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왔지만, 뭔가 아쉬웠던 우리는 다시 24시간 편의점을 찾았다. 아침에 본 직원은 또 바뀌어 있었다. 밤에 두 명, 아침에 두 명, 저녁에 두 명, '이 가게는 점원이 도대체 몇 명일까?' 해서 물었다. "매니저 두 분과 점장을 포함해서 11명이예요."
이쯤에 쿠바의 실업률 제로의 비밀이 있었다. 이 코딱지만한 가게에 점원이 11명이다. 다른 곳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고 한다. 우리가 인포매이션 센터로 이용했던, 벨보이 아저씨를 만난 호텔, 샤또 미라마르의 직원들도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었다. 모두가 직업을 가지고 있고, 오르가노뽀니꼬(Organiponico)와 같은 도시농을 통해 모두가 국가적 과제인 식량 생산에 한 몫을 한다.
쿠바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조금 전에 만났던 미스테리의 여성들처럼 거리를 쏘다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시가 공장에서 물건을 빼돌려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찰라, 어디선가 벨보이 아저씨가 등장했다. 손에 커다란 금반지와 고급 시계를 차고, 패션 모델 저리가라 하는 옷차림을 한 채였다. 그 옆에는 가무잡잡한 젊은 여성이 벨보이 아저씨의 팔을 꼭 붙들고 있었다. 우리를 발견한 벨보이 아저씨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우린 영어로, "부인이신가 봐요? 미인이시네요"라고 물었다. "예쁘죠? 그런데 아내는 아니에요"라고 대꾸하는 벨보이 아저씨 옆에서 잔뜩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그 여성분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부인이 아니라는 말에 머쓱해진 우리는 의례적인 안부 인사를 했다. 별로 반갑지 않은 듯한 표정을 짓던 벨보이 아저씨는 하나에 1쎄우쎄나 하는 맥주 수 십 캔과 럼주, 그리고 먹을 것을 잔뜩 사들고 여성분과 함께 총총히 사라져 버렸다. 벨보이 아저씨의 주머니에서 나온 그 많은 쎄우쎄는 어디서 났을까? 그리고 그 여성분은 누구일까? 젊은 애인?
누가 봐도 명백한 일 아닌가? 벨보이 아저씨 옆에 착 달라붙어 있는 여자는 그의 아내가 아니란다. 불륜이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 없지만(물론 결혼한 사실을 물은 적은 없다.) '애인'일 것이다. 그리고 오늘 밤은 '파리타임~'.
벨보이 아저씨의 스타일은, 적어도 그날 밤의 스타일은 쿠바로 관광 온 성공한 사업가의 이미지였다.
쿠바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을까?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큰 사건이 하나 있긴 하다. 2008년 2월 24일,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여든 한 살 피델 카스뜨로(Fidel Castro)의 동생인 일흔 여섯 살 라울 카스뜨로(Raul Castro)는 공식적으로 권력을 승계 받았다.
1995년, 피델 카스뜨로의 중국 방문 당시 수행원이었던 그는 중국의 '개혁, 개방'을 인상 깊게 관찰한 바 있다고 한다. 그리고 피델의 물론 쿠바는 개혁과 개방 대신 관광 산업의 발전을 택했고, 90년대 초의 엄청난 식량난, 에너지난에도 스스로의 고행을 포기하지 않았다. 국내외적 노력과 도움으로 현재, 쿠바는 겉으로 보기에 나름의 성과를 거둔 상태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차례는? 라울 카스뜨로는 여러 개혁 조치들을 단행하고 있다. 물론 후의 일이지만 피델이 라울의 이런 저런 개혁 정책에 입을 다물고 있다가 공산당 기관지인 '그란마(Granmma)'에 사설을 내고 비판을 한 적도 있었다.
라울은 내국인도 관광객들처럼 일반 호텔과 달러 상점에 출입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핸드폰의 소유도 가능해하게 했다. 물론 핸드폰 통화량은 '국가'에서 통제한다. 가전제품의 소유가 허가된 것은 꽤 오래전 일이고, 최근에는 개인도 퍼스널 컴퓨터를 구입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컴퓨터 사용에 관한 새로운 규정들을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쿠바는 2003년, 전력 부족의 이유로 개인의 컴퓨터 소유를 금지시킨 바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근본적인 화폐 개혁 없이 시행되고 있는 일이다. '여행자 수표' 개념의 컨버터블 뻬소가 이미 '공식 화폐'로 내국인들의 삶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달러 상점과 내국인 상점의 물가가 거의 스무 배 이상 차이 나는 것을 볼 때, '아슬아슬'해 보이는 일이다.
물론 화폐를 통합해 개혁하는 것은 '시장 개방'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당장 불가능한 일이다. 너무 이야기가 앞서나갔나?
하지만 이 모든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쿠바의 개혁 조치들이 의미 없는 일들이라고 깎아내리고 있는 중이다.
정치체제가 근본적으로 민주적이지 않기 때문에 지도자 한 명의 판단이 정책의 기획과 집행에 100% 가까이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면 아직 쿠바 사회가 어떻게 나아갈지는 모르는 일이다.
새로운 국가 모델이 탄생할 것인가? 아니면 전 세계의 주류 경제학자들과 지도자들을 만족시켜주는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광고판이 탄생할 것인가?
철학자 삐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현대 사회를 '법률적 픽션(Fiction, 지어낸 이야기)'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사람들은 '해야 한다', 혹은 '하면 안 된다'는 수많은 금지 항목을 만들어 놓고, 문자로 규정된 그 사항들을 '사회적 합의'라 착각한 후, 그 테두리 안에서 관계를 갖는 것이다. 그것은 법률의 '창작', 그리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픽션'에 관한 이야기다.
픽션이 픽션이기 위해서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법칙을 배반하는 것만큼 흥미진진한 것은 없다. 그리고 한번도 공인된 적인 없는 창조적인 행위들은 가끔 '예술적'이기까지 하다.
예를 들어 법률을 비웃으며 씨줄과 날줄로 엮어진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가는 '사기'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종류의 사기가 아니더라도 인간이 창작한 법률이라는 원단은 기본적으로 성기게 짜여졌기 때문에 법률을 배반하는 많은 일들은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당연한 거 아냐?
모든 인민의 평등을 규정한 쿠바의 법률도 마찬가지다. 앞서 이야기한 벨보이 아저씨와 같은 사람들은 관광객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규정된 액수 이외의 수입이 생기기 마련이다.
비관광업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럴 기회를 마련할 수 없다. 그래서 공장에서 빼돌린 시가를 은밀한 호객행위를 통해 길거리에서 판매하거나, 노동청 몰래 관광 가이드를 하거나, 혹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매춘'을 택하기도 한다.
쿠바라는 지구상에 몇 남지 않은 사회주의적 픽션 사회를 흥미진진한 곳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신 빈부 격차'다. 국가 기간산업이 되어 버린 관광업을 키우기 위해 만들어낸 새로운 픽션, 이중 경제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쿠바는 '모든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는 '윤리적 픽션'이 강하게 작용했던 체제였다. 그러나 관광업의 발전으로 인해 기형적인 부의 축적이 가능해지면서 윤리적 픽션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물론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모든 쿠바 사람들이 미친 듯이 더 좋은 '상품'을 소유하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런 욕망의 법칙이 일부에서, 특히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업종의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것이라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임에 분명하다.
관광업은 쿠바가 선택한 일종의 타협점이다. 세계 경제 시스템 안에 일정부분 편입되길 희망한 것이었으며, 세계 경제 시스템의 일정부분을 자국에 도입한 셈이다.
물론 '시장 개방'은 아니지만 외화가 쏟아져 들어오는 방식의 '산업'이 그 외화가 초래할 여러 형태의 '개방'을 방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쿠바 내에는 이미 서구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일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쿠바는 지금, 원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자연스럽게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습득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50년 전의 그것보다 늙었지만 훨씬 세련되고, 또 훨씬 악랄한 형태다.
많은 사람들은 쿠바의 그런 윤리적 픽션을 비웃으며, 그럴 줄 알았다, 라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힘을 자신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무차별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법률로 버젓이 명기되어 있는, 소위 '자유주의' 국가들이랍시고 떠드는 말씀들이다.
사실은 악랄한 자유주의 국가들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윤리적 픽션'의 원리로 움직인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스스로가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라고 믿는 그들 자신뿐이다. 자유의 전파를 지상의 과제로 삼는 미국 등의 선진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통제 하에 두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미국이 만들어낸 '자유주의적' 숭고한 논리에 의해서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민중의 안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미국소 수입을 반대하는 시민들을 청와대 앞에서 부차별적으로 '까대는' 진압을 정당화해주는 것 역시 그 '자유주의적' 논리인데, 이를 통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먹지 않을 자유와 수입할 자유는 똑같이 보장되어 있다. 즉, 안 사 먹으면 그만이다, 라고 하는 이 부분쯤이 바로 '자유주의'라는 윤리적 픽션의 한계다.
다음 날에도 아바나 사파리는 시작되었다. 막시모 고메스(Maximo Gomez, 쿠바 독립 영웅) 동상이 있는 라 비에하(La Vieja, 아바나 구시가지)지역에서 어슬렁거리던 우린 거리 공연도 볼 수 있었다. 쿠바 전통 음악과 어우러진 주술적인 분위기의 연극이었는데, 공연을 보고 있는 다른 많은 사람들과 달리 우린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아마 '인간이 존재하기 전'의 원주민 전설을 아이들을 대상으로 각색한 것 같았다.
거리는 평화로웠고, 사람들은 즐거워보였다. 가장 밝은 표정을 가진 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 공원에서 야구를 즐기는(그야말로 '하는' 이 아니라 '즐기는') 꼬맹이들을 만나는 일이란 참 쉽다.
그냥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사람 반토막만한 아이들의 야구 실력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재빠르게 몸을 날리며 공을 던지는 손목의 스냅을 보고 있자면 괜히 내 몸 속에서 찌르르 전기가 통하기도 한다. 공은 종이 뭉치를 단단하게 말아 천으로 감아 만든다. 배트는 그냥 각목이다. 나이가 좀 있는 아이들은 꼬맹이들의 놀이를 보면서 훈수도 둔다.
그 중 한 친구는 나를 보더니 내가 쓰고 있는 야구모자에 관심을 갖는다. "제가 훌륭한 야구선수가 될 수 있게 선물로 모자 제게 주시면 안 되나요?"
내 대답은 "물론 아니요"다. 이 친구는 실망한 표정으로 다시 야구하는 아이들 무리로 들어간다.
쿠바인들을 만나면 세계 최고의 야구 실력을 가진 사람들답게, 우리가 한국인임을 밝히는 순간 대화는 2006년에 열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일본에게 패했던 4강전의 아쉬움을 토로하며 심판과 일본 야구를 욕하는 데 기꺼이 동참한다. 쿠바 사람들 역시 모든 경기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다.
두 번이나 일본을 이기고 4강전에서 진 것은 근본적인 대회 운영 시스템의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곧바로 '미국인들이 만든 거니까' 라는 근거 없는 원인을 첫 손에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팀이 미국을 누른 것도 함께 기뻐할 수 있다.
모로 요새가 보이는 아바나 비에하에서 만난 낚시꾼 할아버지와 함께 신나는 야구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이런 말을 묻고 싶었다. "북한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름대로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는 동맹국의 국민이니 얼추 대답을 예상하고 있던 우리지만,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북한? 에이, 북한은 엉터리야."
"아니 엉터리라뇨? 왜요?"
"왜는, 그들은 민주적이지 않아."
아니, 민주적이지 않다니, 그럼 쿠바는 민주적인가? 우린 살짝 당황해서 쿠바의 민주적이지 않는 시스템을 들먹였다. "쿠바도 피델이 수 십 년간 집권했잖아요? 그렇다면 쿠바는 민주적인가요?"
"하하하, 서양의 잣대로 따지면 민주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지. 하지만 내가 말한 민주적이란 말은 말 그대로야. 우리가 주인이 되는 사회지. 피델은 우리 친구고."
눈에 보이는 제도적 절차 확립을 '증거해야' 하는 '과학적 방법론'을 신주단지로 모시는 정치학자들이 들으면 큰일 날 소리들이다. 쿠바인들은 하지만 그런 '샤머니즘'에 가까운 민주주의 이론을 당연시한다.
하긴, '내 친구 피델'이라는 단어 조합이 가능한 나라와 '위대한 장군'을 섬기는 나라는 분명 다르긴 하다. 베네수엘라에 이어 북한 역시 하수로 두고 있는 저 쿠바인들의 자존심이란 대단하다.
쿠바인들은 다른 어떤 나라 못지않게 자유로워 보인다. 물론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미국이나 유럽으로 망명길에 오른 자유주의자들도 많다. 이런 억압은 매우 불합리한 것이다.
'내 친구 피델'이라는 말이 허용된다고? 딱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정치활동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쿠바의 정치범은 희한하게도 많지 않다. 대부분 망명했고, 또 쿠바 정부가 망명에 상당히 관대하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미국이 추산하는 쿠바 내 정치범은 270명 정도다. 쿠바 태생으로 망명해서 미국 관리로 가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은 미국의 훌륭한 확성기가 된다. 그리고 쿠바인들은 '억압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억압과 공포'라는 단어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인 신념 때문에 탄압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처참한 심정과 안위는 어떨까. 북한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정말 바른말을 잘하는 나라다.
하지만 문제는(어쩌면 다른 모든 '바른말'을 '바르지 않은 말' 보다 더 '바르지 않게' 만드는 문제일 것이다.) 입만 열심히 바른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의 경찰 미국이 잡아 족친 정치범은 어림잡아도 쿠바 정치범의 수 천 배는 될 것이다.
게다가 전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특성상, 정치범의 국적은 사상 유래 없을 정도로 다양할 것이고. 물론 그들이 '정치범'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고 '테러리스트'로 분류되어 있는 미 행정부 아카이브의 목록 분류 시스템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한 번도 밝혀진 바 없다.
자본주의의 시스템을 일정부분 받아들이고 있는 쿠바에도, 우리가 지금까지 통과한 나라들에서 본 수많은 거지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엄연히 구걸하는 자들은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은 왠지 자존심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산 살바도르 데 라 뿐따 요새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트럼펫을 연주하고 있는 알렉스(Alex)라는 가난한 예술가를 만났다. 우리가 사진기를 들이대며 '찰칵' 소리를 내자 정중하게, 사진을 찍는 것은 좋지만 사진기 소리가 자꾸 연주에 방해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흐뭇한 표정으로 미안해했다.
"치킥, 소리가 방해가 되네요."
"아, 미안합니다. 계속 연주하세요. 사진은 찍지 않을게요."
"네, 감사합니다."
...
"어디에서 오셨나요?"
"남한에서요."
"아, 한국... 월드 클래식 베이스볼 기억하시죠?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잘 했죠. 다만 운이 나빴을 뿐이예요. 한국 야구, 정말 잘하더군요."
"그 게임 기억합니다. 한국은 야구를 잘 하는데, 쿠바는 더 잘하죠. 세계에서 최고죠. 쿠바가 미국을 이긴 경기는 저도 봤어요."
"하하하, 쿠바 야구는 최고죠. 그런데, 당신은 전문 사진작가같네요."
"사실 우린 기자들입니다."
"아, 사진기자요."
"네, 글도 함께 쓰죠. 쿠바 여행기를 쓰려고 한답니다."
"예술가시군요. 저처럼요."
"예술가는 아니고요. 하하하, 그런데 당신은 트럼펫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나요?"
"네 저는 밴드를 합니다."
"멋지군요."
"그런데, 사실 이 트럼펫이 망가졌어요. 이 세 번째 피스톤이 말을 듣지 않아요."
"저런."
"그래서 악기 수리점에 갔더니 20쎄우쎄를 달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불행히도 저는 10쎄우쎄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악기를 고치지 못했죠. 지금 이 세 번째 피스톤을 쓰지 않고 연습을 하고 있는거랍니다."
"아, 그런 사정이... 정말 유감이네요."
"저는 악기를 고치고 싶어요. 그래야 제대로 된 연주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는 다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런 그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가 갑자기 트럼펫을 입에서 떼더니 다시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우리는 이 친구가 뭘 원하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세 번째 피스톤이 말을 듣지 않네요. 빨리 고쳐야 하는데, 돈이 모자라서..."
수준급의 연주 실력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이 친구의 모든 의도를 알아채고서, 주머니에서 20나시오날 뻬소를 꺼내 '선물'이라며 쥐어주었다. 1쎄우쎄가 안 되는 돈이지만 그는 매우 고마워하며 받아 챙겼다. 다른 사람들도 눈치를 보며 관광객들에게 접근해 "선물로 동전 좀 주시겠어요"라고 웃으며 말하기도 한다.
아바나의 밤거리는 안전하다. 밤늦게 쏘다녀도 아무 문제없다. 다만 관광객에게, 특히 동양인에게 접근해오는 각종의 호객꾼들을 따돌리는 일은 조금 짜증이 나기도 한다.
밤의 말레꼰 해안도로는 낚시하는 사람들과 연인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그리 밝지 않은 거리의 조명은 나름 운치도 있다. 물론 여전한 에너지 부족 문제 때문이겠지만, 관광대국다운 모습을 보여 밤거리를 떠도는 달러 덩어리들을 흡수하려면 이 정도의 서비스는 기본이어야 한다.
밤에 보는 모로 요새의 등대는 아름답다. 9시 정각, 대포 소리가 들린다. 과거 아바나 항에 들어오는 해적들을 위협하기 위한 목적으로 쏘던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저 낭만적인 아바나의 밤, 쏟아져 나온 사람들의 가슴에 낭만적인 '점' 하나를 찍기 위한 명물이 되었다.
다음날엔 렌트카를 빌려야 했다. 다행히 코트라에 계신 한국인 직원분께서 개인적으로 아는 국영 렌트카 지점을 소개시켜주었고, 부활절 연휴 기간이라 렌트카 공급이 딸린다는, 최악의 시기에 방문했음에도 차를 구할 수 있었다. 이제 고속도로를 타고 쿠바를 종단하는 일만 남았다. 시간은 많지 않다. 하지만 보고 느껴야 할 것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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