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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다. 고기에도 좌우 색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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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단순하다. 고기에도 좌우 색깔 있나"

[인터뷰]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종훈 대표신부

"질문이 좀 많은데…."
"많이 물어볼 것 없어요. 문제가 단순한 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종훈 대표신부는 멋쩍은 기자의 인삿말에 대수롭지 않은 듯, 그러나 분명한 어투로 답했다. 아직 인터뷰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그의 말 속에는 사제단이 시국 미사와 단식 기도를 하게 된 이유가 요약돼 있는 듯했다.

2일 서울시청 앞 광장. 사제단이 단식 기도를 위해 마련한 작은 천막은 종일 찾아오는 손님으로 북적였다. 비좁아 보이는 천막은 방문객과 선물로 가득 찼다. '단식' 기도임을 분명히 알렸는데도 "그래도 식혜는 괜찮지 않을까 해서…", "우유라도 한 잔 하시라고…", 이렇게 건네온 선물이 천막 안에 쌓였고, 줄지은 꽃바구니도 향기를 뿜었다.

지난 달 30일 사제단이 진행한 시국 미사는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멍들던 촛불 집회에 말그대로 '구원 투수'가 됐다. 비폭력을 강조하며 시민과 함께 촛불을 들고 거리 행진에 나선 사제단의 모습에 많은 이들은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 사제단에 이어 개신교, 불교계도 광장에서 집회에 나서겠다고 밝히면서 정부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1987년,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진실을 알리며 6월 항쟁을 촉발했던 사제단은 현대사의 주요 고비마다 고된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새만금 간척 사업 반대, 평택 미군 기지 이전 반대, 삼성 비자금 사태 등에서 우리는 때로는 전면에서, 때로는 뒤에서 묵묵히 '진실'을 외치는 사제단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왜 이번 시국 미사와 단식 기도를 하기로 결심한 걸까? 전종훈 대표신부를 천막에서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불안한 쇠고기 먹지 않게 하라. 촛점은 이것뿐"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종훈 대표신부. ⓒ프레시안

프레시안 :
방금 전 이번 촛불 집회와 사제단의 시국 미사가 복잡한게 없는, 간단한 문제라고 했다. 무슨 뜻인가.

전종훈 : 불안한 (미국산) 쇠고기를 먹지 못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럼 그 쇠고기를 먹지 않게 해주면 된다. 모든 문제의 촛점은 거기에 있다.

그런데 왜 다른 것까지 다 연관시키냐는 거다. 예를 들어, 쇠고기가 불안해서 못 먹겠다는데, 먹어도 된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먹어도 된다'는 말에 사람들은 '어찌하여 먹어도 되냐'고 따지고, 그러면서 말이 계속 오간다. '사람들이 불안해 하는구나'라고 알았으면 안 먹게 해주면 되는 것이다.

폭력 집회? 안 된다고 했으면, 정부도 폭력을 안 쓰면 된다. 그런데 자꾸 그것을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라고 갖다 붙이니까 온갖 얘기만 난무한다. 진리는 단순한 데에 있다. 묻고 싶다. 고기에도 좌우 색깔이 있나?

프레시안 : 벌써 조·중·동 등 보수 언론과 정부는 사제단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다. 사방에서 공격이 심할 텐데….

전종훈 : 조·중·동 온통 난리나지 않았나. 참 웃기다. '종교인들이 왜 나서냐'고들 한다. 그것도 간단하다. 우리는 '우리가 나설 상황을 왜 만드냐'고 묻고 싶다. 오죽 했으면 우리가 나섰겠나. 우리가 나서지 않도록 했어야 하지 않나. 대통령과 정부가 잘 하면 국민이 이렇게 했겠나? 국민의 소리를 들어줬으면 종교인이 나섰겠나? 그런데 이걸 가지고 의도가 있다느니 한다.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어제 모 신문사 기자가 '사제단이 시국 미사를 하는 뜻이 뭐냐'고 묻더라. 우리가 무슨 뜻이 있나. 국민들이 이야기를 하는데 정부가 안 듣는다. 그리고 정부가 국민을 탄압한다. 그러면 누군가가 저 국민의 소리를 대신 내줘야 할 것 아닌가. 우리의 뜻은 국민의 뜻이다. 그걸 못 알아듣나?

말의 유희가 사람을 굉장히 혼란스럽게 만든다. 이럴 때는 절제해야 한다. 해야할 말이 있다면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를 먹을 수 없다는 것. 이것만 하면 된다.

프레시안 : 이번 정국에서 언론이 문제를 키우는데 일조했다. 촛불 집회가 조·중·동 반대 운동으로 자연스럽게 번진 이유이기도 하다. 사제단에 대한 보수 언론의 공격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전종훈 : 언론이 언론을 아는가, 모르는가? 언론이 언론의 역할을 안다면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문제는 언론이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자신의 주도권을 놓치고 싶지 않아 하기 때문이다.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 언론은 이미 언론이 아니고 권력이 됐다. 권력은 속성상 더 움켜쥐려 하지 뺏기려 하지 않는다. 뺏길 위기가 닥치니,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한다. 그것을 언론이라고 얘기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어떤 사람이 '요즘 언론이 이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더라. 이성이 있으면 이렇게 하나? 그들은 하이에나다. 그저 자기 먹이만 물어뜯는다.

"우리는 무능한데, 언론을 우리더러 똑똑하다 한다"

프레시안 :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시국 미사를 열었다. 결정 전에 사제단 내에서 갈등이 있진 않았나.

전종훈 : 우리에게는 갈등이 없다. 우리는 토론을 한다. 토론을 왜 하나. 선택하기 위해서 토론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있을 순 있겠지만 토론 과정에서 다 분출된다. 그렇게 선택하고, 선택된 결과에 따른다. 그게 사제다. 단순하게.

우리는 단순하기 때문에 사제로 산다. 복잡한 건 정치다. 정치는 저울질이지만 사목은 저울질하는 게 아니다. 옳으면 가야 하는 거다. 그런데 우리더러 '정치한다'고 한다. 생리적으로 정치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정치 종교인'이라니. 그건 사제를 모독하는 말이다.

▲ 전종훈 신부는 "진리를 향해 가는 길에는 협상과 타협이 없다"며 사제들을 정치인과 같은 선상에서 놓고 보는 세태를 강하게 비판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87년 6월 항쟁 등 사회적으로 사제단이 갖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이번 결정 전에 부담이 느껴진다거나 망설임은 없었나.

전종훈 : 말했듯이 우리는 상징과는 별 의미가 없다. 상징성 때문에 우리의 행동이 저울질 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사는 길이 아니다. 필요하면 하는 거다. 상징성을 고려해서 선택을 하는 건 말이 안된다.

프레시안 : 시국 미사 이후 정부나 정치권에서 연락은 없었나?

전종훈 : 정부와 정치권과는 관계하지 않는다. 그건 협상이나 타협이 되는 거다. 진리를 향해 가는 길에는 협상과 타협이 없다. 그건 정치인들이나 한다. 그것은 빠른 길을 찾거나 위험을 피하기 위함이다. 그런 길은 사제의 길이 아니다.

프레시안 : 사제단이 걸어온 길이 반드시 좋은 결과만 낳은 것은 아니었다. 새만금, 평택 싸움에서는 사실 졌다.

전종훈 : 정치는 결과를 가지고 얘기한다. 사제는 삶으로 말할 뿐이다. 어떤 것도 우리에게는 영화가 아니다. 우리에게 영광은 하느님에 대한 영광 뿐이지, '내'가 누릴 영광은 사제에겐 없다. 그래서 세상의 눈으로 보면 늘 바보 같은 짓, 뻔히 지는 줄 아는 싸움을 한다. 그걸 신앙의 언어로 '십자가의 길'이라고 한다. 사제라는 인생이 가야하는 길이 있다. 그 길이 곧 사제의 인생이다.

그래서 세상 기준으로 우리는 아주 무능한 사람인데 언론은 우리를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우리는 정말 단순하고, 아무 계산도 없는데, 왜 사람들은 우리를 계산하는 사람으로 만드는지….

"원인을 싹 없던 일로 하고, 결과 가지고 얘기하면 되나"

프레시안 : 촛불 집회의 폭력·비폭력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해결점이 무엇이라고 보나?

전종훈 :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있다. 그것을 찾지 못할 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문제를 다 드러내는 것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사회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회악이 있기 때문이고, 그 '악'을 드러내면 해결된다. 예를 들어 폭력이 나쁜 것이라고 '하지 말아라', 이렇게 한다고 멈춰지나? 안 된다. 폭력을 다 드러내야 한다.

공권력을 예로 들면, 폭력을 행한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지시한 사람이 있을 것 아닌가. 그 사람이 왜 행하라고 했는지, 그게 정당한지 아니면 자기 사리사욕을 위한건지, 그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자연 치유가 된다. 실체가 드러나면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학생 가르치듯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원인보다 큰 결과는 없다. 그런데 결과만 가지고 '폭력 쓰면 안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썼습니다'라며 논쟁을 벌인다.

그러나 결국 무엇 때문에 폭력이 생겼는지 알면 된다. 국민이 '병든 소 수입'을 반대하면 수입을 하더라도 국민이 수긍할 수 있을 정도에서 해야 한다. 국민이 수긍도 못했는데 자꾸 재협상 할 수 없다고 정부는 얘기한다. 그럼 당연히 '왜 할 수 없나. 우리가 알아듣게 얘기해 달라'고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거기에다 정부가 '왜 말이 많냐'며 폭력을 쓴 것 아닌가. 그러면 '우리가 정당한 얘기를 하는데, 왜 말을 못 하게 해'라며 이쪽에서도 친다. 폭력이다.

결국 폭력을 제거하는 건 정부가 제대로 정부 구실을 하고, 대통령이 제대로 대통령 구실을 하면 된다. 또 정부가 국민의 소리를 자꾸 막으려고 하지 말고 듣고 행하면 된다. 대통령과 정부가 국민을 섬긴다고 했으면 섬겨야지 왜 윽박지르나. 국민이 '내 소리를 잘 듣는구나', '저 사람들이 우리를 섬기는구나', '정부가 우리를 편안하게 하려고 참 열심히 하는구나'라고 느끼면 촛불을 들겠나. 그런데 원인은 싹 없던 일로 하고, 결과인 폭력 가지고만 얘기하면 되겠나.

"종의 역할은 주인을 따르는 것뿐"

▲ 전종훈 신부는 "촛불을 끄거나 내려놓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가 스스로 국민에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사흘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시국 미사도 저녁마다 열고, 방문객도 많다. 지칠 것 같다.

전종훈 : 육체는 힘들지만, 정신이 맑아지니까 즐거움이다. 세상에서 제일 큰 즐거움은 내가 나를 알아간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은 내가 나인지 스스로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것을 우리는 기도라고 한다.

우리가 밥을 굶는 이유는 저항이나 항의가 아니다. 속을 비우면 정신이 맑아진다. 정신이 맑아야만 나를 알 수 있다. 내가 나를 제대로 알 수 있을 때 비로소 무엇을 할지 선택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이번 사제단의 행동에 많은 분들이 용기를 얻고, 위로가 됐다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지.

전종훈 : 말하기 어렵다.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안 하겠다고 해서 나가지 않는 게 아니다. 우리는 국민의 뜻에 따르기 위해서, 국민이 뜻을 이루는데 보탬이 되기 위해서 여기에 있다. 이를 위한 우리의 자세는 그저 있는 순간에 최선을 다 하는 거다. 그것이 우리의 계획이고 방향이다.

프레시안 : 앞으로 계속 촛불을 든다면 문제가 해결될까?

전종훈 : 촛불이 안 꺼지면 이뤄진다. 물론 국민이 촛불을 스스로 내려놓으면 꺼진다. 우리가 '촛불은 평화입니다'라고 얘기했다. 촛불은 스스로 타면서 자신을 다 없앤다. 대통령이나 우리 모두 귀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다.

서로 이기겠다고 하면 누군가가 내려놓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정부가 국민에 져야 한다. 그게 촛불의 가장 중요한 의미다. 촛불을 끄거나 내려놓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가 스스로 국민에 져줘야 한다.

국민들은 처음에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 안 먹게 해달라며 촛불을 들었는데, 정부가 말을 안 들으니까 깨달음이 생겼다. 촛불은 깨달음이기도 하다. 처음 쇠고기 안 먹겠다고 할 때 정부가 얼른 들어줬으면 됐는데, 안 들어주니 '어 내가 주인인데'라며 깨달은 거다. 굉장한 학습이다.

그러다 헌법 1조가 생각나는 거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민이 주인이라고 나와 있는데, 내가 주인이면 저 사람은 종이네'라는 깨달음. 마침 대통령이 섬기겠다고도 했다. 종의 역할은 주인을 따르면 되는 거다. 그게 종이 존재하는 이유다. 물론 주인이 부당한 것을 종에게 요구했다면 안 따를 수 있지만, 이건 부당한 게 아니지 않나. 이것이 이뤄질 때 평화다.

만약 종이 주인을 자꾸 이기려고 해봐라. 가만 두겠나? 지금 싸움은 그거다. 촛불이 가진 의미에 모든 행동의 원칙이 있다. 촛불의 의미만 깨달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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