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습니다. 고시 발효 이후의 정국이 어떻게 흘러갈지 걱정도 됐습니다.
그러던 차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전혀 엉뚱한 곳에서 전망의 단서가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조선일보> 였습니다. 정부와 '쇠고기 보조'를 맞춰온 <조선일보>의 사설 한 구절이 머리를 곧추세운 코브라마냥 앉아있었습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무릎을 쳤습니다.
"숭례문 화재 때 당국은 불길이 잡혔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안에 남아 있던 불이 숭례문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대통령과 정부는 아직 국민의 마음속에 불씨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아주 적절하고 날카로운 지적이었습니다. "정부는 '광우병 대책회의'와 같은 단체는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등의 주장이 거슬렸지만 그렇다고 이 지적까지 버릴 일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한 구절에 대한 감탄이 확신으로 발전하더군요.
2.
아마 이 기사를 먼저 읽지 않았다면 확신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저 '막연한 전망' 또는 '의례적인 지적' 쯤으로 치부했을 겁니다. 이 기사가 없었다면 분명 그랬을 겁니다.
<한겨레> 기사입니다. '동서리서치'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담은 기사입니다. 거기에 국민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있더군요.
추가협상 이후에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응답률이 65.5%였습니다. 추가협상에서 합의한 월령 제한이 '한시적 조치이며 월령 구분도 확실히 하기 어려워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의견이 68.7%였고, '재협상을 벌여야 한다'는 응답률이 74.2%였습니다.
변한 건 없습니다. 대통령이 변하지 않았듯이 국민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추가협상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3.
누가 봐도 분명합니다. <한겨레> 여론조사에 담긴 국민 마음이 '불씨'입니다. 그게 '속불'입니다. 이 '불씨'가 또 다른 '숭례문'을 태워버릴지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숭례문 전소'와 같은 불행한 일이 재연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선일보>의 해법이 답이 될 수 있을까요? "'광우병 대책회의'와 같은 단체는 상대할 필요가" 없고, "주부들과 어린 학생들, 대다수 선량한 시민들" 만을 상대로 대통령이 직접 대화하고 설득하면 될까요? 가당치 않습니다. 국민은 예나 지금이나 '재협상'을 요구합니다. 이런 국민을 상대로 '추가협상'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건 해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재협상'에 나설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럴 마음이 한 톨이라도 있다면 국회의원과 초등학생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 연행하는 짓도, 시민의 손가락을 물어 끊는 짓도 벌이지 않았겠지요.
정부가 취하려는 유일한 방책은 '진압'입니다. 물대포를 쏘고 분말소화기를 쏴서 시민을 해산하는 겁니다. 그렇게 갈기갈기 찢어 '선량한 시민'과 '불순한 세력'을 나누고 '불순한 세력'에 '엄정 대처'하는 겁니다.
4.
다시 <조선일보>로 돌아가야겠네요.
'숭례문' 꼴이 날 수 있습니다. '불씨'가 안에서 타오르고 있는데 기왓장을 향해서만 소방호스를 들이대는 우를 또 다시 범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마구잡이 대처법이 또 다른 '숭례문 전소' 사건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고시 강행처리가 국민을 자극할지 모릅니다. 시위 강경진압이 국민을 분노하게 할지 모릅니다. 실망 반 포기 반의 심정으로, '될대로 되라'는 심정에 빠져들던 일부 '선량한' 시민마저 돌아서게 만들지 모릅니다.
당장 오늘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 될 수 있습니다. '반성'해야 할 대통령과 정부가 '반격'을 도모하는 본새가 '불씨'에 풀무질을 하는 결과를 빚을지 모릅니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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