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작전 지역에서는 도로 위는 물론이고 인도에도 서 있어서는 안 된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도 여럿이 '떼로' 서 있어도 안 되고, 혼자 서 있어도 안 된다.
손에 촛불이나 작은 피켓이라도 들고 서 있어도 불법이다. 촛불을 들고 걸으며 자리를 이동하는 것은 당연히 불법이다.
경찰이 비키라고 하면 무조건 '토 달지 말고' 비켜야 하고, 경찰이 저리로 가라고 하면 그래야 한다. 안 그러면 현행범 체포가 가능하다.
물론, 경찰에 따르면 그렇다. 경찰은 이날 밤 광화문 네거리에서 시민들을 그렇게 '위협'했고 '협박'했다.
"길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 범죄 저지를 소지 있다"
이날 밤 시민들은 또 다시 촛불을 들었다. 주최 측 추산 5만 명의 사람들이 시청 앞 광장에서 청와대로 가기 위해 도로로 뛰어들었지만 경찰은 일찌감치 조선일보 건물 앞에 차량으로 저지선을 만들고 시민들을 가로 막았다.
조선일보 앞에서 광화문 네거리까지 세종로 길은 전경들이 점거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경찰에 의해 모든 길이 봉쇄돼 차량벽 건너편으로 가지 못한 일부 시민들이 광화문 네거리 위에서 촛불을 들었다. 숫자는 불과 20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저녁 8시부터 경찰은 이들마저 몰아내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경찰에 밀려 인도 위까지 쫓겨났다. 그러나 경찰은 계속 시민들을 다그쳤다. 횡단보도 앞 인도에도 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여기는 인도인데도 서 있으면 안되요?"
"저 쪽으로 건너가시라고요."
"내가 왜 저 쪽으로 가야하는데요? 나는 여기 서 있고 싶어요."
"범죄 예방 저지 차원입니다."
길 위에 가만히 촛불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은 무조건 '범죄'를 저지를 소지가 있다는 단정이었다. 인도 위에서 시민들과 경찰들은 계속 말다툼을 벌였다. 그러는 동안에도 일명 '확성녀'로 불리는 여자 경찰은 방송을 통해 계속 "경찰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즉각 현행범으로 체포하겠다"고 경고했다.
"안내하려 한다"면서 "현행범 체포" 위협하는 경찰
기자가 경찰에게 물었다. '인도 위에 단지 10여 명이 서 있는 것이 불법인가요?'라는 물음에 한 경찰은 "이 곳은 작전 지역이기 때문에 서 있는 것도 안 된다"고 대답했다. 이 경찰은 "지금 경찰이 작전을 벌이는 중이기 때문에 위험해서 저희가 안 위험한 곳으로 안내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안내'하려 한다는 경찰은 인도 위의 시민들보다 더 많은 숫자의 전투경찰을 동원해 시민들을 에워싸고 위협했다. "자꾸 버티면 체포하겠다"고 협박도 했다.
광화문 네거리의 네 모서리에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며 시민들이 고립됐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의 변호사들이 신분을 밝히며 "연행자가 있는지를 확인해 달라. 현장 책임자와 대화를 원한다"고 요구했지만 경찰들은 변호사마저 몸으로 밀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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