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여러 차례 지적된 대로 이 대책대로는 단속이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음식점은 정부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64만 개. 쇠고기를 파는 마트나 정육점도 44만 개라고 한다. 합쳐서 108만 개다. 담당 단속 공무원은 600명이니 1인당 1800개 업소를 단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다는 것을 누가 믿겠는가?
그래서 이번에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면서 정부가 내놓은 특별 대책이 단속 공무원을 400명 더 증원한다는 것이다. 1인당 1000개 음식점과 정육점을 단속하라는 것이다. 이제 한국 공무원은 슈퍼맨이 되어 날아 다녀야 자기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모양이다.
그러나 단속 공무원이 설사 슈퍼맨이라고 하더라도 원산지 표시제는 가능하지 않다. 음식점이나 정육점의 원산지 표시제는 '이력추적제(traceability)'의 마지막 조치인데 한국에서 이력추적제는 아직 시작도 안 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부 산하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일본과 유렵의 원산지 표시제는 이렇게 시행되었다.
일본의 이력추적제 및 원산지 표시제 · 2001년 광우병 발생, 이표 체계 정비와 전산화 사업을 조기 추진 2002년 6월 모든 소에 이표 장착. · 2003년 12월부터 생산단계 이력추적제 실시 · 2004년 12월부터 유통 단계 확대 실시(원산지 표시제) |
유럽연합의 이력추적제 및 원산지 표시제 · 광우병 발생으로 소 이력추적제 도입 · 1998년 농장~도축 단계까지 이력추적제 의무화 · 2000년 7월부터 유통 단계까지 의무 시행 확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육류 이력추적제의 도입 방안>, 송주호·우병준, 2007) |
이러한 일본과 EU의 이력추적제와 원산지표시제 도입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이력추적제와 원산지 표시제는 직접적으로는 광우병 때문에 (그리고 이후 그 외 식품안전성 문제로) 시행된 제도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당연히 "생산(production)-도축(slaughter)-가공(processing)-유통(distribution) 과정 전체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래야만 그 원인을 밝히고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둘째 이 이력추적제나 원산지 표시제는 쇠고기 수출입 문제에서 중요 무역 이슈라는 점이다.
"이력추적제는 농업-식품 체계에서의 식품의 질, 특히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도구다 (…) 많은 나라들이 쇠고기와 동물의 안전성을 위해 강제적이거나 자발적인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있고…) 나라들의 상이한 이 제도들이 (…) 쇠고기 제품의 국제 시장에서 중요한 무역 이슈가 되고 있다" (The Economics of Implementing Traceability in Beef Supply Chains: Trends in Major Producing and Trading Countries.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 Department of Resource Economics, 2004)
다시 말해 원산지표시제가 애초에 광우병 때문에 생긴 제도이며, 이 제도는 광우병 원인을 밝히기 위한 제도라는 점이다. 그리고 농촌경제연구소가 말하듯이 "출생되는 송아지부터 이표(귀표)관리를 강제화하는 방안"부터 해야 하고 "생산, 도축 단계부터 먼저 실시하고 가공이나 판매 단계는 순차로 실시"하는 것이 다른 나라에서 하는 방식이다. 식품 안전성을 보장하려면 원산지 표시제(즉 이력추적제)는 생산·도축에서의 실시를 먼저하고 이를 기초로 가공·유통 단계까지, 즉 원산지 표시제까지 시행하는 것이 애초 한국정부가 하려 했던 방식이고 다른 나라에서 모두 그렇게 했다.
그러나 한국정부는 애초에 말했던 "생산-도축 단계에서 (…) 귀표 장착 (…) 이동시 (…) 신고 의무화"도 "도축·가공 단계에서의 도축 결과 보고 및 귀표 미부착 소의 도축 제한"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원산지표시제"부터 시행하려 한다. 순서가 완전히 거꾸로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전혀 이력추적제 준비를 안 하면서 덜컥 광우병 위험이 존재하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했기 때문이다.
제도 시행의 전제가 되는 이력추적제가 시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산지 표시제는 아예 불가능하다. 우물가에서 숭늉부터 찾는 격이다. 농림부도 이 문제를 당연히 알 것이다. 다만 "하나의 거짓말을 덮으려면 열개의 거짓말이 필요한 법이다."
결국 한국은 이력추적제에 앞서 원산지 표시제가 시행됨으로써 그 제도적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부가 져야 할 부담을 최종 유통단계에서의 전국의 대다수 소규모 음식점에게 떠 넘겼다. 더구나 미국 역시 이력추적제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광우병 위험이 큰 미국산 쇠고기의 대책으로 원산지 표시제는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한국에서의 상황이 이력추적제 시행정도가 시범 사업으로 2006년 12월말 9374 농가, 약 21만 5000마리로, 전체 사육소 200만 마리의 10%인 것을 보면 원산지 표시제는 어떤 음식점 주인도 어떤 정육점 주인도 지킬 수 없다.
슈퍼맨 공무원만이 단속을 할 수 있다. 고기만 보고도 이 고기가 어디서 왔는지 꿰뚫어 볼 수 있는 슈퍼맨이 있는 음식점과 정육점만이 원산지 표시제를 지킬 수 있다. 그리고 이 결과 온 국민이 슈퍼맨이 되어야만 이게 미국산인지 호주산인지 아니면 한국산 쇠고기인지를 가려서 먹든 말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국민으로 살려면 온 국민이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이것보다는 재협상이 보다 쉬운 대안 아닐까? 아니면 정권을 바꾸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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