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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손 내민 과학자…그의 '속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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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종교에 손 내민 과학자…그의 '속내'는?"

과학과 종교의 대화 <9> 종교인의 '과학'은?

독자들의 관심 속에 진행 중인 '과학과 종교의 대화'가 세 번째 서신 교환을 시작한다. 이번에도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가 신재식, 김윤성 교수에게 먼저 말문을 열었다. 장 교수는 하버드 대학의 에드워드 윌슨 교수와의 만남을 화제로 '과학자가 종교를 어떻게 보는지'를 설명하고, '종교인이 과학을 어떻게 보는지' 묻는다.

장대익 교수는 2006년 7월부터 1년간 미국 보스턴에 있는 터프츠대 인지연구소에서 대니얼 데닛 교수와 함께 연구를 했다. 이 편지는 그 당시에 초고가 작성된 것이다. <편집자>

신재식, 김윤성 선생님께

보스턴에서 인사드립니다. 벌써 3월 말이네요. 보스턴이 겨울이 길고 가끔씩 4월에도 눈이 온다고 하는데, 최근에 눈 소식은 없습니다. 저는 별 상관없지만 아이들이 무척이나 아쉬워하더군요. 지난달까지만 해도 눈이 오면 무조건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에 있는 브래킷 초등학교 언덕에 올라가 눈썰매를 타곤 했지요. 한 번이라도 더 탈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좋겠어요. 올 겨울에는 한국에 있을 텐데 그때쯤에는 보스턴의 눈썰매가 아쉽겠지요.

지난번 편지에서 저는 과학자의 메스로 종교를 해부해 보았습니다. 저는 종교가 종교인, 신학자, 종교학자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초월적 뭔가가 아니라, 과학자의 시선을 필요로 하는 '자연 현상'임을 강조했던 것 같습니다. 김 선생님은 '자연 현상으로서의 종교'보다는 '문화 현상으로서의 종교'로 말씀하고 싶으시겠지만, 저는 그 '문화'라는 것도 결국 '자연 현상'이기에 종교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자연 과학적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기억나시죠?

드디어, 지난주에 종교로 과학을 해부해 온 대표적 과학자 두 분과 함께 점심을 같이 했습니다. <사회생물학>, <통섭>의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을 만날 거라 예고해 드렸었지요. 그 '꿈'이 지난주에 이뤄졌던 겁니다.

드디어, 에드워드 윌슨을 만나다

그를 만나게 된 사연은 이렇습니다. 데닛과 스쿼시를 치던 시절, 그러니까 그가 작년 10월 중순에 갑작스레 심장 대동맥 수술을 받기 두 주 전, 격렬하게 몇 게임을 하고 나서 잠시 쉬던 차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리처드 그리핀 박사(Richard Griffin,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배런 코언(S. Baron-Cohen) 밑에서 학위를 하고 터프츠 대학교에 데닛의 박사 후 과정 연구원으로 와 있는 친구로 아동의 '마음 이론(theory of mind)'에 대해 연구 중입니다.), 그의 친구, 그리고 데닛, 저, 그리고 인지 연구소의 대학원 조교 한 명이 같이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가 윌슨이 낸 최근 저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제가 "왜 윌슨이 책 제목을 'Creation'이라고 지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을 꺼내자 즉석에서 데닛이 윌슨하고 점심 한번 하면서 같이 이야기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지요. "자네는 그의 <통섭(Consilience)>도 번역하지 않았나" 하고 덧붙이면서 말이죠. 저야 "당연히 좋습니다!"라고 할 수 밖에요. 제 어찌 평생 윌슨같이 훌륭한 학자를 개인적으로 만나 뵐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 나서, 지난번에 전해 드렸듯이, 데닛은 연구실에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응급실로 실려가 9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생사의 고비를 넘겨 정말 다행히도 작년 12월 중순부터 정상적인 생활을 하시게 되었지요. 그 과정에서 데닛이 쓴 에세이("Thank Goodness")에 대해서는 지난 편지에 제가 이야기해 드렸지요. 어쨌든 데닛은 저와 크리스마스 이메일을 주고받는 중에 올해 1월 정도에 윌슨과 함께 만나자는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던 것이 결국 지난 주, 그러니까 2007년 3월 13일에야 성사되었지요. 1~2월은 윌슨이 여행을 많이 다녀서 시간을 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약속은 정오에 윌슨 연구실에서였습니다. 11시에 터프츠 대학교의 데닛 연구실에서 데닛을 만나 하버드에 같이 가기로 했기 때문에 저는 시간에 맞춰 학교로 갔습니다. 데닛을 처음 만날 때도 그토록 긴장되지는 않았는데 왠지 모를 설렘이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어렵게 성사된 약속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저는 데닛이 윌슨과 약속을 아직 못 잡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좀 죄송해서 데닛에게 윌슨이 원래 대답을 빨리빨리 안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지요. 그랬더니 그건 아니고 여행 중인 것 같다고 하면서, 윌슨은 자신의 친한 친구니 그런 걱정은 말라고 하시더군요.) 어쨌든 저는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 재개를 하고 생전 안 닦던 구두도 슬쩍 문지르고 집 문을 나섰습니다.

11시 정각에 데닛의 연구실에 가서 기다리며 그의 비서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데닛이 조금 늦게 핸드폰을 귀에 대고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방을 챙겨서 나에게 같이 가자는 신호를 보냈더군요. 그는 차에 타서도 전화를 놓지 않고 뭔가를 듣고 있었는데 조금 있다 알고 보니 NPR(National Public Radio)의 한 프로에 전화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날은 국가의 종교 교육에 관해 어떤 저자와 대담을 하고 있었는데, 종교 교육에 대한 데닛의 견해를 듣기로 했던 모양입니다.

하버드 대학교가 있는 케임브리지로 가는 내내 데닛은 한손에 전화를 한손에는 핸들을 잡고 갔습니다. 그리고 한두 차례 의견을 주고받더군요. 그는 "아니요. 저는 종교를 이 땅에서 몰아내자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현재의 종교들이 더 좋은 종교가 되도록 돕자는 것이지요. 저는 모든 학생들에게 종교 교육을 해야 한다는 생각합니다. 다만 특정한 종교가 아니라 주요한 모든 종교들의 경전, 의식, 주장 등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저 같으면 어딘가에 주차해 놓고 여유 있게 인터뷰를 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더군요. 아마도 윌슨과의 만남 시간에 늦지 않는 게 더 중요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그 인터뷰는 오늘 윌슨과의 만남에서 나올 주제를 예고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5분 정도 일찍 도착해 윌슨의 실험실이 있는 하버드 대학교 자연사 박물관 4층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니 웬 할머니 한분이 따뜻하게 맞아 주더군요. 알고 보니 윌슨의 비서였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윌슨이 얼굴을 내밉니다. 데닛의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반갑다고 활짝 웃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데닛이 인사를 주고받자마자 저를 소개해 줬습니다. "서울에서 온 내 포닥인데 당신의 <통섭>을 번역한 친구"라고요. 저는 너무도 평범한 인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라고요. 하긴 다른 어떤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는 데닛과 저를 자신의 서재로 먼저 데려가더니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고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책을 소개해 주고는(아마 서평을 쓰던 중이었나 봅니다.) 문을 나와 바로 앞에 설치되어 있는 열댓 개의 철제 파일 박스를 보여 줬습니다.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논문들입니다." 제가 물었지요. "혹시 모두 선생님이 쓰신 논문들인가요?" "아 그건 아니죠. 내가 논문을 많이 쓰긴 했지만 어찌 이렇게 많겠어요?" 그러고는 바로 비서실과 선생님 연구실 중간에 있는 회의실 같은 곳으로 우리를 안내했습니다. 거기에는 오늘 점심을 위해 준비된 초밥 도시락과 음료수가 놓여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통섭> 한국어판 두 권과 미국판 <생명의 편지> 한 권을 가방에 챙겨 가져갔습니다. <통섭> 한 권은 기념으로 윌슨에게 주고, 한 권은 <생명의 편지>와 함께 저자 사인을 받아갈 욕심이었죠. <통섭>을 꺼내 놓고는, 제가 'Jae Choe'(외국 학자들은 최재천 교수님을 이렇게 부릅니다.)와 함께 이 책을 번역했고, Jae Choe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고 하자, 윌슨은 그럼 "내 학문적 손자가 왔다"라면서 아주 반갑게 맞아 줬습니다.

<통섭>이 한국에서 1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하자, 바로 한국의 인구가 얼마 정도 되냐고 되물으시더니 4500만 명 정도 된다고 하자, 그러면 미국으로 치면 10만 부 정도 판매되었으니 큰 성공이라고 좋아하셨습니다. 저는 "그만큼 팔린 것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이 '통섭'이라는 개념이 한국의 지식계에 아주 중요한 화두로 널리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잠시 거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지요.

윌슨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에서 대화를 비무장 지대(DMZ) 문제로 끌고 가셨습니다. 데닛은 DMZ에 대해 처음 듣는 모양이었습니다만, 윌슨은 오래전부터 한국의 DMZ에 관심을 가져 왔었지요. 한번은 <뉴욕타임스>에 "전쟁이 만들어 준 생태 낙원"인 DMZ를 생태 공원으로서, 남북한은 물론, 세계가 국립공원이자 세계 자연 유산으로서 가꿔야 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을 정도이지요.

윌슨은 한반도 통일 후 DMZ 운용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까지 이야기하더군요. 사람들이 많이 다녔던 곳은 조그맣게 관광지로 개발하고 나머지 처녀지는 지금 상태 그래도 유지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생태 문제에 여생을 헌신하기로 작정하신 분답게 매우 구체적인 고민을 하고 계셨습니다. 언제부터 DMZ에 관심을 가지셨냐고 여쭤 보니 7~8년 되셨답니다. 그러면서 빨리 통일이 되도록 부시가 제발 잘 좀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며 웃으셨지요.
▲하버드 대학교의 에드워드 윌슨의 연구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윌슨(왼쪽)과 대니얼 데닛. ⓒ장대익

전사 도킨스, 전략가 데닛 그리고 외교가 윌슨

DMZ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생태계의 위기 이야기로 번졌고 윌슨, 데닛, 그리고 저는 자연스럽게 윌슨이 작년에 출간한 <생명의 편지>로 화제를 옮겼습니다. 아시듯이 이 책은 윌슨이 (가상의) 목사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의 편지들에서 여러 번 논의를 주고받았던 것처럼 어린 시절 어쩌면 앨라배마에서 함께 기도하며 신앙을 함께 키웠을지도 모르는 남침례교 목사를 향해 쓴 편지로서, 진화 생물학자로서의 면모보다는 지구의 생태 위기를 가장 시급한 문제로 보는 생태학자의 면모가 조금 더 드러나는 책입니다. 표지에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오지요. "가장 시급한 문제인 생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잠시 과학과 종교 간의 형이상학적 긴장은 제쳐 두자. 생태 위기는 두 영역이 함께 손을 잡고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데닛이 먼저 운을 떼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저와 리처드 도킨스의 종교관이 어떻게 다른지를 묻더군요. 저는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답하죠. 내 이야기는 종교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오히려 공공 학교에서도 종교(모든 종교)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다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종교의 실상을 알 수 있고 종교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으며 종교를 더 좋은 종교로 만들 수 있다. 제 주장은 이런 거지요. 그런 면에서 제 견해는 당신(윌슨)의 견해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요."

두 분 선생님은 작년에 출간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과, 데닛의 <주문 깨기(Breaking the spell)>, 그리고 윌슨의 <생명의 편지>까지 보셨으니 이들의 대화가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최근 1∼2년은 진화론의 대가들이 저마다 종교에 대한 책들을 출간했던 아주 흥미로운 시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사실은 종교의 기원, 유지, 기능에 대해 모두 생각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일 겁니다. 이론적으로 볼 때 이 차이 중 어떤 것은 아주 미묘해서 전문가들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윌슨이 데닛의 말을 이렇게 받습니다. "저는 리처드(도킨스), 당신(데닛), 그리고 나의 차이를 이렇게 규정하고 싶소. 리처드는 종교와 전쟁을 벌이는 전사이고, 당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를 재고하게 만드는 영리한 전략가이며, 나는 생태 문제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풀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는 실용주의자이죠." 이런 성격 규정이 맘에 들었는지 데닛이 맞장구를 치더군요. "이 얼마나 절묘한 분업입니까!"

사실 저는 좀 싱거웠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역할을 딱 정리하고 끝날 줄은 몰랐습니다. 내심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고 싶었거든요. 우선 "형이상학적 문제를 제쳐 두자."라는 윌슨의 태도가 맘에 좀 걸리더군요. 앞의 편지에서 이야기했듯이 윌슨은 종교를 하나의 '적응(adaptation)'으로 간주합니다(한국에도 출간된 <통섭> 10장을 보면 그 입장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이 신과 같은 초월자를 믿게끔 진화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가령, 동물 집단에서 나타나는 서열 행동(열위자가 우위자에게 복종하는 행동)과 종교와 권위에 순종하는 인간의 행동을 비교하면서 동물들이 이런 행동을 통해 각자의 적응적 이득을 높이듯이 인간도 종교적 행위들을 통해 자신의 번식 성공도를 높였다고 말했지요. 종교 행위를 자연 현상으로 이해하려는 참신한 시도였습니다. 이런 식의 도전적인(기존의 종교 현상학 이론들에 비할 때) 이론은 온데간데없고, 생태 문제를 위해 손을 잡자니……. 나쁘게 말하면 솔직히 윌슨이 기회주의자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저는 그 자리에서 이런 생각을 밖으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저를 초대해 준 석학한테 그건 절대 예의가 아닐 테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데닛마저도 너무 쉽게 윌슨의 태도를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 같아 사실은 좀 놀랐습니다.

종교를 이용하려는 윌슨의 논리는 매우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묻더군요. "미국의 복음주의 연합에 가입된 신도수가 얼만지 아세요. 수천만 명이에요. 그러면 미국 무신론자 연합은 얼마나 될까요? 많아야 수만 명일 겁니다. 나도 철저한 무신론자이긴 하지만 더 중요한 이슈를 위해서 이 엄청난 수의 사람(저의 것과 양립 불가능한 형이상학적 전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놀랍고 고무적인 것은 이들이 내 이야기를 정말로 경청한다는 사실입니다. 내 책을 계기로 많은 강연회를 다녔는데 기독교 단체들에서 열렬한 환영을 받았지요. 마치 고향에 간 느낌이었어요." (웃음)

잘 알려져 있듯이 윌슨은 어린 시절을 전형적인 남침례교인처럼 지낸, 이른바 '거듭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진화를 공부하면서 어느 순간 믿음을 버리게 되었지만 종교적 에토스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통섭을 지향하는 그의 학문적 태도와 방법론이 매우 기독교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히브리 전통이든 헬라 전통이든 "모든 지식은 결국 하나님의 지식"이라는 발상은 지식의 현대적 파편화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지 않습니까? 이번에 저는 그의 글이 아닌 그의 언행에서 직접적으로 기독교적 냄새를 좀 맡았습니다. 말로 표현하기는 참 어렵지만 기독교인들을 많이 대해 보면 알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느낌이랄까요.

이에 질세라 데닛도 몇 주 전의 그의 경험을 이야기합니다. "저도, 남침례 대학교에 초청을 받아 수천 명의 청중 앞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었지요. 아주 진지했고 훌륭한 질문들을 던지더군요. 아주 고무적이었어요."

이렇게 보니 우리의 도킨스만 이 대목에서 약간 소외되는 분위기입니다. 도킨스의 이야기를 경청해 보겠다고 초청하는 교회나 신학교는 거의 없지 않나요? 물론 신학자들이나 비판자들과 제3의 장소에서 논쟁을 즐기고 있다는 소식은 저도 듣고 있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면에서 도킨스를 지지하고 의견을 같이하는 데닛이지만 종교에 대해서만큼은 약간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만들어진 신>에 대한 한 서평에서 데닛은 그 점을 명확히 했지요. "종교의 지위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그와 좀 다른 것 같다."라는 식으로 자신이 '이단'임을 '고백'했고, "오늘날 그 누가 신 존재 증명 같은 것에 큰 관심을 보이겠나? 신 존재 증명의 실패를 그렇게까지 길게 쓸 필요는 없다."라고 도킨스의 책에 대해 한마디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오히려 "신에 대한 믿음(belief in god)"보다 "신에 대한 믿음에 대한 믿음(belief in belief in god)"이 퍼져 있는 것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고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끝이 없었습니다. 특히 템플턴 재단(Templeton Foundation)에 대한 입장과 경험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극에 달했습니다. 그 재단은 주식 투자로 떼돈을 번 존 탬플턴이라는 사람이 세운 비영리 단체로서 특히 과학과 종교의 관계 문제를 탐구하는 이들에게 여러 형태의 자금을 대줍니다. 매년 탬플턴 상을 주는데 상금이 장난 아닙니다. 아시듯이, 한국에서는 영락 교회의 원로 목사인 한경직 목사가 그걸 받아서 화제가 된 적이 있지요.

어쨌든 두 사람은 모두 한 번도 그 돈을 받은 적이 없었는데요, 왜 받지 않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윌슨은 그 자금으로 진행 중인 하버드 프로젝트(하버드 신학 대학이 주관 기관이 되어 하는 프로젝트로 이타성에 대한 연구입니다)에 참여했지만, 받아야 되는 돈을 거부했다고 하더군요. 이유인즉, 그 자금이 종교에 대해 좋은 결과만을 내도록 은근히 치우쳐져 있답니다.

데닛도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자유의 진화(Freedom Evolves)>라는 책을 막 쓰기 시작할 즈음, 그 재단의 저술 지원 프로그램에서 문의가 왔었답니다. 한번 지원해 보라는 식으로 권유를 하더랍니다. 지원 요강에 아주 딱 맞는 책이어서 한번 지원해 볼까도 생각했었답니다. 하지만 템플턴 재단의 방향과 그간의 성과 모음들을 보고는 결국 마음을 접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이론이 완전히 왜곡되어 그 재단의 홈페이지에 올라져 있는 걸 보고 항의했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윌슨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묻더군요. "왜 저명한 과학자들이 그 재단을 통해 뭔가를 하는지 아오? 그건 돈의 유혹 때문일 거요. 책 한 권을 쓰면 엄청난 돈을 주거든. 그건 유혹이지." 데닛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데이비드 슬론 윌슨이 그 재단 돈으로 연구한 결과물을 보면 그 모든 것이 이해가 갑니다. 은근히 종교를 띄워 주고 있거든요. 집단 선택론으로 말이죠." 윌슨이 몇 해 전에 출간한 <종교는 진화한다(Darwin's Cathedral)>를 두고 한 말일 겁니다.

이렇게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2시간 넘게 계속되었지요. (대화의 후반부에는 윌슨이 현재 쓰고 있는 <초유기체(Superorganism)>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책은 윌슨이 줄곧 주장해 온 친족 선택(kin selection) 이론을 스스로 뒤엎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데닛과 저는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긴 하지만, 윌슨은 확신에 차 있는 듯합니다. 자신이 예전에 틀렸다고요!?)

시계를 보니 데닛과 함께 참여하는 하버드 대학교 철학 세미나에 10분이나 늦었더군요. 자리에서 막 일어나면서 저는 가방 속에 넣어 둔 <통섭>과 <생명의 편지>를 얼른 윌슨에게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사인을 받았습니다. 그때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는데요, 데닛도 가방에서 <생명의 편지>를 꺼내더군요. 저처럼 사인을 받으려고요.

더 웃겼던(?) 것은 제가 데닛에게 선물한 제 책 <다윈 & 페일리: 진화론도 진화한다>도 꺼내면서 맨 뒤에 나오는 지식인의 지도를 펼쳐 보이고 윌슨에게 "당신과 나, 그리고 도킨스가 모두 같은 편이라고 여기 그려져 있어요. 보세요. 귀여운 그림들이죠?"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닙니까? 순간 당황했죠. 그리고 저를 격려해 주려고 이렇게 일부러 제 책을 들고 온 데닛의 배려에 감동 먹었습니다.

종교인은 과학을 어떻게 보는가?

이야기가 좀 길어졌네요. 이해해 주세요. 제가 누구를 만나고 왔습니까? 사회 생물학의 창시자, 행동 생태학의 살아 있는 전설을 만나고 온 것 아닙니까? 그것도 인지 철학의 대가인 데닛과 함께 말이죠. 사실 이번 만남의 주제는 사회 생물학이나 인지 과학은 아니었습니다. 종교였지요. 전 세계를 대표하는 무신론자 두 분을 만나 과학과 종교에 대해 토론하고 온 셈입니다. 저는 마치 무신론의 사령부에 가서 최고위층을 만나고 온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들만큼 종교를 진지하게 대하는 과학자들이 또 있을까?' 이들의 최근 작업은 어쩌면 종교에 대한 강한 '애증(愛憎)' 표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에드워드 윌슨의 연구실에서 윌슨(가운데), 대니얼 데닛과 함께한 필자 장대익 교수. ⓒ장대익

어쨌든 저와 데닛은 자리에 일어났습니다. 저는 이 역사적 순간(적어도 저에게는)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카메라를 꺼냈습니다. 두 분을 찍고 있으니 할머니 비서가 다가와 저도 가서 서 보라고 그러시네요. 또 하나의 '가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오면서 데닛이 저에게 묻더군요. "정말 좋은 시간이지 않았냐"라고요. 저는 더 좋은 표현을 찾기 위해 잠시 머뭇거렸지만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지요.

잘 아시듯이, 과학자들 중에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들이 이들만은 아닙니다. 입장도 다 다릅니다. 예컨대 인간 유전체 사업을 이끌고 있는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처럼, 오히려 과학을 통해 신을 만나는 사람도 있고, 몇 해 전에 작고한 고생물학자 스티븐 J 굴드(S. Jay Gould)처럼 종교를 딴 동네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가볍게 넘기는 이도 있지요. 엘리트가 많이 모이는 교회에 가 보면 의외로 대학의 이공계 교수들도 눈에 많이 띕니다. 솔직히 그들 중에는 '신앙 따로, 학문 따로', 살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말이지요. 여하튼 과학자들이 종교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그럼 종교인들은 과학을 어떻게 볼까? 좀 더 구체적으로 종교인들은 종교적 함의를 갖고 있는 천체 물리학, 진화론, 신경 과학, 유전학 등을 어떻게 대할까?' 뭐 이런 질문들 말입니다. 종교인들도 이런 분야의 최신 성과들에 대해 모두 한목소리를 내는 걸까요? 아니면 심각한 의견 차이가 있는 걸까요? 물론 '종교인'이라는 단어의 외연은 매우 넓을 것 같아요. 초자연적인 신을 믿는 신앙인들로부터 그런 신앙에 대해 탐구하는 신학자나 종교학자들도 포함될 수 있겠고, 초자연적인 신의 개념은 없지만 나름의 종교적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도 해당되겠지요. 이런 것은 신학자, 종교학자인 두 분이 더 잘 규정해 주시겠죠. 종교인들이 현대 과학 기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관해 두 분께서 말씀해 주면 어떨까요?

회신 기다리겠습니다.

2007년 3월 20일

보스턴에서 눈을 기다리며,
장대익 드림

추신 : 가보들을 '공짜로' 몇 장 보냅니다. 제 컴퓨터가 망가져 데이터가 날아갈 수도 있어서 여기저기에 복제해 놓으려는 뜻도 있으니, 부디 열어 보시고 어딘가에 저장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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