조정' 추세를 인위적으로 통제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현금 보유가 현명하다", 강남 아줌마들의 선택
최근 서울 강남 등 이른바 '버블 세븐' 지역에서 부동산 거래는 사실상 중단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치동 등 강남권에 위치한 공인중개사들은 한 목소리로 "거래 건수 자체가 없다"라고 말한다.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경우 올해 상반기 전체 거래건수가 10여 건에 불과하다. 실수요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오른 아파트 가격에 다들 아예 고개를 돌려버린 셈이다.
부동산 시장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정부는 부랴부랴 각종 규제 완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 7일 1년에 4번 원자재 가격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한 새 단품슬라이딩제 도입에 이어 매입가 기준 택지비 결정 도입 허용, 소비자 만족도 우수업체에 분양가 추가 인상 허용,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정부와 여당에서 종부세 과세대상 축소(6억 원→9억 원), 양도세 인하 추진 등의 세제 완화 정책까지 도입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사실상 규제 정책을 모두 없애겠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그럼에도 강남권의 하락세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이상 '투자 상품'이었던 강남권 부동산 가격이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7월 초 대치동 은마아파트 112㎡(34평)는 11억 원대에 매물이 나왔다. 지난 2006년 10월에 비해 3억 원 가까이 낮은 금액이다. 청실1차 102㎡(31평)도 10억 원 아래로 매물이 나왔다. 2006년 11월 최고 거래가 11억5000만 원을 찍은 후 줄곧 내림세다.
이에 따라 부동산 시장을 그 동안 부풀려 온 거품이 서서히 꺼져간다는 의견이 점차 힘을 받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품이 과연 있느냐'를 두고 논란이 일었던 분위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현금을 보유하는 게 낫다"는 얘기는 강남권에서는 정설처럼 들린다.
우리나라 아파트 값의 23%는 거품
이와 관련, 28일 신영증권은 <'부동산 불패'의 신화는 깨지는가?>라는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아파트 가격의 22.8%, 주택 가격의 7.9%는 거품"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재홍 이코노미스트는 "명목 국내총생산(GDP)과 M2(광의통화), 91일물 CD 유통수익률 등을 이용해 부동산 가격이 본격적으로 상승한 지난 2000년부터 올해 1분기 중에 누적된 버블의 규모를 추산한 것"이라며 "이 기간 전국 아파트 가격은 166.2%, 주택 가격은 96.1% 상승했다"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6.6배로 지난 1998년 4.2배보다 늘어났다. 특히 서울의 PIR은 9.8배에 달했다.
이는 지난 2006년 뉴욕의 7.9배보다 높은 수준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주택 경제가 빈사 상태에 처한 로스앤젤레스의 PIR이 11.2배에 달하던 때다. 서울의 주택가격 비율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기 직전 미국 뉴욕의 그것보다 높았던 셈이다.
부동산 경기는 이미 연착륙 중
거품 논란이 커지면서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근원은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해 흔들리는 건설업 경기다. 여기에 과도한 대출을 끼고 강남권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대출 부담이 커지면서 금융권에도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제시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주장에 선을 긋는다. 지금의 신호는 경기 연착륙 신호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이코노미스트는 "비록 지방에서 아파트 미분양 사태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는 공급 과잉 신호로 볼 수 없다. 한국인의 자산 포트폴리오 특성상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동산 수요는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줄어들 가능성이 커 급격한 수요 위축 가능성도 낮다"며 "상대적으로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안정적인 채무 상환 구조와 이미 조정에 들어간 국내 부동산 상황을 감안하면 연착륙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변창흠 세종대 산업대학원 교수(부동산학과)도 "지난 정부 말기에 마련된 각종 규제가 효과를 보이고 있어 안정적으로 거품이 꺼지고 있어 긍정적"이라며 "고금리와 고유가, 세계 부동산 시장 동조화 현상 강화 등에 장기적으로 신도시 건설, 인구 감소 등의 요인까지 시장에 미칠 것을 고려하면 앞으로 몇 년은 더 지금의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규복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또한 "거품 붕괴로 미국이나 일본에서처럼 금융시스템의 혼란까지 일어나는 일은 굉장히 드문 사례"라며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나 대출자 부담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에 비해 우리는 자산 비중이 높아 전반적인 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다"고 말했다.
"MB정부, 방향을 거꾸로 잡고 있다"
다만 현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에 대해서는 일부 우려 섞인 반응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정부가 부동산 경기의 급격한 하락을 우려해 그런 정책(규제 완화)을 폈다고 볼 수도 있다"면서도 "근본적으로 규제를 풀 때는 신중히 해야 하는데 그런 면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변창흠 교수는 "만약 정부가 규제를 풀어 단기간에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다면 오히려 일시에 꺼져버릴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가 이상하게 방향을 거꾸로 잡고 있다. 이미 촛불 사태 이후로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잃은 정부가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변 교수는 "이번 부동산 가격 하락은 지난 2006년 10월부터 아주 정교하게 천천히 진행된 것"이라며 "내년부터 시작될 신도시 입주와 지방 행정도시 건설 등의 공급 확대책으로 지금 추세는 더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장기적으로 꾸준한 안정세를 보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사람들의 학습 효과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변 교수는 "경기가 하락하면 어느 정부나 가장 손쉽게 사용하는 정책이 건설 경기 부양"이라며 "지난 30년간 내내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이 부동산 불패에 대한 학습 효과를 얻었다. 근본적으로 주택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 수단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않는 한 부동산 시장은 거품 생성과 꺼짐의 과정을 반복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부동산 시장은 미국, 일본과 다르다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 침체에도 큰 우려를 보이지 않는 이유는 경착륙한 미국이나 일본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먼저 꼽아볼 수 있는 게 본격 상승이 시작된 이후 상승률 차이다. 김재홍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000년 초반 IT 버블 붕괴 이후 미국의 주택 가격은 2006년 7월까지 193%나 올랐다. 일본은 버블이 정점에 달한 1991년 상반기 258.2%나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올해 6월 아파트 가격은 지난 2000년에 비해 111.6% 상승했다. 버블 주체가 다르다는 점도 고려할 요인이다. 일본은 투자 주체가 기업이었기 때문에 거품이 꺼진 후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돼 고용 시장까지 나빠졌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부동산 거품의 주체는 가계다. 상대적으로 기업에 비해서는 거시경제에 주는 영향이 제한적이다. 채무상환 구조에서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건전하다는 점도 다르다. 김 이코노미스트는 "거품 형성기 당시 일본의 LTV(주택담보대출비율)는 120%에 육박했다. 미국도 85%에 달했다"며 "반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LTV는 52.2%로 주요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저축은행과 캐피탈 회사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규모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 우려되지만, 전체 은행권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낮다는 점에서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니라는 게 김 이코노미스트의 판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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