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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증 있어야 귀가…청와대는 방 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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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증 있어야 귀가…청와대는 방 빼라"

청와대 인근 주민 '아우성' "재난지역 선포하라"

두 달 넘게 서울시청과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촛불 집회는 청와대 방향을 봉쇄한 경찰과 행진을 하려는 시민 사이의 충돌이 이어졌다. 지난 6월 10일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리던 날, 경찰은 광화문 사거리에 컨테이너 박스를 두 층으로 쌓아 청와대 방향 통행을 전면 막았고, 이 바리케이드는 '명박산성'이란 이름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촛불 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또 다른 전쟁을 치르는 이들이 있다. 바로 '명박산성' 뒷편, 청와대와 광화문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다.

"왜 우리집에 못 가!"…"그럼 거기 계시던가!"

"빵빵빵빵!"

지난 달 3일 밤 10시경 경복궁역.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몇 분동안 멈추지 않고 울려퍼졌다. 경찰이 버스를 이용해 6차선 도로를 전면 봉쇄한 탓에 귀갓길이 막혀버린 운전자였다. 경찰을 향한 삿대질과 고성, 경적을 울리는 차를 향한 삿대질과 고성이 사방에서 오갔다.

"나 좀 제발 가게 해줘요!"

지난 달 25일 밤 11시경, 교복을 입은 한 여고생이 마침내 울음을 터트렸다. 광화문역에서 내수동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할 골목이 경찰버스로 모두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경찰은 결국 버스 틈새로 줄지어 기다리던 주민들에게 주민등록증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한 주민이 "내 집에 가는데 왜 내가 민증을 보여줘야 돼!"라며 항의하자 전경 뒤에 있던 한 경찰은 "그럼 밤새 거기 계시던가!"라며 응수했다.

"땅 위에는 차가 못 다니고, 땅 속에는 지하철도 안 선다"
▲ 경찰은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촛불 집회 참가자들이 청와대 인근으로 행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복궁역부터 겹겹이 방어막을 치고 교통을 통제했다. ⓒ프레시안

위의 사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명박산성'에 분노한 촛불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 차라리 경복궁역에서 집회를 갖자는 움직임이 일자 경찰은 아예 3호선 경복궁역에 지하철이 서지 않도록 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 장관 고시 전후였던 지난 달 25일과 27일 저녁, 경복궁역은 '무정차 통과역'이 돼 버렸다. 청와대 근처인 탓에 인근에 다른 지하철역이 없어 경복궁역에서 환승해야 하는 주민들은 영락없이 발이 묶였던 것이다.

통의동의 한 음식점에서 일하는 이순자(가명·62) 씨는 "퇴근을 하려 해도 땅 위에는 차가 못 다니고, 땅 속에서는 지하철이 서지 않아 불편해서 못 살겠다"고 호소했다. 효자동에서 부동산을 하는 김모(64) 씨도 "세검정에 있는 집에 가야 하는데 지하철까지 막아서 꼼짝없이 독립문역까지 수 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했다"고 전했다.

신교동에 사는 주부 박모(39) 씨는 "한번은 딸과 함께 종로에 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아 알아보니 길이 막혀서 버스가 유턴해서 돌아갔던 것"이라며 답답해 했다. 그는 "강남에서 퇴근한 남편이 길이 막혀서 멀리 돌아서 택시값이 2만5000원이 나온 적도 있었고, 지하철이 서지 않아 몸이 불편하신 어머님이 독립문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오신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교통 불편도 문제이지만 인근 소매상들은 매상이 반 이하로 떨어져서 "꼭 죽을 맛"이라고 입을 모았다. 통의동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는 윤지민(가명·40대) 씨 부부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말로 표현을 못 한다. 사람들이 움직이지 못하니까 매출이 반도 더 줄었다. 개업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윤 씨는 "저녁만 되면, 서울광장에 사람이 있어도 막고 없어도 막으니 장사를 하나도 못 하고 있다"며 "하도 기가 차고 답답해서 오토바이를 타고 직접 시청에 가봤더니 사람이 몇 십명 밖에 없는데도 이쪽 차도를 다 막아놓고 있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 모씨는 "사람들이 이쪽 동네가 막혔다는 소문을 듣고, 음식점은 예약을 취소하고, 부동산도 찾아오질 않는다"며 "주민들이 다들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전했다.

"효자동·사직동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라"

결국 참다 못한 주민들이 모이기로 했다. 3일과 4일, 효자동, 통의동, 사직동, 청운동 일대에는 일제히 "효자·사직 주민 뿔났다"라고 적힌 전단지가 배포됐다.

'효자동 사직동 생존권 위원회' 명의로 인쇄된 전단지에는 "우리 주민들은 날마다 귀가 전쟁을 겪고 있다"며 촛불 시위에 맞서는 경찰이 동네 곳곳에 설치한 방어선으로 인해 큰 불편과 고통을 안고 살고 있다"고 적혀 있다.

'생존권 위원회'는 "더구나 경복궁역 전철역 무정차 통과로 인한 피해는 어마어마하다"며 "다른 동네에 비해 노인이 많이 사는 이곳 주민들이 수킬로미터를 걸어서 귀가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전했다. 이들은 "거의 매일 대중교통 운행이 통제되면서 주민들은 걸어서, 주민등록증을 검사받고 귀가하는 생활을 두 달여 감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생존권 위원회'는 "우리는 두 달동안 외부와 고립된 채 살고 있다"며 "삶의 질은 형편없이 떨어져 버렸고 장사는 개점폐업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며 "효자동·사직동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세제 혜택이나 보상 등의 해결책을 강구해줄 것을 종로구청과 정부에 건의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5일 오후 8시 효자동 우리은행 앞에 모여 주민대책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전단지 뒷면에 "우리 동네가 북한이냐, 주민등록증 보여줘야 통과하게", "왜? 우리 동네에서만 하냐? 넓고 좋은 곳 많다", "우리집을 개방하라", "대통령만 보호하지 말고 지역주민도 보호하라", "청와대는 방빼라", "지역구 국회의원은 뭐하냐", "아빠 이사가자" 등 정부와 촛불 집회를 비판하는 주민들이 만든 다양한 구호가 적혀 있다.
▲3일 효자동, 통의동, 사직동, 청운동 일대에 배포된 전단지에 적힌 구호. ⓒ프레시안

"경찰보다 시위대가 너무 했다"

'생존권 위원회'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반응은 가지각색이다.

효자동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권명진(가명·64) 씨는 "불편함 때문에 욕이 목까지 차 오른다"면서도 "주민들이 불편을 감수하는 건 어느 정도 지나면 잠잠해질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달이 넘은 이제, 정부와 시위대 양쪽 다 한발씩 양보해야 한다"며 "주민들이 모인다고는 하지만 촛불과 공권력 모두에 불을 지를 뿐이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주민 모임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 박진 의원이 당선되는 등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텃밭인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는 듯 보수적인 반응도 상당수였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김이화(가명·56) 씨는 "주민들 사이에서 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간첩이 끼어들어서 이렇게 오래 가는 거 아니냐고들 한다"며 주민들의 불편이 해소되려면 촛불 집회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순자 씨도 "빨리 정부가 뭔가 대책을 세우고 시위도 끝나야 된다"며 "우리는 다 이명박 찍어줬는데, 이러면 너무 딱하지 않나"고 말했다.

효자동에 사는 주부 임모(60) 씨는 "거리를 가로막는 경찰보다 시위하는 사람들이 더 심하다고 본다"며 "처음에는 동조했지만,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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