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에서 방영된 아레사 빈슨의 질병 이름을 'CJD(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라고 하지 않고 'vCJD(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 인간광우병)'라고 했는가? 다우너소(이른바 '주저앉는 소')는 광우병과 무관한데 왜 이를 광우병과 연관을 지었는가?
우선 아레사 빈슨의 질병 이름을 이야기하자면 그녀를 인간광우병으로 의심한 것은 <PD수첩>이 아니라 미국의 폭스뉴스와 NBC였다.
미국에서 친공화당 성향의 보도로 유명한 폭스뉴스의 4월 10일자 보도를 보자. 제목부터가 "버지니아 주 22세 여성 인간광우병으로 사망 가능성"이다(Mad Cow Variant May Have Claimed Life of Virginia Woman, 22A). 그리고 기사의 첫줄은 "인간광우병으로 추측되는(suspect) 22세 버지니아 주 여성이 수요일 5시30분에 사망했다"로 시작한다. 기사는 의사들이 CJD라고 추측한다고 하면서 이 질환은 "오염된 의료기기나 의료처치" 또는 "오염된 쇠고기"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바로 보기).
폭스뉴스의 다른 보도에 의하면 "그녀가 위 우회수술을 받은 직후 인간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을 의심했다. 메이요 클리닉에 따르면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은 오염된 의료기기나 의료처치와 연관되어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바로 보기).
NBC도 "버지니아국립대학생 인간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을 보도했다"(VSU graduate may have human form of mad cow disease). 이 기사에서도 "의사들은 아레사 빈슨이 CJD, 또는 vCJD 즉 인간광우병에 걸렸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 기사는 미국에서는 3명의 인간광우병 환자가 있었으며 아레사빈슨이 인간광우병으로 진단된다면 이는 미국 내에서 감염된 첫 번째 케이스라고 보도했다(☞바로 보기).
번역 문제? 로빈 빈슨 즉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미국에서 3명밖에 안 걸린 희귀병에 걸렸다"고 분명히 말하고 광우병이라는 말을 여러 번 말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3명밖에 안 걸린 CJD는 '산발성 CJD(sCJD)'가 아니라 '변형 CJD(vCJD, 인간광우병)'밖에 없다.
어떤 이는 아레사 빈슨이 올해 1월에 수술을 받은 사실을 <PD수첩>이 보도하지 않았다고 문제를 삼기도 하는 모양이다. 병원성(iatrogenic, 의인성) 즉 병원의 의학적 처치로 옮긴 CJD일 가능성을 빠뜨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술에 의한 '병원성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iatrogenic CJD)'은 잠복기가 최소 12개월이다('영국국립CJD감시단'의 아래 표 참조).
감염 경로 | 사례 수 | 잠복기 |
신경외과수술 | 5 | 12-28 개월 |
정위 뇌파검사 | 2 | 16-20 개월 |
각막 이식 | 4 | 16-320 개월 |
경뇌막 이식 | 137 | 18-216 개월 |
성장호르몬 | 154 | 50-456 개월 |
성선자극호르몬 | 5 | 144-192 개월 |
게다가 병원성 CJD(iCJD)는 이식 수술이나 호르몬요법, 신경외과적 수술·처치에서만 확인되었고 이식이 아닌 일반 외과적 수술을 받은 환자에서 병원성 CJD가 전염된 경우는 없다. 아레사 빈슨이 3개월 전의 일반 수술로 병원성 CJD(iCJD)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즉 아레사 빈슨은 MRI 사진 등을 종합한 임상적 판단에 의하면 20대 초반의 CJD 환자로, 인간광우병(vCJD)일 가능성이 가장 컸고 그 다음으로는 매우 희귀하지만 20대에 발병한 산발성 크로이츠펠트 야코브 병(sCJD)일 가능성이 있었다. 이것이 <PD수첩>이 보도할 당시의 아레사 빈슨의 질병명과 관련한 과학적 추론이다. 굳이 과학적 검증의 잣대를 언론사에 들이댄다 해도 <PD수첩>이 잘못 보도한 내용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왜 농림부나 검찰이 과학적 검증의 당사자로 나서야 하는가이다. 그것도 비판적 보도가 그 사명인 언론사를 대상으로. 과학적 검증이 굳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과학자들에게 맡길 일이다. 그것도 언론사가 그 대상이라면 다른 언론들이 비판하는 정도일 것이다. 지금 조·중·동이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아는 민주주의 사회라면 그렇다. 당국이 직접 과학적 검증을 하겠다는 것은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구 소련 스탈린 체제에서 리센코 학설만을 생물학적 진리라고 강요했던 역사적 경우나 나치의 우생학 학설만이 진리라고 강요했던 역사 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으니 말이다.
게다가 굳이 검찰이 언론 보도의 과학적 검증의 주체로 나서겠다면 왜 미국의 폭스나 NBC 방송사부터 수사대상으로 삼지 않는가? <PD수첩>이 아레사 빈슨의 사례를 알게 된 것은 바로 이 방송사들이 아레사 빈슨이 인간광우병으로 의심된다고 보도한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수사를 하려면 검찰은 미국부터 가야하지 않을까?
또 하나의 문제로 삼고 있는 검찰 수사 대상이 '주저앉는 소'와 광우병과의 관계다. 짧게 쓰겠다. 미국 농무부는 2007년 7월 12일 "식품안전검역청 다우너 소 가공 금지 최종 법령 공포 (FSIS Publishes Final Rule Prohibiting Processing of "Downer" Cattle)"라는 제목의 보도 자료를 발표했다. 이 보도 자료의 첫 문단은 다음과 같다. "미국 농무부(USDA) 식품안전검역청(FSIS)은 도축 전 검사에서 서지 못하거나 걷지 못하는 소(다우너 소)로 판명될 시 도축을 영구히 금지할 것을 발표했다. 서지 못하거나 걷지 못하는 것은 광우병의 임상적 징후일 수 있다".
WASHINGTON, July 12, 2007 - The U.S. Department of Agriculture's Food Safety and Inspection Service (FSIS) today announced a permanent prohibition on the slaughter of cattle that are unable to stand or walk ("downer" cattle) when presented for pre-slaughter inspection. The inability to stand or walk can be a clinical sign of Bovine Spongiform Encephalopathy (BSE). |
이 보도 자료는 이 문단에 이어 '미국 정부가 2003년 12월 23일 미국에서 첫 광우병 소가 발견된 이후 2004년 1월 12일 이에 대한 대응으로 다우너 소 도축 금지 등의 조치를 취했고 이 조치가 올바르다는 것이 판명되었으므로 이 조치를 영구적 조치로 변경한다'고 말하고 있다.
만일 농림부처럼 "소가 일어서지 못하는 것은 광우병 이외에도 대사 장애, 골절·질병으로 인한 쇠약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광우병과 연관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PD수첩>을 고소하고 검찰이 이를 수사한다면 다우너 소 도축금지조치의 이유를 콕 집어서 광우병 때문이라고 명확하게 한 미국 농무부부터 고소하고 수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한마디. 언론을 상대로 고소까지 하고 이것을 검찰이 전담팀을 만들어 수사하는 것이 나로서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뭐 다 넘어간다고 치더라도 이것 하나만은 묻고 싶다. 어떻게 해도 끝까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PD수첩>은 미국소의 광우병 위험성을 과장한 바가 전혀 없다. 그러나 설사 <PD수첩>이 미국 소의 광우병 위험성을 과장했다고 치자. 그런데 이것이 한국 정부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미국 정부와 미국의 축산업계가 <PD수첩>을 고소하고 미국검찰이 한국의 <PD수첩>을 재판에 걸려한다면 그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왜 한국의 농림부와 한국의 검찰이 나서지? 도대체 한국의 농림부와 한국의 검찰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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