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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산층 가정도 지금 이럴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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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산층 가정도 지금 이럴진대

[뷰포인트]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주연의 <더 킹> 리뷰

단란하고 화목해보이던 중산층 가정이 낯선 이방인 한 명의 출현으로 산산이 깨져나가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들은 언제나 매혹적이다. 대체로 그 이방인은 누구나 혹할 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뿜기 마련이고, 중산층 가정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적 이데올로기와 억압을 청교도적 가치로 은폐하는 가장 작은 규모의 장이기 때문이다. 가정의 균열은 낯선 이방인의 등장으로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본질적으로 내재돼 있던 것이 작은 계기를 만나 폭발하는 것일 뿐. 그 과정에서 우리는 현대 자본주의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가 신봉하는 가치들이 실은 얼마나 추악한 위선과 협잡으로 둘러싸여 있는지 폭로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더 킹> 역시 바로 그런 영화에 속한다. 그런데 이 영화가 '낯선 이방인에 의한 가정의 파괴'라는 익숙한 이야기를 다루는 다른 영화와 가장 다른 점은 이 영화가 파괴자의 시선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더 킹

해병대에서 갓 전역한 젊은 청년이 생면부지의 친부를 찾아 텍사스 주에 온다. 하지만 독실한 기독교 목사로 신앙심 돈독한 아내와 딸, 아들을 거느린 가장이 돼있는 아버지로부터 외면과 냉대를 받은 이 청년, 그 순한 눈에 잔뜩 서러운 상처를 담은 채 아버지로부터 등을 돌린다. 하지만 그는 마을을 떠나는 대신, 아버지의 딸을 유혹하고, 아들을 죽이며, 마침내 아버지의 아들 자리를 되찾는다. 아버지를 향한 이 지독한 갈구의 과정에서 엘비스에게 자신의 이복동생들이 받는 지독한 상처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 모든 비밀이 폭로되는데도, 마침내 공식적으로 아버지로부터 '아들'의 호칭을 얻게 된 그의 얼굴은 천진난만한 기쁨으로 빛날 뿐이다. 이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건 일차적으로 엘비스의 아버지가 새로 일구었던 가정이 그토록 절대적으로 신봉했던 기독교적 가치의 위선과 황량함이다. 카인과 아벨의 모티브와 근친상간은 기독교가 가장 두려워하는 금기들이기도 하며, 이로 인해 현대 미국의 기독교가 그토록 강조하는 가족의 가치가 연쇄적으로 깨져나간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남편에 대한 신뢰를 잃고 신앙에 대한 시험대 위에 서며, 새로운 양아들에 대한 애착은 한편으로는 성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는 듯도 보인다. 목사인 아버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키는 듯 보이지만, 영화가 끝나기 직전에 그가 처한 상황은 그의 인생을 통털어 가장 힘겹고 풀기 어려운 모순적 질문과 직면한다.
더 킹

하지만 이 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갈등과 이를 통해 던지는 도발적인 질문은 종교뿐만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의 사회문화적 맥락에까지 적용되는 대단히 중첩된 모순을 포함하고 있다. 라티노 여성을 어머니로 둔 엘비스는 이름만은 미국인들의 영웅 엘비스 프레슬리에서 따왔지만(영화의 제목인 'the king'은 지금도 여전히 미국의 대표적 아이콘인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붙었던 애칭이기도 하다), "히스패닉이 미국을 좀먹고 있다"는 히스테리에 사로잡혀 있는 백인 WASP 가정의 악몽을 눈앞에 재현시켜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과연 이는 미국인이 아닌 멕시코 출신의 배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에 의해 그려진다. '옴므 파탈(Homme Fatal)'로서 손색없는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은 그 수줍은 표정과 맑은 눈동자, 그리고 섬세한 연기력을 한껏 이용해 엘비스를 연기한다. 그의 눈이 아버지의 냉대 앞에서 촉촉해지는 순간 이미 정서적으로 그에게 몰입해버린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가 여동생을 유혹해도, 남동생을 불시에 때려죽여도 그에 대한 동정과 연민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매우 충격적이며, 이를 접한 미국 관객들의 반응은 고뇌와 갈등을 넘어서 공포에 가까울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다만 이 영화가 도발하고 있는 대상이 철저히 미국적인 가치인 만큼,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그 정도로 강한 울림을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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