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권 아파트 가격 하락은 부동산 시장의 침체를 넘어서 그동안 부동산 투기로 형성된 버블 붕괴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냐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악의 경우 부동산 버블이 붕괴할 것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지만 전문가들은 지금 추세가 적어도 올해 하반기까지는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문제의 근본 원인이 거시경제 전반에 걸쳐 있기 때문에 단순한 규제 완화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4억 하던 아파트가 11억 원에…
사교육 붐을 타고 강남 집값 상승을 주도했던 대치동 분위기는 심상찮다. 이명박 정권 출범으로 가졌던 아파트값 재상승 기대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교육 목적 입주자가 많은 은마아파트의 경우 11일 현재 매매가가 3억 원 가까이 빠졌다. 34평형(112㎡)은 11억 원대에 매물이 나온다. 아파트값 상승세가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2006년 말에는 14억 원에도 팔렸다. 31평형(102㎡)은 9억 원대에 거래된다. 역시 2억 원 이상 빠진 상태다.
그나마 거래라도 되면 다행이다. 이 지역에서 아파트 거래는 모습을 감춘 지 오래다.
ㅊ부동산 중개업소의 김근식(가명) 사장은 "근방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가 40개에 이른다. 은마아파트에 4500여 세대가 입주해 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지금까지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전체에서 이뤄진 매매가 11건에 불과하다"고 언급했다.
인근 우성아파트와 선경아파트 역시 상황이 다르지 않다. 우성아파트의 경우 2006년 말 16억5000만 원에 달하던 31평형 아파트 매매가가 지금은 13억 원이다. 한 때 28억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던 선경아파트의 55평형(182㎡) 아파트 매매가는 지금 25억 원이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는 "올해 들어 우성, 선경을 합쳐 거래된 게 10건이 못 된다"고 귀띔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는 지난 수년 간 아파트 가격 상승을 주도했던 강남권 지역에 집중된 모습이다. 부동산뱅크 이정민 연구원은 "이른바 '버블세븐' 지역으로 불리던 강남권과 경부라인의 고가아파트에서 집중적으로 거래가 낙폭이 커지고 있다"며 "강남 일부 지역 아파트에서는 미분양 사태도 생기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 강남권 재건축 단지로 관심을 끌었던 반포동 자이아파트의 경우 청약경쟁률은 2:1을 보여 식지 않은 강남권 아파트의 인기를 반영하는 듯 했으나 막상 분양 과정에서는 당첨자의 40%가 계약을 포기해 미분양이 속출했다.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는 침체된 경기와 맞지 않게 턱 없이 높은 분양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반포자이의 경우 3.3㎡당 분양가가 3300만 원에 달했다. 매매가와는 상관없이 지난 수년 간 적용된 강남권 아파트의 평균 단가를 그대로 적용한 게 화근이었다.
심지어 서울 상도동 신원 아침도시의 경우, 건설사에서 3.3㎡당 분양가를 2200만 원에 내놨다 미분양 사태가 속출하자 2000만 원으로 낮춰 재분양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이 연구원은 "대출규제가 강화돼 실수요자와 전세입주자 모두 입주 부담을 느끼는 상황에서 분양가 자체가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건설업계가 분양가 자체를 높게 잡은 것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했다.
물론 서울지역 모든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진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저가 아파트가 몰린 지역의 아파트값은 각종 호재를 타고 오르고 있다. 강남권 입주 포기자들의 수요도 이 곳으로 집중되는 모양새다.
닥터아파트 조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 가장 높은 매매가 상승률을 기록한 권역은 강북권이었다. 뉴타운 개발 호재와 새 사교육 붐 등이 겹쳐 강북권의 지난 6개월 간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14.2%에 달했다. 특히 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등 이른바 '강북권 빅3'로 꼽히는 지역의 평균 상승률은 20%가 넘었다.
서부 지역도 높은 오름세를 보였다. 지하철 9호선이 지나가는 강서구와 '서남권 르네상스' 개발 호재를 탄 금천구 등도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이 연구원은 "뉴타운, 재개발 등 각종 개발 호재가 이어지는 데다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비용 부담 증가도 이 지역 아파트 입주 수요를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으로 꿈틀대던 강남이…
강남 지역의 부동산 침체는 한 동안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강남권 아파트 가격이 그간 실수요가 아닌, 투자 수요에 의해 움직였다는 게 원인이다. 투자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지금 시기에 '투자 상품'인 강남권 아파트 거래 시장이 침체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다.
국민은행 금융상담센터의 김연화 부동산팀장은 "지금은 경제 전반적으로 모든 금융 상품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기다. 부동산 투자 시장이라고 예외가 아니다"며 "내년 상반기까지도 지금과 같은 거래 실종 상황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특히 강남 지역의 경우 내년 상반기까지 2만8000여 세대에 달하는 입주 물량이 예정된 상태"라며 "투자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공급 증가에 따른 매매가 추가 하락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대출금리가 날이 갈수록 오르는 상황도 강남 부동산 시장을 옥죄고 있다. 최근 일부 은행에서는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최고 9%를 넘어섰다. 고액 대출자의 부담이 그만큼 커진 셈이다. 대출 기준이 DTI(총부채상환비율) 도입으로 소득에 따라 갈라지는 효과가 나타나는 모양새다.
이 연구원은 "작년 분양가 상한제가 나오면서 강남권의 집값 하락이 본격화된 데다 대출규제 강화도 이 추세 연장에 큰 원인이 됐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재반등 기대감이 줄어드는 모습"이라고 언급했다.
건설산업연구원 엄근용 연구원 역시 강남권 부동산 시장 위축의 원인으로 고금리 추세를 지적했다. 그는 "물가 상승 추세가 이어지는데다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면서 투자 상품으로 여겨지던 강남 부동산 시장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며 "지금 당장은 '관망하자'는 분위기인 듯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남권의 '불패' 신화는 근본적으로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되살아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 소식에 가장 먼저 꿈틀거리던 강남 부동산 시장이 역설적으로 이 대통령 취임 후에 더 기운이 빠져가는 셈이다.
엄 연구원은 "근본적으로 부동산 경기 회복은 우리 경제 전반에 걸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생각하기 어렵다"며 "각종 거시경제 변수가 개선되지 않는 한 마땅한 해결책을 찾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김 팀장 역시 "스태그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지금 부동산 경기가 무릎까지 왔는지 발밑으로 떨어졌는지를 거론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며 "경제 전반적인 침체 분위기를 부동산 시장도 따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경제 주체 신뢰를 회복해야 살아난다"
부동산만이 문제가 아니다.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는 데다 그에 따른 경제 기조 자체가 깊이 가라앉고 있다. 부동산 거래 가격을 비롯해 대표적인 경기선행지수인 주가도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 침체) 가능성마저 거론되는 형국이다.
결국 해법은 정부가 경제 주체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임경묵 연구위원은 "지금 정부는 단기적인 시각을 갖고 허둥대는 듯 보인다. 초기에는 '성장이 중요하다'는 모습을 시장에 보였다가 결국 물가 중시 기조를 보인다. 이런 게 국민 전체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정부가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정책을 추진해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임 연구위원은 또 "정부가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인식도 버려라"고 충고했다.
부동산 시장을 단기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시장 관계자는 "단기적인 시장 상황 변동에 정부가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지나치게 건설업자 편을 드는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에서 안 팔리는 미분양 주택을 사줄 생각은 접어라. 차 많이 만들었다가 안 팔린다고 정부에서 차도 사주나"고 반문하며 "건설사가 사실 너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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