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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속이려 들면 제 무덤 판다

[김민웅 칼럼] WTO 기준이 뭐가 어떻다고? 국제망신 그만 하시라

질병확산에 대한 국가 책임을 통상문제로 호도

전제부터 틀린 것을 가지고 결론을 내리면 언제나 그 결론은 잘못될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권은 질병확산을 막는 국가의 책임에 관련된 문제를 놓고, 통상운운하면서 완전히 엉뚱한 주장으로 사태를 호도하고 있다. 거짓과 기만의 연속이다.

이명박 정권이 발표한 대로 따르면, 광우병 우려가 있는 쇠고기 처리 문제와 관련한 한-미간 추가협상의 전제는 WTO의 기준이었다. 시장에서 정부의 강제적 규제를 인정하지 않는 WTO의 조항에 충돌하는 협상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민간자율과 미국 정부의 간접보증이 결합하는 최적의 방식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그 방식의 현실이 미국 민간업계와 정부에 검역주도권을 넘긴 채 품질승인 딱지 하나 받아 만족하라는 이른바 품질 관리시스템 QSA (Quality System Assessment)이다.

미국 정부의 직접 보증은 WTO의 원칙과 충돌한다?

QSA가 무엇인지 따지기 이전에, 우선 과연 이런 논리가 맞는가? 시장에 대한 정부의 직접개입과 통제, 내지는 관리는 WTO에서 정말 불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는가?

우선, 이명박 정권이 발표한 추가협상에서 거론했던 정부와 시장의 관계에 대한 WTO의 본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압축해서 두 가지다. 첫째는 정부가 보조금 지급이나 기타 지원으로 특정한 누군가를 유리하게 함으로써 불공정한 국제적 경쟁 상태를 조성하지 말라는 것과, 둘째 시장에서 기업에 대한 규제를 해체하는 이른바 규제 철폐 내지 완화(deregulation)라고 하겠다.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나 기타 정책적 지원을 가로막으려는 WTO의 조항은, 당연히 후발 주자들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려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주장이 관철된 결과다. 우리의 농업이 이토록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된 것도 바로 이와 관련이 있다. 농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정책의 길이 점차 봉쇄되면서, 곡물이나 기타 농산품의 국제적 독점체제를 장악하고 있는 초국적 대자본의 이익이 확보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대목은 두 번째 사안과 관련한 논란이다.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이 시장에서 최대한 자유를 만끽하도록 정부는 이를 가로막을 만한 것들은 모두 치우라고 요구하는 지침이다. 이른바 기업 친화적 정부의 기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공적 이해와 관련한 여러 규제나 노동의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도 이 규제완화 내지 철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환경, 질병 문제는 규제철폐나 완화 대상 아니다

하지만 환경이나 질병문제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규제문제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 피해가 워낙 막대하기 때문에 WTO 체제도 이에 대해서는 당연한 규제(regulation)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이른바 SPS Agreement (Sanitary and Phytosanitary Measures) 협정문으로 이미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정리된 것이다. 통상대상이 되는 동물이나 식물의 질병문제를 관리하는데 있어서는 규제철폐나 완화의 개념을 어떤 식으로도 적용시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시 거론하자면, 이명박 정권은 정부가 시장에 강제적으로 개입해서 기업의 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것은 이미 WTO의 기준에 정면충돌하는 것이므로 광우병 우려의 소지가 있는 쇠고기 수출문제에 미국 정부가 직접 개입해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논리는 WTO 그 어디에도 근거가 없다. 광우병 우려문제는 일차적으로 통상보다 더 선차적인, 질병확산을 막아야 하는 국가의 책임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보증되지 못하면 통상은 없다. 거꾸로 생각해봐도 이는 너무도 분명하게 성립하는 논리다. 광우병 우려가 있는 한국에서 미국이 쇠고기를 수입해간다고 치면 미국은 한국정부에 무엇을 요구하게 될까? IMF 관리체제 아래에서는 민간기업의 부채도 정부보증을 요구한 것이 다름 아닌 미국이다.

광우병 우려 있는 쇠고기 유통되는 한국, 여행 경계지역 안될까?

가령 이런 것은 어떤가? 조류독감이 국제적으로 확산될 때, 조류독감이 돌거나 의심되는 지역의 닭이나 오리 수출은 그 나라 정부가 국제적인 책임을 지고 막도록 되어 있는 것은 상식이다. 통상보다 더 명백하게 중요한 것은 건강에 위협을 주는 질병의 확산을 저지하는 것임은 누구에게도 당연하다. 만일 이를 규제대상에서 제외하는 국가가 있다면 그 지역은 국제적으로 접근 경계지역이 된다.

따라서 만일 이웃 일본이나 중국이 미국과 이런 협정을 맺어 광우병 우려의 소지가 있는 쇠고기를 수입했다고 하면 그 지역으로 여행가는 우리나 외국인들은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음식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을까? 이제 일본이 만일 한국에 가면 쇠고기 관련 음식은 먹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여행안전 안내문을 만들 경우, 이를 가지고 수치스러운 외교논쟁을 벌일 참인가?

이미 몇 차례 강조했지만, 이런 엉터리 협상을 그대로 움켜쥐고 국민을 자꾸 속이는 것이야말로 국제망신이다. 그와 반대로, 이를 교정하기 위해 재협상에 돌입하면 그것이야 말로 국제적 위신이 바로 서는 일이다.

"미친 짓 좀 그만 하지!"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쇠고기 시장 횡포에 대한 불만이 국제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의 재협상 요구는 국제적으로 더더욱 힘을 받게 될 것이다. 미국 내 소비자 운동에도 이미 우리의 촛불의지는 영향을 주고 있다. <뉴욕타임즈> 6월 20일자에는 미국 농림부가 소를 제대로 검사하지 않는다면서, 미국의 소비자 연합(Consumer Union)의 선임 연구원 마이클 한센의 기고 "미친 짓 좀 그만하지(Stop the madness!)"가 실린 것도 이런 까닭이다.

미국 농림부 부속 기관 된 이명박 정권?

미국 내 검사 시스템 자체에 대한 불신이 미국 안에서도 있는 판에, 이명박 정권이 "미국 믿자"고 앞장 서는 이유는 도대체 무언가? 이명박 정권이 어느새 미국 쇠고기 수출 자본의 대리인이자, 미국 농림부의 부속기관이라도 되었단 말인가?

촛불의 시위 앞에서 주춤 뒤로 물러서는 듯하면서 추가협상이라고 들고 온 내용은 조금만 살펴보면 애초에 문제되었던 핵심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이 눈멀고 귀먹은 줄로 아는 모양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국민을 속일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 끝은 무엇일까?

진짜 피로감은…

우리 국민 어느 누구도 먹지 않는 소의 눈, 골 등도 처음에는 다 들여올 수 있게 해서 이 나라를 미국 육축업자들의 쓰레기 하치장으로 만들려 했던 정부, 이후 여전히 특정하게 위험한 물질 (SRM" Specified Risky Material)이 포함된 뼈, 내장 수입의 길을 열어놓은 정부, 그래서 질병확산 저지의 책임을 포기한 정부는 도대체 누구의 정부인가?

아무래도 광화문 촛불의 힘은 더욱 강하게 과시되어야 하나보다. 권력과 자본과 그의 추종언론들은 두 달에 가까운 "집회의 피로감"을 거론하는 모양이나, 우리는 이제 갓 1백일이 넘은 이명박 정권이 주는 피로감이 더 하다는 것을 아는지? 국민 노릇 하기 정말 힘들다. 그 피로감이 일정한 경계선을 넘으면 더욱 큰 폭발력을 가진 분노로 변하고 만다는 사실을 또한 알고 계시는지?

국민을 자꾸 속이면…

이런 식으로 국민의 목숨을 위협하면서 정치를 계속할 수는 아마 없을 것이다. 쌓이는 국민적 분노를 그때그때 땜질하듯이 과소평가하면서 넘어가다가 제대로 수명을 못 채운 권력이 여럿 있었던 것을 역사는 아직 망각하지 않았다.

아, 역시 권력이 국민을 자꾸 속인다는 것은 제 무덤 파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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