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박아놓았던 10뻬소짜리 지폐를 한 장 꺼냈다. 무표정한 독립 영웅 막시모 고메스가 차를 쉽게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따구아스꼬(Taguasco) 시에 있는 주유소를 들락거리는 차량은 그리 많지 않다.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브리엘라에게 고속도로에서 차를 잡으려면 주유소나 식당 앞에서 기다리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웃는다.
-어머닌 잘 계시지?
-응, 이젠 좀 건강해보이더라.
-뭘 잔뜩 싸왔네? 뭐야?
-빵이랑 쌀, 그리고 사과랑 바나나 조금. 어머니가 주셨어.
-그래? 나도 가끔 너희 어머니도 찾아뵙고 그래야 하는데... 생각만큼 몸이 따라주질 않네... 미안해.
-뭘, 너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편찮으실수록 사람이 그리운 거야. 그리고 너 어머니 찾아뵐 때는 경찰서에도 좀 들러. 다른 건 몰라도 집에 돌아갈 때 나랑 같이 가면 더 좋을 거 아냐. 차도 잡기 편하고 말이야. 잠깐, 주유소에서 차가 나오는데?
흰 색 윤다이(Hyundai) 차다. 번호판이 보라색인 걸 보니 외국인인가보다. 나는 지폐를 든 손을 한껏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가브리엘라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냥 앉아있다. 외국인들은 차를 잘 세워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너무 오래 기다렸다. 무엇보다 요즘 어머니 병환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 가브리엘라가 매우 지쳐있을 거였다. 차를 잡는 데는 내 경찰 제복도 도움이 될 거다. 이봐 10뻬소짜리를 든 경찰이라구. 차가 섰다. 동양인 하나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대뜸 마하구아(Majagua)로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하느냐고 묻는다. 차 안을 보니 운전석에도 동양인이다. 관광객인가 보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이 쪽 길을 몰라서요. 마하구아 마을에 가려면 고속도로를 빠져나가야 하는데, 지도에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네요. 따구아스꼬에서 마하구아 마을까지 고속도로 연장 공사중이라고 지도에는 나오는데... 여기가 따구아스꼬 맞죠?
-네 맞아요. 그런데 고속도로 연장 공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답니다.
-네? 그럴 리가. 이 지도, 2001년 판인데요?
-하하, 아직 공사중이랍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마하구아까지 가는 길이라면 저희가 잘 아는데... 저희도 마하구아로 갑니다.
-아, 그러세요? 그럼 타세요.
-가브리엘라 차 잡았어! 아, 그리고 이거 받으세요.
나는 10뻬소짜리를 들이밀었다.
-아닙니다. 그냥 타세요. 돈은 필요 없답니다.
-그래도 받으세요.
나는 억지로 돈을 쥐어주었다. 그러더니 동양인 둘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 난 듯 우리에게 말했다.
-그러면, 혹시 3뻬소짜리 지폐 가진 거 있으세요?
-네? 아, 네, 가만 있어보자... 여기 한 장 있어요.
-그걸로 차비는 됐어요. 저희 같은 외국인들에게 3뻬소 짜리 지폐는 좋은 선물이 되지요.
-어디에서 오셨나요?
-한국에서요. 남한이요. 집이 마하구아인가봐요?
-네, 그런데, 마하구아가 당신들 목적지는 아니지요? 까마구에이로 갑니까?
-아뇨, 오늘 내로 바야모까지 갈 겁니다.
-말도 안돼요. 여기서 바아모까지 8시간은 족히 걸리는데, 지금 해 지는 거 안보이세요?
-거리상으론 얼마 되지 않는데요?
-길이 무척 험하답니다.
-따구아스꼬에서 일을 하나 봐요?
-네, 저는 경찰관이죠. 집은 마하구아이구요.
우리의 직업과 사는 곳을 물은 한국인들은 잠시 동안 말이 없다. 고속도로가 끝나는 길이 나오자 우리에게 길을 묻는다. 나는 몇 번 나오는 갈래 길에서 지름길을 가르쳐주었다. 국도에 안착하자 동양인들이 뒷좌석에 탄 우리 둘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죄송한데요. 두 분 부부이신가요?
-부부요?
가브리엘라가 웃는다. 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따라 웃었다.
-이 친구랑... 부부라구요? 하하하
-그럼, 여자친구인가요?
가브리엘라도 얼굴이 빨개졌다. 이런 상황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다.
-이 친구, 지금 남자 친구가 없답니다. 혹시 마음에 드시나요? 하하하...
이번엔 가브리엘라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져간다. 아,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가? 이 바보. 머저리. 이 산도적 같은 한국인들 차를 타는 게 아니었는데. '혹시 마음에 드시나요?'라니... 바보, 머저리...
-다 왔습니다. 이쯤에서 내려 주시면 됩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바야모까지 가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좋은 여행되길 바랄게요.
-네, 길 가르쳐 주신 거, 그리고 3뻬소 짜리 지폐 감사합니다.
한국인 두 명은 흰색 윤다이 자동차를 몰고 해가 져서 잘 보이지 않는 국도를 헤드라이트 두 개로 뚫으면서 가속기를 밟아댈 것이다. 조심해야 할텐데... 가브리엘라가 들고 있는 짐이 무거워 보인다.
-이리 줘. 오늘은 내가 너네 집까지 바래다줄게.
얼굴을 마주칠 수 없다. 이놈의 주둥이가 문제다.
-괜찮아. 내가 들 수 있어.
-미안해.
-뭐가?
-아까 너 앞에서 짓궂은 농담 한거 말이야... 아무 생각 없이 나온 말인데... 그게 있잖아... 내가 너 창피 줄려고 한 게 아니고 말이야...
-뭘, 재미있었어.
-미안해...
-내일도 출근해?
-아니, 내일은 농장에 나가 봐야해.
-그렇구나...
잠깐 머뭇거리던 가브리엘라가 말했다.
-이번 주말에 같이 우리 어머니 뵈러 갈래?
나는 또 다시 얼굴이 빨개졌다.
손을 흔드는 젊은 남녀를 뒤로 하고 다시 가속기를 밟았다. 이들을 태우지 않았다면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 데 고생깨나 할 뻔 했다. 지도에 의하면 고속도로 연장 구간은 공사중이라 했다. 2001년판 지도에 그려진 그대로 말이다. 7년간 지도 업데이트 비용은 들지 않았겠군. 국도는 평화롭고 살벌했다. 마차와 트랙터가 다니고 좁은 갓길에는 사람들이 별 생각 없이 걸어 다녔다. 군데군데 패인 곳도 많았다. 간혹 미친 자동차가 고속도로로 착각하기도 했는데, 대형 트럭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로교통법규 업데이트 역시 상당 기간 정지된 상태일 것이다. 그래도 도심에 들어가면 모든 차량이 '정지' 표지판만은 철저히 지킨다. 일단 신호등이랄 게 없고, 기본적인 '상식'은 지켜져야 하니까.
ⓒ손문상 |
고속도로를 벗어난 우린 곡예 주행(?)을 하면서 까마구에이(Camaguey)를 지났다. 날은 벌써 저물었고,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디마르(Dimar) 라는 식당을 찾았다. 쿠바에서는 꽤나 유명한 생선요리 체인점인데, 2~3쎄우쎄면 한 끼를 먹을 수 있다. 무엇보다 다른 식당에서 먹는 생선요리보다 값이 절반은 싼 게 매력이었다. 밥을 먹고 종업원에게 또 다시 길을 확인 받은 후 차에 올라탔다. 그 때 차 창 밖에 불청객이 한 명 찾아와 '1 달러'를 외쳤다. 쿠바에서 처음으로 만난 '거지'였다.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노숙을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복장 인테리어, 대 놓고 돈을 요구하는 방식, 그리고 주변 눈치를 보지 않는 대담함이 합쳐지면 우린 그 사람을 '거지' 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쿠바에도 거지는 있다. 다만 근 사흘 만에 처음 봤다는 사실이 더 신기했을 뿐. 빈부의 차이가 벌어질수록 이들은 더 많이 생길 것이다. 자본주의적 부의 법칙이라는 것은 '파이를 나눠먹는 것'이 아니라 '파이를 빼앗아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쿠바 제 3의 대도시라는 까마구에이를 지나 가속기를 밟았다.
여전히 국도를 타고 가면서 구아이마라(Guaimara)라는 작은 도시를 지났고, 중간에 거짓말 같은 폭우를 만났으며, 네 번 정도 히치하이커를 태웠다. 경찰, 간호사, 농사꾼, 학생, 노동자 등 그 직업도 다양했다. 대부분은 '고맙다'는 말을 의례적으로 한다. 정말 고마워서가 아니라, 이 것도 인연인데 안부나 물읍시다, 쯤 되는 말투로 '고맙습니다' 라고 한다.
히치하이킹은 버스를 타거나 택시를 타거나 혹은 사탕이나 초콜릿을 몇 개 얻어먹는 종류의 '일상적' 고마움일 뿐이다. 라스 뚜나스(Las Tunas)라는 도시를 지날 때는 이미 밤 10시가 넘었다. 이곳에서 '쉬었다 갈까?' 라는 악마가 우릴 시험에 빠뜨렸다. 급기야 '이 엄청난 유혹을 이겨낸다 치자' 라는 가정을 해버린 후 '갈 수 없을 거야'라는, 부정적인 결론을 도출해내는 심리상태까지 치달았다. 그렇게 고민을 하는 사이 라스 뚜나스 시내를 빠져나왔다. 이제는 바야모까지 갈 수 밖에 없다.
바야모에 도착한 시간은 밤 11시 30분. 수첩을 꺼내 '미르따' 씨가 알려 준 집의 주소를 들고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소로 집을 찾는 일은 애초에 무리였다. 결국 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있던(대부분의 상점은 문을 닫았다.) 한 여행사에 무작정 찾아 들어갔다. 사실, 당시 가장 급한 것은 '용변' 이었던 거다.
다행히 여행사 직원은 우리를 위해 주소가 적힌 종이를 들고 직접 인솔을 해 주기로 했다. 살았다. 우여곡절 끝에 미르따 씨가 추천해 준 곳을 찾긴 했는데, 이런, 오늘은 방이 없단다. 오후에 미르따 씨에게 전화를 받긴 했지만, 이미 예약을 채운 상태라 남은 방이 없다고 그녀에게 말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주소를 들고 이미 떠난 우리에게 연락할 길이란 없었으므로 미르따 씨가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구른 건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는 친절했다. 역시 까사 빠르띠꿀라르를 운영하는 남동생 루이스(Luis) 씨를 데리고 나온 것이다. 왜 이렇게 늦게 도착했느냐며 루이스 씨는 유창한 영어로 기분 좋게 우릴 나무랐다. 이곳의 법칙도 비슷했다. 하루 밤에 침대 두 개짜리 방 하나 쓰는데 25 쎄우쎄. 그리고 아침은 3 쎄우쎄에 준비해 줄 수 있다고 했다. 차 안에서 전 날 마시다 남은 럼을 빼오자 친절하게 얼음과 안주를 준비해 주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그의 친절은 여기에서 끝난 게 아니었다. 피곤해서 죽을 지경인 우리를 붙잡고 여행 코디를 해 주겠다며 어디에선가 커다란 쿠바 지도를 꺼내왔다. 물론 그가 준 정보는 정말 훌륭했다. 우리는 먼저 무리한 일정을 그에게 제시했고, 그는 단호하게 '절대로, 그렇겐 못 할 거요'라고 못 박아 주었다. 우리의 옵션이라는 것은 이랬다.
1. 다음 날 아침 일찍 출발해서 산또 도밍고(Santo Domingo)라는 마을의, 피델의 '꼬만단시아 데 라 쁠라따(Comandancia de la Plata)' 가 있는 시에라 마에스뜨라(Sierra Maestra) 게릴라 근거지를 둘러 본 후에 쿠바 제 2의 도시라고 하는 산띠아고(Santiago)로 향한다. 그 곳을 역시 대충 둘러 본 후 관따나모(Guantanamo)로 출발. 관따나모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다음 날 미군 기지를 볼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가 해안 도로를 타고 다시 아바나로 향한다. 저녁에 아바나에 도착한다.
2. 피델의 꼬멘덴시아를 둘러본 후 그란마 호가 상륙했던 꼴로라도(Colorado) 해안으로 간다.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바야모를 거쳐 아바나로 향한다.
사실 우리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는데, 따지고 보면 과학적으로 입증된 물리적 공간 개념의 정의를 새로 쓰는 일이었다. 이 일이 성사된다면 타임머신 개발의 고무적인 이론적 토대를 제공할 것이고 세계 과학사의 한 페이지를 당당하게 장식할 터였다. 우리가 얼마나 혁명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눈치 챈 루이스 씨는 피델의 꼬만단시아 한 곳만 둘러보더라도 하루를 다 쓰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산띠아고나 관따나모는 포기하고, 꼬만단시아나 꼴로라도 해변, 한 곳을 택해 집중하는 것이 더 나으리라고 말했다. 옳은 말이었다. 우리는 과학자들과 루이스 씨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요 며칠간 내린 집중호우로 그리 높진 않지만 상당히 험준한 곳이어서 사고 방지 차원으로 시에라 마에스뜨라 입산이 통제되었다는 정보도 들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우리의 타이밍이란 게 기가 막히게 좋지 않았다 했다. 바로 오늘까지도 입산 통제가 풀리지 않았던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단,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단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정보는, 금지되었던 꼬만단시아 사진 촬영이 작년부터 허용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꼬만단시아 사진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촬영이 가능하다면 충분히 욕심을 내 볼 수 있기도 했다. 그래서 두 개의 옵션이 새로 생겼다.
1. 내일 꼬멘덴시아를 볼 수 있다는 장담은 없지만 일이 성사 된다면 귀한 사진을 건질 수 있다. 꼬멘덴시아로 과감히 운전대를 돌린다. 하지만 내일도 입산이 금지된다면 허탕.
2. 보다 안전하게 꼬멘덴시아를 포기하고 그란마호가 상륙했다는 꼴로라도 해안을 찾는다. 시에라 마에스뜨라에 비해 매력도가 떨어지지만 '확실하게'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루이스 씨는 우리의 결정에 관심이 많은 듯 했다. '참견형' 인간, 혹은 '가르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전형적인 유형. 결정을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우리를 보며 매우 답답해한다. 우리는 너무 피곤했으므로 얼음 섞은 럼을 한 잔 들이킨 후 밤에 곰곰이 생각해 본 뒤에 내일까지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루이스 씨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니 정확히는 X싸고 밑 못 닦은 표정으로 밤 인사를 했다. 나가면서 역시 한 마디. 내일 아침 일찍 꼬멘덴시아 앞의 호텔에 전화를 걸어 입산금지 여부를 물어봐주겠다는 약속을 해 주었다. 친절한 분이다. 문제는 우리였는데, 결정은 무슨.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 떨어져 버렸다.
다음 날 옵션들을 가늠해보고 적절한 일정을 소화해 내기 위해 우린 아침 일찍 일어났다. 해도 나지 않은 새벽이었지만 식사는 이미 준비돼 있었다. 신선한 과일 주스와 진한 커피. 그리고 부드러운 빵으로 식사를 마친 우리는 서둘러 채비를 했다. 우리의 참견쟁이(물론 선의의 표현이다.) 루이스 씨는 어제 약속한 대로 산또 도밍고에 있는 호텔에 전화를 했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우린 루이스 씨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대로 입산이 가능하단다. 됐구나! 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루이스 씨는 우릴 위해 특별한 지도를 만들어주고 싶어 했다.
쿠바에서 가장 자세한 2001년도 판 지도(물론 2001년 이후로 도로망에 전혀 변화가 없다는 데 큰 빚을 지고 있는 그 지도.)라도 세부적인 방향 지시나,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믿게 해 줄 도로변의 징표 따위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친절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었다. A4 만한 종이에 복잡하고 세세한 지도를 직접 그려 우리에게 건네준다.
마지막으로 명함을 교환하는 절차가 남았다. 루이스 씨가 우리에게 준 명함에는 이메일 주소가 쓰여 있었다. 일반인도 인터넷을 할 수 있나?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그것이 '불법'은 아니란다. 우리가 아바나에서 들렀던 호텔 샤또 미라마르 안에도 관광객들을 위한 PC방이 있었다. 한 시간에 3 쎄우쎄(약 3600원)정도로 엄청나게 비싸다.
루이스 씨의 이메일 주소에 관해 궁금해 하고 있는 우리를 보고 흐뭇해하던 그는 자신의 PC방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집 한 편에 마련된 작은 PC방엔 컴퓨터와 엄청난 시디 외에도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다. 등산장비나 자동차 악세사리, 텐트가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고, 대부분 직접 만든 거란다. 구석에는 각종 폐 목재와 금속 조각, 그리고 무식하게 보이는 전기 공구들이 놓여 있었다. 이제 보니 이 분, 쿠바의 발명가다.
쿠바는 얼마 전 개인도 PC를 구입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컴퓨터 사용에 관한 새로운 규정들을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쿠바는 2003년 개인의 컴퓨터 소유를 금지시킨 바 있다. 전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금은 인터넷 사용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는 있지만 많은 제한을 두는 것 아니냐는 부분이다. '표현의 자유'에서는 제한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아예 인터넷을 금지 시키진 않는다.
사실 쿠바인들이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오랜 기간 전 지구적 '자본주의 발전'단계에서 소외되어 있던 '쿠바'라는 섬은 인터넷 인프라 구축 자체가 불가능했다.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기술적인 문제가 크다. 그러다보니 100% 위성을 통해 인터넷을 이용해야 하는데, 매우 느린데다 위성 이용료가 비싸기 때문에 보편화되기 힘든 것이다. 인터넷 속도는 초당 16~50 킬로바이트 정도라고 한다.
미국은 쿠바인들의 인터넷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며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며 압박하고 있지만 웃기는 소리다.
미 재무부는 2008년 5월 19일 스티브 마샬이라는 영국 국적의 스페인 거주자가 운영하는 미국내 쿠바 관광 사이트를 일방적으로 폐쇄했다. 이유는 '쿠바 경제 봉쇄법' 위반이라는 것. EU 시민권자인 그는 여러 방면으로 항의했지만 미국은 자국 법 집행에 철저했다. 자, 누가 인터넷을 통제하는가?
"인터넷 한 번 써 보실래요?" 마침 쿠바에 들어온 이후로 메일박스 확인도 한 번 안 해봤다는 생각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창하나 여는 데 평균 2~3분이 걸린다. 남미 여행을 하면서 느낀 것, 결코 이들 인터넷 시스템이 불편하지 않다는 것, 다만 한국 사이트에 접속만 하면 컴퓨터가 벙어리로 변한다는 것. 이는 한국 여러 사이트의 근본적인 문제일 것이다. 각종 이미지 파일을 내려 받느라 컴퓨터가 헐떡이는데, 남미 IT 산업 낙후론에 관한 스트레스까지 혼자 짊어지게 된다면, 아무리 컴퓨터라도 혁명이라도 일으키고 싶지 않을까?
이에 반해 구글 등을 비롯한 자국 사이트는 어렵지 않게 열 수 있다. 한국의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기술의 발전' 이라는 허깨비 덕분이 아닐 수도 있다. 인터넷을 느리게 만드는 수많은 배너, 링크, 그리고 이미지 파일들에 지친 사람들은 더 빠른 것을 원하고 더 빨라진 속도에 기업은 더 많은 이미지와 배너, 링크를 달고, 다시 느려지고, 더 빠른 것을 원하고, 초 고화질 동영상 서비스가 등장하고, 다시 느려지고 버퍼링이 생기고, 더 빠른 것을 원하고... 복잡하다. 이쯤 되면 시지프스의 굴레다. 까놓고 이야기해 보자. '기술의 발전'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여기 테라 바이트급을 저장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자그마치 10의 12승이다. 일단 환호. 우~와~. 그런데 여기에 뭐를 넣어야 할까? 5메가 바이트 음악이 200만곡 들어간다. 2000시간, 즉 잠도 자지 않고 영화를 100일 내내 봐도 용량이 남아돈다. 이제 사람들은 100일 동안 새로운 영화를 보고 평생 들을 수 없는 음악을 가질 수 있다. 로봇 강아지도 있다. 로봇 강아지는 사람들에게 신기한 즐거움을 준다. 그런데 로봇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강아지가 로봇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을까? 사람들은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도중에 인터넷을 하고 싶어 와이브로를 만들었을까?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1년에 두 배씩 증가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행복이 일년에 두 배씩 증가할 수 있을까? 그러나 국회에서 '자 오늘은 반도체 메모리 용량을 두 배 늘리는 법안에 관한 표결이 있겠습니다' 라고 하지는 않는다.
물론 이런 것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빛을 저장하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성공한다면 빛의 속도로 전송된 정보를 전자신호로 바꾸지 않고 빛의 속도 그대로 받아 볼 수 있단다. '빛보다 빠른 인터넷'이라는 황당한 광고 문구도 있었지만, 실제로 '빛의 속도'로 인터넷을 할 수 있는게 꿈은 아니다. 그런데, 나는 마우스 클릭 후, 0.1초 정도는 참을 수 있을 정도의 인내심이 있다고 자부한다. 물리학적으로 흥미로운 연구며, 다방면에 응용될 수 있는 연구이지만, 그것이 세상에 나오는 방식은 '빛의 속도로 인터넷을 즐길 수 있다.'는 정도의 카피에 의해서다. 모든 기술은 연구비를 댄 기업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것을 '혁명적 진보'로 믿게 하는 것 역시 기업 '홍보실'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더 편한 삶이 더 행복한 삶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비극이라면 비극일게다.
빛의 속도 따위의 인터넷이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분야는... 글쎄... '전쟁' 정도? 어떤 험한 지형도 뚫을 수 있는 바퀴 여덟 개 달린, 놀랍도록 유연한 무인 장갑차를 개발했다는 정보를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종류의 자동차가 쓰일 수 있는 것 역시 '전쟁' 밖에 없다. 누구나 다 아는 예를 들어보자. 핵무기는 인류 최악의 발명품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쿠바의 바야모라는 도시에서 만난 여관집 주인 루이스 씨의 잡동사니 투성이 PC방 의자에 앉아 화면을 마주보며 이런 철학적인 고민을 하고 있으니 국내 모 유명 포털 사이트 창 열기가 완료되었다. 역시, '느린 삶'이 인간을 철학자로 만들어준다. 메일 확인을 포기해버린 나는 방금 생각해 낸 철학적 사유 따위는 던져버렸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짜증이 쓰나미를 일으키는 걸 느끼며 PC 방을 나왔다. 물론 루이스 씨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는 건 잊지 않았다.
쿠바 혁명은 절반 이상이 '미디어'의 역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체 게바라가 세운 방송국 '라디오 레벨데(Radio Rebelde)'는 쿠바 혁명의 상징적인 존재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쿠바에서, 21세기형 '민중 미디어'인 인터넷 환경에 물리적인 장벽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쿠바인들은 자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미국 정세'를 제외하고 일반적인 세계 여론 형성 과정에서 멀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간에 실질적인 '정보 통제'의 효과를 내는 게 사실이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쿠바에 인터넷 인프라가 구축되어 많은 이들의 인터넷 접근 환경이 보장된다면, 그 때, 또 어떤 변화들이 생길 것인가? 쿠바식 사회주의가 여전히 고수될 것인가? 아니면 북한처럼 쿠바 정부가 인터넷을 통제하기 시작할 것인가?
바야모 시내의 아침은 활기차 보였다. 아이들은 교복을 입고 등교하고, 사람들은 각자 일터로 떠난다. 그 틈을 뚫고 우린 루이스 씨가 그려준 지도를 들고 시에라 마에스뜨라 산으로 올라가는 관문인 산또 도밍고(Santo Domingo)라는 마을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불과 10여분 후 우린 아무리 자세한 지도를 가졌다 해도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도를 보면 분명 도로는 없는데 마을이 점점이 있는 것이다. 왜 루이스 씨가 쿠바에서 가장 자세한 지도를 두고 구태여 볼펜으로 삐뚤빼뚤한 지도를 그려주었는지 알 것 같았지만 그의 지도 역시 부실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연료 눈금도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었다.
도시 한 복판에 거대한 설탕 공장이 있어 살벌해 보이는 바르똘로메 마소(Bartolome Maso)와 혁명 전쟁의 전적지라는 '야라(Yara)'를 지나고, 여전히 험준한 도로를 타고 가던 중,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갈래 길을 '또' 만나게 된 우리는 산또 도밍고를 찾기 위해 길을 물을 만한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 때 눈에 띤 한 여성분.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이 분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배꼽이 드러난 티셔츠를 입었으며 농기구와 그 외 알 수 없는 잡동사니를 담은 허름한 포대자루를 들고 서 있었다. 우린 그녀에게 다가갔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자동차 뒷좌석을 기꺼이 내어 줄 수 있는 호의로 충만한 우리가 창을 내렸다.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대뜸 이런다. '저기, 태워주실 필요 없어요.'
이를테면 그 여성의 입에서 '저도 산또 도밍고로 가는데, 아이고, 고맙습니다.' 라는 말이 나오고, '고맙긴요 뭘. 당연한 일인데요. 그럼 가셔서 점심 식사라도 함께 할까요? 하하하' 하는 정도의 대화를 기대하고 있던 어리석은 두 남성은 결국 당황했지만, 겨우 '그게 아니고, 산또 도밍고로 가려면 어느 방향이 맞나요? 왼쪽? 오른쪽?'이라고 묻는 데 성공했다.
그 곳이 마침 갈래길이 아니었다면 그 망신을 어쩔 뻔 했을까? 결국 산또 도밍고 마을로 가는 길에 관한 정보를 얻고 우린 서둘러 가속기를 밟았다. 오면서 주유소를 발견하지 못했고 눈금은 아슬아슬한 지경까지 떨어졌다. 일단 잊기로 한다.
길 한복판에서 함부로 뛰어 노는 염소들 앞에서 시간을 지체하고, 한적한 시골의 아이들과 농부들이 있는 병풍같은 풍경을 구경하면서 겨우 뜨란퀴노(?) 국립공원 관리 사무소를 찾아냈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들어가는 입구는 바리케이트로 막혀 있다. 가슴이 철렁 했다. 대충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려 사무소로 들어갔다. 사무실 직원이 스페인어로 뭐라고 말한다.
오늘은 입산 금지란다. 젠장. 아침에 루이스 씨가 가능하다고 분명 말했단 말이다. 그래서 물어보니 자기는 그런 전화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아마 사무소 앞에 있는 몇 군데의 호텔 중 한 곳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을 거라 한다.
'이런, 그렇다면 우리는 이 곳까지 헛고생을 한 거란 말이야? 차라리 안전하게 꼴로라도 해안 쪽으로 차를 돌렸어야 한거 아냐?' 순간 앞이 캄캄해졌다.
그 때 어디선가 작달막한 사람이 또 나타났다. 둘이 대화를 나누더니 우리에게 안됐다는 표정을 보이며 스페인어로 말을 건다. 우리가 난감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영어로 다시 물었다. "그런데 당신들 어디에서 왔습니까?"
('관따나모' 대신 '관타나모', '산띠아고' 대신 '산티아고' 등으로 적는 게 바른 표기법이지만, 여행기라는 특성을 고려해 현지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적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