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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지른 놈, 촛불 든 놈, 깃발 든 놈…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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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소리지른 놈, 촛불 든 놈, 깃발 든 놈…잡아!"

[현장] '카우보이 정권'의 씁쓸한 한여름밤 개그

문제는 간단했다. 저녁 시간, 번화가에 사람은 많았고, 인도는 좁았다. 애초 간단한 구호를 외치며 인도를 따라 잠깐 걸으려 했던 400여 명의 사람들은 그래서 한 개 차선을 따라 걸으며 외쳤다. "이명박은 물러나라!"

그러나 경찰 눈에 그런 정황은 보이지 않았다. 촛불이 그저 불안했고, 차도를 사수해야 한다는 일념 뿐이었다. 평소 경찰버스와 전경 부대로 차도와 인도의 경계를 곧잘 허물던 경찰은 손에 손을 잡고 인간띠를 만들어 차도로 나선 '촛불 행렬'을 거칠게 밀어냈다.

그러자 사람들이 인간띠보다 빨리 가려고 뛰기 시작했다. 경찰도 같이 뛰었고 취재진도 뛰었다. 바람결에 불평이 들려왔다. "참, 이 더운 날 꼭 뛰어야 돼?"

10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64차 촛불 집회를 마치고 종로 2가-을지로 2가 등을 돌아 한 바퀴 행진을 하려던 시민과, 이를 기어이 막으려는 경찰의 충돌은 이렇게 시작됐다.

인도에서 경찰에 갇힌 시민들
▲ 인도 행진을 하고 있는 촛불 집회 참가자들. 그러나 비좁은 인도 대신 차도로 행진하자는 요구가 자연스럽게 일었고, 참가자들은 차도 한 개를 따라 행진했다. ⓒ뉴시스

대치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장소는 을지로 입구역 사거리였다. 시민들에게 인도로 올라가라던 경찰은 결국 자기들까지 인도에 올라가 시민들을 둘러쌌다. 졸지에 안에 갇힌 100여 명과 밖에 남은 200여 명의 시민 모두 당황했다. "평화 행진 보장하라", "비켜라"라는 구호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지휘하던 경찰에게 물어봤다. "왜 막나요?" "차도로 가겠다잖아." "인도까지 막고 있잖아요?" "불법행위를 이미 해서 연행하려고." "무슨 불법행위를 했나요?" "말싸움 하기 싫어. 비켜."

경찰이 말한 법은 도로교통법과 집시법이었다. 야간에 신고 없이 한 집회에 참가한 것은 불법이고, 차도 행진으로 교통 흐름에 방해를 줬다는 것. 경찰은 막혀있는 인도 대신 차도로 우회하려는 이들을 거칠게 밀어냈고, 이 과정에서 17세 김 모양이 탈진하는 등 2명의 시민이 부상을 당했다.

잠시 후 경찰의 경고방송이 시작됐다.

"조용히 하고, 촛불 끄고, 깃발을 내리고, 한 사람씩 가면 내보내주겠다."

"소리 지른 놈, 촛불 든 놈, 깃발 든 놈, 얼굴 잘 봐둬."


쏟아지는 경찰의 '폭언'…법은 "경찰 마음대로"

오후 10시 경, 지원 병력이 도착하자 본격적인 진압 작전이 시작됐다. 차도 진입을 막고 있던 경찰 병력이 인도로 대거 진입하며 마이크로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다. 경찰은 다시 한 번 "소리지른 놈, 촛불 든 놈, 깃발 든 놈"을 잡을 것을 강조했다.

"누구더러 놈이야!"라고 항의하던 시민이 연행됐다. '깃발 든 놈'이었던 한 시민도 연행됐다. 그렇게 총 6명이 느닷없이 경찰버스에 태워졌다.

이미 몇 차례씩 촛불 집회에서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내 시민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남대문경찰서 김원준 서장도 마이크를 잡았다. "인터넷TV 촬영 못 하도록 해. 방해되잖아", "카메라 다 치워. 기자들이 잡혀갈 필요 없잖아요", "지나가는 시민 분들, 본의 아닌 부상을 입을 수 있다. 구경하지 말고 가던 길을 계속 가주시길 바란다."

진보신당의 인터넷생중계 '칼라TV' 진행을 맡고 있던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가 김 서장에게 다가갔다. "왜 연행했나요?" "해산 명령을 했는데도 해산을 안 하니까." "그 해산 명령은 경찰 봉쇄선 안에 있던 100명을 대상으로 한 것 아니었나요? 왜 밖에 있던 사람을 연행하죠?" "마이크로 한 미란다 원칙, 다 들었을겁니다."

그에게는 집회를 끝내고 삼삼오오 모여있는 군중에게 해산 명령을 내리면 안 된다는 판례나 마이크로 하는 미란다 원칙 고지가 법적 효력이 없다는 걸 알고 있냐는 질문도 그저 '모른 척'하면 그만이었다. 지켜보던 한 시민이 담담하게 말했다. "대한민국에 법이 없다."

갑작스레 이뤄진 경찰의 진압 작전 뒤에도 연행자 석방 등을 요구하며 자리를 지키던 200여 명의 시민들은 명동성당에서 해산 집회를 갖자는 결론을 내린 뒤 천천히 이동했다. 집회는 12일 집중 촛불 집회를 기약하며 오후 11시를 넘겨 마무리됐다.

한편, 연행이 끝난 오후 10시 30분경 촛불 집회와 관련해 한국을 찾았던 노마 강 무이코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지역 조사관(41)이 현장에 들러 둘러보기도 했다. 취재진의 질문에 "지금은 할 말이 없다"고 짧게 대답한 그는 부상자가 있는 백병원으로 향했다.

"카우보이 정권…물러나면 성금 걷어 환영해줄 것"
▲ 진중권 교수는 촛불의 향방을 묻는 질문에 한 마디로 일축했다. "뭐가 어떻게 돼. 이렇게 계속 가는거지." ⓒ뉴시스

"여기, 미국산 쇠고기가 좋다고 여당 의원들이 시식하는 나라다. 그런 뉴스 보고 안 나올 수 있겠나. 그러면서 한국 경제를 일으킨다고?"


김 모씨(60대 중반)는 "한우 시식회를 하지는 못할 망정, 한우부터 관리해야 한다며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정권이 이 정권"이라며 개탄했다. 그는 "이 정부는 미국 소를 파는 '카우보이 정권'"이라며 "카우보이가 청와대에서 폼을 잡고 있는 모습이 우리에게 훤히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환율이 오르면 물가가 뛴다는 건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라며 "우리가 금 팔아서 만든 보유고로 자기들이 한 실책을 막는 정부가 어이없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전승욱(45) 씨는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잘 한 것 한 가지, 재산 헌납 얘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차라리 안 내도 좋으니 그 돈 가지고 제발 물러나서 미국이나 일본 가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정부가 너무 불신의 벽을 키워서 이제 물러난다고 해도 국민들이 안 믿을 것 같다"며 "그래도 물러나겠다고 하면 국민들이 성금을 걷어 환영해줄 것"이라고 꼬집었다.

윤란(24) 씨는 "정부는 자꾸 꼼수를 부리고, 난국을 헤쳐나가는 방법이 기껏해야 공안 정국"이라며 "반성을 못 하는 정부에게 국민 의견을 내보일 수 있는 방법은 촛불 뿐"이라고 말했다.

진중권 교수는 촛불의 향방을 묻는 질문에 한 마디로 일축했다. "뭐가 어떻게 돼. 이렇게 계속 가는거지."
교수·의료·문화단체 연속 기자회견…주최 측 전화, 경찰에 '도청'당해
▲ 10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진행된 연속 기자회견에는 촛불 집회에 참가하려 모인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다. ⓒ뉴시스

경찰이 '잔디보호'를 이유로 봉쇄한 서울시청 앞 광장 대신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열린 이날 촛불 집회는 '촛불을 지켜내려는 시민들의 모임' 주관으로 열렸다. 앞서 같은 장소에서 기독교 대책위의 '시국 기도회'와 교수단체, 의료단체, 문화단체 등이 연쇄 기자회견을 연 직후였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교수노조, 학술단체협의회는 기자회견문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이 참을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서고 있다"며 "대한민국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의 기업도 아니며 사적인 종교 활동 기관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소망교회에 함께 다니는 강만수 기획경제부 장관를 경질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건강권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촛불 집회에서 경찰폭력이 얼마나 부분별하고 잔인한지는 2000명 가량 되는 부상자의 부상 부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부상자의 80% 이상이 안면부위 및 두부 부상을 입었고, 두부 부상의 절반 이상은 후두부 부상이었다"며 "다시 말해 경찰은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는 시위대를 바로 앞에서 곤봉이나 방패로 가격한 것이고 심지어 도망치는 시위대를 쫓아가 뒷머리를 가격했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부상당한 전경들과 시위대를 함께 치료하던 의료봉사단마저 방패와 곤봉에 쓰러지고 군화발에 짓밟혔고, 심지어 부상자를 들쳐 업고 도망치는 의료진을 골목까지 뒤쫓아와 위협했다"며 "전쟁터에서조차 벌어지는 않는 비인도적 만행이 대통령과 경찰청장의 사주 하에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미FTA 저지와 문화다양성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두 달여간 국민들은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문화를 만들었다"며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국민들의 자발적인 문화적 힘을 두려워하며 이를 폭력적으로 탄압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민의 자발적인 문화적 힘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국가적 자산'"이라고 강조한 뒤, 11일 오후 보신각 앞에서 문화예술인의 시국 선언이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연속 기자회견을 맡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관계자의 핸드폰이 경찰에 의해 도청되고 있다는 사실이 경찰의 실수로 밝혀지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기자회견 전후로 어느 번호로 전화를 해도 '서울시경입니다'라고 답하는 사람에게 연결됐다"며 "매일 촛불 집회를 불법이라고 몰아붙이는 경찰한테 지금 누가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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