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일부 예비군 대원이 예비군복을 입고 촛불시위에 참가해 마치 군인이 시위에 동원된 것처럼 오해를 유발했다. 이를 계속 방치했다간 대외적인 국가신인도와 국익손상 등의 우려가 있어 예비군복 착용을 금지하고 처벌조항을 마련토록" 하는 내용의 법률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었다.
예비군복을 지급하지도 않아 놓고선 웬 처벌?
극우집단의 각종 집회에서 군복 착용 시위대가 "대외적인 국가신인도 하락과 국익 손상"의 저질스러운 행동을 벌일 때는 아무 소리도 안하던 국방부가 촛불시위대 일부(사실 이들은 평화시위 유지대의 역할을 해왔다)가 입은 군복에 대해서 유난을 떠는 모습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더 우스운 일은 국방부가 마치 제대 군인들에게 따로 예비군복을 지급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점인데, 이른바 "쌍팔년(雙八年)" 이래의 제대자 가운데 전의경이나 교도소 경비 등의 특수군역으로 군복을 새로 지급받아야 했던 사람을 뺀다면 국방부로부터 따로 예비군복을 지급받은 이가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국방부, "개구리복"의 의미를 아는가
원래 군복은 아무 무늬가 없는 국방색 전투복이었다. 그러다가 필자가 군대에 들어가던 무렵부터 알록달록 무늬가 뒤섞인 지금의 전투복이 지급되었다. 훈련소 생활을 마치고 정든 동료들에게 서로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주면서 일명 "개구리복"으로 불리던 새 군복을 입었을 때의 뿌듯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훈련소 기간을 포함해 2년 조금 넘는 군대 생활 동안 국방색 전투복 1벌, "개구리복" 2벌, 군화 2벌을 지급받았다. 물론 제대 할 때는 새로 예비군복을 지급받은 게 아니라, 내가 입던 낡은 군복과 군화 가운데 상태가 괜찮은 1벌씩을 그대로 착용하고 사회로 나왔다.
군복무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의 기세에 눌린 국방부가 유치하게 소유권을 주장하는 그 낡은 군복과 군화에는 군복무를 마친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누구나 가졌을 회한과 절망, 웃음과 희망이 묻어 있다.
사람에 따라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겠지만, 군 복무를 마친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개인사의 의미가 작지 않을 "개구리복"을 두고 법률 개정을 통한 처벌 운운하는 수준의 국방부를 보고 있노라니 시계가 20년 전으로 거꾸로 돌아간 것 같아 답답하기 그지없다.
'수입 소고기'의 추억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에 대한 국방부의 대응을 보고 있자니, "대한민국이 쇠고기도 수입하는구나"라며 놀랐던 군대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군대 경력인 이른바 "짬밥"이 어느 정도 되어 연대본부 취사장에 놀러 가니 새빨간 쇠고기 덩어리가 천장에 걸려 있었다. 그렇게 큰 쇠고기는 처음 본 지라 코를 들이대고 이 부위 저 부위 살피는데 'Imported from Australia'라는 푸른 색 마크가 찍힌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당시 육군 규정에 따른 사병 1인당 쇠고기 일일 섭취량이 얼마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취사반 천정에 걸려 있던 쇠고기의 상당 부분이 사병들에게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쇠고기를 수입한다는 사실도 새로웠지만, 취사장에 그토록 큰 쇠고기가 정기적으로 지급된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웠다.
사병식당의 광우병 대책은 어디에?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자들은 좋든 싫든 군대를 가야 한다. 군대에 사랑하는 아들을 보낸 어머니라면 누구나 훈련소에 들어간 아들이 군사 우편으로 보내준 옷과 신발을 받으며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시장 근본주의"라는 이념에 심취하여 한미FTA 같은 노무현 정부의 못난 점만 열심히 따라가는 이명박 정부가 제대로 된 검역 제도를 마련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면서 먹을거리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이 우리 사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농림부장관은 서울시내 식당에서 국민이 낸 세금으로 한우를 구워 먹으며 원산지 표기를 잘 하라며 '정치 쇼'를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몇 퍼센트나 식당의 원산지 표기를 믿을지 여론조사부터 해보는 게 나을 것이다.
정치적인 목적을 띤 시식 행사장이 아닌 다음에야 저질의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마따나 먹기 싫으면 "안 사먹으면 그만"이겠고 그것도 꺼림직하면 채식주의자가 되면 그만이다.
하지만, 먹을거리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학교나 군대의 집단급식소에 대해서는 원산지 표시 말고 어떤 정책을 국방부와 교육부가 갖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방부, '군인노조'라고 들어는 봤나
외국의 노조간부들을 만나다 보면, 군인노조에 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스웨덴, 덴마크,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같은 선진국은 물론 남아프리카나 슬로베니아 같은 개발도상국에도 군인노조가 활동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지난 2월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독일 정부에 공문을 보내 아프가니스탄에서 독일의 군사력 증강을 요청했을 때, 전체 병력의 65 퍼센트를 조직하고 있는 군인노조(Bundeswehrverband)가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는 바람에 메르켈 총리의 행보가 조심스러워지기도 했다.
네덜란드에서는 2002년 군인노조(AFMP)가 19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현지에 투입된 네덜란드군과 연관된 사건을 이유로 육군사령관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핀란드에서는 2005년 4월 군인노조(Upseeriliitto)가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단체협약권을 얻기 위해 군사작전을 거부하기도 했다.
국민의 90% 가까이가 노조원인 스웨덴에서는 3개의 국방 관련 노조가 활동하고 있는데, 1개는 직업군인들로 구성된 군인노조이고, 다른 2개는 국방부 공무원들의 노조이다. 모든 군 장교는 노조에 속하고 계급에 상관없이 조합비를 낸다. 물론 실제 활동에서 고위 장교의 참여는 덜하고, 주로 대위나 소령이 적극적이다.
군인들의 먹을거리는 누가 지켜주나
스웨덴의 군인노조는 인사정책을 개발하고 고용조건과 임금을 정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국방예산을 짤 때도 국방부는 군인노조와 협의한 다음 그 의견을 정부에 제출한다. 최고사령관을 비롯한 군 지휘부는 국방정책과 군대구조 개편 같은 문제들을 다룰 때도 노조와 협의를 하며, 특히 인사 정책은 노조와 교섭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한다.
처음 군인노조에 대해서 들었을 때는 군대에 까지 노조를 조직할 필요가 있을까싶기도 했지만, 군대 안에서 끊이지 않는 인권 유린 행위를 근절하고 건강한 병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군인노조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국민이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걱정하는 요즘, 사병들의 안전한 먹을거리를 보증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주제넘게도 자기 먹을거리를 지키려는 민간인의 시위 복장에까지 시비를 거는 국방부의 퇴행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를 견제할 군인 이익단체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된다.
군복무를 하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의 명령을 받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위해 불철주야 거리에서 시위대를 막으려 애쓰고 있는 군복무 중인 전경들의 식단은 또 누가 지킬 것인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미국산 쇠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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