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법부는 더 이상 사법정의를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다."
경제개혁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등이 1심 법원이 삼성 비리 혐의 대부분에 면죄부를 준 다음날인 지난 17일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나온 말이다. 마침 이날은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제헌절이었다. (☞관련 자료 보기: 법치주의 사망 선언, 삼성 1심판결의 법리 판단 비판)
재판부 "애초 기소가 잘못됐다"
법학 교수와 변호사들까지 나서서 "사법정의가 죽었다"라고 외치는 게 부담스러웠던 걸까. 이날 회견이 끝난 뒤, 삼성 사건 재판을 담당한 민병훈 부장판사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다음날, 삼성 비리 의혹을 수사했던 조준웅 특별검사가 기자회견을 열어 민 부장판사의 주장을 반박했다.
법원과 검찰이 삼성 면죄부 판결에 대한 책임 공방을 벌이는 모양새다.
민 부장판사는 지난 17일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의혹에 대한 무죄 판결이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게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애초 기소가 잘못됐다"라고 말했다. 삼성 비리의 몸통으로 지목된 이 전 회장에게 면죄부를 준 책임은 수사기관에 있다는 뜻이다.
특검 "1심 판결은 논리적 모순…CB 헐값 발행은 당연히 배임"
조준웅 특검이 발끈했다. 조 특검은 18일 기자회견에서 "재판부가 '이렇게 기소를 했어야 하는데 다르게 기소했으니까 이것은 무죄다'라고 자꾸 밖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어불성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조 특검은 "대표이사가 슈퍼 주인이라고 하면 500원짜리 물건을 200원에 팔면 그것은 회사의 손해고, 당연히 배임이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박이다.
그리고 조 특검은 "1심 판결은 에버랜드는 이건희 전 회장의 것이고 그것을 아들에게 줬으니까 내 것을 내가 싸게 팔아 손해를 본 것이 아니라는 논리"라며 "어떻게 에버랜드가 이 전 회장의 것인가. 주주들의 것이고 그 사람들의 회사"라고 덧붙였다.
시민단체 "특검의 부실수사와 재판부의 역사의식 결여가 낳은 참극"
재판부와 수사기관의 이런 다툼은 경제개혁연대 등이 지난 17일 발표한 성명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런 내용이다.
"사법정의의 회복을 바라는 국민적 열망에 따라 특검법이 제정되었고 어렵사리 진실규명의 기회가 마련되었지만, 삼성특검은 '삼성특별변호인단'이라는 오명까지 얻었을 정도로 함량미달의 부실수사를 하였으며, 재판과정에서도 의지박약 및 능력 부족을 여실히 드러내며 오히려 그 스스로가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마침내 이루어진 어제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삼성에버랜드 건에 대해 기존 판례와 법리를 완전히 무시한 채 지극히 왜곡된 형식논리를 동원해 무죄를 선고하였으며, 삼성SDS 건의 경우에는 교묘하게 배임액수를 산정함으로써 공소시효 도과를 이유로 면소판결을 하였다. 한마디로 지배주주의 사익을 위해 회사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불법행위에 대해 난공불락의 참호를 선물했다."
민병훈 부장판사와 조준웅 특별검사가 다투는 내용에 대해 경제개혁연대 등은 이렇게 정리했다.
"이는 삼성특검의 부실수사와 재판부의 역사인식 결여가 공동으로 빚어낸 참극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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