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내일 교회 가야하는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내일 교회 가야하는데…"

[기자의 눈] "착한 사람들이 화나면 더 무섭다"

29일 새벽 1시 께, 서울 종로1가 거리는 모처럼 한산했다. 얼마 전까지 촛불시위에서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던 전경과 시민들은 잠시 소강 국면을 맞았다.

구호를 외치며, 시민들을 북돋우던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차량도 잠시 방송을 멈췄다. 일부 시민들은 전경들 앞에서 대치하고 있었지만, 상당수 시민들은 삼삼오오 흩어져 담소를 나눴다.

평온한 분위기의 시민들과 달리, 현장에 있는 전경과 기자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렸했다. '전경이 갑자기 시민들을 공격한다면'하는 생각에 카메라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몇몇 사진 기자들은 시민과 전경이 대치하고 있는 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대부분의 취재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모여 있는 전경과 기자들의 표정에서 피곤이 뚝뚝 묻어났다.

피곤한 사람들 속에 있으면, 더 피곤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잠시 자리를 떴다.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시민들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맙소사, 그 새 카메라가 흠뻑 젖었다. 물기가 내부까지 스몄는지, 사진이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 그래서 카메라도 가방에 집어넣고, 툴툴 걸어다녔다.

그 때 갑자기 귀에 들어온 한 마디. "내일 교회 가야하는데…"

슬쩍 다가가서 툭 던졌다.

"교회 다니시나봐요?"

"네. 이렇게 밤 새고 들어가면, 예배 시간에 졸 것 같아요."

40대 초반쯤 돼보이는 아저씨다. 대학을 마친 뒤 오랫동안 대기업에 다녔고, 지금은 작은 사업을 한다고 했다.

"밤 새워 시위하고서도, 예배는 안 빠뜨리시나봐요?"

"네. 아무리 피곤해도 할 건 해야죠."

"촛불집회에 여러 번 나오셨나요?"

"세 번쯤 돼요. 원래 이런 데 잘 안나오는데, 어쩌다 보니 여러 번 나오게 됐네요."

"이명박 대통령도 교회 다니는데…"

"그래요. 그래서 더 창피해요. '믿는 사람'이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거꾸로니까. 사실 오늘은 집회에 안 나오려고 했어요. 그런데, 책임감 때문에 나왔어요. '믿는 사람'들이 다 이명박 대통령 같지는 않다는 걸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요."

"신문은 뭘 봐요?"

"<국민일보>요. '믿는 사람'들이 만드는 신문이니까 봐야죠."

"촛불집회에 대한 보도가 마음에 드시나요?"

"글쎄요. 콕 집어서 뭐라고 하지는 못하겠어요. 입장은 다양할 수 있으니까. '나쁘다', '좋다' 못박기는 어려워 보여요. 촛불집회 나오는 사람들은 <경향>, <한겨레>를 많이 본다던데, 제가 보수적이어서 그런지 그런 신문은 읽기가 좀 거북하더라고요."
▲ ⓒ프레시안

이쯤에서 이야기를 멈추고, 다시 발길을 옮겼다.

이번에 만난 사람은 정보통신 벤처기업에서 개발팀장으로 일한다는 김모 씨. 우리 나이로 37살이다. 부인과 함께 나왔는데, 경찰의 강제 진압이 시작될 무렵 부인을 집에 보냈다고 했다. 그는 <프레시안>을 후원하는 '프레시앙'이기도 하다.

"촛불집회에 열 번쯤 나왔어요. 평일에는 바빠서 못나오고, 주말과 일요일에 주로 나왔죠."

"시위대의 열기가 대단하죠?"

"네.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정말 대단한 힘을 내는 것 같아요. 저도 벌써 나이를 먹었는지, 별로 힘을 보태지는 못하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이렇게 내뱉고, 그는 자리를 떴다. 일어서면서 그는 "이게 참 뭐하는 짓인지"라고 중얼거렸다.

적어도 집회 자체가 마냥 즐겁기만 하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언론의 기사에 등장하는 '전문 시위꾼'은 아니었다.

모처럼 여유있게 거리를 거닐며, 사람들을 만났지만 '전문 시위꾼'을 찾기는 어려웠다. 물론, 보수 언론이 지적한 '전문 시위꾼'도 분명히 있었다. 이런 사람들과도 한 마디쯤 해야 할텐데….

앞서 시위대가 밧줄로 전경버스를 잡아당길 때, 눈 여겨 봐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 다가갔다. 30대 후반쯤으로 봤는데, 왠걸 27살이라고 했다. 그는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한다고 했다.

툭, 말을 걸었다.

"학부 시절에 운동권이었어요?"

"아뇨. 저는 대학 다니면서 운동권 선배 만나본 적도 없는 걸요. 월드컵 거리 응원하느라 이렇게 나온 적은 있지만 데모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아까 밧줄로 잡아당기는 모습이 조·중·동 기자의 카메라에 담겼다면, 영락없이 '전문 시위꾼'으로 몰릴 법 했어요."

"조·중·동이 늘 그렇죠. 뭐."

"원래 조·중·동을 싫어했어요?"

"제가 정치에 관심이 없는 편이어서인지, 언론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 보도하는 걸 보니까 문제가 심각하더라고요."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한다고 했는데, 혹시 고시생인가요?"

"네. 맞아요."

"남들 공부할 때, 이렇게 시간 보내면 다른 수험생들에게 뒤쳐진다는 불안감이 들지는 않나요?"

"당연히 들죠. 하지만 할 건 해야죠. 다시 80년대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이명박 대통령을 이대로 내버려두면, 민주주의가 파탄날 거라고 봐요. 물대포에 최루액을 섞겠다니. 국민을 상대로 선전포고한 셈 아닌가요. 대통령이 국민에게 싸움을 걸어오는데, 국민이 가만있으면 폭정이 저질러지는 거죠. 선배들이 고생해서 얻은 민주주의를 이렇게 쓰레기통에 처박을 수는 없잖아요."

조·중·동에 대해 냉소적인 그였지만, 막상 집에서는 <조선일보>를 본다고 했다. "끊어야지 하면서도 못 끊겠더라고요. 볼 만한 기사가 많은 것도 사실이고"라면서, 그는 좀 쑥쓰러워 했다.

그는 "제가 사실, 진보는 아니거든요"라는 말을 변명처럼 덧붙였다.
▲ ⓒ프레시안

시청 앞에 있던 시위대가 종로로 몰려오기 전까지, 한 시간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눴다. 일곱 명쯤 만났는데, 한 명을 제외하면 "진보적인"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우리 사회의 이념적 평균치를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책임감'을 강조한다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것 정도였다. '누가 다쳤다더라'라는 이야기가 들리면, 자신이 다친 것처럼 걱정하는 사람들이었다.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언론은 촛불집회 참가자 가운데 '새총'을 쏜 전문 시위꾼이 있다며 걱정한다. 하지만 집회를 내내 지켜보니, 이들 언론이 전문 시위꾼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들은 행동만 거칠 뿐, 무섭지 않다. 정말 무서운 것은 '착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은 남을 속이거나 해코지 한 적이 별로 없는 '착한 사람'들을 몹시 화나게 했다. '착한 사람들'이 화나면 진짜 무섭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