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농무부 식품안전검역국(FSIS)이 9일(현지시간) 한국 수출용 쇠고기에 관한 규제안을 공고했다. 여기에는 한국 수입업자와 미국의 수출업자들은 상업적 이해에 따라 품질평가시스템(QSA) 프로그램에 근거해 30개월령 미만의 쇠고기를 교역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한국 소비자들의 우려가 해소될 때까지만 취해지는 한시적 조치다.
한국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가 정치권은 물론 의사들까지 합세해 앞다퉈 열리고 있다. 지난 두 달간 촛불 집회를 통해 끈질기게 요구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정부가 끝내 외면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여전히 재협상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전문가 자문위원회는 10일 오후 서울 대학로 서울의대 함춘회관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왜 재협상만이 대안인가?' 토론회를 열고 추가협상의 헛점과 재협상의 필요성을 경제적, 법적, 의학적인 관점에서 조목조목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30개월 이하 쇠고기 증명 안 한다"
송기호 변호사는 "오늘(10일) 미국 FSIS가 발표한 내용 중 첫 번째로 중요한 점은 O157:H7이라고 하는 맹독성 대장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작업장이 수출 승인 명단에 포함됐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FSIS는 지난 달 30일과 지난 3일, 두 차례에 걸쳐 네브래스카 비프(Nebraska Beef)사의 분쇄육 및 쇠고기 전체를 O157 대장균 감염 위험을 이유로 자진 회수 조치했다.
송 변호사는 "지금 상태로는 이 작업장에서 생산되는 분쇄육이 한국으로 당장 수입될 수 있다"며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위생검역협정 권한을 이용해 네브래스카 비프에 대해 신속히 수출 중단 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국 도축장의 자율적인 관리, QSA의 내용이 무엇인지 이제 정부가 공개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미국 도축장들이 확인하는 기준이 불분명한 치아 감별법인지, 이력추적제인지에 관한 핵심적 문제를 정부가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송 변호사는 "FSIS 공고문을 보면 미국 도축장이 30개월 미만 쇠고기만을 한국에 수출할지에 대한 문제는 이들 사업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며 "해당 제품이 30개월 미만이라는 것을 미국 검역 당국이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QSA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도축장에서 표기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즉 해당 제품에 대한 미국 농무부의 심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며 "미국 정부가 증명하는 것은 생산자가 QSA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 아직도 FTA 가능하다 믿고 있나"
이해영 한신대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9일 부시 대통령에게 미국-콜롬비아 자유무역협정(FTA)이 의회에서 처리될 때 한미 FTA도 같이 처리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요구가 정상회담에서 이야기되는 것 자체가 이 정부가 얼마나 엉터리 정보에 기초해서 사태를 악화시키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해영 교수는 "미국-콜롬비아 FTA의 경우 신속처리(TPA) 적용이 배제됐기 때문에 이게 언제 처리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며 "만에 하나 대선에서 공화당이 이기더라도 미 상하 양원은 민주당이 장악할 것이 확실한 가운데 내년 1월 20일 전까지 부시가 한미 FTA를 미국-콜롬비아 FTA와 함께 처리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FTA 처리에 필요한 최소 회기 일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부시 임기 내 비준동의는 명확히 불가능하다"며 "쇠고기라는 국민의 건강과 생명권이 걸려있는 문제를 갖다 바치면서까지 FTA를 요구했는데 비준 안 된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하나"고 질타했다.
그는 "쇠고기 논란은 어쩔 수 없이 계속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쇠고기 재협상이 가능한 몇 가지 예상 시나리오를 나열했다. 그는 "첫 번째는 헌법재판소에서 장관 고시를 위헌이라 판결할 경우, 두 번째는 가축전염예방법 개정하는 경우, 세 번째 정부 스스로 주변국 협상 결과에 따라 재협상에 나서는 경우, 네 번째, 미국에서 오바마 후보가 당선되고 민주당이 장악하고, 우리 측이 FTA 재협상에 쇠고기 재협상을 맞불 카드로 내놓을 경우, 마지막으로 촛불의 위력이 계속되면서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하게 재협상하는 경우"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는 논리적 가능성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국민 스스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내리는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3500원 내장 수입하면서 15만 원 들여 검사하겠다고?"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장관 고시 이후 시행되고 있는 국내 안전 대책의 허술함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우석균 실장은 "논란이 되고 있는 원산지 표시제는 단속이 가능하냐가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며 "이력추적제 없이 시행하는 원산지 표시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력추적제는 생산, 도축, 가공, 유통의 모든 영역에서 실시하는 것이며 그 순서는 생산 도축에서부터 시작하여 유통단계로 확대하는 것이 제도적 실효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며 다년간에 걸쳐 이력추적제를 정착시킨 유럽연합(EU)과 일본을 예로 들었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부터 하고 나서 유통단계에서 원산지 표시제를 시행하는 건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인지 정부에 묻고 싶다"며 "애초 불가능한 제도를 시행하고 음식점 주인들에게 이를 '가능하게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이미 농촌경제연구원을 비롯해 정부에서도 주장한 내용"이라며 "어느 날 갑자기 바뀐 정부의 태도는 얼마나 국민을 바보로 아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우 실장은 "결국 원산지 표시제에 책임을 져야할 정부가 이를 소규모 도매상, 소매상에 떠넘기고 있다"며 "정부가 현재 발표한 원산지 표시제는 명백하게 사기"라고 규정했다.
또 우석균 실장은 정부가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일부 부위에 대해 검역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계획에 대해서도 터무니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혀와 내장을 해동해 3% 가량을 개봉검사 한다고 한다"며 "문제가 된다면 수입을 하지 말아야지 왜 3500원 내장에 15만 원을 들여 검사를 하는 황당한 일을 해야 하나"라고 되물었다. 그는 "또 2002년 FSIS 검사에서 SRM이 88% 이상 발견된 회수육과 분쇄육은 조직검사에서 아예 빠져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뿐만 아니라 2003년을 기준으로 혀만 해도 900톤(t), 내장은 3만6000톤 정도의 수입 물량이 있다"며 "이를 부분적으로라도 해동해 조직검사를 하려면 지금보다 수의과학검역원 직원을 천 배쯤 늘려야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