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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묻는 것은 국가의 의무와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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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묻는 것은 국가의 의무와 책임"

지금은 '이중권력' 상태…MB정부는 오히려 퇴행

촛불로 밝혀진 국민의 민주화 요구가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는 교수 사회의 전망이 나왔다. 극단적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는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거리로 나온 촛불의 요구를 끌어안을 수 있는 새로운 시민 사회의 정치화가 진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4일 오후 1시, 전국 대학 교수들의 두 번째 토론회가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열렸다. 교수들은 두 시간이 넘게 진행된 토론회에 이어 공안정국을 조성하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또 어청수 경찰청장에 대한 항의서한을 제출하기 위해 경찰청으로 향했다. 이날 행사는 전국교수노동조합(교수노조),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학술단체협의회(학단협) 등 교수학술 3단체가 주관했다.

촛불, 계속 진화해 나갈 것

촛불은 앞으로 계속 진화해 나갈 것이라는 주장이 눈길을 끌었다. 처음에는 10대 학생들이 쇠고기 재협상을 촉구하기 위해 들었지만 이미 사회 전반적 문제를 바꾸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신대 경영학과 김상곤 교수는 "촛불 항쟁이 먹거리 문제로 시작됐지만 국민은 이미 '국가가 의무와 책임을 다하고 있나'고 묻고 있다"며 "먹거리를 포함해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해야하는 공적 서비스, 즉 후생복지의 기본적 사항을 지키라고 촛불은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촛불에는 민생 문제, 국민의 생존권 문제가 담겨 있다는 말이다. 이는 곧 '더 나은 민주주의'를 요구한다는 것으로 김 교수는 해석했다. 김 교수는 따라서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건설 등 정부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 비정규직 문제 해결 요구 등이 촛불 집회 현장에서 쇠고기 문제와 같이 나오는 이유는 국민이 이 모든 사안을 생존권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증명한다고 평가했다.

촛불 집회를 '광장 민주주의'로 평가한 민교협 상임의장 이종구 교수(성공회대 사회학부) 역시 같은 입장을 보였다. 기존 제도권 정치 주체가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해 국민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다만 국민이 새로운 질서의 등장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음은 긍정적이지만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대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우려를 보였다.

이 교수는 "이번 사태로 기존 정당과 제도 정치권의 취약성이 다시 입증됐다. 각종 시민단체를 비롯한 사회운동 조직도 현실을 해석하고 주체적으로 대응하 수 있는 능력이 빈곤함을 사실상 드러냈다"며 "이는 이 자리에 모인 교수단체, 학술단체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려해야 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제도권 정치 주체의 무능함으로 정부와 불특정 다수 시민이 대치하는 지금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이 교수는 지식인이 실천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그는 "지식인은 단순히 비판하는 계몽적 역할의 수행에 자족해서는 안 되며 광장의 시민과 함께 할 수 있도록 자기 혁신을 해야 한다"며 "촛불이 켜짐에 따라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의 중요성도 다시 확인됐다"고 했다.
▲교수노조 김한성 위원장이 기자회견에 앞서 정부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교수3단체 제공

촛불을 안정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조직화 필요

촛불이 켜지면서 드러난 가장 큰 문제이자 새로운 현상은 바로 기존 정치권을 대신해 국민이 직접 정부 권력과 맞섰다는 점이다. 대안연대회의 운영위원인 오건호 박사(사회학)는 이 현상을 '이중 권력'이라고 이름 붙였다. 독단적인 정부 권력에 국민이 직접 맞서면서 스스로가 권력 주체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오 박사는 "지난 87년 이후 우리 사회가 형식적으로 민주화를 이뤘지만 지난 10년의 자유주의 정부와 앞으로 5년 동안 이어질 이명박 정부의 미래를 보며 국민은 주권자의 권력 소외가 오히려 심화됐음을 깨달았다"며 "결국 제도권 정치에 실망한 주권자의 분노가 촛불을 통해 표출되면서 일종의 '이중 권력' 구도가 형성됐다"고 진단했다. 우리 정치가 대의 민주주의에 기반을 뒀음에도 기존 체제가 가진 한계 때문에 국민이 스스로 거리에서 권력을 만들었다는 말이다.

김상곤 교수 역시 제도권 정치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세계적 현상으로 불러야 할 국민의 직접 민주주의 실험에 비해 정부는 오히려 '더 나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퇴행하는 모습마저 보인다"며 "계속해서 진화해 나가는 촛불의 요구를 구체화시키고 제도화시킬 수 있는 단계적 발전을 이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제도권 정치는 국민의 새로운 움직임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단언한 셈이다.

오 박사는 지금의 이 구도를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이 무능한 데다 국회가 정부 친화적으로 변한 지금 구도에서는 당연한 선택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는 "촛불 주체의 다양성과 비정형성을 감안할 때 촛불을 안정적으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직화가 불가피해 보인다"며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을 감독·평가하고 이에 대항하는 한시적 네트워크 국민전선인 가칭 '서민공공성 국민연대'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할 상황이 아니다"

토론회가 끝난 후 교수들은 "국민의 뜻에 복종하라"며 정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회견문에서 교수들은 "이명박 정부는 공안 정국 조성 시도를 중단하고 국민의 뜻에 복종하라"고 요구했다.

회견문 낭독에 앞서 교수노조 김한성 위원장(연세대 법학과)은 "우리는 다음 학기를 위해 연구해야 할 교수이자 연구자다. 우리가 왜 이러겠나"며 "지금은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할 상황이 아니다. 학문은 실천으로 완성된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토론회를 마치고 경찰청 항의 방문을 위해 두 번째로 거리에 나섰다. 이들은 곧바로 서울광장 집회에 합류했다.ⓒ프레시안

김 위원장은 "헌법정신마저 부정하는 현 정부는 지난 20년 간 온 국민이 이뤄놓은 민주화에 대한 반동집단"이라며 "진리와 자유가 완전히 짓밟히고 있다"고 정부를 성토했다.

기자회견 낭독 후 약 40여 명의 교수들은 경찰청으로 항의 방문을 위해 거리 행진에 나섰다. 교수들의 거리 행진은 지난달 9일에 이어 두 번째다.

경찰청으로 이동하는 곳곳에 정보과 형사들이 교수들의 이동을 보고해 행진 대열이 청사 앞에 도달했을 무렵에는 이미 전경 수십 명이 청사 정문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과 이종구 상임의장, 학단협 서유석 상임대표(호원대 교양학과) 등 3단체 대표만이 민원실로 가 어청수 경찰청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한편 이날 모인 교수들은 해산하지 않고 곧바로 불교계의 촛불 법회가 열리는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교수3단체의 이름으로 이날 집회에 참석할 예정이다.
헌법은 무시하고, 언론은 재벌에 내주려는 정부

이날 토론회에서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집시법), 정부의 언론장악 의도, 교권 탄압 등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참가 교수들은 정부의 이런 의도의 부당함을 강하게 비판했다.

원광대 법과대 김선광 교수는 지금의 집시법이 취상위법인 헌법과 맞지 않아 국민의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따라서 집시법이 헌법 정신에 맞게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는 현행 헌법 제1조와 제21조를 들었다. 헌법 21조는 국민의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김 교수는 "집회에서 형성되는 담론은 무엇이든 무방해야 한다. 국민이 집회를 통해 국가의 정책 결정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민주주의 소통의 기본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집회에는 당연히 물리적 행사가 어느 정도 발현되고 소음도 일어나며 거리 행진도 이어진다"며 "독일 헌법재판소 판결례를 보면 '모든 세력이 어느 정도 자신의 힘을 발휘하는 경우에 상대적으로 바른 결론이 도출되므로 집회의 자유는 공공복리를 위한 기본적 정치 요소'라고 나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국민의 자연스러운 기본권 행동을 불법적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김 교수는 "집시법이 광우병에 걸린 것 같다. 집시법에 눈을 달아주기 위해서 사실상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꿔야 하고 집회 통제 시에도 경찰이 시위가 사고 없이 진행되도록 하는 소극적 역할만 하도록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언론정책에 대한 비판 역시 강하게 제기됐다. 정부의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밀어붙이기를 막기 위해서 언론의 공공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김서중 교수는 "지금 정부의 <PD수첩> 탄압은 촛불의 원인을 PD수첩으로 돌려 '봐라, 공영방송이 사회를 혼란시키지 않나. 공영방송을 개혁해야 한다'는 논의를 이끌어내려는 단초로 해석된다"며 "<한국방송>에 대한 간섭 역시 이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IPTV 사업을 주의깊게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들어오는 길을 닦는 사전 작업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보수언론이 민영화된 방송사를 차지하는 게 자산규모 상 쉽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IPTV 관련법을 개정해 자산총액이 10조 원 이하인 기업이 방송시장에 진출하게끔 한 것"이라며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방송이 과연 공영방송의 공공성이나 <한겨레>, <경향신문> 같은 독립성을 가질 수 있겠나"고 반문했다.

한편 서울대 의과대 황상익 교수는 쇠고기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재협상 밖에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광우병은 당장 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킬 가능성이 있는 '무증상 감염자'가 환자의 몇십 배에 달할 것이라는 게 광우병 전문가들의 판단이다"며 "의학적으로 아직 속수무책인 병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재협상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교수노조 교육선전실장 김도형 교수(성신여대 컴퓨터정보학부)는 정부의 학문영역 침해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지금 정부의 간섭이 과거 군사정권 수준까지 이른 것은 아니지만 학계 간섭의 물꼬가 트인 것은 맞다"며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감시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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