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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한국경제, 사람에 대한 투자만이 탈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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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위기의 한국경제, 사람에 대한 투자만이 탈출구"

[인터뷰]신봉호 뉴패러다임센터 소장 "과로체제의 종언"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경직된 노동시장을 극복하겠다며 연일 노동유연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정부가 경제위기를 노동 착취 강화를 통해 극복하려한다며 비판을 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입각한 정부정책을 당장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정이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 가운데, 시장 개방을 선언한 중국은 저임금 노동력과 자원을 통해 급부상하고 있으며, 동남 아시아 국가들도 뒤따르고 있다. 빠르게 다국적기업화하고 있는 소수 몇몇 재벌기업과 특정 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조업은 더 이상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도산하거나 싼 임금을 찾아 중국으로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저임금·수출주력 중심의 한국경제 성장의 동력이 마침내 한계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경제성장 체제를 '과로경쟁체제' 혹은 '저임금 의존 체제'로 규정하며 '평생학습'과 '과로해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도입을 통해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3월 개소한 한국노동연구원 부설 '뉴패러다임센터' 신봉호 소장(한국시립대 교수)이 바로 그로, 신 소장은 "저임금·과로경쟁 체제 아래서 더 이상의 생산성 증대와 경제위기 극복은 없다"고 단언하며 "좀더 많은 사람을 채용해 학습의 기회를 보장하고, 이를 통한 생산성 증대 및 실력 혁신만이 대한민국 경제의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공부하지 않은 기업, 노동자가 공부할 여건 마련되지 없는 기업은 새로운 시대에 도태될 것"이라며 "이미 선진국들의 경우 평생학습체제 구축은 일반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산성 증대를 통한 경쟁력 강화 말고도, 뉴패러다임은 ▲일자리 창출 효과 ▲ 노동자의 애사심 강화 ▲ 원만한 노사문화 형성 등 부가적 효과도 가진다고 지적한다.

<프레시안>은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뉴패러다임센터'를 찾아 신봉호 소장의 말을 들었다.

다음은 신 소장과의 인터뷰 전문.

***신봉호 소장, "저임금 기초 경제구조 한계에 봉착"**

프레시안 : 올해 3월 노동연구원 부속 연구소로 뉴패러다임 센터가 개소했는데, 어떤 곳인가?

신봉호 : 센터를 소개하기 전 '뉴패러다임'이 어떤 개념인지 설명하겠다. 우리는 저임금을 기초로 한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를 40여년간 지속해왔다. 이를 바탕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고, 현재 선진국 문턱에 서있다. 하지만 이런 현재의 패러다임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한계에 봉착했다. 이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인식아래 구상한 것이 뉴패러다임이다.

프레시안 : 현재 봉착한 한계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나?

신봉호 :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국가들이 저임금과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급격한 성장을 하고 있다. 이들 성장의 동력이 우리가 지난 40년간 경제성장을 하면서 기반으로 한 저임금 노동력 바로 그것이다. 이들 국가의 성장과 시장 잠식은 우리 기업의 경쟁력과 국가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다.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싼 임금을 찾아 중국으로 진출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1천8백여개 업체가 공장을 중국으로 옮겼다. 일본이 오래전부터 겪어온 이른바 '산업공동화'가 우리나라에도 시작된 것이다.

프레시안 : 우리가 일본과 비슷한 장기불황에 빠져들고 있다는 얘기인가.

신봉호 : 일본은 1992년부터 장기불황에 빠져 현재까지도 극복할 조짐이 없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이다. 동경대 노구치 교수는 장기불황의 원인을 "기러기 떼처럼 후발 개발도산국이 저임금을 기초로 추격하고 있어 일본이 더 이상 임금면에서 비교우위를 갖지 못하고 있다"며 "근본적 변화가 없는 이상 장기 불황은 지속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노구치 교수의 지적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프레시안 : 중국 등 제3세계 국가들이 저임금을 바탕으로 국제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기존의 저임금에 기초한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말인데, 요즘 급속히 확산되는 비정규직이나, 산재 발생이 높은 것을 보면 그런 부분에서도 현재의 패러다임이 한계에 봉착한 것 같다.

신봉호 : 그렇다. 저임금 체제의 다른 표현이 바로 '과로경쟁체제'다. 저임금은 자발적·비자발적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기 때문에 충분히 쉬고, 생각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산재가 빈발하는 원인도 '과로' 때문이다. 현재 저임금에 기초한 패러다임은 국가 경쟁력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이처럼 노동자 개개인을 피폐화시키고 파괴시킨다.

***유한킴벌리, 뉴패러다임 도입으로 매출액 112% 증가**

프레시안 : 사실 그런 부분은 일찍부터 한국 산업구조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하지만 딱 부러진 해결책을 찾지 못해 지금까지 온 것 같은데, 소장이 말하는 '뉴패러다임'이 그 해결책이란 말인가?

신봉호 : 뉴패러다임은 저임금과 과로체제를 한꺼번에 넘을 수 있는 아이디어다. 뉴패러다임의 핵심은 기업내 평생학습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생산직·사무직 노동자들 개개인의 실력을 강화하는 것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이행을 위한 선결조건이 될 것이다. 실력배양을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평생학습이 가능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직무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할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해서는 인력을 보다 충원해야 하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 효과도 지니고 있다.

프레시안 : 올해 노동계 파업에서 노조의 중심 화두 중 하나는 주5일제 실시에 따른 인력충원이었다. 대부분 사용자들은 인력 충원을 할 바에는 임금을 더 올려주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소장이 말한 평생 학습을 위한 인력충원을 사용자들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신봉호 : 사실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런 편견이 뉴패러다임 확산의 큰 장애이기도 하다. 뉴패러다임은 97년부터 3조2교대 체제에서 4조2교대 체제로 전환하고, 평생학습체제를 도입한 유한킴벌리의 선례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유한 킴벌리는 당시 인건비 비중이 15%였는데, 체제개편이후 20%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인건비는 비중은 상승했지만, 매출액은 3천3백23억에서 7천36억으로 무려 1백12%증가했고, 순이익 또한 1백44억에서 9백4억으로 대폭 증가했다. 즉 인건비 상승분은 학습을 통한 혁신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얘기다.

프레시안 : 평생학습체제를 구축했다고 해서 놀랄 정도로 매출액과 순이익이 증가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과연 뉴패러다임의 구체적 모습은 어떤 것인가?

신봉호 : 생산직과 사무직에 따라 형태는 달라진다. 생산직은 과로해소를 위해 교대조를 늘린다. 또 직무와 관련된 기계 작동이나 숙련된 선임 노동자들의 노하우를 상호 공유케하는 작업을 중점적으로 한다. 사무직은 학습조를 구성해서 직무의 전문성을 높이고, 유사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간의 네트워킹을 구성해 토론과 연구를 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프레시안 : 교대조를 늘리고 학습조를 만든다고 해서 생산성이 쉽게 높아지겠는가?

신봉호 : 앞서도 말했듯이 뉴패러다임의 기조 중 하나가 노동자를 과로로부터의 해방이다. 기업이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고, 직무 관련 학습까지 지원한다면 어느 기업 노동자들이 애사심을 가지지 않겠는가. 더구나 뉴패러다임에서 학습은 노동시간에 포함시키고 있다. 애사심을 갖고, 자신의 직무에 대한 애착이 일선 노동자에게 생기면 생산성은 과히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뉴패러다임 도입 사업장, 정부도 지원**

프레시안 : 문제는 비용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재정이 바닥을 보이고 있는 다수의 중소기업에서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정부에서 재정적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신봉호 : 그렇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고용보험법시행령에 따라 교대조 실시 기업이 2~3교대조를 3~4교대조로 늘리면서 신규인력을 충원할 경우 신규인력 1인당 월60만원을 지급한다. 또 교대조 실시 기업이 잉여인력을 해고하지 않고 4조 이하로 교대조를 늘려 계속 고용할 때 노동자 임금의 15~20%를 지원한다. 또한 교대제 전환을 통해 고용창출이 이뤄진 기업에 대해 직업능력개발 사업지원금 지급규정에 따라 훈련비를 10%를 추가지원한다.

프레시안 : 충분한 지원이 될지 의문이다.

신봉호 : 물론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이것도 '투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저임금에 기초한 생산방식이 한계에 이른 이상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신규 투자는 불가피하다. 물론 투자는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센터도 혁신의지가 있는 사업장을 시험대상으로 선정 뉴패러다임 도입을 위해 컨설팅을 제공한다. 컨설팅은 무료다.

프레시안 : 지난 3월 개소 이후 주요 기업들이 시험대상 업체로 선정받아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신봉호 : 현재까지 9개 업체다. (주)풀무원 제3공장, (주)삼보, KOTRA, KB(국민은행), 굿모닝병원, UIC시카고치과병원, 경상남도 도청,농업기반공사 등이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이들 업체들은 노사 공히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용자, 편견을 벗고 뉴패러다임에 투자하라"**

프레시안 : 앞으로 센터의 역할도 바로 뉴패러다임을 확산하는 일일텐데, 장애물은 뭐라고 생각하나

신봉호 : 앞서도 말했듯이 사용자들의 편견이다. 새로운 체제를 도입하면 그만큼 인건비도 늘테고, 학습효과가 확실한 것도 아닌데, 돈만 버리는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다. 센터는 현재 패러다임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인식을 가지고, 혁신의 필요성이 절박하다고 생각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뉴패러다임을 적용할 예정이다. 사용자가 이에 대한 절박성이 없으면, 뉴패러다임 도입이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단 중소기업의 경우 전체 기업 중 10%만 도입하면 가공할만큼 국가경쟁력 상승이 기대된다.

프레시안 : 평생학습체제 구축, 과로체제 해소 등 뉴패러다임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보인다. 아이디어에 머물지 않고, 한국 경제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실질적인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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