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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명의 108배…"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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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명의 108배…"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

[현장] 묵언 행진 후 단식 법회 시작…"5일 다시 만나자"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부터라도 '편가르기'를 그만 하십시오. 종교를 편향적으로 대하고, 가진 자만 배려하고(…) 자꾸 이런 일이 계속되니, 산 속에 있는 나까지도 이 사회에 과연 정의라는 게 있는지 가슴 깊이 의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4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 합천 해인사 강주(講主) 법진스님의 '동참말씀'에 앉아 있던 스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은 곧 하안거(夏安居) 수행정진 기간임에도 전국 각지에서 모여 유래없는 대규모 시국법회를 가능케 한 1000여 명 승려들의 마음이기도 했다. 또 앞서 시국미사와 시국기도회를 개최하며 "절제가 의미없게 됐다"고 탄식한 사제와 목사들의 호소와도 일맥상통했다.

이날 시청 앞 광장은 그야말로 커다란 '야외 법당'이 됐다. 조계사에서 출발한 수천 명의 승려와 신도 행렬이 법고가 울리는 가운데 광장으로 들어설 때부터 광장은 경건함과 감격이 한데 어우러졌다.

법회 끝 무렵, 승려와 신도가 함께 108배를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절정에 달했다. 침묵 속에서 울려퍼지는 참회문에 맞춰 절을 올리는 승려와 신도, 그리고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3만 여 시민의 모습은 극적인 장관을 연출했다. (☞ 관련 기사: "어찌 한 눈 감고 안 보이는 금송아지만 보인다 하나" )
▲ 연꽃촛불을 든 촛불소녀등과 108배를 하고 있는 승려들. ⓒ뉴시스

▲ 이날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3만 여명의 시민이 모여 함께 108배를 올렸다. ⓒ뉴시스

"관료와 공직자, 반사회적 범죄행위 중단해야"

이날 시국 법회를 이끈 추진위원회 명단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신이 불교계 전반에 퍼져 있음을 실감케 했다. 수경스님(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을 비롯해 명진스님(봉은사 주지), 정념스님(중앙승가대 총동문회 회장), 즈홍스님(불광법회 회주) 등 10여 명의 불교계 원로가 공동추진위원장을 맡았다.

또 백남석 인드라망생명공동체 공동대표, 임창홍 전국교수불자연합회 회장, 정인스님(중앙승가대학원 원장) 등을 비롯해 조계종 송광사, 운문사, 봉녕사, 동학사, 청암사 등 주요 사찰도 추진위원에 결합했다.

성묵스님이 낭독한 시국법회 추진위원회 명의의 결의문에는 미국산 쇠고기 협상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정부의 '독선'과 '아집'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명시돼 있었다.

이들은 "독선과 아집은 평화를 깨는 독초"라며 "우리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국민들을 '사탄의 무리'라고 발언하고 청와대에서 '정부복음화'를 주창하는 현 정부 고위 인사들의 시대착오적 발상에 우려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대한민국의 헌법은 종교의 자유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의 관료들과 공직자들은 종교의 자유를 침범하고 있다"며 "이는 단순한 종교편향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을 파괴하는 행위이며 종교간 갈등과 반목, 국민 화합과 통합을 저해하는 반사회적 범죄행위인 바 이에 대한 현 정부의 분명한 대책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정작 참회할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인데…"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찬 시청 광장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부분 종교계에 대해 높아진 신뢰와 존경을 표시했다. 108참회문이 적힌 책자와 '중생이 아프면 보살도 아프다'라고 적힌 손피켓, 그리고 연꽃 모양의 촛불을 손에 든 시민들은 연꽃만큼 활짝 핀 표정으로 법회를 지켜봤다.

박용주(54) 씨는 "평소에도 참회를 위해 108배를 많이 한다"며 "하지만 정작 해야 할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너무 못 해서 나왔지만 국민 목소리가 이정도로 클 줄 몰랐다"며 "불교 신자들은 원래 조용히 수행하는데, 이 대통령의 실책으로 스님들까지 광장으로 나오게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했다.

이현정 씨는 "불교 신자인데 연락을 받고 오게 됐다"며 "집회는 처음 참가하는데 사람들의 힘이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자신을 밝힌 정용수(34) 씨는 "본래 천주교 신자이지만 108 참회문에 맞춰 절을 했다"며 "이명박 정부에 분노하지만, 이 정권과 나 모두 참회해서 불국정토, 또는 하느님의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김주식 씨(24)는 "종교 단체에서 촛불을 지킬 수 있게 해주었다"며 "정세가 변화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종교계가 나선만큼 범국민적 지지를 더욱 받게 될 것"을 기대했다.
▲ 시국 법회에 참가한 승려들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종훈 대표신부와 문규현 신부와 함께 연등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뉴시스

"5일은 중요한 날…다시 만나자"

시국 법회가 끝난 뒤 숭례문-을지로-시청으로 이어지는 거리 행진이 시작됐다. '헌법 제1조'는 이제 천주교, 개신교, 불교를 아우르는 '거리의 성가'가 됐다. 일부 불교 신자들은 준비해 온 연등을 들고 길목에 미리 서 있었고, 역시 연등을 든 승려들을 선두로 묵언 행진이 이어졌다. 버스에 타고 있던 일부 시민들도 손을 흔들어 촛불 행렬을 응원했다.

이날 경찰은 최대한 모습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모양새였다. 행진 구간에는 일체 경찰버스를 주차해놓지 않았으며, 근처에서는 전경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교통 경찰 일부만 눈에 띄었을 뿐이었다.

오후 10시경, 시청 광장에 돌아온 시민들을 두고 수경스님은 "두 달여 동안 광장에서, 길에서 우리 모두 위해 애쓰신 촛불 시민들 정말 애썼다"며 격려했다.

수경스님은 "감사드린다. 참으로 장한 일 하셨다"며 "하지만 폭력적인 저항은 국가 폭력의 부당성을 희석시킨다"며 평화 집회를 당부했다.

그는 "대운하 문제를 안고 씨름 오래할 각오를 했었지만 촛불이 대운하를 막아 주었다"며 "문제를 제기할 때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말고 정확히 풀 방법을 찾아 서로 상처 입히지 말고 풀어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5일은 중요한 날"이라며 "우리가 해온 촛불을 승화시켜서 국민 승리의 날로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내일 또 만나자"며 "우리 승려들은 사제단 신부님들의 단식을 오늘부터 이어 받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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