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수출 증명(EV)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수출 증명(EV)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송기호 칼럼] 다시 검역 주권을 생각한다

정부가 30개월이 넘는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의미 있다. 이는 국민의 직접 행동이 이룬 성과이다. 한나라당의 김성훈 디지털정당위원장이 촛불 집회를 놓고, 민주주의의 역사적 사건이었다고 아고라에서 쓴 것은 적절하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는 자기 결정권의 핵심적 내용이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전환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그런데 '수출 증명(EV) 프로그램'이라는 생경한 낱말을 들고 나와서, 이 전진을 한사코 가로막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수출증명 프로그램이란 미국이 자기 나라 도축장과 농무부 수출 검역 증명 제도를 서로 연결해 주기 위해 운용하는 장치이다.

국제통상법상, 쇠고기 수출국의 정부는 쇠고기를 검역해서 수출 검역 증명서를 발급해야 한다. 오늘날 모든 잘못의 근원이 된, 농림부 장관 고시라는 것의 법률적 의미도, "수출국의 검역 내용" 등을 정하는 고시라고 명시되어 있다(가축전염병 예방법 제 34조).

미국법상, 쇠고기 수출 검역 증명을 담당하는 곳은 미 농무부 식품안전검사국(FSIS)이다. 식품안전검사국의 기본 임무는 도축 검사이다. 그러므로 미국 내수용으로 공급되는 쇠고기는, 식품안전검사국의 법적 권한은 도축검사로 완결된다. 그러나 수출용은 다르다. 식품안전검사국은 도축이 완료된 이후 수출용 쇠고기에 대해, 수입국이 정한 검역 기준에 맞는지 다시 수출 검역을 해야 한다.

식품안전검사국의 도축 검사 자체는 애당초 내수용 소와 수출용 소를 구분하지 않는다. 더욱이 해당 소의 쇠고기가 일본으로 갈지 한국으로 갈지 구별하면서 도축 검사를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식품안전검사국은 도축이 모두 끝난 후에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쇠고기가 특정 국가의 검역 기준에 맞는지를 수출검역 할 수 있을까?

여기에 수출 증명 프로그램의 의의가 있다. 미국 농무부는 특정 수입국의 검역 기준을 수출 증명 프로그램에 반영한다. 그리고 이를 도입하는 도축장에 대해선 현장 점검을 통해 그 실행을 인정해 준다. 그리고 그 인정서를 발급해, 수출 검역 신청서에 첨부하게 하는 것이다.

수출 증명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곳은 미 농무부 농업판매촉진국(AMS)의 심사과(ARC Branch)이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수출 증명 프로그램은 심사과의 농산물 품질 시스템 평가 프로그램(QSA Program)의 일환이다. 이 품질 평가 프로그램은 미국 농산물 판매 촉진을 위한 미국 농산물 품질 관리 매뉴얼이다(ARC 1002 Procedure).

이 프로그램은 강제적인 법적 의무로 되어 있지 않다. 이 프로그램을 도축장이 자발적으로 이를 도입해 시행할 경우, 미국 농무부 심사과는 연 2회의 현장 점검을 통해 그 실행을 인정해 준다. 그래서 흔히 이 프로그램을 점검에 기반을 둔 자발적 프로그램(voluntary audit-based program)이라고 한다.

도축장이 수출 증명 프로그램을 앞에서 본 'QSA Program'에 포함시켜 인정을 받으면 도축장과 식품안전검사국 모두에 편리하다. 수출 검역 증명을 받으려는 도축장은 해당 도축장의 수출 증명 프로그램 도입을 인정하는 농무부 심사과의 확인서를 받아 함께 제출하면 된다. 식품안전국은 이 확인서를 근거로 수출 검역 증명서를 발급해 준다(식품안전검사국 고시, Notice 19-06).

문제는 역사이다. 한국의 경험이다. 미국 농무부 조사과는 2006년 3월 7일, 한국으로 수출되는 미국산 쇠고기를 위한 수출 증명 프로그램을 공지했다(ARC 1030M Procedure). 그리고 이를 자신의 'QSA Program'으로 포함시킨 도축장 30여 곳을 인정해 주었다. 그 결과 이들 도축장의 쇠고기는 미국 식품안전검사국의 수출검역증명을 받아 한국으로 수출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수출한 쇠고기에서, 헤아릴 수 없는 뼛조각 검출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다이옥신 검출과 갈비 통뼈의 혼입(5회)에 두 차례의 광우병 위험부위의 혼입이 있었다. 이 모두가 미국 정부가 아무 이상이 없다고 수출 검역 증명서를 발급한 합격 제품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더욱이 이는 미국 도축장 승인권을 한국이 가지고 있었고,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 혼입 시, 한국은 모든 미국산 쇠고기를 상대로 수입중단이나 검역 중단을 할 수 있었던 때에 발생한 일이었다.

만일 이명박 정부가 금번 한미간 협의 결과를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고시하게 된다면, 미국 도축장 승인권은 미국에게 넘어 가며, 심지어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 들어오더라도 해당 도축장 제품에 대해서조차 검역 중단을 할 수 없게 된다. 과연 이 때 수출 증명 프로그램은 어떻게 지켜질까?

미국 수출 증명 프로그램의 문제점은 한국에 대해서만 드러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은 2006년 1월 20일, 광우병 특정 위험 물질인 등뼈가 혼입된 미국산 쇠고기가 발견되자 즉시 모든 미국산 제품에 대한 수입 중단 조치를 취했다. 이러한 사태를 맞아, 미국 농무부 감찰관 로버트 영은 2006년 2월, 마이크 요한스 농무부 장관에게 제출한 감사 보고서('일본 수출용 수출 증명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 농무부 통제 평가')에서 이렇게 보고했다.
쇠고기 수출 증명 프로그램 요건 준수를 집행하는 것이 붕괴된 까닭은 의사소통을 위한 절차와 서류가 불충분했고 모호했기 때문이다. (We found that the enforcement of compliance with BEV requirements broke down because the processes and documents used to communicate (…) were insufficient and non-specific.)

미국은 일본에 사과했고, 일본은 2006년 7월 27일 수입을 재개했다. 그러나 일본은 자신의 검역 주권을 행사하는 데에 게으르지 않았다. 일본은 미국의 수출 증명 프로그램의 철저한 준수를 관철시키기 위해, 미국 현지를 철저히 점검했고 2007년 6월 13일 미국과 공동 기자 회견문 형식으로 미국의 도축장, 농무부 심사과, 그리고 식품안전검사국 3자가 취했던 10가지의 조치를 명문화했다. 이를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 미국 도축장은 광우병 위험 부위 제거를 위한 효과적인 작업 공정에 대한 충분한 명세를 문서화하고 유지했다. 미국 농무무 심사과는 도축장에 수출증명프로그램 인정을 해 주기 전에 도축장의 작업 매뉴얼과 이해도를 검증했다. 그리고 식품안전검사국은 일본용 수출 증명 프로그램으로 검역관을 훈련시켰다. 일본은 모든 제품에 대한 100% 전수검사를 실시했다.

위 기자 회견문에서 미국 정부는 도축장들이 수출 증명 프로그램을 효과적으로 준수하도록 담보하는 데에 필요한 통제를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일본 정부에 약속했다. 일본은 회견문의 마지막 문장에서, 만일 부적합 쇠고기가 다시 일본에 수입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일본은 미국 농무부 조사과의 수출 증명 프로그램의 자비로움에 자국민의 건강을 맡겨 두지 않는다. 나 역시 미국의 수출 증명 프로그램에 우리 아이를 맡길 의사가 없다. 내게는 미국의 수출 증명 프로그램보다 대한민국의 검역 주권이 더 소중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아이들과 그 친구들이 광장에서 외쳤듯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므로. 그리고 그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내일의 주인공들이므로.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